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왜 양다리를 걸치려 하는가?

구글 안드로이드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구세주처럼 반겼다. 대형 휴대폰 업체들은 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 MP4/PMP 등의 모바일 디바이스를 만들며 윈도우 CE에 묶여 있던 중소 기업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안드로이드는 1) 공짜고 2) 구글이란 브랜드를 등에 업었고 3) 많은 개발자들이 익숙한 JAVA 개발환경으로 어플리케이션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1)번과 2)번만으로도 안드로이드를 선택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윈도우 CE는 골동품 구닥다리나 다름없는 주제에 더럽게 비쌌고, 윈도우 모바일은 그보다 아주 약간 나은 주제에 터무니없이 비쌌으니까.
그리고 안드로이드에 기반한 제품을 내놓겠다는 발표가 경쟁적으로 이어졌다. 거의 대부분은 휴대폰이었지만, 개중에는 타블렛도 있었고, MP4나 PMP도 있었고, 극히 드물게 넷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궁극적으로 안드로이드 OS는 넷북 시장으로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헌데 왠걸, 구글에선 크롬 OS라는 넷북 전용 OS를 따로 발표했다. 더군다나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OS하곤 한참 거리가 먼, 웹 OS였다!
도대체 이거 무슨 일이야? 구글, 이 놈들 대체 무슨 꿍꿍이지?
구글에선 안드로이드를 아파치 라이센스로 공개하고 있다. 원하는 사람이나 회사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소스를 뜯어고칠 수 있다. 하지만 소스를 공개할 의무는 전혀 없다!

그런 이유로, 처음 안드로이드가 발표됐을 당시 몇몇 사람들은 구글의 수입 전략이 어디 있는지를 궁금해 했다. 사실 당장 생각할 수 있는 돈벌이 방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1) 직접 안드로이드 디바이스를 제작, 판매한다.
2) 충분히 저변이 확대됐을 때 안드로이드 자체를 유료화한다.
3) 구글 서비스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모바일 광고로 돈을 번다.

1)
번은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실제로 이번에 HTC에서 만든 넥서스 원이라는 안드로이드 폰은 구글에서 직접 판매할 예정이란 루머가
파다하다. 하지만 하드웨어 장사는 인터넷 서비스 장사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장사다. 성공하면 높은 수익이 보장되지만 실패하면
엄청난 손해를 보는 장사다.

2)번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다. 구글 입장에서도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다. 이런 짓을 했다가는 안드로이드를 선택한
업체나 개발자들에게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힐 테니까. 하지만 수중에 돈이 떨어지는 신호가 울리면 언제든 이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돈이 없으면 누구나 사악해지는 법이니까(no money, be evil).

마지막으로 3)번, 이게 구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돈벌이 방식이다. 문제는 이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모바일에서 이용할만한
구글 서비스가 뭐가 있을까? 검색? 지메일? 다 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 아이폰을 써 보면 알겠지만, 모바일 환경에선
그런 서비스를 이용할 일이 많지 않다. 날씨 위젯 아니면 게임 같은 독립 애플리케이션을 주로 쓰게 된다. 게다가 휴대폰 화면엔
광고를 노출시킬 공간조차 부족하다.또한 안드로이드는 완전히 오픈된 환경이다. 구글 앱을 죄다 들어내고 MS BING을 기본 검색 엔진으로 집어넣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아마도 이런 이유들로 인해 구글은 넷북 OS 전략을 완전히 새로 세운 게 아닐까 싶다.
2인치에서 4인치 정도 스크린의 한계를 가진 모바일 기기와는 달리, 9인치 이상의 스크린을 가진 넷북에선 웹브라우징에 제약이 거의
없다. 광고를 노출시킬 공간도 충분하다. 게다가 웹 서비스에서 구글과 경쟁할만한 업체는 그리 많지 않다 … (고 생각할
것이다 …)


흠,
좋았어. 그럼 아예 웹브라우저만 실행되게 하자고. 엄청나게 빠르고 멋진 웹브라우저를 넣고 구글 서비스 북마크만 넣는 거야.
이러면 인텔 CPU를 쓸 필요도 없잖아? ARM CPU를 쓰고, 다른 거추장스러운 것들도 죄다 없애 버리면 가격을 지금 넷북의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지. 어때? 괜찮지? 불티나게 팔릴 거 같지? 그리고 이걸 산 사람들은 다들 구글  검색과 구글 닥스와
구글 지메일을 쓰면서 하악하악, 항가항가 할 거란 말이지! 어쩌면 붕가붕가까지 할 지도 몰라!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안드로이드와 크롬의 최대 문제점은 이게 완전히 개방된 환경이라는 거다. 개방? 그거 좋은 거잖아? 무협지에서도 개방은 항상 정의로운 조직이었단 말이지 … 아, 그거하곤 좀 다른가? 아무튼 개방이 최고야!

하지만 개방이 곧 개혁은 아니다. 성공을 보장하는 열쇠도 아니다.

구글은 내부적으로 몇 가지 하드웨어 기준을 정해 놓고, 그 스펙에 부합되는 기기만 구글 앱스토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럼 스펙에서 벗어나는 기기는 꽝 되는 거 아냐?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요. 현재 구글에선 제조업체나 통신사들이 독자 앱스토어를 운영하는 걸 굳이 막지 않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해당 기기를 지원하는 독자적인 앱스토어를 만들어서 운영하면 되죠!

오, 그거 좋네! 잠깐만…… 근데 뭔가 좀 이상한데. 그거 정말 좋은 거 맞아? (긁적)

실제로 국내 통신사들은 전용 안드로이드 폰과 전용 앱스토어를 동시에 런칭할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아마 조만간에 ‘한국형’
안드로이드 폰과 ‘한국형’ 앱스토어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한국에서만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즉, 오만 가지 사양과 터무니없이 다양한 판매 경로 때문에 허우적대야 했던 윈도우 모바일 개발자들의 악몽이 안드로이드에서 재현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크롬 OS는 BSD 라이센스로 개방된 OS다. 아파치 라이센스와 마찬가지로 소스를 뜯어고쳐도 되고, 고친 소스를 공개할 의무 따윈 전혀 없다.요컨대 웹 서비스를 죄다 다른 걸로 바꿔치기해서 얹어도 되는 것이다. 뭐? 감히 구글을 대신할만한 웹 서비스가 있냐고?

있다. 그거도 많이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네이버와 다음이 있지 않은가.

이를테면 네이버에서 새로운 전략 디바이스를 만들 수도 있다. 크롬 OS를 좀 조물딱거려서 기본 검색 엔진으로 네이버를 넣고, 기본
웹 메일로 역시 네이버를 넣고, 기본 블로그로 또 네이버를 넣고, 기본 오피스로 네이버 웹 오피스를 개발해 넣는 것이다. 그리고
ARM CPU를 사용해 제품 가격을 30만원 안쪽에 맞추고, [네이버 넷북]이란 이름으로 팔면 어떨까? 흠, 적어도 국내에선
구글 넷북보단 이쪽이 더 잘 먹히겠는데?


이렇게 되면 모바일 서비스를 장악해 모바일 광고 시장까지 한 손에 틀어쥐겠다는 구글의 전략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IBM이 PC 아키텍쳐를 공개했다가 시장 지배력을 잃어버린 전철을 똑 같이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드로이드와 크롬 OS를 보면서 구글과 같은 꿈을 꾸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른 꿈을 꾸는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구글의
본의가 무엇인건간에, 그 의도대로 시장이 움직일 것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미래는 끊임없이 변하는 법이기에.

분명한 사실은, 안드로이드와 크롬 OS의 갈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는 것이다. 윈도우 모바일이 살기 좋은 시궁창이고 아이폰이
평범한 천국이라면, 안드로이드는 이제 겨우 노숙자 수용소 정도의 단계로 올라선 데 불과하니까. 그리고 크롬 OS는 …
글쎄, 뚜껑도 덮지 않은 하수구라고 해야 되려나?

영진공 DJ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