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티드>와 <언더월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전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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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티드>는 적어도 시각적인 측면에서는 최근에 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물론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영상도 있었고, 더 박진감이 넘치거나 참신한 영상도 있었습니다만, 영화속의 상상력을 한 차원 높였다는 점에서 저는 <원티드>가 <매트릭스> 만큼이나 대단하다고 봅니다.

핵심은 오우삼이 <영웅본색>에서 시작한 총격발레를 진정한 발레의 경지로 승화시킨 그 총격 액션입니다. 총알을 멈추게 만드는 <매트릭스>의 네오조차도 손대지 못했던 총알의 궤적을 변형시키는 경지를 보여주죠.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떠올린 다른 영화는 바로 <언더월드>입니다.
케이트 베킨세일 여사가 전신 고무옷을 입고 눈 돌아가게 해주시던 바로 그 영화.
<매트릭스>를 비교적 충실하게 계승한 와이어 액션과 슬로모션 액션을 보여준 그 영화.
하지만 <원티드>를 보고 나니 뭐가 부족했는지 확실하게 보이는 바로 그 영화죠.


아, 언더월드…

<언더월드>는 늑대인간과 뱀파이어 사이에서 수백 년간 계속되어온 전쟁이야기입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지하에서는 이 두 괴물 종족들간의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었던 거죠.

문제는 이겁니다. 애초에 힘만 쎈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늑대인간들이야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야만적이라고 치죠. 그 우아하고 빠르고 힘도 세고 머리까지 좋은 뱀파이어들은 그동안 뭐 했답니까. 죽지도 않는 이 뱀파이어들은 수백년간 늑대인간들에게 총질을 해왔습니다. 특수부대원들이라 할지라도 몇 년 이상 경험하기 힘든 실전사격의 경험이 이들에게는 수백년 어치가 축적된 것이죠. 수백년의 사격 수련과 인간보다 수십배 강한 근력과 스피드까지 겸비했으니 이들은 적어도 사격에 있어서 신의 경지에 올라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던가요.

이 영화의 처음을 장식하는 지하철 액션을 생각해보세요. 그 높은 성당 첨탑에서 시크하게 뛰어내릴 때만 해도 폭풍처럼 뿜어내던 베킨세일양의 간지는 지하철에 들어가 다 망가집니다. 어떻게 수십 발을 난사하면서 한 놈도 못 맞출 수가 있답니까. 총기역사의 초창기부터 총질을 해온 이들이라면 안보고 쏴도 맞출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로보캅도 그 정도는 할 줄 압니다. 몇 발은 맞았는데 워낙 상대가 강해서 멀쩡한 거라구요? 그럼 뭐 하러 총을 쏜대요? 이 영화에서는 그 이후에도 이런 총기 난사가 계속됩니다. 베트남 전쟁터의 미군도 아니고, 이게 뭔 짓입니까.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이때만 해도 폭풍간지…


쌍권총 쏘면 뭐하나효. 하나도 안 맞는데…뭐 몸매는 참 보기 좋으십니다만 …

게다가 이들이 다루는 총들은 과연 이들이 그 우아하고 고상한 뱀파이어인지 의심하게 만듭니다. 수백년간 총을 쏴온 전문가들이라면 자기만의 역사가 담긴 총 하나쯤은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여기선 어떻게 된 게 역사와 전통을 단 한 점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죄다 신형 총들만 쓰거든요. 그래도 약간 보는 눈은 있어서 HK나 발터 같은 유럽제 총을 쓰긴 씁니다만, 뭐 모르는 촌시러운 애들이야 이런 신형 총들에 뻑가죠.


삶의 다른 부분은 이렇게 고풍스러운데…


어째서 총은 플라스틱제 G36이나


역시 플라스틱제 월터 P99인가요

옛날 총이라고 나 후진 게 아니고, 신형 총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요즘 총기회사들이 총을 설계할 때 고심하는 부분은 비용과 성능의 균형입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질 수 있더라도 비용이 많이 들면 포기해요. 너무 생산단가가 높은 총을 만들면 이윤이 적어지고, 그러면 망하거나 주주들에게 사장이 쫒겨나거든요. 칼 발터 사에서 양산 총 중에서는 극한의 성능이라는 P88을 만들고 망한 이유가 그겁니다. 마우저 C96 같은 총이 퇴출된 가장 큰 이유도 성능의 부족이 아니라 지나치게 높은 단가였습니다. 발터 P88이 과연 P99보다 못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합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P99는 싸게 만든 중급품에 해당합니다(물론 독일제답게 잘 맞기는 하지만 최고. 지그P210 같은 권총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마우저 C96, 성능은 괜찮은데 너무 크고 무겁고 복잡한게 문제였던 총…


지금까지 나온 중 가장 비싼 양산형 권총중의 하나, 발터 P88.. 이거 안팔려서 발터사가 한번 망했다는…

현대 총기의 또 다른 제약은 그 총을 쏘는 인간의 능력입니다.
미군이 강력한 사거리와 위력을 자랑하는 자동소총 M14를 포기하고 적당한 사거리와 위력을 가진 돌격소총 M16을 채용한 이유도 그겁니다. 인간의 근력으로는 M14 같이 위력 센 총은 연발로 사격할 때 반동을 제대로 제어하기 힘들거든요. 아무리 위력이 강하면 뭐합니까. 어차피 인간의 시력으로 교전가능 한 거리는 3-400미터 내외이고, 그 정도의 거리에서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되 연발로 사격이 가능한 총(M16)이 6-700미터의 유효사정거리를 가졌으나 연발사격이 어려운 총(M14)보다는 훨씬 더 나은 걸요.


M16이 좋은 이유는 인간의 체력과 근력에 적당하기 때문이죠


도대체 뱀파이어의 밤눈을 가지고서도 왜 이렇게 플래시를 켜대는 거임?

물론 M14로 연발사격을 하면 총 자체에도 무리가 많이 갑니다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역시 인간의 능력 때문입니다. 사람이 들고 다니려면 어느 정도 무게의 한계가 있고, 그 한계에 맞추려다 보니 총을 충분하게 튼튼히 만들 수 없었던 거죠. 2차 대전 때의 브라우닝 BAR 같은 총은 M14보다 약간 더 쎈 탄환을 연발로 쏴대도 멀쩡한 총인데 무게가 자그마치 8.8kg 입니다. M16이 4kg이 채 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보면 얼마나 무거운지 실감나실 겁니다. M14도 이 정도 무게로 만들었더라면 연발사격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죠.


총 무게가 9kg라도 상관없었다면 아마 이런 BAR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결국 이런 모든 제약은 인간에 대해서만 유효한 겁니다. 그 총의 주인이 인간보다 체력과 감각 모두 뛰어난 뱀파이어에겐 아무 의미 없는 문제죠. 총의 무게가 10kg면 어떻습니까? 반동이 강하다 한들 그 억센 근육으로 잡아주면 삼각대에 얹은 것만큼 정확하게 쏠 수 있겠고요. 그러니 이 뱀파이어 분들은 나약한 인간들이 들고 댕기는 플라스틱 돌격소총이 아니라 금속으로 만든 M14 단축형이던가, 칼이 달린 권총 같은 걸 들고댕겨도 큰 문제가 없겠죠.


요즘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많이 쓴다는 트로이제 M14 변형. 길이는 짧고 무게는 무겁고 위력은 M16보다 훨씬 센…


뱀파이어의 근력과 스피드와 감각이라면 이런 아예 유탄발사기를 쓰는 것도…


육박전 용으로는 이런 권총+단도 스타일도 나쁘지 않죠. 물론 이건 장식용이지만


실제로 최근엔 이런 모델도 나오긴 합니다.

어쨌든, 뱀파이어들이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주제넘게도 인간 주제에 신의 경지에 도달한 놈들이 등장해버렸습니다. <원티드>의 킬러들이 바로 그들이죠. 물론 이들은 분당 맥박수가 400에 도달해야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지만 뱀파이어들이 했어야 하는 것이 뭐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총알 스핀먹이기는 그 중의 하나일 뿐이죠.
(사족이지만, 어떤 생물학자는 모든 생명체의 수명은 시간이 아니라 심장의 박동수에 의해 한정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즉 우리의 심장이 평생 뛸 수 있는 횟수가 이미 정해져있다는 거죠. 느릿느릿 흥분하지 않고 살면 그만큼 심장이 천천히 뛸 것이니 오래 살고, 흥분해가며 급하게 살면 그만큼 빨리 죽는다는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뭔 일 있을때마다 분당 맥박수 4백을 끊는 이들의 신조는 아마도 “짧고 굵게 살기”가 되겠지요)

게다가 이들은 총알도 평범한 것을 쓰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문장이 있고 메시지까지 담죠. 게다가 총 자체에 대한 조예도 깊어서 수도파이프 같아 보이는 자작총으로 초장거리 저격을 합니다. 물론 총기역사의 초창기를 장식한 휠록식 총을 자그마치 연발형태로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하고요. 물론 오랫동안 총질한 인간들답게 각자의 애총은 고유한 문양이 새겨진 독특한 물건들입니다.


졸리 누님의 문양 가득한 콜트45


이게 휠록식 총…


휠록식 총의 작동구조… 그래봤자 옛날 부싯돌식 화승총이라는 …

이 얼마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뼈대있는 고상함입니까.
그러니 <언더월드>의 뱀파이어들, <원티드>를 보며 열심히 반성하기 바랍니다.


액션의 끝은 <원티드>가 봤다는…

아참, <원티드>의 킬러들도 가끔은 최신형 장비를 쓰는데, 대표적인 것이 졸리 여사가 쇼핑센터에서 난장칠 때 사용한 “코너샷”이죠. 이스라엘의 한 발명가가 개발한 물건으로 “나는 몸을 숨긴 채로 상대방을 쏘고 싶다” 는 인간의 오랜 숙원을 전자기술을 이용해 달성한 제품입니다. 말 그대로 총을 꺾어서 쏠 수 있게 해줍니다. 총 앞에 비디오카메라를 달아서 사수는 엄폐물 뒤에 숨어 모니터로 적을 보며 겨냥할 수 있죠. 지금 생각해보면 졸리 누님의 실력 정도라면 굳이 그런 물건을 쓸 필요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만… 뭐 감독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겠죠. 이 코너샷이 생각만큼 장사가 안돼서 고생한다더니 마케팅을 이렇게 하는군요.


쇼핑센터에서의 총격전


여기 등장하는 장비는 바로 이 코너샷


앞에 권총을 꽂아서 쓰면 됩니다.


유탄발사기가 달린 것도 있죠.

영진공 짱가

“<원티드>와 <언더월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전문성”의 8개의 생각

  1. 뱀파이어는 헬싱의 아카드처럼 초대형, 대구경 특수제작 권총을 들고 다니던가 세라스처럼 아예 대포를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로군요…(….)

  2. gg/저는 월야환담을 몰라서…

    나인테일/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평범한 인간들과는 어딘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뭐 대포도 나쁘진 않고요…^_^

  3. 더맨프롬어스라는 영화에 보면 무한히 사는 존재에게 물품이란 그냥 스처 지나가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원티드의 살수들은 짧고 굵게 살면서 뭔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행위와 물품을 갖고 싶어서 자신들만의 의미가 담긴 총을 갖게 된건 아닐까요?? 그리고 존재의 이유 자체가 살인이기도 하고..그러다 보니 실력도 늘고 ㅎㅎ

    그에비해 언더월드의 뱀파이어들은 어짜피 무한히 살아 갈 것이고..그들이 하는 전쟁이 존재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기도 그냥 대충대충.. 총질도 그냥 대충대충 하다 보니 실력이 늘지 않았겠죠..

    하이랜더였나요?? 그들은 무한히 살지만 존재의 목적이 어떻게 보면 생존에 있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실력이 쌓여 간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ㅎㅎ

    제작자가 다른 영화의 사상이나 배경을 비교한다는 자체가 모순된 행위이지만 글을 워낙 재밌게 쓰셔서 저도 그냥 생각 나는데로 한번 달아 봤네요ㅎㅎ
    또 재밌는 글 많이 써주세요~

  4. 뱀파이어들에게 보다 강력한 총을 지급하라!! 지급하라!!!
    총기의 성능 문제에 대해 배우는 계기가 되었네요.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저 코너샷 총은 어쩌면 협찬, 간접광고 물건일지도……?
    아니면 초반부에는 결정적 액션인 총알 휘기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의도인지도 모르죠.

  5. 휴… 이분 영화 제대로 안보셨군요.-_-;;

    1. 중요한건 총이 아니고 총알입니다. 처음 교전에 늑대인간 한명은 죽지 않았나요? 그 때 죽은게 단순히 총알 많이 맞아서 죽은게 아니고, 은 탄환으로 인한 중독 때문에 죽은 겁니다. 사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이나 그냥 총알로는 죽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늑대인간 진영에서는 자외선 캡슐을 담은 총알을 개발해서 뱀파이어를 사살했고, 뱀파이어는 은 탄환을 쓰다가 그걸 더 개량해서 질산은(맞나?) 탄환을 만들었죠. 질산은 탄환은 몸에 박히는 순간 질산은이 핏줄 따라서 온 몸으로 퍼지기 때문에 총알 꺼내봤자 은 중독을 못막거든요.

    2. 수십년간 총싸움질한 뱀파이어가 왜 그것도 못맞추냐? 늑대인간도 변신하기 전 강한 힘과 민첩함이 뱀파이어 수준은 된다고 봅니다. 그러니 똑같이 총싸움질하면서 실력이 늘었다고 봐야죠. (참고로 변신하면 1:1 로는 뱀파이어보다 더 센 걸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뱀파이어 한명은 추격하다가 도리어 변신한 늑대인간한데 죽었고, 심지어 유럽에서 온 뱀파이어 지도자 일행은 변신한 늑대인간의 기습에 전멸했습니다. 완전히 변신한 늑대인간을 상대로 은탄환 총 쓰지 않고 힘으로 맞짱떠서 이긴건 미국 뱀파이어 지도자 밖에 없었죠.)

    3. 왜 g36 같은 플라스틱 총만 나오냐? 솔직히 너무 어설픈 태클이라고 봅니다. BAR? 2차세계대전 때 썼던 BAR 를 무슨 수로 뱀파이어가 지금까지 생산합니까? 뱀파이어가 취미생활로 각국 총기회사 사장을 겸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요. 게다가 유탄 발사기?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은 조용히 인간들 속에 숨어살면서 최대한 ‘조용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처음에 일어난 교전도, 뱀파이어가 미행하는걸 늑대인간이 알아채면서 우발적으로 발생한것이지, 의도적으로 지하철역에서 대놓고 총싸움질하려고 했던게 아닙니다.) 그런데 유탄 발사기까지 동원해서 도시 한폭판에서 난장판을 만든다는게 말이 될까요?

  6. 그리고 g36 을 단순히 플라스틱제 총으로 폄하나는 것도 황당합니다. 그러면서 기껏 예로 드는게 m14 개량형인데, 원래 특수부대는 특성상 짧고 화력좋은 총을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별도의 지원없이 실내임무도 수행해야되고, 반대로 원거리 교전 능력도 중요하며, 상대해야될 적이 강화된 방탄복을 입은 적국 특수부대가 될 수도 있고, 특히 최근 미 특수부대는 개활지인 이라크 전장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그렇죠. (대신 무게와 조준실력은 부대원 역량으로 커버…) 단지 그 뿐이고, 독일 제식소총이기도 한 g36 이 폄하당할 이유는 별로 없습니다. 단지 화력만 가지고 본다면, 바렛 대물 저격총이나 발칸 미니미니건, 중기관총 등 안드로메다 화력을 자랑하는 무기는 많고, 그런 괴물들에 비하면 m14 개량형이나 g36 의 화력은 그야말로 종이 한장 차이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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