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업도, “개발의 망령들에게 팔려나가는 우리의 보물”

 
 

서해의 많은 섬들 중 굴업도라는 섬이 있다. 5년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왔는데 굴업도 사진을 보고 나는 작은 환호성을 질렀다. 남태평양의 조용한 섬에서 해변에 널브러져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술도 마시고 수영도 하는 유유자적한 휴가를 꿈꾸었는데 이 섬이라면 굳이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과 대출이자를 걱정하며 남태평양까지 날아가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쉽게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국적인 느낌의 굴업도 전경


돈이 궁했던 시절이라서 더 그런지 그해 여름은 참으로 더웠다. 에어컨도 없는 단칸방에서 속옷만 입은채 마감과 싸우며 7월 한 달을 그림만 그렸다. 간신히 정신줄을 놓기 직전 마감을 끝내고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배낭에 텐트하나 질끈 묶고서 꿈에 그리던 굴업도로 홀로 떠났다.




굴업도는 꽤 멀리 떨어진 섬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덕적도까지 쾌속정으로 40분의 뱃길을 간 뒤 다시 덕적도에서 배를 갈아타고서 40분 가량을 더 가야한다. 게다가 이 배는 하루에 3,4번 밖에 다니질 않는다. 이렇게 긴 여정 탓에 굴업도를 찾는 이는 많지 않다. 물론 지금은 긴 여정에도 불구하고 좋다는 입소문이 나서 예전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아침에 인천에서 출발하여 정오가 한참 지나서야 간신히 굴업도에 도착하니 이미 살갗은 오는 동안에 벌겋게 타서 익어 있었다. 하지만 섬에 첫 발을 내딛자 직사광선으로 타들어가는 피부의 통증 따위는 지구권 밖으로 날아가버렸다. 미지의 대륙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나는 기쁨과 설레임으로 가득 차 올랐다. 백사장과 갯벌, 모래언덕과 깊은 숲까지 모든걸 갖추고 있는 굴업도는 그야말로 지상 낙원이었다. 무엇보다 붐비지 않은 해변은 지친 육신을 달래고 영혼을 살찌우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굴업도에 머무는 기간 동안 서해는 그 해 여름 가장더운 34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썰물로 물이 빠진 백사장은 열기로 인해 수증기가 피어올라 그야말로 지옥의 한증막으로 변해버렸다. 큰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썰물때면 그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한증막 같은 백사장을 한참 걸어간 후에야  지친 육신을 간신히 바다에 뉘일 수 있었다. 불지옥과 같은 백사장에서 영혼까지 말라붙을 뻔 하였던 나의 첫 섬 여행이자 굴업도 여행은 그렇듯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 주었다. 난 그 뜨거운(?) 추억을 잊지못해 다음해에도 친구들과 굴업도를 찾았다.
 


당시 찍어왔던 사진들



나의, 내 친구들의 그리고 굴업도를 찾았던 많은 이들의 추억이 서려있는 굴업도에 지금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개발의 망령들이 굴업도를 비롯한 서해안의 작은 섬들에까지 마수를 뻗치기 시작한 것이다.


 


대기업에 통째로 팔려 ‘개발 삽’ 곶힌다.

돈을 위해 흙을 파헤치고 물길을 막고 나무를 베어 넘긴다. 어떻게든 사람들의 지갑에서 돈을 빼내기 위해 혈안이다. 강이 말라 없어져도 남극빙하가 녹아도 개구리가 멸종되도 당장 내 주머니에 돈을 채우는게 우선이다. 아마 그런 추악한 욕망 속에는 편한 삶을 물려주려는 자식을 향한 애뜻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지구’가 아닌 ‘돈’을 물려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죽어버린 지구에서 그 돈으로 무엇을 누리며 살기를 바라는 것일까?

 


영진공 self_fish

p.s 다행히도 많은 환경단체와 시민들의 힘으로 굴업도 공사를 저지하고 있고 그 결실이 조금씩 맺어지는 것 같다.

굴업도 골프장 ‘환경평가’ 깐깐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