[영진공 63호]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커플족들의 필독서

산업인력관리공단
2006년 11월 17일

모두가,
심지어 통속 드라마의 여주인공마저도 알랭 드 보통의 이 책을 자랑스럽게 끼고 과시할 때(제목도 있어보이고 말이지.),
베스트셀러라면 일단 피해가곤 하는 나는 “뭐 있겠어? 그냥 쓴 사람도 잘난 척, 읽는 사람도 잘난 척하기 좋은 그런
책이지.”했다. 그렇게 오만했던 내가 이 책을 집어든 건 도대체 무슨 심보 때문이었을까. (뭐긴 뭐겠어 사실은 알라딘
우수서평공모 때문이었다. ㅎㅎ)

그리 많지 않긴 해도, 연애는 할 때마다 어렵고 사랑은 할 때마다 혼란과 불안의
연속이다. 그런데 이 책, 주인공이 클로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을 이어가다가 마침내 파국에 이르기까지의 그 뻔하고
상투적인 과정을 서술하면서 새삼 ‘맞아맞아!’를 연발하게 만든다. 심지어는, 연애하는 과정에서 갖게 되는 지극히 쫀쫀하고
속물적인 욕망과 심리상태까지도, 사랑에 부가되는 자연스러운 감정들에도 거창한 철학적 이름을 붙이며 담담히 서술하는데, 여기에 또
유머가 가미돼서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책의 앞부분을 읽으며 내가 쿡쿡 웃으며 “뭐야, 이거 완전 전형적인 소심 문돌이의
연애기잖아!”를 외치며 쿡쿡 웃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처음 사랑에 빠지면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이른바
아전인수격으로 ‘운명적 사랑’의 근거로 끌어오는 경향들에 ‘낭만적 운명론’이란 이름을 붙인달지. 또한 사랑하는 상대가 튕길 때
매혹을 느끼다가 상대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받아안고 또 표현하면 이쪽에서 심드렁해지는 심리를, 알랭 드 보통은 ‘마르크스주의자의
사랑’이라고 부르며 자세한 예화를 소개한다. 모두가 보기에 ‘아니’라고 해도 내 눈엔 특별해 보이는 일명 ‘콩깍지 낀 상태’를,
그는 플라톤식 미학을 끌어와 플라톤에 반박하는 용도로 사용해 버린다. 그러면서 선언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런 객관적인
완벽함과 불완전함 사이를 위태롭게 오갈 때 발생하는 것이라고. (동감, 또 동감!) 그런가 하면 사랑이라는 고귀한 선물이 주는
행복 앞에서 그 행복을 만끽하지 못한 채 멈칫하게 되는 심리랄지, 사랑이 파국으로 끝난 뒤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깎아내리다가
결국 자기합리화를 해버리는 쫀쫀한 과정까지도, 알랭 드 보통은 재치 넘치는 철학적 설명을 부가해 놓고 있다. 플라톤부터 칸트,
비트겐슈타인, 마르크스 등 각종 철학자들의 사상과 심지어 종교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사가 ‘연애’라는, 누구나 원하고
누구나 관심을 갖는 종목과 엮이는데 세상에! 어쩌면 이 세상의 그 철학과 사상은 ‘남자/여자를 꼬시기 위해’ 만들어진 건지도
모른다는 공상을 하게 만들 정도로 너무나 잘 맞아떨어진다. 그걸 또 그렇게 접목시킨 솜씨는 어떻고?

물론, 난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도, 알랭 드 보통이 꽤나 잘난척쟁이라는 것, 그리고 이 책을 좋아할 만한 사람들이 또 꽤나 잘난척의
허영쟁이들일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고상한 척하지만 지극히 속물적인, 또한 속물적이지만 지극히 고상한 척하는.
하지만, 잘난척과 속물적 허영에도 급이라는 게 있다. 영 ‘재수없는’ 것들도 있지만, 뭔가 교육을 받았다는 인간들의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운 매력’인 것들도 있는 법. 알랭 드 보통의 책은 후자다. 아마도 내가 이 책에 이렇게 야유와 비아냥을 보내면서도
굳이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은, 서평대회 응모 때문만이 아니라 이 책을 꽤나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도 그렇고 그런 속물 잘난척쟁이라는 고백.)

산업인력관리공단 조사1부 부장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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