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대한 소회

재외공관소식
2007년 3월 6일

영화 평론가는 여간해선 새로 나오는 영화를 칭찬하지 않는다. 평론가란 으레 까대는 사람이라 생각해서일게다. 그러다 그게 흥행에 성공하고, 그와 장르가 비슷한 또다른 영화가 나오면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는 전범이라고 할 <천왕성의 꿈>이 보여 준 신선함과 참신성, 그리고 새로움을 하나도 보여주지 못한 채 줄거리만 답습한 한심한 영화다.”

감독으로 주제를 바꿔도 그건 마찬가지다. 봉준호 감독이 <플란더스의 개>를 만들었을 때 평론가들은 별의별
용어를 다 써가며 영화를 까댔는데, 그가 <살인의 추억>을 만드니까 첫 번째 영화는 아주 좋았는데 거기서 보여준
장점을 이번 영화에선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봉준호의 항변이다.

“내 참, 그렇게 좋으면 개봉했을 때 얘기 좀 해주시지, <살인의 추억> 찍고 나니까 그런 말을 하잖아요.
그런 분들 보면 얄미워 죽겠어요…그런 사람들 <플란더즈> 때는 다 어디 가 있었던 사람들이에요?”
다행히 <살인의 추억>은 기록적인 흥행을 함으로써 평론가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지만, 그들은 그런 실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먹이감을 찾아 나선다.

게다가 그들은 객관적이지도 못하다. <괴물>을 그다지 재미없게 본 나는 왜 그들이 그렇게 괴물을 띄워줬는지 잘
모르겠는데, 짐작가는 이유라면 그때가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던 시기였기에 <괴물>을 스크린쿼터를 지키는 상징적인 존재인
양 생각해서가 아닐까 싶다. 그 영화가 1300만을 동원하며 신기록을 세우는 걸 보면서 평론가들의 힘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

<태풍>을 봤다. 당시 평론가들 은 이 영화에 대해 가혹한 린치를 가했고, 그 바람에 난 극장에서 못보고
이제야 DVD로 봐야 했는데, 보고나니 난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욕을 많이 먹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제작비를 많이 써서?
마초적 영화라서? 어느 분이 글로 쓴 것처럼 거기 담긴 이념이 촌스러워 그랬다고 치자. 난 이렇게 생각한다. 이데올로기가 없는
영화는 없다고. 반공이나 막시즘처럼 거창한 이념만 이념이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면, 가족 이데올로기라는 것도 얼마든지 존재하고,
소시민 이데올로기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건 어떤 이념을 담았냐가 아니라, 그 이념을 얼마나 잘 포장해서 관객에게
내놓았냐는 것, <괴물>의 성공도 반미와 반정부라는 낡은 이념이 담겨서가 아니라 그걸 비교적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재미있게 관객에게 제시해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은 민족이나 국가를 이야기하는 영화는 무조건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모든 사람이 그런 영화만 만들면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하나쯤 있다고 해서 나쁠 게
뭐가 있담?

상벌위원회 부국장의 상념
서민(bbbenji@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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