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 연애조작단”, 꽃포장 안에는 역시 코미디만 있었다.


김현석 감독의 전작 <스카우트>(2007) 의 탁월한 완성도와 함께 작품 속에 담긴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홍보 실패의 사례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새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에 대해서도 전형적인 트렌디 코믹 멜로로만 보이는 꽃분홍색 겉포장의 이면에 깜짝 놀랄 만한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 “내가 오늘 이 영화를 보러 오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 기대를 가졌을 법하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 만큼은 김현석 감독의 재능이 다수 관객들에게도 널리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는게 병이라고, 김현석 감독의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기대치를 높여놓았던 내 경우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영 마뜩찮은 작품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김현석이 누군지, 아예 감독 이름 같은 건 상관하지 않고 포스터에 나온 주연 배우들 얼굴과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서의 컨셉만 보고 입장권을 구입한 관객들이 영화를 훨씬 재미있게 감상하겠지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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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연애조작단의 활약상 또는 일하는 방식을 한 차례 소개해올리는 도입부였다. 그리고 본게임이라 할 수 있는 펀드매니저 상용(최다니엘)의 의뢰 건을 진행하기 시작하면서 연애조작단의 리더인 병훈(엄태웅)과 연애조작의 목표물 희중(이민정)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는 살짝 지루했던 것 같다.

희중을 대상으로 하는 연애조작이 한 차례 실패로 돌아간 이후 심기일전해서 재도전을 하게 되는 후반부는 희곡에서와 같은 시라노의 역할에 충실하며 희중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병훈과 희중의 새로운 인연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대사를 벗어나 마침내 솔직한 자기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성공하는 상용의 활약이 교차하며 다시금 활력을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희중이 연애조작의 대상으로만 머물고 있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병훈을 얻기 위한 민영(박신혜)의 적극성이 그런대로 균형감을 살려주고 있다. 권해효가 연기한 사채업자들의 개입은 상용과 희중을 맺어주기 위해 스스로 방패 역할을 자처하는 병훈의 행동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서는 유효했지만 그럼에도 그다지 잘된 설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덕분에 이 영화가 순도 높은 멜로가 아닌 그저 코미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킬 수는 있었다.

연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도 때로는 연출이 필요한 분야이고 – 그 대상이 되는 입장에서도 상대방이 아주 싫지만 않다면 이것을 가상한 노력으로 봐주는 경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 타고난 선수가 아닌 바에야 제 머리를 깎으려면 아무래도 서툴 수 밖에 없으니 연애조작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연애조작단의 활동이란 상당한 자금을 필요로 하는 일인데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사람의 진심을 전달하고 그것을 오랜 관계로 이끌어가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영화의 주제는 진정한 사랑이 사람 간 신뢰의 문제도 덮을 수 있다는 것인듯 한데 이것이 제대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인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물론 젊은 날의 사랑과 연애를 소재로 삼는, 어디까지나 트렌디 코미디 영화에 불과한 것이니 그런 것까지 충족시켜야 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희중을 떠나보낸 병훈이 민영으로부터 연애조작 – 예전에는 작업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했었던 – 의 대상이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동료인 철빈(박철민)의 의미심장한 윙크로 마무리가 되는데 아마도 이런 코믹 멜로물을 만드는 감독 자신의 역할 또한 시라노와 같은 것으로 인식해주길 바라는 의사표현처럼 보인다.

과연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본 덕분에 연애감정이 싹트는 계기가 될런지는 관객 각자의 믿음, 소망, 사랑에 달린 일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영진공 신어지

 

“시”, 자의적 불감증의 시대를 향해 쓰다






이창동 감독의 다섯번째 영화. 논란이 될 만한 내용과 관점을 다루기는 하되 비교적 대중적인 화법을 견지해오던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2007년작 <밀양>과 특히 이번 <시>를 통해서 비교하자면 거의 순수 문학에 가까운 연출 스타일로 변모하고 있음을 – 서정시나 풍경화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미학을 추구한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있어서 – 확인시켜주고 있다.

영화의 소재와 주제 의식에 있어서는 갈수록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으면서도 작가로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되도록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니 자칫 이런 훌륭한 작품들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너무 적어지게 될까 싶은 걱정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몇 명의 가장 뛰어난 우리나라 영화감독들 가운데 작품을 통해 다루는 내용과 주제의식에 있어서 가장 높은 경지에 올라있는 이가 바로 이창동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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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어린 여중생의 죽음에 관해 시 한 편을 남기는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다. 늘그막에 시 문학에 심취한 여성의 이야기라고 해서 언듯 인생과 예술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는 예술가 영화 쯤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비극적인 사건에 연루된 범죄 행위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할 것인지에 관해 묻는 매우 민감한 주제의 작품이다.

때마침 노무현 대통령의 1주기를 맞아 개봉한 이 작품을 놓고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작품이라 생각해보는 것 역시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그러고보면 같은 주에 개봉한 <하녀>(2010)에서 은이(전도연)가 복수의 방법으로써 선택했던 그것 역시 두 영화가 동일한 시대 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하녀>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비판했다면 <시>는 그 안에서 마취된 상태로 살고 있는 우리의 양심과 윤리 의식을 일깨운다. <시>에서 양미자(윤정희)가 정물이 아닌 자살한 소녀에 관한 시를 남겼듯이 이창동 감독은 이 시대가 죽음으로 몰고간 누군가에 관한 영화를 만든 셈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던 사람이나 그를 죽게 만든 다른 이들에 관한 영화라기 보다는 그런 사건들과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태도에 관한 영화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죽은 여중생에 관해 알고 싶어했던 미자가 사실은 그 사건으로 인해 매우 복잡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는 영화의 설정과 전개는 내가 직접 관련되지 않은 비극적인 사건 사고들이 사실은 우리 자신들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 쓰기에 몰두하느라 죽은 여중생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서도 엉뚱한 소리만 하다가 돌아나선 미자가 결국 자신의 시작 노트를 통해 강 노인(김희라)과 지극히 현실적인 필담을 나누게 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시>에는 누군가를 죽게 만든 이들과 그런 잘못을 덮어버리려고 애쓰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당장의 악으로 묘사되는 것은 아니다 –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사람들의 속물적인 행동들 속에서조차 삶의 진실을 발견해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밀양>에서 확인되었던 바다. <시>는 ‘그들의’ 무감함을 비판하기 보다 ‘우리가’ 다시 살려내야 할 도덕적 감각을 일깨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작품이다.











에필로그처럼 들려지는 양미자의 시, “아녜스의 노래”가 진정성을 갖게 되는 것은 그것이 순간적인 감상을 제대로 포착해낸 솜씨있는 언어의 조합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감각을 일깨우던 미자가 마침내 자신의 삶 속에서 이루어낸 결단을 관객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여중생 박희진(한수영)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다시 그녀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그러고 보면 영화 <시>는 병원에서 처음 박희진의 죽음에 관해 알게된 미자가 시를 쓰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 여중생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감정을 이입하다가 마침내 그 입장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는 미자가 함께 배드민턴을 치던 손자를 경찰에 넘기는 장면이었다. 세상에 아파트 단지에서 한가롭게 배트민턴을 치는 장면 하나가 이토록 보는 이의 가슴을 뒤흔들 수 있다니. 그 자체로 놀라운 반전이기도 했지만 등장 인물의 극도로 자제된 감정이 스크린 안을 가득 채우다 못해 흘러넘치는 광경이기도 했다.

너무 완벽한 귀결이라 정나미가 떨어질 법도 하건만 그 순간의 터질 듯한 감정을 꾹 눌러버리는 연출 앞에서는 그저 벅차오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개를 내젓는 수 밖에 없다.



노년의 나이로 인해 치매 현상이 찾아온 미자에게 의사는 “처음에는 명사를 잊게 되고 그 다음은 동사”라고 말한다. 우리는 어느새 잘 먹고 잘 사는 일을 핑계로 자의적 치매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이어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법 마저 잊고 만다.

<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특정한 정치적 사건이나 작금의 상황과 굳이 연관지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다.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하고 심지어 나름의 대가를 통해 가족으로부터 조차 잊혀지게 된 어린 소녀의 죽음을 매개로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완성해내는 삶의 불가역성과 예술의 상관 관계에 관한 영화로만 보여지더라도 – 그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달리 읽혀질 수 있는 영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시>는 수준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을만 하다.

그러나 영화 한 편을 통해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해내고 시를 쓰는 예민한 감각으로 그 죽음에 관련된 일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기적은 오직 영화 <시>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일이다.


영진공 신어지

 

<스카우트>, 웃음과 재치 속에 비극을 담는 하나의 전범

스포일러를 잔뜩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Y대학 야구부 직원인 호창(임창정)이 고3 괴물투수 선동열 스카웃이라는 막대한 사명을 띠고 광주에 출장을 간다. 모처에서 비밀훈련을 한다는 선동열의 자취를 좇고, 그의 부모를 찾아가 조르는 한편, 그는 7년 전 갑자기 결별을 선언하고 사라져버린 옛사랑 세영(엄지원)과 재회한다. 한 축으로는 선동열이 가기로 예정한 K대학 야구부 직원의 집요한 방해를 뚫고 선동열을 뒤쫓는 모험, 그리고 또 한 축으로는 세영을 마음에 둔 주먹 출신 곤태(박철민)의 견제 속에서도 마음 깊이 미진하게 남은 세영과의 지지부진한 관계. 이 둘은 영화의 초반을 평범하고 다소 도식적인 코미디로 끌어간다.


이 두 축이 만나는 지점은 광주항쟁 ‘직전’의 대규모 시위이다. 마침내 선동열의 아버지가 호창에게 마음이 기울었을 무렵, 그는 세영이 자신을 왜 떠났는지 알게 된다. 그것은 그 자신도 지우고자 했던 기억, 그래서 실제로 잊어버리고 있던 어떤 사건 때문이다. 영화의 후반부는 호창이 이 사건을 떠올리고는 세영을 찾아 헤매는 모험인데, 여기에 시대적 비극이 직접적으로 얽히면서 영화는 긴박감을 띄게 된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는 초반에 내세웠던 유머와 코미디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시대적 비극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 영화의 비극적 코드는 웃음 속에 대충 끼워넣는 휴머니즘 코드로서가 아닌, 그 웃음과 적절히 조응함으로써 더욱 배가되는 비극성, 그럼에도 ‘웃으며 피눈물을 쏟아내는’ 비극성을 표현해낸다.


회사 편에서 노조를 깨뜨리고 파업을 깽판놓던 구사대의 학교 버전, 구교대는 실제로 학교에 존재했다. 그네들이라고 좋아서 데모하는 다른 애들을 두들겨 팼겠냐만, 운동으로 학교에 스카웃된 학생들과 소위 시험쳐서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높은 장벽이 분명히 존재했고, 때로 끼어드는 적대심에는 분명 구교대의 역사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위하는 학생들을 깽판놓기 위해 운동부 학생들을 동원할 때 학교는 한마디로 “너희들 불러다 공부시켜주고 운동시켜주는 게 누군데.”였던 건데, 이것은 영화에서도 “니들이 공짜로 운동해?”였나, 하는 대사 한 마디로 압축되어 표현된다. 결국 시위하던 학생들과 운동부 학생들의 싸움이 일어나는데, 이 장면의 비극성은, 우리가 매일 보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시위에서 충돌하는 시위대와 전경의 모습 그대로이기도 하고, 혹은 광주에서 대치했을 시위대와 군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세영이 왜 자기를 떠났는지를 깨달았을 때, 그것을 돌이키기 위해 그가 취했던 액션. 바로 그것이, 이 영화가 숨기고 있던 비장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이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그것을 돌이키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했고, 경찰서에 잡혀있는 세영을 드디어 구출해낸 후 그녀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과거의 과오를 대하는 가장 올바른 방식이 아니겠는가. 호창은 참으로 용기있는 사람이고, 이것이야말로 소시민 호창의 위대한 영웅의 승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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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두 주연배우의 연기가 너무나 빛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원래 가장 훌륭한 코미디가 ‘슬픈’ 코미디인 것은, 코미디라는 장르의 전통 중 하나가 삶의 ‘비극’을 뒤트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현석 감독은 임창정이란 배우가 가진 장기, 즉 ‘처절한 웃음’을 표현해 낼 줄 아는 그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표현한다. 역사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소시민이 처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상황, 그리고 너무나 거대한 비극 사이에 껴 있는 소소한 비극이기에 자연스럽게 희극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그러한 희비극적 상황을, 임창정은 특유의 우직한 성실함과 넉살로 돌파한다. 그가 미친 듯이 세영을 향해 뛰어가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관객이 있을까? 광주에 대해 여전히 ‘사태’라 생각하든 ‘항쟁’이라 생각하든, 그 장면에서의 임창정의 진심에 감동하지 않을 관객이 있을까? 이 장면에서 임창정이 호창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울음은 가슴을 찢어놓는 통한의 울음이다. 한편 착잡하고 비밀을 가진 듯한 세영의 모습은 호창의 회상 속에서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했다가(이것이 연애의 ‘회상’이기에 더욱 그렇겠지만), 호창이 그 사건을 기억해내는 장면에서 그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모습 때문에 그녀의 상처와 경악과 슬픔이 더욱 비극성이 배가되어 표현된다. 이 장면에서 엄지원의 연기 역시 그 고통을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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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호창의 운명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가운데, ‘현재’ 시재에서 TV에 등장한 선동열을 보며 세영은 회상에 젖는다. 평범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아내로, 그리고 40대 중년의 소시민이 되어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호창 역시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었고, 역사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스카우트>는 웃음 속에서 넌지시 보여주고, 넌지시 이들에게 찬가를 바친다. 영웅이 아니기에 진정한 영웅인 사람들의 모습을, <스카우트>는 너무나 훌륭히 그려내었다. 상업영화, 특히 ‘코미디영화’의 틀 안에서, <스카우트>는 자칫 무겁고 경직될 수 있는 비극을 매우 모범적인 방식으로 그려내면서도 그 비극성에 함몰되지 않는 지혜를 보여준다. 그것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스카우트>가, 김현석 감독이, 그리고 임창정과 엄지원이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럽다.


영진공 노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