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몸 속에 자철광 하나 놔드려야겠어요 [2부]

 

 


 


 


* 1부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블레이크모어에 의해 정체가 발각된 주자성 박테리아(magnetotactic bacteria)는 놀랍게도 몸 속에 자석 조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넘들 땅바닥에 떨어져있는 천연 자석 쪼가리들을 주워먹기라도 한 걸까? 그러나 박테리아는 땅그지가 아니었다. 박테리아는 몸 속의 작은 주머니에 나노 크기의 작은 자철광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얘가 주자성 박테리아.


주황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은 몸 속에 있는 자철광 결정들이다.


 


 


 


대체 오대양 육대륙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요 지들이 평생 이동할 수 있는 거리래봐야 거기서 거기인 주자성 박테리아들은 어째서 몸 속에 자석 공장을 만들면서까지 지구 자기장을 이용하고 있는 것일까?


 


주자성 박테리아들이 선호하는 주거지역은 대부분 산소 농도가 낮은 곳이다. 보통 이런 곳은 바다나 하천의 퇴적물이 쌓여있는 바닥이다. 이곳은 산소나 황화물 같은 화학 물질들이 깊이와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농도가 변하기 때문에 주자성 박테리아들도 지들이 좋아하는 최적의 농도로 시시각각 이동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게 아래쪽은 퇴적물이 가라앉는 방향이고, 대부분 요놈들이 좋아하는 화학적 농도가 유지되는 곳이었다. 즉, 박테리아들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밑으로 향해야만 했다.


 


그런데 박테리아한테는 밑으로 향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라면 중력의 영향으로 인해 몸을 내던져서 머리가 깨지는 방향이 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허나 박테리아는 워낙 개미 코딱지만 해서 질량이 있으나마나한 정도이기 때문에 중력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애들이다(중력은 질량에 비례하니까).


 


그래서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위아래의 구분이 없어지듯 박테리아들 역시 일종의 우주 공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박테리아들이 중력을 이용해 밑으로 향한다는 것은 꿈도 못꿀 일이다. 게다가 박테리아가 살고 있는 미시세계에는 또다른 힘들이 펼쳐져 있다.


 


 


 






개미 정도만 되어도 전혀 다른 힘들에 놓이게 된다.


 


 


 


예를 들어 개미는 추락사할 일은 없지만 대신 무시무시해진 표면장력 때문에 작은 물방울에 갇혀 익사할 수 있다. 하물며 개미보다 훨씬 더 무지무지 작은 박테리아 정도의 크기가 되면 무려 물 분자들의 브라운 운동(분자들이 열 에너지로 인해 진동하는 현상) 때문에 이리저리 정신없이 치이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박테리아의 처지란 위아래는 커녕 좌우도 헷갈릴 지경이다. 그래서 일부 박테리아들이 영리하게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변함없이 밑을 향해 뻗어있는 자기장을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넘들은 몸에 자석 공장을 유치하고 자석 조각을 만들어 나침반으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 좀 이상하다.


우리는 나침반을 평면 상에서 방향을 정하는데 쓰는데, 박테리아들은 나침반을 좌우 방향이 아닌 상하 방향을 찾기위해 쓴다고?


 


사실 지구의 자기장은 수평 방향 뿐만아니라 수직 방향으로도 작용하며 자기장의 세기는 위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적도 상에서 자력선은 지구 표면에 대해 수평이지만 양극으로 갈수록 차츰 지구의 내부를 향해 기울어진다.


 


나침반의 바늘은 지구 자력선의 방향을 가리킨다. 고위도 지역일수록 수직 성분이 수평 성분보다 강해지기 때문에 자극에 가까워질수록 자침은 점점 아래쪽을 가리킨다. 이런 이유로 주자성 박테리아는 젖과 꿀이 흐르는 밑쪽으로 내려가기 위해 자석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것이었다.


 


 


 





 




 


 


과학자 형님들은 블레이크모어의 발표에 까무러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말 주자성 박테리아가 몸 속의 자석을 이와같은 용도로 사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조사에 나섰다.


 


만약 주장대로라면 남반구 쪽에 사는 애들은 자남극을 향해 헤엄치는 경향을 보일것이며, 반대로 북반구 쪽에 사는 애들은 자북극을 향해 헤엄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과학자 형님들은 냉큼 달려나가 북반구에 사는 놈과 남반구에 사는 놈들을 잡아들여 취조하였다.


 


그 결과, 실제로 이들은 그러한 경향을 보였다.


 


 


 





“주자성 박테리아 참 쉽죠잉~”


 


 


 


이로서 또하나의 생명체의 비밀이 위대한 과학자 형님들의 손에 완벽하게 밝혀졌다 …… 는 fake고, 오히려 연구가 거듭될 수록 점점 알쏭달쏭한 상황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주자성 박테리아 역시 쉬운 생명체가 아니었다.


이 녀석들은 벗기면 벗길수록 숨겨진 매력을 내뿜었다.


 


 


발췌 및 편집:

   스티븐 제이 굴드 저, 김동광 역, [판다의 엄지], 세종서적, 1998


   존 포스트게이트 저, 박형욱 역, [극단의 생명], 코기토, 2003


 


 


◆ 3부로 이어집니다. ◆



 



 


영진공 self_fish


 


 


 


 


 


 


 


 


 


 


 


 


 


 


 


 


 


 


 


 


 

애인 몸 속에 자철광 하나 놔드려야겠어요 [1부]



 

 


 


 



 


 

우리는 지구라는 커다란 자석 위에 살고 있다. 이 커다란 자석은 태양이 내뿜는 지독한 방사능 입김과 먼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유해한 것들로 부터 생명체를 보호하고 있는 일종의 자기 방어막을 발생시키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예민하다는 옆집 누나라 하더라도 지구가 내뿜는 자기장을 몸으로 직접 느끼지는 못한다. 대신에 인류는 전자렌지를 발명한 생물답게 간접적인 현상을 통해 지구가 단순한 돌댕이가 아닌 커다란 자석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특정 종류의 돌이 양쪽 끝으로 작은 금속 쪼가리들을 끌어당기는 현상을 목격했을 것이다.


 


인류는 기원전 5세기전 이러한 자장을 관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 특별한 돌이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도 알아차렸다. 나침반은 이러한 자기磁氣의 원리에 따라 작동하며, 방향을 정하는 데 쓰는 가장 오래된 장치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이 나침반을 발명하여 가지고 놀았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지구가 자극을 가지고 있으며 왜 이 요상한 돌로 만든 조각들이 저절로 움직이는지는 알지 못했다. 자석 바늘이 남북 방향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기원전 100년 경에 이르러서야 알려졌고, 그 후 자석바늘은 주택이나 사원, 무덤, 길, 그밖의 시설의 이상적인 위치를 정하는 기술인 풍수지리에 이용되며 오랫동안 점술가의 밥벌이 도구로 사용되었다.


 


송宋 대인12세기 초까지 이러한 나침반을 항해 도구로 사용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 나침반 바늘이 지구의 자성磁性과 반응하여 움직인다는 발전된 자연주의적 이론은 더 나중에야 등장하였다.


 


 




‘지남차指南車’에 설치된 차동差動장치 위에 한 인물상이 올려져 있는 이 기계는

중국인들이 개발한 것으로 나침반의 선구자가 된 장치이다.

이 장치는 탈것이 모퉁이를 돌 때,


안쪽 바퀴와 바깥쪽 바퀴의 회전수의 차이를 없애주는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어 위의 인물상은 방향의 변화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어김없이 남쪽을 향해 팔을 가리키는 상태로 유지되었다.


 





83년에 등장한 ‘남쪽을 가리키는 숟가락’.

가운데 놓여있는 국자처럼 생긴 것은 자철광 돌로 만들어진 것이다.



 





1135년에 등장한 나침반.

물위에 떠 있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 안에는 자철광이 들어 있다.



 


 



태양에 비하자면 지구는 개미 코딱지 만도 못한 크기지만 지구 위에 사는 생명체들에게 지구는 광활한 공간이다. 그래서 이 광활한 공간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인류가 교통수단의 발달과 함께 자기집 앞마당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그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동물들도 위치를 파악할 수단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디에 먹이가 있고 계절에 따라 어떤 지역들이 살기 좋은지를 찾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황천길을 향한 편도 여행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동물들은 일찍부터 지구 자기장을 느낄 수 있는 예민한 감각을 진화시켰다.


 


인류가 영문을 모른채 나침반으로 마술놀이를 하고 있는 동안에 동물들은 지구 자기장을 이용한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몸 속에 구축해 놓았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들은 물론이요 심지어 꿀벌들조차 지구 자기장 네비게이션을 필수옵션으로 갖추었다. 자랑할 것은 머리밖에 없는 인류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뒤늦게 분발한 인류는, 지도를 그리고 나침반을 발명하더니 결국 20세기에 이르러 하늘에 위성을 쏘아 GPS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온갖 번거로운 짓을 하고 난 후에야 지구 위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연구를 통해 많은 동물들이 자기장을 이용해 길을 찾는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우리는 놀라운 진화 시스템에 탄복하며 다시한번 자연을 향해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사실이 다시금 우리의 후두부를 강타했다.


 


보잘것 없다고 여기고 있던 박테리아 마저 지구 자기장을 이용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인류가 몇 백년 전에야 지자기를 이용한 것에 비해 동물들은 까마득히 옛날부터 개나소나 자기장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자성 박테리아 발견


 

주자성 박테리아는 1975년 뉴햄프셔 대학의 젊은 대학원생이었던 리처드 P. 블레이크모어가 매사추세츠 주의 한 연못에서 수집한 진흙 샘플에서 그 자태를 드러냈다.

 


요넘들은 현미경 슬라이드 안에서 마치 한쪽에 꿀을 발라놓은 듯 특정한 가장자리로만 이동하였다. 슬라이드를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하고 어둡게 만들어도 보았지만 어떠한 요소도 이 녀석들을 헷갈리게 만들지 못했다.


 


빡침을 느낀 블레이크모어는 마지막으로 ‘설마 니들이 뭐 지구 자기장 같은 거라도 이용하는 거야?’ 라는 생각으로 미친척하고 슬라이드 옆에 자석을 놓아 보았다. 그랬더니 지금껏 꿈쩍도 안하던 녀석들이 자석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 박테리아들은 마치 자신의 몸 속에 자석을 지닌 것처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실제로 요녀석들은 몸속에 자석 조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리저리 줏대없이 자석을 따라 움직이는 주자성 박테리아들



 




☆ 참고 및 발췌:

1. 외르크 마이덴바우어 엮음, 박승규 역, [과학의 역사], 생각의 나무, 2002

2. 제임스 E. 메클렐란 3세, 해럴드 도른 공저, 전대호 역,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모티브, 2006



3. 스티븐 제이 굴드 저, 김동광 역, [판다의 엄지], 세종서적, 1998


영진공 self_fish


 


 


 


 


 


 


 


 


 


 


 


 


 


 


 


 


 


 

여자를 좋아한 화가의 생물학적 발견, [3부]

 

 


 


 


여자를 좋아한 화가의 생물학적 발견 1부 보기


 


여자를 좋아한 화가의 생물학적 발견 2부 보기


 


 


 



 


 


 


세상에는 테디베어라는 돈 잘 버는 봉제 곰이 있다. 별로 귀엽지도 않게 생긴 것이 전세계를 무대로 많은 돈을 긁어 모으며 유수의 재력가들과 어깨를 함께하고 있는 곰탱이다. 우리가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기위해 미친듯이 공부하는 동안 이 봉제곰은 멍청한 얼굴로 쇼윈도에 앉아서 억대의 돈을 벌어들이는 참 배알 꼴리는 요지경 세상이다.

 


돈 잘버는 곰탱이 테디베어의 탄생은 봉제인형이라는 태생과는 어울리지 않게 정치사회학적인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 옛날 옛적 20세기 초 미국. 업무 차 미시시피에 들렀던 어느 지체 높으신 양반께서는 시간 좀 때울 겸 곰사냥을 나갔다. 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빌빌대고 있자 옆에서 수행하던 이들은 아부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임을 깨닫고 곰을 산채로 잡아와 대령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이 양반에게 당신이 이 곰을 잡은 것으로 하자며 총을 쏘길 권한다.



 


그러나 강태공이 다른 이가 잡은 물고기를 내 낚시바늘에 끼워놓고 “월척이다~!” 하며 소리치는 것만큼 쪽팔리는 짓이 어디 있으랴. 게다가 대부분의 권력자들이 그러하듯 호전적이고 자부심이 강한 이 양반이 그런 낯부끄러운 제안을 수락할 리 없지 않았을까.


 


어쨌든 곰사냥을 왔다는 사람이 불현듯 감수성이 폭발해서 곰이 눈물나게 불쌍히 여겨졌는지 아니면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쪽팔려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양반은 총을 쏘길 거절하고 곰을 놓아주었다.



 

사실 별것도 아닌 사건이었다. 그러나 누가 했느냐에 따라 카페에서 손만 흔들어도 9시 뉴스에 나가는 것처럼 이 양반의 행동은 한 신문사의 시사만화가에게 포착되어 만평으로 그려졌고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다. 그러자 신의 계시라도 받았는지 브루클린의 한 장난감 가게 아저씨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대박을 친 브루클린의 장난감 가게 아저씨,

모리스 미첨Morris Michtom





 


그는 아내와 함께 곰인형을 만들어 그 지체높으신 양반의 애칭인 ‘테디’라는 이름을 붙여 ‘테디 베어’란 이름으로 만평과 함께 진열하였다. 이 인형은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나갔고 장난감 가게 아저씨는 그 양반에게 편지를 써 테디라는 이름을 곰인형에 정식으로 붙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양반은 흔쾌히 승낙하였고 그 뒤로 광적인 ‘테디 유행’은 수년간 지속되었다.



 

이 지체 높으신 양반은 바로 미국 26대 대통령을 역임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Theodore Roosevelt, 1858~1919)이다.


 


 


 




‘테디’는 루스벨트의 애칭이었다.

대박을 친 테디 베어는


루스벨트 풍자만화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당시 루스벨트는 미시시피와 루이지애나의

주 경계선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미시시피를 방문하고 있었다.


루스벨트의 곰 방생 장면을 포착한 [워싱턴 스타Washington Star]의


시사만화가 클리포드 K.베리먼(Clifford K. Berryman, 1869~1949)은



불쌍한 곰 사냥을 거부하는 내용의 그림을 ‘선을 긋다’는 설명과 함께 신문에 실었다.


이 만평은 곰 사냥에도 일정한 선이 있음을 나타내면서 주 경계선을 갖고 다투는


당시 상황을 다루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25대 대통령 매킨리가 암살로 인해 세상을 하직하자 당시 부통령으로 42세라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의 나이에 26대 대통령이 된다. 그는 잘난 집안의 잘난 아들로 일찍부터 출세가도를 달렸으며 미국·스페인 전쟁 발발 시에는 의용기병대 대장으로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워 전쟁영웅의 칭호를 받기도 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미국인들이 꼽는 ‘최고의 대통령’ 명단 중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른바 ‘혁신주의 시대 Progressive Era(루스벨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1901년 말부터 미국이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1917년 4월까지의 시기를 일컫는다)’를 이끈 혁신주의자였다.

 


그는 이 시기 동안 국민들의 편에서 서서 행동거지가 불량한 대기업의 코를 매섭게 비틀어 쥐었다. 대기업과 노조의 평화공존을 꿈꾸며 외쳤던 공정거래 the Square Deal는 그의 별명이 되다시피 하였다. 그리고 그는 파나마 운하 건설에 착수하여 미국인들의 오랜 바람이었던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단시간 항로로 연결시켰다.



 

하지만 그는 미국인들에게나 좋은 대통령이었다. 그는 인종주의자이자 전쟁광에 제국주의자였다. 그는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는, 철저한 사회 진화론자였다. 그는 전쟁을 추종했고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은 거의 전쟁광의 경지에 도달했다. 혁신주의는 더욱 강력하고 위대한 미국을 만들려는 계획의 일환일 뿐이었고 파나마 운하를 착수하기 위해서는 아주 더러운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이런 그간의 노고(?)를 치하 받기라도 하려는 듯 그는 19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이렇게 제국주의자였던 루스벨트의 재임기간 내내 그의 반대편에서 서서 그의 신경을 박박 긁고 있었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었다. 그는 루스벨트의 제국주의 노선에 강경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며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많은 글들을 쏟아내었다. 트웨인은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가리켜 “남북전쟁 이후 미국에 내린 가장 강력한 재앙‘이라고 선언하였다.



 

마크 트웨인이나 그 밖의 사람들이 그의 제국주의 성향에 계속해서 딴지를 건 것은 그가 정치인으로 감당해야 할 부분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의외의 분야에서 의외의 인물과도 엮이게 된다. 그 인물은 바로 자뻑에 빠진 화가 세이어였다.

 


루스벨트가 전쟁광에 제국주의자, 인종주의자라고 하면 ‘역시 단순무식한 예비역 군인들은 어쩔 수 없어’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루스벨트는 똑똑하고 왕성한 독서가였다. 21세 때 첫 저서를 발간한 이래 역사, 자연, 여행,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38권을 집필하여 미 대통령 중에서 가장 많은 저서를 남긴 인물이다.



 

이렇게 잘나고 똑똑한 인물의 눈에 세이어의 자뻑은 눈꼴시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퇴임후에 아프리카의 사바나에서 동물 사냥에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지냈고 이것을 엮어서 [아프리카 수렵여행African Game Trails](1910)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이 책에서 부록 20 쪽을 할애하여 세이어의 위장 개념을 공격하였다. 그 뒤로 둘은 잡지와 서신을 통해서 몇 년 동안 논쟁을 벌였다.


 

루스벨트는 곤충과 같은 작은 동물의 탁월한 위장술에 대해선 동의했지만 큰 동물들의 무늬가 위장술에 효과적인지에 대해선 의구심을 가졌다. 그는 움직임이 아주 느리고 신중하지 않은 동물들이 움직일 때는 어떤 색 배열이든 위장에는 별 쓸모가 없다고 말했고, 그러므로 얼룩말의 줄무늬 역시 포식자의 눈에는 늘 잘 띌 것 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세이어는 얼룩말을 1미터 앞에서 보는 것과 1.5미터 앞에서 보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고 반박하였다.

 


 

 



세이어는 가지뿔영양 Antilocapra americana의 엉덩이에 있는 두 개의 하얀 반점이 

윤곽을 지우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이에 루스벨트는,


 “열 걸음 물러나든 열 걸음 다가가든 간에



그 반점은 그 사냥감을 잡은 적이 있는 가장 시력 나쁜 늑대나 


쿠거의 눈에도 즉시 뛸 것이다.”라고 답해주었다.




 


 

루스벨트는 세이어가 위장이 탁월하다고 주장하는 생물들 중 상당수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시간은 생애 중 일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세이어는 사자는 생애의 대부분을 빈둥거리며 보내므로 사자의 이빨과 발톱은 거의 쓰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그런 기관이 먹이를 잡아먹는 데에 쓸모가 없다는 뜻이냐고 반박했다.

 


이처럼 그들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논쟁을 벌였지만 루스벨트가 세이어를 진심으로 인정한 측면이 하나 있었다.


 


 


 


“내친 김에 나는 세이어 집안의 여러분들이 새와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탄복할 일을 했음을 증언하고 싶다. 그 분들이 그 일을 계속한다면 보호색 문제에서도 세상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믿어도 될 자격이 있을 정도로 훌륭하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루스벨트가 세이어의 야생동물 보호 활동에 탄복한 것은 루스벨트 역시 대통령 재임 시절 열정적으로 자연보호 운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시절 부인과 부친을 한날에 병으로 잃은 슬픔을 잊기 위해 시골 목장에서 카우보이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그곳 생활을 통해 그는 자연을 동경하게 되었고 방치된 채 손상돼가는 자연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그가 국립공원 시스템을 창안한 동력이 되었다.



 

루스벨트는 1905년 산림청의 권한을 강화하였고 자연보호정책에 따라 수많은 댐 건설을 취소시켰다. 1억 9000만 에이커의 광대한 숲을 국유화시키므로서 그의 재임 중에 국립공원은 2배로 늘어났고 16개의 국립명소, 51개의 야생 서식처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자연보호운동은 인디언에겐 치명타였다. 

보호지역에 살던 모든 인디언 부족들은 강제퇴거를 당해야 했다.


 


 



 

세이어는 야생동물 보호에 앞장섰고 특히 조류 보호에 있어서 선구적인 업적을 이루었다. 20세기로 들어설 무렵, 새의 깃털은 여성 모자의 장식품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 바람에 해오라기와 제비갈매기 같은 몇몇 종은 멋진 깃털을 가진 덕분에 멸종될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이에 세이어는 그들의 번식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는 운동을 앞장서서 펼쳤고 우리가 그 조류들을 지금도 볼 수 있는 것은 세이어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이후 미국 오듀본 협회 National Audubon Society와 영국 왕립 조류 보호협회 같은 현대의 대규모 보전단체의 창설에 영감을 준 인물이었다.



 


세이어가 생물의 위장이론을 놓고 사냥꾼과 논쟁을 벌였다면, 위장이론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분야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전쟁이었다.





 




참고 및 발췌

○ 강준만 저, [미국사 산책 4], 인물과 사상사, 2010

○ 피터 포브스 저, 이한음 역, [현혹과 기만], 까치,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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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성의 예상궤도가 산으로 간 까닭은?

 

 

 

 

 

 

내 군생활 동안 함께 했던 81m똥포. 
하지만 다행히 관측병이라 이 똥포를 들 일이 별로 없었다는~

 

 

 

군 시절 난 81미리 곡사포의 관측병으로 복무하였다. 포대에서 보자면 그것도 포냐며 비웃겠지만 차에 싣기도 애매해서 주구장창 들고다녀야 하는 애물단지 81미리는 사실 보병 대대의 가장 큰 화력중 하나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한국전쟁때 운용하던 것이라 포가 완전히 고정되지 않아 사격하는데 있어서 애로사항이 꽃이 폈다.

 

흔들거리는 포의 작은 오차는 최대 사거리가 5km정도인 이 포에서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 정도 거리라면 작게는 몇 십 미터에서 크게는 몇 백 미터까지 오차가 벌어진다. 그럼에도 간부들은 이 똥포를 가지고 점표적을 초탄명중 시키라고 요구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대장의 왜 초탄을 명중시키지 못하냐는 말에 답답해진 난 과감히 손을 들고 포의 유동이 심해 아무리 좌표를 정확하게 찍어도(1997년도에 1960~70년대 지도를 주고선 좌표를 찍으라는 것도 넌센스!) 초탄 명중은 복불복이라고 말대꾸했다가 여럿 긴장시켰던 적도 있었다.

 

이처럼 고작 4~5킬로 거리의 사격에서도 작은 오차가 큰 변화를 초래하는데, 우주에서처럼 어마어마한 거리를 이동하는 소행성의 궤도를 예측하는데 있어서는 아주 작은 오차라도 매우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빛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양자이다. 그래서 물체에 압력을 가해 움직일 수 있다. 물론 그 힘은 매우 약하기 때문에 지구상에선 느낄 수가 없다. 그러나 마찰이나 공기 저항이 없는 우주 공간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막대한 빛의 덩어리인 태양이 내뿜는 빛은 주변의 물체에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는 혜성의 꼬리이다. 지구에서는 움직이는 물체의 반대방향으로 꼬리가 끌리지만 우주에서는 태양광에 밀려 혜성의 꼬리는 태양에서 먼 방향으로 기다랗게 끌린다.

 

근래에는 미국과 일본 등의 국가에서 빛의 압력을 추진력으로 이용하는 우주선을 개발하는데 한창이기도 하다.  

 

그런데 태양광이 물체를 움직이는 작용에는 빛의 압력 말고도 또 하나가 있다. 그것은 야르콥스키 효과(Yarkovsky effect)라는 것이다.

 

 

 

 

 

 

야르콥스키 효과는 태양광으로 데워진 소행성 같은 소천체가 적외선을 방출함으로써 그 궤도가 변하는 현상이다.

 

소천체에서는 태양광이 비치는 부분과 비치지 않는 부분 사이에 엄청난 온도차가 생긴다. 온도가 높은 부분에서는 적외선이 많이 방출되는데 그 반동으로 천체는 적외선이 많이 나오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힘을 받게 된다.

 

 

 

실제로는 소행성의 회전 때문에,

야르코브스키 효과는 좀 더 복잡하게 일어나는 듯 하다.

 

 

야르콥스키 효과를 발견한 러시아의 토목기사,

이반 야르콥스키Ivan Yarkovsky(1844~1902)

20년간 철도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여러 과학 분야에서 활동하였으며
행성의 움직임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뭔지는 모르지만 말만 듣고서도 뭔가 엄청 있으나마나한 힘인지 감이 올 것이다. 아무리 우주 공간이라지만 이러한 힘이 물체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미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럴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소행성의 궤도가 야코프스키 효과에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어 학계는 충격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한다.

 

이 연구성과의 발단은 지구를 위협하는 우주 돌덩어리 ‘1999RQ36’의 등장 때문이었다.

 

 

 

생긴 것 부터 흉악한 우주 돌덩어리’1999RQ36′

 

요놈이 날아다니는 행색을 보니 백 년 후에 지구랑 대충돌의 랑데부를 일으킬 싹수가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사에서는 요놈을 블랙 리스트에 올리고 예의주시하기 시작하였고 1999년과 2005년, 2011년의 3회에 걸쳐 소행성의 위치를 측정했다.

 

그런데 머리좋은 과학자 형님들이 계산한 궤도와 실제 관측궤도가 12년 동안 약 160km정도 어긋난 것으로 나타났다. 식겁한 형님들이 이래저래 고민 끝에 부랴부랴 야르콥스키 효과를 고려하여 계산해보니 그 결과와 관측결과가 일치하였고 그 뒤로 맘편히 잠들 수 있었다고 한다.

 

근데 이 야르콥스키 효과는 ‘1999RQ36’가 태양에서 가장 가까울 때 조차 약 14g 정도라고 한다. ‘1999RQ36’는 직경 560미터에 질량이 6800만톤으로 추정되니 14g의 힘 따위가 뭘 어쩌겠어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우주 돌덩어리들이 날아다니는 거리가 서울~부산 거리도 아니고 수천천천만만만 킬로미터이니 아주 작은 각도의 변화가 이처럼 큰 결과의 오차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야르콥스키 효과를 고려하여 계산한 결과 2135년에는 소행성이 지구에서 22만마일(약 35만km) 정도 떨어진 지점을 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인 24만마일보다 가까운 지점이지만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은 극히 미미하다고 과학자 형님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 이번 야르콥스키 효과의 입증은 소행성의 궤도 예측에서 뿐만 아니라 소행성 탐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성과였다. 왜냐하면 소행성의 궤도 변화는 소행성의 질량을 계산할 때 있어서 오차를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행성의 질량을 추정하는 일은 탐사선이 현지에서 사용하는 연료의 양을 짐작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소행성이 무거우면 중력이 강해지므로 탐사선이 사용하는 연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사는 우리를 위협하는 돌덩어리 ‘1999RQ36’의 정체를 좀더 명확히 밝히기 위해 2016년 우주선을 날려 샘플을 채취하여 들고 올 생각으로 ‘오시리스-렉스’계획을 진행 중이다.

 

 

 

 

 

 

야르콥스키 효과의 성과는 2012년 5월 19일에 일본 니가타 현에서 개최된 ‘소행성, 혜성, 유성 2012(ACM 2012)’ 국제회의에서 발표되었다.

 

영진공 self_fish

 

 

 

 

 

 

 

 

 

 

 

 

 

 

 

 

 

 

 

 

 

 

 

 

 

 

 

 

여자를 좋아한 화가의 생물학적 발견, [1부]

 


 

 


 


 


 





애벗 핸더슨 세이어(Abbott H. Thayer, 1849~1921)


 


 

일찍부터 그림에 눈을 떠 무려 열여덟 살에 화가생활을 시작한 뉴잉글랜드 출신의 화가 세이어는 여느 남자들이 그렇듯 여자에 참 관심이 많았다. 그는 많은 여학생과 여조교들에 둘러쌓여 있었고 사실주의적인 화풍으로 신비하고 영적인 아름다움을 풍기는 여성들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그리고 1887년 자신의 딸 메리의 초상화를 그리며 천사의 날개를 그려 넣은 것을 계기로 여성의 등에 천사의 날개를 그려 넣기 시작하였다. 

 


 

  




Abbott Handerson Thayer (18491921), Angel.




 


 

그러나 세이어는 자나깨나 머릿속에 여자생각만으로 꽉 차있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여자 말고도 또 하나의 관심사가 있었다. 그것은 술도 아니고, 축구도 아니었다. 바로 ‘자연’이었다.

 

 




Abbott Handerson Thayer (18491921), Monadnock in Winter.




 


 

세이어는 어린 시절 뉴햄프셔의 깡촌에서 자연에 푹 빠져서 지냈으며 오듀본의 [아메리카의 새 Bird of America]를 탐독하는 등 자연친화적 환경에서 자랐다. 그랬기에 그는 여자도 좋아했지만 자연도 즐겨 그리곤 하였다.

 


그런 세이어에겐 언제부턴가 야생동물들을 그리면서 자꾸 뭔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많은 동물들이 등은 짙은 색이고 배는 흰색이나 옅은 색으로 되어있는데, 햇볕 아래서는 등이 무슨 색깔이든 간에 털이 빛을 반사시켜 하얗게 빛나고, 반대로 배는 그늘이 지면서 본래의 보다 더 짙은 색을 띄었다. 이러한 효과로 인해 동물들은 보다 평평하게 보이며 윤곽도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려웠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동물들이 평평하게 보인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찌되었든 세이어의 눈에는 이것이 유독 더 효과적으로 발휘되었나 보다. 세이어는 그림을 그리다 말고 동물들의 이러한 배색과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몰두하였고 1896년 자신이 발견한 내용을 정리하여 [오크 The Auk]라는 자연사 잡지에 [보호색의 기본 법칙 The law which underlies protective coloration]이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동물들의 배가 밀가루라도 바른 듯 하얗색을 띄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 방어피음 원리


 


 



동물들은 그늘이 지는 배 쪽의 색깔은 밝게 하고, 어두운 색의 등은 빛을 반사시켜 새하얗게 함으로써 빛이 비칠 때 대비효과를 줄인다. 그 결과 배경과 더 구분이 되지 않고 상쇄시키는 배색을 띄도록 진화한 것이다. 이런 동물들의 배색을 방어피음(防禦被陰, countershading)이라고 한다. 대다수의 생물학자는 세이어의 방어피음 개념을 환영했고, 세이어의 이론은 1902년에 [네이처]를 통해 영국 대중에게도 전해졌다.



 


 


 


“자연은 하늘의 빛을 가장 많이 받는 경향이 있는 부위는 가장 검게 하고 그 반대쪽은 가장 희게 하는 식으로 동물을 칠한다.” (Thayer, 1909)


 


 


세이어는 회화와 생물학이라는 은하 두세 개는 너끈히 들어갈 법한 학문 간의 거리를 꿰뚫으며 화가로서 생물학적 성찰을 이룬 것이었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평생을 연구에 매달려도 과학법칙을 발견하지 못하고 죽는 것에 비해, 그는 화가의 신분으로 ‘세이어의 은폐색 법칙’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붙어있는 과학법칙을 가지게 되었다.

 


본업이 아닌 이들이 본업인 사람들보다 더 좋은 성과를 이루는 이런 뭐같은 상황은 정말 마주하기 싫은 현실이다. 우리는 보통 이런 상황을 외면하기 위해서 일명 ‘신은 공평하다’라는 회피기제를 보인다. 이쁜 애들은 머리가 나쁘다던가 저 잘생긴 놈은 분명 발냄새가 고약할것이라는 편견을 만들어내어 심신의 안정을 찾으려는 생존본능 말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런 편견들은 일정부분 들어맞는다. 완벽한 사람이란 신조차 용서하기 힘든 존재였던 것이다. 그럼 세이어는 어땠을까? 암내가 심했을까? 성격이 심한 무좀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면 인정하기 싫지만 그림도 잘그리고 머리도 좋은 외계인이었을까?


 


 


 




연기, 감독, 그림, 노래, 작사, 작곡 등 못하는게 없는 구켈란젤로 구혜선양. 

그녀는 외계인일까? 


 



 


 


다행(?)스럽게도 세이어가 중대한 과학법칙을 발견하긴 했지만 그는 과학자적인 기질과는 매우 동떨어진 사람이었다. 그는 넘치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상주의에 빠져있었고 심각한 열등감에 따른 자기과시와 자만심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자연계의 원리인 ‘방어피음’ 개념에 심취하여 자신이 고고한 식견을 가진 화가라는, 걸리면 약도 없다는 왕자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자제하지 못하고 종종 망언을 내뱉고는 했다.


 


 


 


“물론 그런 모방을 판단하는 사람은 예술가이다. 따라서 나는 전문가로서 모방 여부를 판결한다.” (Thayer, 1911)


 


 


 


아들인 제럴드와 함께 쓴 대작 [동물계의 은폐색](1909)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때쯤, 그의 왕자병은 정점에 이르렀고 듣기에도 민망한 자화자찬이 이어졌다.


 


 


 


“우리 책은 이론이 아니라 라듐의 엑스선처럼 명백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계시를 전한다.” (Thayer, 1909)


 


 


 


세이어는 알다시피 화가다. 그는 다른 과학자들이 가지지 못한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내 글에 들어가는 그림을 직접 그려 넣듯이 세이어도 자신의 재능을 썩힐 리가 만무했다.

 


그는 생물들의 무늬는 오로지 은폐색 기능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의 그런 주장과는 달리 현실에선 그 동물들 대부분은 1킬로미터 밖에서도 뚜렷이 보였지만 말이다.


 


 



-발췌 및 편집-

피터 포브스 저, 이한음 역, [현혹과 기만], 까치, 2012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