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2008)”, 좋다는 재료는 다 넣었는데 … 맛이 왜 이러냐???



몇 년 전에 호주에 간 적이 있다.  아들레이드(Adelaide)에서 열린 국제 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는데, 7일 일정으로 시드니(Sydney)와 아들레이드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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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에서는 야밤에 오페라하우스 근처를 배회하다가 게이 친구로부터 유혹(?)도 받았고 아들레이드의 호텔에 투숙하려고 숙박부를 기재하다가 “우리 스코틀랜드에서는 … (호주 아니었어???) … 날짜를 일, 월, 년으로 쓴다”라고 지적받기도 했고, 시내 술집에서 우연히 호주 공산당원하고 합석이 되어 태평양 전쟁 시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목소리 높여 성토하기도 했었다.  아, 그리고 렌터카 빌릴 때 미국 면허증을 내밀면 국제면허증 따위는 보자고도 하지 않고 바로 빌려줍디다.

그런데 도대체 이 얘기를 왜 하냐고???
내 말이 그거다.  이 영화가 그런 식이다.
이 얘기 저 화면 마구 들이대기는 하는데 요점도 없고 그닥 재밌지도 않으며 무쟈게 식상하다.  게다가 물경 2 시간 30 분 동안 두 남녀의 뻔한 사랑 이야기를 지리하게 늘어놓고서는 느닷없이 실은 지난 세월 호주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던 “잃어버린 세대(원주민과 백인의 혼혈을 지칭함)”를 위해서 영화를 만들었노라고 자막을 띄워서 숙연해주시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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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험들 하신 적이 있을 것이다.  좋다는 재료는 다 넣어서 만들었다는 음식을 받아들고 흐뭇한 마음에 허겁지겁 수저를 놀려 입에 넣었는데 … 정작 혀를 감싸는 맛은 이게 뭥미???

호주라는 광활한 자연, 호주 출신의 이름값 높으신 두 주연배우(니콜 키드먼 & 휴 잭맨), 비쥬얼로 승부하여 성공한 호주 출신 감독(바즈 루어만), 짭잘한 조연들 (FX의 그 아저씨와 쿵후허슬의 주인아저씨 등등), 1억 8천만 달러의 제작비 등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좋은 재료들.

거기에 러브스토리, 서부극, 전쟁물, 휴먼드라마, 권선징악, 마법, 가족애 등의 효과가 검증된 모든 요리방식들까지 아낌없이 다 동원한 이 영화.

에고, 정작 결과는 이런저런 영화들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다시 찍어서 짜깁기하느라 광활하고 거친 매력이 넘치는 호주의 자연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어째서 코알라는 한 마리도 안 보여주는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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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칼립투스 나무가 있어야 우리가 나올 수 있다능~

뜬금없이 대입되는 “오즈의 마법사”는 또 뭐냐능~

그러니까 사라(니콜 키드먼 분)가 도로시이고 호주가 매직랜드라고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 … 납득 실패!!!!!

거기에다가 그 노래, (Somewhere) Over The Rainbow … 이거 아주 좋은 재료긴 하지만 적정량을 사용해야 효과가 커지는데 있는대로 온통 풀어 넣는 바람에 … … 감동 실패!!!!!


Over The Rainbow를 탄생시킨 영화 “오즈의 마법사” 그리고 쥬디 갈란드

뭐 그렇다고 이 영화가 아주 막장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겠다.
골똘히 화면을 응시하며 주파수를 맞춰 보고자 노력하는 덕후분들의 기준에는 많이 모자라지만, 나름대로 보아 넘겨줄 수 있는 비쥬얼과 CG 그리고 친숙한 스타들의 연기로도 세상의 시름을 영화 한 편으로 잠시 잊어보려는 관객분들이 보시기에 무리가 없다고 하겠다.  그런데 그런 면에서 보더라도 일단 상영시간이 너무나 길어주시는 건 매우 불편한 점이다.

결론적으로다가 한 줄로 정리하자면,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는 맛과 질보다는 가짓수와 양으로 승부하는 부페 식당 되시겠다.

끗.


뽀나스.
개인적으로 “뮤리엘의 결혼”과 함께 최고로 꼽는 호주 영화 “프리실라”의 한 장면

영진공 이규훈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2008)”, 좋다는 재료는 다 넣었는데 … 맛이 왜 이러냐???”의 7개의 생각

  1. 잃어버린세대는 제가 알기론 원주민아이들이 ‘문명화’를 위해 백인가정에 강제 입양되어 백인식 가정교육을 받았던 뭐 그 세대를 지칭하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뭔가 ‘호주!’ 두둥! 하는 영화라 관심이 있었는데 너무 욕심만 많은 영화인가봅니다; 볼까 말까 이제 고민이 되는데요 -_-;;

    1.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글고 영화 제목은 “Australia”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 곳이 호주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들더라고요 ^^

  2. 저도 왠만해서는 극장에서 본 영화는 좋게좋게 생각하려고 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뭔가 밍숭밍숭한 느낌을 떨칠수가 없더군요…
    한편의 호주관광청 홍보물을 본듯한 느낌도 들고…

    아! 오즈의 마법사는요…
    오스트레일리아의 애칭이 오즈라고 합디다. 발음도 비슷하지요..
    실제로 오즈라는 이름을 붙인 숙소도 많고,
    키위 익스피어리언스(뉴질랜드), 피지 익스피어리언스(피지)와 함께
    오즈 익스피어리언스가 호주의 하나의 관광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오지 오지… 하면서 응원도하고, 그만큼 모험이 가득하고 신비로운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애칭이지요.
    뒤집어 얘기하자면, 보면서 호주관광청 홍보물이라는 생각이 왜 들었는지 헤아릴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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