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4호]역마살

문예창작위
2006년 12월 11일

대일이가 몸에 불을 붙이는 것, 이른바 분신을 시작하게 된 건 돈 때문이 아니었다. 숭고한 이유가 있었다.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어 회사 앞에서 첫 집회를 가졌을 때, 22명의 노조원들은 단숨에 해산되고 말았다. 점심 식사를 하고 들어오던 박차장이
이빨을 쑤시며 말했다.

“너네 왜 남의 회사에서 농성하니?”

말이야 바른 말. 대일이가 일하는 곳은 정확히 대일의 회사는 아니었다. 불법파견이라고 주장했지만 대일이네 말을 들어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집에서 깡소주를 빨며 억울해 한 다음 날 대일은 출근하지 않았고 그 다음 날 신나에 흠뻑 젖은 채로 회사 정문
앞에 나타났다. 경비실 옆 화단에 목련이 하얗게 오른 봄의 문턱이었다.

“불법 파견 철폐하라!!”

성냥 머리에 불이 오르듯, 대일의 몸에 불이 확 올랐고 경비 셋이 놀라 쫓아왔다. 한참을 실랑이 하던 끝에 대일의 몸에 담요가
덮어졌는데 신기하게도 대일은 한 군데도 화상을 입지 않았다. 아깝게 로타리 다방 미스 최가 선물해준 노란 겨울 골덴 바지만이
새까맣게 타버렸다.

거사가 실패한 일주일 뒤 대일은 공장 주차장에서 다시 한 번 몸에 불을 붙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엉덩이가 다 늘어진 싸구려
추리닝과 런닝 셔츠 차림이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대일은 아무런 화상도 입지 않았다. 옷만 재가 됐을 뿐이다.

며칠 후 어떻게 알았는지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누가 나를 타게 할 것인가! 불사조 이대일”

그가 처음 전국에 중계된 방송의 제목은 그랬다. 그는 방송 카메라 앞에서 몸에 불을 붙였다. 사람들은 신기해 했고, 기네스에도
올랐다. 외신 기자들과 미국, 유럽은 물론 코트니부아르 방송국에서까지 찾아 왔다. 회사에서 기름밥을 먹던 때 벌이의 10배를 한
달 사이 벌어들였다. 대일은 그 돈으로 장가까지 들었다. 아내가 된 로타리 다방 미스 최는 은행 대출을 받아, 로타리 다방 최
마담으로 변신했다. 행복한 시절이었다.

몇 개월이 흐르자 방송 출연도 뜸해졌다. 매번 같은 레퍼토리로는 매일 방송에 나갈 수가 없었다. 대일은 레파토리가 절실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몸에 불을 붙인 사나이. 한국 이대일(33세). 25분 22초”

대일이 갖고 있는 기네스 기록. 이걸 깨보기로 결심했다. 몇 번 연습을 했다. 가볍게 25분을 넘겼다. 그간의 방송 출연으로 연을 맺게 된 방송국 PD가 생방으로 진행해보자고 부추겼다. 대일은 의욕에 타올랐다.

드디어 방송일. 대일이 무대에 올라섰다. 방청객들의 박수가 터졌고 전국 시청자들의 환호성이 환청처럼 귓가에 울리는 순간,
큐사인이 떨어지고 대일의 몸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날은 그동안 대일을 지켜주던 불사조의 기운이 대일을 찾지 않았다.
대일은 무대 위에서 까맣게 타죽고 만다. 처음 몸에 불을 붙인 후 1년 3개월 8시간 40분 만에 일이었다.

마침 박차장도 이 대형 방송 사고를 밥을 먹으며 보고 있었다. 그는 이빨을 쑤시며 말했다.

“쟤도 역마살이네.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불장난하더니 쯧쯧.”

문예창작위 소속 공식 지정 소설가
철구(http://chulgoo.com)

“[영진공 64호]역마살”의 한가지 생각

  1. 글 올라온지 한 참 됐는데 지금에야 보내요.
    뭐랄까. 이런 식의 소설은 책으로 정말 접하기 힘들어서 더욱 소중하네요.
    씁쓸하게 받아들이면 되는건가요?
    다음 작품도 기다릴께요.

알쏭달쏭에게 댓글 남기기 댓글 취소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