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을 바라보며




타고난 이기주의자이다 보니 대학생이 됐다고 나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그나마 사회과학 모임에 나가게 된 것도 호감 가는 여학생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접하게 된 한국의 현대사는 충격이었다. 그곳에는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역사가 있었다.

그 역사는 전혀 새로웠다. 찬탁은 소련이 한 것이 아니었고, 여순 반란사건은 반란이 아니었고, 4.3은 빨갱이 폭동이 아니었으며, 이승만은 국부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허풍이 심한 편이지만 들은대로라면 이랬다. 4.3 당시 현 제주시 관덕정 자리인 제주 도청 앞으로 어른들은 마음 놓고 지나다니지 못했다. 아이들만 용케 지나다녔고, 제주도청을 가로막은 철조망에는 사람 가죽이 널려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4.3은 그런 기억이었다. 하지만 4.3에 대해 집안 어른 누구도 내놓고 얘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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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4.3은 이랬다. 돈 번다고 제주도 전지역을 싸돌아 다닐 때. 4월과 5월 제주 조천이나 세화 등지로 가면 같은 날, 조그만 마을이 모두 제사다. 그날이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비극의 날이었던 것이다.

고삐리 때부터 친구였던 여자애가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후에 아버지가 물었다.

“가이 아방은 뭐 햄시?”
“경찰 공무원마쉬.”

남녀 사이에 친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는 뭔가 아쉽다는 듯 혼자 되뇌었다.

“게난 순사 딸이여?”

4.3을 겪은 제주 사람들에게 경찰이란 그런 존재였다. 이 사람들에게 지난 50년간의 역사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참여정부 때 노무현이 제주도를 찾아와 4.3에 대한 국가의 잘못을 최초로 인정했다. 같은 날 할아버지와 아버지, 작은 아버지와 사촌형의 제삿밥을 먹으러 돌아 다니는 사람들, 경찰은 순사에 불과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감춰왔던 역사가 사실이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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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몇 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제주도 4.3위원회가 폐지될 위기에 놓이는가 하면, 여당 의원은 ‘4.3은 좌익세력에 의한 폭동’ ‘제주도는 반란이 일어났던 곳’이라고 말한다.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에 결국 출판사가 굴복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나는 다시 교과서 밖으로 묻혀버리는 역사를 떠올린다. 권력과 자본의 지난 잘못이 드러날 수 있다는 이유로 ‘좌편향’ ‘왜곡’이라고 이름 붙여진 역사들. 

4.3을 겪은 아버지는 ‘경찰’을 보며 일제시대 조선인을 잡아다 고문하는 ‘순사’를 떠올린다. ‘경찰’과 ‘순사’라는 단어 사이, 서로 닿을 수 없는 그 거리는 역설적이게도 역사가 사람들에게 준 상처의 깊이와 닿아 있다. 그 역사들이 다시 교과서 밖으로 묻혀버리는 광경 앞에서 씁쓸한 이유는 ‘역사의 진실’이니 ‘권력의 오만’이니 ‘우경화’니 하는 거창한 이유들 때문이 아니다.

역사를 몸으로 겪으며 버텨 온 사람들, 그 역사 속에서 고통을 견뎌 온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배려. 바로 그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진공 철구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을 바라보며”의 5개의 생각

  1. 고등학교에 다닐 때 교과서에서 아주 짧게 4,3사건이 언급된 걸 봤었어요. 그 때는 그냥 선거에 반대하는 그런 사건이라고만 알았는데 (빨갱이 이런건 배우지 않았어요.) 지난 봄에 ‘순이삼촌’이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 정말 슬펐어요.
    지금 정부가 하려는 게 뭔지 정말 암담하고 화가 날 뿐입니다.

  2. 지금 정부에겐 역사 의식이란 것도 없고 민족의식이란 것도 없고
    오로지 좌와 우를 나누는 뇌뿐인 것 같습니다..
    멀쩡한 국민을 좌파로 만들고 지들끼리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인것 같습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그런 것들(인간이라 하기에도 아깝습니다)을 뽑아준 사람들 탓이겠지요..
    앞으로 남은 4년이 걱정입니다.
    4년후에 또 이런 것들 뽑아준다면 이나라에 희망은 없다고 생각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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