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기회가 남아있기를 소망하며

지구는 멸망한 듯 보인다. 동물은 사라졌고 작물은 자라나지 않으니 사람은 먹을 게 없다. 남은 먹이는 사람 뿐이다. 코맥 맥카시가 창조한 지옥 ‘더 로드’의 풍경이다.

아비와 아들이 남았다. 자신들을 먹이로 삼으려는 사람 앞에서 아비는 한 알 남은 총을 겨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굶주림을 짐작하는
아들은 남은 통조림을 건넨다. 아비의 총과 아들의 통조림. 코맥 멕카시의 지옥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비의 총과 아들의 통조림 사이에 있다.




진보’와 ‘보수’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동물들이 사는
세상은 아비의 총처럼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지배한다. 그것이 동물 세계의 규칙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여야 하고 이겨야 한다.
인간은 동물이기에 그것은 인간의 규칙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이기만 한 것일까?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진화론에서 나왔지만 다윈은 인간에게는 적자생존을 넘어선 ‘사회적 본능’이 있다고 말했다. 동류에게 건네는
통조림과 같은 본능. 그것은 동물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인간만의 감정이다. 동물이지만 동물과는 또 다른 감정을 지닌 인간.
‘진보’와 ‘보수’는 여기서 갈린다. 인간은 동물일 뿐이라며 동물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보수’이며 인간은 동물의 규칙을
넘어선 인간만의 규칙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진보’인 것이다. 하지만 ‘감정’이나 ‘믿음’은 과학이 아니다. 다시 말해
불확실한 것이다. 인간은 이 믿음을 변하지 않는 ‘진리’의 영역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더 로드’는 인간의 본능은 ‘진보’에 가깝다며 결론 맺는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 다행히 ‘더 로드’와 같은 지옥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에게는 여전히 기회가 남아 있다.

영진공 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