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두 캐릭터 사이에는 다른 점들도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서 철저히 자신의 신분을 감추면서 활동하는 반면 토니 스타크는 기자들 앞에서 대놓고 “내가 바로 아이언맨”이라 밝히고 업적에 따른 댓가를 누립니다. 배트맨이 최근작의 제목처럼 ‘어둠의 기사’로 머물고 있는 반면 아이언맨은 그와 달리 ‘빛의 기사’나 ‘태양의 기사’로 자리매김합니다.
백만장자로서의 오만방자함을 사칭하면서 막상 수퍼히어로로서는 끊임없이 고뇌해야만 했던 배트맨은 어쩌면 작품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캐릭터 자체의 매력은 내던져야만 했던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과감히 여타의 수퍼히어로들과는 다른 길, 즉 관객들에게 ‘깊이에의 강요’가 아닌 ‘2시간 동안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일에 충실함으로써 예상되었던 이상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다크 나이트>가 그랬듯이 내용과 주제 의식에서의 깊이를 더하기로 했던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수퍼히어로물의 속편이란 물량으로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깊이를 포기하고 철저히 물량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수퍼히어로물이 어떻게 망가지게 되는지는 조엘 슈마허 감독이 연출했던 <배트맨 포에버>(1995)와 <배트맨과 로빈>(1997)이 좋은 선례를 남긴 바가 있긴 합니다.
<아이언맨 2>의 경우 물량 공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 만한 여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망가지게 될 특별한 사연이 있었던 것 역시 아니었던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던 만큼 관객 입장에서도 전편에서 보여주었던 만큼의 즐거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2시간의 관람이라면 충분히 만족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보게된 속편 영화입니다.

사실 스칼렛 요한슨이 매력적인 여비서 나타샤 로마노프로서만 등장할 때에는 그저 눈요기 정도로 끝날 것이었다면 뭐하러 나왔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블랙 위도우로 변신해서 특수 합금 갑옷의 아이언맨이 보여줄 수 없었던 육탄 액션을 선보일 때에는 아, <아이언맨> 시리즈가 이번에도 한 건 해냈구나 싶었습니다 – 아니, <아이언맨 2>가 전편에 비해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니요? 스칼렛 요한슨이 가죽옷을 입고 나왔잖아요!
서류 가방 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이동형 아이언맨 수트가 새롭게 선보였고 그외 토니 스타크의 연구실이 홀로그램 시스템 등으로 이전 보다 훨씬 첨단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들 역시 이런 정도의 영화에서라면 당연히 나와줘야 할 눈요기 거리 정도 밖에는 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직접 연기하는 – 일부 장면에서는 대역을 쓴다 할지라도 – 매력적인 캐릭터의 등장과 활약은 분명히 물량의 확대 그 이상의 효과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아이언맨 2>와 같이 캐릭터의 매력이 중요시될 수 밖에 없는 속편 영화에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아이언맨> 시리즈는 그것 하나만으로 계속 이어져갈 계획이었던 것이 아니라 마블코믹스의 수퍼히어로들이 각자의 영화화된 작품들로 출발해서 종국에는 모든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종합편을 선보인다는 계획 하에 진행된 프로젝트의 일부인 것이라고 하는군요.
아니나 다를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스칼렛 요한슨의 2012년 출연 예정작은 마블코믹스의 수퍼히어로들이 총출동한다는 <어벤저스>라고 합니다. 그들이 다 모인다고 해서 그 전에 없었던 작품의 깊이가 갑자기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아이언맨>을 처음 보았을 때 만큼의 재미는 보장해줄 수 있는 묘수는 이미 마련해놓은 셈이라 하겠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 보기 전까지 저는 아이언맨을 잘 몰랐고 블랙 위도우도 몰랐습니다. 앞으로 보게 될 토르나 캡틴 아메리카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영화화하고 있는 사람들은 필요하다면 스칼렛 요한슨의 할머니를 데려와서라도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낼 줄 아는 이들이라는 건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