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라이트먼” –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

산업인력관리공단
2006년 8월 31일

찌질아, 찌질아, 왜 사니? 쯧쯧 -_-;

지대 찌질남의 공식 저질 찌질 기록기
수퍼 히어로물은 기본적으로 남자들의 성장담이다. 특별한 힘을 가진 주인공이 자신의 힘과 자신의 운명을 자각하고, 갈등과 시련의 시기를 거쳐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하게 되고 마침내 (어쩌면 또다른 자신이기도 할) 악과 대면하여 싸우고 공동체를 구해낸다. 부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름다운 여성과의 사랑, 혹은 그 여성 그 자체이다. “샘 레이미” 감독이 <스파이더 맨> 시리즈에서 좀더 노골적으로 드러낸 이러한 밑바탕의 구조는, 인간=남자(Man!)의 공식이 자연스러운 시대의 자연스러운 소산물이었다. 이 성장담은 소녀들이 감정이입을 하려면 기표의 외관을 훨씬 더 탈색시켜야 하는 의도적 노력이 뒤따른다. 이러한 성장담에 대해 보통 여성관객은 관찰자이고 제3자이다.

이제, 자아실현 따위의 고상한 이유가 아닌, 생계를 위해서 임노동을 하는 게 당연한 한편 사회적으로도 주체적인 자리에 서서 남자들과 경쟁하는 여성들은 자신들의 역할모델, 혹은 자신들의 고난과 고통과 슬픔을 대신 표현해낼 은유의 대리자를 새로이 필요로 하게 되었다. 90년대 <쉬즈올댓>을 필두로 헐리웃에서 쏟아져 나온 틴에이지 소녀물은 적극적이고 잠재력이 높은 새로운 시장 – 대중문화에서 자신의 정체성의 표상을 확립하고 발견하며, 적극적이고 꽤 파워풀한 소비자계층으로 떠오른 소녀층 – 을 발견하고 집중공략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임시 성과물이었다. 이제, 이 소녀들은 나이를 먹고 사회에 나와 숱한 연애를 경험하고 직업여성(그 직업이 꼭 고소득의 전문직은 아니더라도)으로서 생계전선에서 분투한다. 많은 로맨틱 코미디 중, 성인여성이 아닌 ‘소녀성’을 간직한 영화들(이 영화들을 ‘소녀영화’라 부르기로 하자)의 계보가 90년대에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했던 반면 2000년대 들어 2, 30대 직장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G걸의 캐릭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G걸은 뉴욕의 각종 사건사고들을 해결하는 수퍼히어로지만 G걸의 일상인 캐릭터인 제니 존슨(“우마 써먼”)은 성인의 외모와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 성장이 멈춘 어린 소녀다. 우연히 새로운 힘을 갖게 되고 그 힘에 도취된 채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를 한없이 미뤄온. 영화 초반 맷 선더스(“루크 윌슨”)와의 이런저런 에피소드와 여기서 유발되는 웃음들은, G걸의 누가봐도 완벽한 성인 여성이라는 외적 조건과 성장이 멈춘 채 어린 아이에 머물러 있는 내적상태의 모순과 괴리에서 나온다. 고져스한 외모를 갖고 있다 해도 그녀는 여전히 사람들과의 관계가 서툰, 중, 고등학교 때의 왕따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녀는 진지한 관계를 갖고 그 관계를 차분히 진행해 나가는 데에 더없이 서투르다.

또 한편으로, 남성들의 시선에 철저히 포획당했던 원더우먼을 제외하고는 줄곧 남성들이 차지해온 ‘주인공’ 수퍼히어로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그는 예컨대 배트맨을 보조하는 배트걸이나, 주인공처럼 다뤄지긴 해도 실제로는 “미스터 판타스틱의 여자친구”인 인비저블 걸(『판타스틱 포』)과 다르다. 패셔너블한 의상을 입은 G걸의 활약을 묘사하는 방식이 영화의 장르적 특성상 매우 경쾌하고 발랄하며 꽤 과장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의 수퍼히어로물을 상당히 비꼬는 듯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당당한 매력을 지닌 그녀의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 앞에서 예컨대 수퍼맨은 한없이 촌스럽고 배트맨은 덧없는 후까시를 겹겹이 둘러입은 듯 보이며 스파이더맨은 궁상맞게 느껴질 정도다.

매일 사람들을 구하며 사람들의 연호를 받지만 자신이 도움을 받은 적은 없으며 언제나 외로웠던 제니 존슨 – G걸이 연애에 빠져 허부적대는 모습 그 자체는 사랑스럽다. 그 상대가 그녀를 감당할 능력도 주제도 못 되는 수준 이하의 찌질남이라는 사실 자체도 별로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리는 방식과 관점은 충분히 문제가 된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My Super Ex-Girlfriend”이라는 원제의 의미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이 결국 G걸이 아니라 G걸을 찬 맷 선더스라는 것이고, G걸은 역시나 맷 선더스의 시점에서 철저하게 대상화되어 다루어진다는 것. 그렇기에 그녀가 아무리 수퍼히어로라 한들, 그녀의 서툰 인간관계는 ‘또라이’로 딱 잘라 비하되며, 결국 맷 선더스가 “그 대단한 여자를 따먹은 게 바로 나”라는 찌질맞은 훈장을 자랑하는 게 이 영화의 정체라는 것이다.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이 그저 천하의 G걸을 따먹었다고 자랑스럽게 낄낄대면서 다른 여자에게 진정한 사랑 운운해대는 이 찌질한 남자가 심지어 ‘평범한 소심인 남자’로 포장되는 과정은 정말, 역겹다. 이 영화, 거기다 모든 남자들의 은밀한 판타지 – 잘난 두 여자가 나 한 사람을 두고 싸워줬으면 – 를 꽤나 뻔뻔한데다 저질스럽게 보여주는데, 어이가 없어서 기절할 지경. 덕분에 해너(애너 패리스)라는 캐릭터까지 바보 멍청이가 돼버리지 않는가.

애초에 이 영화는 G걸이라는 어마어마한 잠재성을 가진 캐릭터를 만들어놓고도 그 캐릭터를 깎아내리기에 바쁜 이 영화, 결국은 G걸이라는 ‘캐릭터’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채 그저 그런 여자의 사랑을 받는 걸 평생의 자랑으로 내놓는 찌질한 남자의 찌질한 행동짓거리를 늘어놓으면서 G걸을 바보만들기에 바쁘다. 만약 이 영화가 끝까지 밀어부치는 G걸의 통쾌한 복수담이었다면, 혹은 수퍼히어로서의 성장담 – 그것이 꼭 여타의 수퍼히어로물처럼 진지하고 폼잡는 방식으로 구현될 필요도 없다,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스스로 자기존엄성을 되찾는 것은 그저 찌질남을 차고 괜찮은 다른 남자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은유가 될 것이다 – 을 다뤘다면, 다수의 여성 관객들과 일부 남성 관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컬트영화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금발이 너무해>가 성공적으로 해낸 것처럼. 하지만 여성비하적 전제를 가진 이 영화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인정받는 여성의 어떤 미숙함을 낄낄대며 극단적으로 과장해 비하하기 바쁘다. 인터넷에서 마치 그런 여성에 대해 ‘그래봤자 걔도 별 거 아니다, 내가 따먹은 애다”라고 소문을 내며 그녀를 깎아내리고 낄낄대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찌질댐. 이 영화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긴, “이반 라이트만”이 노린 것은 어쩌면 오늘날 인터넷에 거대다수로 자리잡고 있는 이 찌질세력들의 절대 지지를 받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ps1. 그러나 “우마 써먼”은 여전히 눈부시다. 『킬빌』의 이미지를 씻어내려는 듯한 “우마 써먼”의 최근 행보를 생각해 본다면, 이 영화에서의 우마 써먼이 지독하게 아깝다고는 해도 정작 “우마 써먼” 본인에겐 손해보는 부분은 없을 듯 하다.

ps2. 꽃 들고 온 맷에게 제니의 표정이 금방 바뀌는 걸 보고, 제니의 애정결핍 때문에 J.는 참 짠하고 슬펐다 한다. 난 미사일을 처리하고 온 그녀가 맷과 해너를 보고 짓는 표정이 슬펐다.

산업인력관리공단 조사1부 부장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 – 남녀관계의 권력 비틀기 + 두 가지 텍스트로 보기

상벌위원회
2006년 8월 31일


1. 남녀관계의 권력 비틀기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보려고 예매했는데, 의외로 수작을 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깔깔거리면서 볼 수 있는 즐거운 영화이긴 한데 이거 그리 얄팍한 영화는 아니라는게 내 생각이다. 그냥 즐기면서 영화를 보다가, 영화가 단지 ‘여자가 물리적 힘이 세다.’라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데이트, 결혼생활, 등에서의 남녀사이의 권력관계(당연히 연인사이에도 권력관계가 존재한다)가 어떻게 비틀리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리 가볍게 볼 수 만은 없었다.

이유도 모른 채 차였다. 복수하고 싶은 건 본능이다.
킬빌에서 보여주었던 길쭉 길쭉한 팔다리로 보여주는 예의 액션과 함께 시작하는 영화. 차를 번쩍 번쩍 들고 날라댕기니 처음부터 유쾌한 웃음으로 영화 감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멋쥔 뉴요커의 모습을 한 제니에게 접근하는 매트. 그리고 super girl이라는 것을 감추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좌충우돌 스토리가 이어진다. 여기까지는 super hero를 소재로 한 로맨틱 코메디의 분위기를 밟는다. 그러다가 가뜩이나 의심스러웠던 매트의 마음이 직장동료인 한나에게 쓰윽~ 돌아가는 것이 뻔히 눈에 보이는데, ‘생각할 시간을 갖자’며 말도 안되는 설레발로 헤어지자는 매트! 제니가 복수를 결심하는 건 당연하다. 왜 그렇지 않은가? 여자건 남자건 차이고 나면 좀 유치하긴 하지만 복수할 각종 방법들을 생각하는 법이다. 자기가 억울하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면 더 그렇다.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도 은수의 마티즈를 주욱 그어버리지 않던가. 그래도 사실 뭐 실행에 옮기는 여자들은 없지만, 우리의 제니에게는 남다른 면이 있다. 바로 자신이 super hero라는 것. 남는 힘을 정의를 위해 쓰는게 아니라, 복수를 위해 쓴다. 남자친구였던 매트의 차를 주차장에서 끌어내서 우주공간에 붕붕 띄워 놓질 않나. 집안에 들어와서 집기 다 부수면서 슝슝 날아다니지를 않나. 이마에다가 ‘dick’이라고 써 놓질 않나. 회사에서 중요한 presentation하는데 알몸으로 벗겨놓지를 않나. 여기까지는 그냥 ‘나를 찬 애인에게 복수 하고 싶은 여자들의 본심을 표현한 것’으로 보며 애교로 넘어갔는데, 급기야 한나와 매트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함께 지내는 것을 본 제니, 상어까지 잡아다 집안에 집어 던진다.

가만, 이거 뒤틀어 보니 데이트 폭력이다.
얼마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하는 걸 보고 그 폭력성에 몸을 떨었었다. 사귀면서 맞고, 헤어지자고 하면 공갈 협박당하고, 그러다가 완전히 삶이 망가져버리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런 사례가 굉장히 많다는 것도 충격적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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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여자가 super hero라서 남자한테 폭력을 가하니까 코메디가 되는데, 남녀를 반대로 뒤집어 보면 정말 무서운 일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른 면에서도 이 영화 남/녀를 뒤집어 보면 그냥 일상적인 남녀관계의 끔찍한 권력의 속성들이 드러난다.
전반부에 나타나는 19세 불가 에피소드들로 돌아가볼까? 메트는 힘센 제니 때문에 잠자리가 두렵지만 차마 무서워서 말도 못한다. 이거 뒤집어 보면 정말 끔찍한거다. 이 영화에서 매트 직장의 최고 보스가 ‘여성'(그것도 흑인 여성)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매트는 왜 제니와 헤어지자고 했을까? 베들램은 왜 제니를 미워하기만 했을까?
매트는 제니와 헤어지자고 말하면서 you are controlling이라는 말을 한다. 지배하려고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매트는 사실 사회적 지위로도 자신에게 전혀 딸릴 것 없고, 심지어 힘까지 센 제니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사실은 제니를 십년 넘게 짝사랑해 온 베들렘은 제니를 미워하는 것 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제니의 super hero로써의 힘을 빼앗고자 연구를 계속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무력화 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 참 어이없지 않은가. 암석의 힘으로 얼굴도 예뻐지고, 몸매도 좋아진 제니가 고교졸업 직전에는 한 인기 하다가, 오날날 데이트 한번 변변하게 못해본 노처녀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단지 그녀가 super hero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론은 유쾌하던걸…
매트가 제니를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하면서 그때부터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super hero로써의 힘을 빼앗긴 제니가 ‘결국 그래서 서로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착한 여자가 되어서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라고 끝날까봐 마음이 아주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그런 ‘자유부인’식의 훈계조 스토리로 흐르지는 않는다. 정말 다행이다. 영화는 아주 유쾌하게도 제니의 질투의 대상이었던 ‘평범한 여성’ 한나를 또 하나의 super hero로 만든다. 두명의 힘센 여자.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무서운 혈투를 벌이고 상황은 아주 유쾌하게 흘러간다. 한나가 힘을 획득하게 된 다음 ‘이제 한나, 매트 커플도 오래 못 가겠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쁜 짓만 일삼던 베들램. 제니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진실한 마음의 표현이 필요할 뿐이지, 그녀를 무력화 시켜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제니와 함께 멋진 커플을 이룬다. 그리고 엔딩크리딧 올라가기 직전의 에니메이션, 아주 깔깔거리며 재미있게 보았다.

p.s1. 뭔가 멋지게 써보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중언부언이다.
p.s2. 이 영화, 우마서먼 언니가 있었으니까 가능한 영화다. 언니 만세!

2. 두 가지 텍스트로 보기

내가 왜 유치해 보이는 영화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을 재미있게 봤는지 곰곰 생각해 봤다. 나는 “수퍼우먼의 사랑찾기”와 “마초의 성역할 바꾸기”라는 두가지 텍스트를 동시에 읽으면서 영화를 봤기 때문에 그토록 재미있게 봤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한 장면을 보면서도 수퍼우먼의 행동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낌과 동시에 역할이 바뀌었을 때의 상황- 즉 현실-을 생각하면서 그 뒤틀린 유머를 느꼈던 것이다.

수퍼우먼의 사랑찾기
덜렁대고 털털한 척 하는 나를 두고 그냥 주변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안하지만, 가족들이라든지 십수년을 알아온 친구들이라든지 하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수퍼우먼 컴플렉스가 있다고 말하곤 한다. 실제로 그닥 동의하지 못하지만, 뭐 말 그대로 컴플렉스니까. 내가 수퍼우먼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수퍼우먼 컴플렉스는 ‘수퍼우먼이 되어야 겠다’라는 강박을 뜻하기도 하지만 ‘수퍼우먼이라서 뭔가 피해를 보고 있다’라는 피해의식을 뜻하기도 하지 않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다시 고쳐서 얘기하자면 ‘만만한 여자, 만만해 보이는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만만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연애든 뭐든 손해를 보는 일이 많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게 수퍼우먼 컴플렉스를 지닌 사람의 한 일면이라는 거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 제니는 말 그대로 Super woman이다. 말 그대로. ㅋㅋ. 힘이 어찌나 장산지 ‘만만한거’하고는 거리가 한 삼백만 광년 쯤 멀다. 총을 맞는 다고 끄떡을 하나. 게다가 외모도 출중하고, 세련되고, 심지어는 번듯하고 있어보이는 직업도 있다. 이렇게 괜찮은 여자가 변변히 연애조차 못해보는 건 전적으로 이 여자가 수퍼우먼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super woman이라서 해야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탓도 있을 것이고, 그리고 어쩌다가 남자를 만날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정의를 위해 일하느라 그 남자한테 충실(이거 좀 웃기는 표현이다마는)하기 어렵고, 또 그 남자에게 완전히 충실하고 신실하게 굴어도, 결국에는 그녀의 super woman으로써의 기질을 알게 된 남자가 지레 겁을 먹으면서 멀리하는 것이다. 정말 지구를 구하고 수백명을 화재로부터 구출해 내면서 돌아다녀봐도, ‘남친 손가락에 박힌 가시를 입으로 빼주는 여자’를 당해낼 수가 없는거다. 남자는 자기 손가락에 박힌 가시를 빼줄 여자가 필요하지, 지구를 구하는 여자가 필요하지 않은 거다. 사회적으로 명성있고, 멋진 여자와의 관계란 결국 ‘잤다고 자랑할 때’ 정도의 필요밖에는 없는거다.
과거의 남자는 어떠한가? 과거의 남자는 여자가 혼자 승승장구하는 꼴을 못 본다. 이 놈은 여자가 성공하면 성공할 수록 이상하게도 사랑을 미움으로 승화시킨다.
불행하게도, 정의를 사랑하는 이 여자는 옛날에 사이 좋았던 단짝 남자친구에게는 복수의 대상이 되고, 지금 사랑하는 남자에게는 배려심 없는 나쁜 여자가 된다.
이 여자, 진짜 불쌍한 여자다. 수퍼우먼도 상처 받기 쉬우며,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고, 한 남자와의 진지한 관계를 원한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는거다. 기회가 없기 때문에 남녀관계를 진지하게 끌어가는 방법을 학습하지 못하고, 학습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녀관계에 있어서는 더 뻘짓거리를 하게 되는거다. (주변에 똑똑한 여자들이 연애에 있어서는 평범한 여자들보다 백배 뻘짓거리를 많이 하는 걸 더러 들 보셨을 거다) 실연 당하고 생 뻘짓을 하면서 괴로워하는 제니의 모습을 보라. 모두들 공감되시지 않는지.
뭐 결론은 꼬여 꼬여 나긴 했지만, 어쨌든 과거부터 제니를 좋아하던 남자가 제니의 super woman으로써의 힘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고 그냥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사랑이 다시 시작되는 것으로 끝나긴 하니. 수퍼우먼의 사랑찾기를 보여준 영화로써는 그런대로 결론이 괜찮은 편이다.

마초의 성 역할 바꾸기
또 다른 면으로 보자면 이 영화, 마초들이 하는 짓을 성역할을 바꿔 놓음으로 인해서 무지막지한 현실을 코메디로 버무려 버린 영화다.
가만 보면 제니의 하는 짓이 마초가 하는 짓이랑 똑같다. 둘 간의 exclusive한 관계는 무지무지하게 강조하면서 상대방을 구속하려고 하지만, 실상 다른 건 다 지 맘대로다. 상대방이 잠자리를 무서워해도, 상대방이 데이트 중 두려움을 호소해도(하늘을 데리고 맘대로 날아다니니까 남자가 무서워서 벌벌 떨며 사정한다) 제니는 가 혼자 신났으니까 전혀 개의치 않는다. 다른 여자를 만나는 건 징글 징글 맞게 싫어하면서, 정작 데이트 중에는 자기 business가 있으면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자리를 뜨기 일쑤다. 도대체가 사람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학습이 되어 있지 않다. 이건 제니가 ‘물리적 힘이 뒷받침 된’ 마초이기 때문이다. 당황하는 것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되니까 이 열받는 상황은 ‘코메디’가 되어 버린 것이다.
배려 받지 못한 관계 때문에, 헤어짐을 말하는 남자에게 제니는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한다. 그게 아래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던 일종의 데이트 폭력이다. 모든 사태를 물리적 힘으로, 우격다짐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이 무섭고 살 떨리는 태도. 이것도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쪽이 남자가 되니까 코메디가 되어 버린 것이다. (즉, 웃을 거리가 된다는 것은 현실에서 절대로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뜻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한나(헤너라고 써야 하나)가 제니와 똑같은 수퍼우먼이 된 다음에, 매트가 한나의 도움을 받는 상황은 또 어떤가? “내 남자니까 건드리지마”하면서 달겨드는 이 상황. 데이트 하던 남성으로 부터 폭력을 당하던 여자가 그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남자의 비슷한 폭력을 대동하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그 성역할 그대로 그렸다면 정말 비루하기 그지 없을 이 상황들이 성역할이 바뀌니까 코메디가 되어버린다.
결론도 좀 골 때려 버린다. 연인과 못 헤어진다며 ‘애정결핍성 폭력’을 행사해 오던 마초는 ‘옛날 부터 일편단심으로 순정을 바쳤던 사람’을 찾아서 떠나고, 폭력을 당하던 사람은 ‘또 다른 마초의 보호를 받으면서’ 결론에 이른다. 아.아.아. 정말 성이 바뀌었기에 코메디일 수 있는 상황이다.

한번들, 이렇게 두 가지 관점으로 관람해 보시기를… 감히 권하지는 못하겠지만
이 웃고 넘길 영화도 머리 빠개지게 심각하게 볼 수 있다.

상벌위원회 선임차장
라이(ley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