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사태 단상, ‘편리함과 안전함은 공존하지 않는다’




 

1.


요즘 들어 주변에서 인터넷 서비스 – 정확하게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블로그에서 일기를 쓰고, 구글 독스로 회의록을 만들고, 구글 쉬트로 매상을 기록하고, 드롭박스로 파일을 저장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중이다.



왜? 편리하니까. 언제 어디서든, PC에서든 스마트폰에서든, 인터넷에 접속해 문서를 열어보고 수정하고 교환할 수 있다. 이렇게 편리한 걸 안 쓰는 게 바보지!



2.

이번에 이글루스에서 대형 사건이 하나 터졌다.



거의 모든 회원들에게 관리자 권한이 잘못 주어지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내 블로그의 비밀글을 읽을 수도 있고, 삭제할 수도 있게 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것도 무려 20분이 넘도록.

이 엄청난 사건 앞에서 회원들 절반 가량은 넋을 잃고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뒷골을 부여잡고 입에 거품을 물며 이렇게 외쳤다.




“이 빌어처먹을 이글루스 관리자 놈들 같으니라고! 당장 나와! 쇠파이프로 깨부숴 버리겠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언제 어디서든 터질 수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이게 바로 인터넷 서비스다.


3.


우리는 하드 디스크에 야동 … 아니, 교양영화를 저장하고는 안전하게 보관되리라고 믿는다. 하드 디스크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엔 눈을 감는다. 백업하는 건 귀찮은 일이니까.

그리고 하드가 깨져서 몇 년 간 모은 야동 … 아니, 소중한 자료가 단숨에 날아간 뒤에야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아아, 이래서 슈퍼맨도 백업을 한다는 말이 생긴 거구나!




안전함을 추구한다면 블로그를 개인 일기장처럼 쓴다거나, 구글 닥스에 기업 정보를 써갈긴다거나 하는 짓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왜? 구글은 신이 아니니까.

다른 인터넷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고. 의도적이건 외도적이지 않건 언제든지 사고가 터질 수 있다. 민감한 기업 정보가 해킹당해서 빠져나갈 수도 있고, 몇 년 간의 거래 장부가 노출될 위험도 있다.



이런 문제는 다들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으리라. 하지만 몸에 배인 편리함 때문에 다소간의 위험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는 일부러 외면하고 떄로는 자기 최면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딴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 그런 일이 터질 리가 없지!”라는 식으로.



그러나 막상 사건이 터지고 나니까 생각이 180도 달라진 거다. “내가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 말도 안 돼!” 라는 식으로.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란 원래 변덕스런 생물이니까.



4.


자동차를 타고 가는 건 두 발로 걷는 것보다 훨씬 편안하다. 하지만 위험도 따른다.

인천대교 버스 추락 사고처럼 속절없이 가는 수가 있다. 원래 그런 거다. 편리함과 안전함이 공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둘 중 하나만 건져도 다행이다.




이글루스를 버리고 다른 서비스로 옮긴다고 해도 이 사실은 변치 않는다. 결국엔 가장 평범한 해결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비밀스럽게 써야 하는 글은 개인 일기장에 쓰고, 중요한 회의록이나 문서는 PC에 암호를 걸어서 저장해야 한다.

아아, 그렇다. 귀찮고 번거롭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인생인 것을
C’est la vie!



영진공 DJ Han


 

“셔터 아일랜드”, 반전 하나로 간단히 덮는 기술


많은 영화들이 관객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일정 정도의 반전을 후반부에 보여주곤 합니다만 <식스 센스>(1999)식으로 단 한 마디의 스포일러에 영화 전체를 완전히 달리 보게 만들 수도 있는 그런 의미의 반전 영화는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듯 합니다.

제 경우 <셔터 아일랜드>의 반전을 감독이 의도한 지점에 이르기까지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영화를 제대로 잘 감상한 셈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전개가 반전되는 그 지점에 당도하기 전까지 <셔터 아일랜드>는 상당히 피곤하고 짜증스럽기까지 한 영화로 여겨졌습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초반부터 배경음악을 아주 유난스럽게 사용하더니 컷과 컷의 연결이 자주 어색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군데군데 앞뒤가 잘 안맞는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그외 폭풍우 내리치는 장면이나 모닥불 가에서 대화하는 장면조차도 상당히 신경이 거슬리더군요.

최근에 <러블리 본즈>에 대해 레인맨님이 “피터 잭슨이 발로 연출한 영화”라고 하신 것 때문에 신경질을 부렸었는데 이번에는 제가 <셔터 아일랜드>를 놓고 “마틴 스콜세지가 발로 연출한 영화”라고 해야 하는가 보다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반전을 통해 시종일관 어색하게만 보였던 내러티브의 전모를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이 의도된 연출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반전을 알고 나면 그때까지 보아온 등장 인물들의 이상한 행동이나 전개들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 참 이상하게 찍어놓은 장면들조차 모두 정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역시나 이 영악한 노인네 감독이 그렇게까지 영화를 이상하게 만들었을 리는 없었던 거죠.

하지만 오랜만에 반전 영화의 묘미를 만끽했다기 보다는 그저 아항 그게 그런 거였냐 – 이제야 납득은 한다만 여전히 피곤하구나 – 라는 정도입니다.

스콜세지 감독이 제가 알지 못하는 어떤 고전 영화의 연출 기법을 차용해서 보여주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본 바로는 이런 정도의 영화를 굳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할 필요가 있었을까 – 그러지 말라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만 –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전체적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비롯한 여러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고 그외 기술적으로 흠잡을 만한 구석도 없습니다만 – 물론 영화를 끝까지 보고난 후에 다시 정리된 바에 의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 그렇다고 아주 좋아라 할 만한 이유도 딱히 없는 작품이랄까요. 요즘은 영화를 워낙에 다들 잘 만드시니까 내용까지 마음에 쏙 들지 않으면 선뜻 치켜세워주게 되지를 않는군요.

눈치 빠르신 분들은 일찌감치 감을 잡고 달리 보실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예전에 자주 얘기하던 바로 그 ‘반전 영화’다 보니 내용에 관해서는 뭐라고 말도 잘 못꺼내겠군요. 영화 줄거리를 확 뒤집는 반전이 있다는 이런 식의 정보조차도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 있어서는 이미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나저나 영화 속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마크 러팔로가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피워대는데, 그럴 때마다 < 땡큐 포 스모킹>(2005)에서 담배 회사 대변인인 주인공이 헐리웃의 영화 제작자를 찾아가 PPL 상담을 하던 장면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태우던 시절의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디카프리오가 연습을 참 많이 했더군요.

Leonardo Dicaprio와 감독 Martin Scorsese

영진공 신어지

 

완숙 계란 두 개, “전쟁 전 한 잔”과 “무덤으로 향하다”


글쎄, 어떨까. 나는 하드보일드를 사랑한다. 경애한다. 거기 딱히 인생의 진리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멋진 남자가 있기 때문이다.


[사조영웅전]의 건전한 모범생 타입의 히어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유성호접검]의 삐딱한 킬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나는 홈즈 스타일의 갑갑하고 정직한 탐정보다는 필립 말로우처럼 세상을 비웃으며 코웃음을 날려주는 탐정을 훨씬 더 좋아한다. 그쪽이 더 멋지니까.



아무튼 내가 최고로 치는 하드보일드 소설은 예나 지금이나 [기나긴 이별]이다. 거기엔 사건이 있고, 우정이 있고, 배신이 있고, 사랑이 있고, 탐정은 그 속을 이리저리 부닥치며 돌아다니다가 어떻게든 사건의 끝장을 보고야 만다. 위선을 부리지 않고, 설교를 하지도 않고, 잔가지를 늘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데니스 루헤인의 [전쟁 전 한 잔]은 …… 아, 제길, 주일설교문을 읽는 기분이었다. 조금 몰입하려고 하면 인종 문제가 어쩌고저쩌고, 가정 폭력이 어쩌고저쩌고, 다시 또 인종 문제가 어쩌고저쩌고, 또 또 또 인종 문제가 어쩌고저쩌고,




플롯은 너무 허접해서 뭐라고 딴지를 걸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얘기가 좀 안 풀린다 싶으면 일단 액션 묘사를 집어넣는다. 마치 로저 코만 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 주인공이 삐딱선을 타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건전한 모범생이라는 게 제일 큰 문제일 것이다. 뭐야, 이거? 이게 무슨 하드보일드란 말이냐? 차라리 얼간이가 탐정 역으로 나오는 정통 퍼즐 미스터리를 보는 게 낫겠다!


허영심에 가득찬 추리소설광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적 만족감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마음을 부둥켜안고 흡족해할 것이다. “아, 나도 뭔가 수준높은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었구나!”라고 하면서. 하지만 정말 수준높은 소설을 찾는다면 노벨문학상을 탄 소설을 읽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튼,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평점을 매기자면 “탄산수 1리터에 럼주 한 방울을 떨어트려 마시는 듯한 소설”이다. 한 마디로 밍숭맹숭.



나는 이 소설을 1주일에 걸쳐 겨우 다 읽은 다음, 너무 실망하고, 좌절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내가 이런 걸 돈 주고 사다니!

그래서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뭔가 볼만한 책이 없을까 찾아보던 중에 로렌스 블록의 [무덤으로 향하다]라는 책을 샀다.


그날밤, 나는 그 책을 다 읽어버렸다.



사실 [무덤으로 향하다]도 아주 멋진 하드보일드 소설은 아니다. 알콜중독으로 밸밸대던 매튜 스커더는 갑자기 바른생활 중년이 되려고 애쓰고 있고, 벌어지는 사건은 ……. 음, 마약상의 가족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잔인무도한 연쇄 살인이다. 아무리 봐도 이건 하드보일드라기보다는 스릴러다. 그것도 헐리웃 취향의 비쥬얼이 강한 스릴러.



하지만 워낙 [전쟁 전 한 잔]이 형편없었기 때문인지, [무덤으로 향하다]는 그에 비하면 엄청난 걸작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는 [800만 가지 죽는 방법]보다 훨씬 아래인데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도 책을 읽은 지 며칠이 지나서는 조금 정신을 차렸다. 그래, [무덤으로 향하다]도 역시 그저그런 하드보일드였어.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평점을 매기자면 “보드카 한 잔에 탄산수 한 잔을 섞어 마시는 듯한 소설”이랄까.


어쨌건 ….. 중간은 한다는 얘기다. 뭐, 그 정도로 만족해야 하려나?


영진 DJ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