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FF]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2) – 부산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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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하면 주로 먹을거리로 생각하는 것이 바닷가 근처다 보니 회나 해산물일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서울이나 그 외 타지방에서 먹는 해산물보다 훨씬 싱싱한 것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만 저처럼 해산물을 싫어하는 사람 – 물론 회라면 꺼벅 죽습니다만 – 은 먹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요.

동래파전도 해물 한가득, 그나마 밀면은 덜하려나요? 그러나 밀면은 맛있게 하는 집이 아니면 참 곤욕스럽기도 합니다. 밀가루 면이다 보니 까칠하죠.

PIFF 에서 영화와 야외 행사를 쫓아다니다 보면 맛집을 찾아다니긴 더욱 어렵습니다. 시간 맞춰 무엇을 먹기도 힘들거니와 유명 맛집의 경우엔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영화 예매 시간을 가볍게 넘기기 일쑤니까요.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부산의 밤’은 언제나 PIFF의 뜨거운 열기로 활발합니다. 그러나 당장 해운대 앞 재래시장의 경우엔 밤 10시면 상당수의 가게가 문을 닫아겁니다. 기나긴 영화제의 밤에 먹을거리가 빠지면 아쉬움도 일지요.

그래서 소개합니다. 오후 4시부터 새벽 5~6시까지 영업을 하는 ‘석쇠 화로구이 전문점’!


가마솥이 이 위치에 생긴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으로 옮기기 전부터 장장 20년 동안 부산에서 ‘석쇠구이’를 취급해 온 곳이지요. 가게 주인이 직접 고기를 골라서 사 오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데다가 양념에 버무린 갈비 맛은 정말 웬만한 갈빗집에서 맛볼 수 없는 부드러움과 달콤함까지도 묻어납니다.


가격도 멋집니다. 돼지갈비 맛이 일품이지요.


함께 나오는 밑반찬들 또한 맛에 넘칩니다. 물김치도 한 대접이 나오고 도라지 무침도 나와서 함께 구워 먹는 맛 또한 최고입지요. 간장게장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공깃밥을 시킬 때 함께 나오는 된장국 또한 커다란 뚝배기에 나오며 된장국뿐만 아니라 시래깃국도 나옵니다. 시래깃국만 있어도 밥 한 공기 뚝딱 입니다.


더군다나 식후에 건네 주는 이 커피 한 잔! 아 멜라민 걱정되는 크림 없습니다! 달착지근 투명한 설탕커피! 거기에 얼음 동동 이면 매운 마늘에 얼얼한 혓바닥도 금세 사르르 녹는다는!!!



이리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위치가 대로변이 아님에도 역시 소문만 듣고 찾아온 유명인사들이 대거 있습니다. 특이하게 사인을 받아서 붙여두는 게 아니라 아예 선팅지에 커다랗게 사인을 해두었더군요.

PIFF에 오셔서 해운대 근처의 해산물 먹을거리에 지치신 분들. 이곳 한 번 찾아보세요. 굳이 PIFF 기간 아니더라도 부산에서 맛난 고기를 찾으신다면 들러볼 만 합니다.


걸어서 가기에 조금 빠듯하다고 느끼신다면 해운대 PIFF 빌리지에서 택시를 타셔도 2,500원이면 충분히 다다를 거리입니다.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아 정말 오늘은 배부른 밤입니다.


영진공 함장

모터사이클 다이러리 – PIFF(부산국제영화제) 가는 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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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PIFF에 Press ID를 얻게 되어 부산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뭐 계획한 것도 없거니와 Press ID로 얻을 수 있는 표는 결국 ‘복불복’이기 때문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보다 부산 유람이나 하자는 요량으로 자가용(?)을 끌고 내려갈 생각을 했지요.


장장 500km에 이르는 머나먼 길이라 센터에 들러 타이어 공기압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점검을 하고 출발을 합니다. 뒤에 실린 짐에는 노트북과 몇 가지 옷만 넣었지요.


출발 전 셀카질을 합니다. 저 얼굴이 얼마나 초췌해질지 비교용이지요.

이것저것 챙겨 준 화전오토바이 조경식 기사님 감사합니다. (경식아 네 애인보다 더 적게 사랑해줄껭 ㅋㅋ) 먼 거리 간다고 킥 스텝을 조절하느라 삽질해 주어서 얼마나 미안한지 ㅡ.ㅡ

화전 항공대 앞에서 12시 30분에 출발하여 연대 앞 -> 광화문 -> 동대문을 거쳐 천호대로를 타고 잠실로 빠져나와 3번 국도에 올랐습니다.

성남으로 빠져서 장호원까지 쭉 이어지는 3번 국도는 평일 낮이라 그런지 그리 막히지 않았습니다. 들판에 벼는 추석 때 비해 훨씬 노랗게 익었고 시원한 가을 바람과 따사로운 가을볕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 따로 없게 만들지요.



가는 동안 시간마다 휴게소에 들러 커피도 마시고 허리도 펴주고 팔과 손도 주물러 주고 그렇게 잘 내려갔습니다.

충주에서 25번 국도로 갈아타고 수안보를 향했습니다. 수안보를 지나 문경새재는 이륜차로는 처음 지나갔습니다만 역시 이화령 고개를 넘는 게 아니라 터널을 빠져나가다 보니 딱히 코너 도는 재미는 없었지요. 어쨌거나 경상도 땅에 넘어오면서 이제 금방 ‘대구’에 다다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대구까지 76km 정도 남은 상황.

출발지로부터 240km 부근에서 그만 출력이 떨어졌습니다. 쓰로틀 – 자동차로 치면 액셀 – 을 최대한 열고 달리고 있었음에도 시속이 계속 떨어져 갔습니다. 이런 상황은 보통 연료가 완전 Empty 상태가 되면 나타납니다. 제 스포츠 바이크의 경우 보조 연료를 위한 통이 없어서 이 상태가 되면 방법이 없지요. 그러나 계기판에 분명히 연료 게이지는 ‘한 칸’ 남은 상태로 나와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료 게이지가 Empty가 되어도 연료는 3.5L 남기 때문에 최소 100km는 더 갈 수 있거든요!

어쨌든. 곧 시동이 꺼졌습니다. 클러치를 쥔 채 달려오던 관성을 이용해 옆으로 빠져 갓길에 세웠습니다.

막막하죠.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잘 정비된 국도….. 에서 이런 상황이! 어디에 정비소가 있단 말인가!!!

시동을 걸려 열쇠를 돌리니 ‘따르르르르르륵’ 소리가 납니다. 우왕 이를 어째!


배터리 문제인가 싶어 열어봤는데 배터리 나사는 괜찮고….. 여기 저기 둘러보니 역시 연료 펌프가 주입되는 연료가 없으니 ‘따르르르르르륵’ 소리를 냅니다… 밥달라는 소리 ㅠㅠ

연료가 충분히 있으니까 배터리와 연료 펌프 사이 배전에 문제가 생겼으리라 생각했는데 연료 게이지 부레가 고장이 난 것으로 판단. – 아무래도 이전 급유해 준 데서 꽉꽉 채워 안 넣어준 것으로 생각되어용. 그 주유소 가지 말아야지 –

한 10분 정도 연료가 조금이라도 고이길 기다렸다가 다시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리곤 이륜자동차의 최대 장점인 최고속으로 달려 놓고 ‘시동 끄고 클러치 잡고 관성으로 주행 신공’을 펼쳤지요. 일반 공도에선 위험천만이지만 다행히 1km 안에 주유소가 있다는 것을 지나가던 아저씨가 가르쳐 주셔서 과감히 결행했습죠.

100km/h 까지 올려 놓고 클러치를 쥐고 시동을 껐습니다. 이륜자동차는 시동이 꺼져도 브레이크가 작동합니다. 국도에서 내려 마을로 꺾어 들면서 정확히 주유소까지 도착하는 ‘기적적인 행운’이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제 신용카드 할인이 안 되는 타 정유사 주유소 ㅠㅠ

아 그래도 역시 난 운도 좋아.


연료 때문에 시간을 허비해서 원래 계획인 ’17시 대구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퇴근 시간대인 18시에 대구에 진입하게 되었지요.

대구 시가지는 8년 만에 들어갔습니다. 생도 때 외박 나오면 마산까지 나와서 구마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에 들어와 다시 안동까지 가는 고속버스로 갈아타고 또 안동에서 영주까지 가는 고속버스를 갈아타면서 고향에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군요.

그에 비하면 모터싸이클로 부산 가는 건 정말 식은 죽 먹기죠.

어쨌든 퇴근길의 혼란인 대구 중심부를 관통해야 했습니다. 대구 약령시를 지나 경산 경계까지 오고 나서야 한 시름 놓고 편의점에 들러 쉴 수 있었지요. 그때 벌써 위 사진처럼 해가 뉘엿뉘엿 지더군요….. 아직 경산도 못 들어갔는데!!!! orz

25번 국도를 타고 계속 내려갔습니다. 이윽고 어둠이 내리고 소싸움의 고장인 청도를 지나 영화 ‘밀양’의 배경인 ‘밀양’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아 정말 올라가는 길엔 ‘밀양’을 낮에 와보고 싶어요. 도무지 어두워서 어디가 어딘지 ㅡ.ㅡ 고갯길도 캄캄해서 꼭 늑대라도 나올 분위기!

해도 지고 배도 고프고 하던 차에 눈에 띄는 간판!


찐빵 보다는 ‘만두’!!!! 넵, 저는 만두 킬러입니다.

만두집에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누님의 경상도 사투리의 정겨움이란 캬~

서울에서 왔다니까 바로 ‘해운대 가시나봐요?’하면서 알아채시는 센스!

정말 맛나게 먹어치우고 나왔습니다.

배도 든든하겠다. 밀양은 부산에서 지척 거리!

25 번 국도를 계속 타고 가게 되면 ‘창원’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 25번을 이어나가면 ‘마산’으로 넘어가고, ‘진해’를 거쳐 ‘부산’으로 접어듭니다. 그런데 전 14번 국도를 선택해 김해 쪽으로 시도했습니다. 창원-마산-진해 (보통 ‘창마진’으로 불리는 연계 도시) 라인은 과거에 많이 간 길이라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했지요.

그러나 이게 웬일? 14번 국도 접어들자마자 눈에 확 띄는 이정표가 나옵니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가 2.8km랍니다.

우왓! 밤 8시 반인데도 이런 기회를 놓칠세라 바로 꺾어 듭니다. 전 도로변에서 그렇게 가까울지 몰랐거든요. 매번 ‘봉하마을’ 사진을 보면 완전 시골로 보여서 어디 산속 깊숙이 있는 마을인 줄 알았습니다.

꺾어 들어보니 2km에 달하는 구간이 전부 ‘공단’입니다. 공단을 벗어나자 작은 마을이 하나 시작되더이다.

우와 완전히 속았다니까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 온다는데 주차장 규모 – 물론 가장 먼저 보이는 주차장만 들렸지만 – 는 기껏해야 승용차 30대 정도 주차하는 공간이고 주차장 옆에는 봉하마을회관이 있더군요. 밤에도 ‘아이들’ 목소리가 회관 안에서 두런두런 새어 나올 정도로 조용한 마을이었습니다.


주차장에서 고작 150m밖에 안 됩니다. 호화 저택은커녕 그냥 조금 큰 양옥집이더이다. 야간인데다가 입구에 공사 중이라 의경이 경비를 서고 있더군요. 묻는 말에 친절히 웃으며 답해 주는 의경에게 수고하라고 전하고 내려와 주차장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습니다.

언론에 비치는 노무현 대통령 생가는 늘 잔칫집일 것 같은 데 이건 뭐 제 어릴 적 산골 외가보다 더 조용합니다. 딱 고향에서 야간에 교외 공설운동장 같은 시설의 자판기 커피 마시러 드라이브 나올 것 같은 그런 주차장 풍경에 왠지 친근함이 느껴지더군요.

다시 헬멧을 쓰고 부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14번 국도는 부산 찾으시는 분께 아직 권하고 싶지 않더군요. 부산까지 완전히 이어지지 않아서 북부산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김해에서 꺾어져 들어가더라도 계속 고가도로 아래로 달리면서 그리 좋지 않은 노면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어쨌거나 ‘서면사거리’ 이정표를 계속 쫓아 서거나 가거나를 반복하면서 눈요기를 즐겼습니다. 광안대교를 야간에 꼭 보고야 말겠다는 신념도 잠시. 생도 때 외출할 때마다 나와 놀던 서면에 들어서니까 만사가 다 귀찮더군요. 그리고 그제야 ‘부산에 도착했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면에서 해운대로 넘어와서 요트경기장 앞을 지나자 ‘PIFF’ 관련 깃발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현재 부산에서 ‘비엔날레’를 포함해 국제 행사가 3가지가 열리고 있기 때문에 무척이나 분주해 보입니다. 밤 11시였는데 말이죠.


해운대 모텔이 모여 있는 곳으로 접어들어 몇 군데 들러봤습니다. 2인 일반실 비용이 6만 원에 1인 증원할 때마다 1만 원 추가더군요. 더 재미난 건 아예 간판에 ‘25,000원’ 적어둔 집이 그럽니다.

더 재미난 건 연휴기간이자 PIFF 개막일, 황금 주말은 이미 ‘예약’이 다 된 상태이며 2인 일반실이 10만 원이랍니다.

이건 바가지도 이런 바가지가 없어요. 이건 시장 논리도 아니고 수요 공급 이론 문제가 아니라 분명히 ‘바가지’죠.

부산시는 뭐 하는 건지. 혀를 찰 수밖에 없네요.

일단 몸이 너무 피곤해서 자고 일어나고 나서 내일부터는 송정이나 좀 더 멀리 나가서 방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어쨌거나 무려 삽질한 1시간을 제외하더라고 장장 8시간이 걸려 도착했습니다. 7시간 예상했는데 노무현 대통령 생가에다가 사진 기록 남기느라 자주 쉬어 줬더니 1시간이 늘어났네요.

이 정도 모터사이클 체력이면 일본 스즈카 8시간 내구 레이스 출전해도 되지 않을까요? ㅋㅋ

그럼 내일부터 아니군요 벌써 오늘이군요. 사흘간 PIFF에 빠져보도록 합지요.

영진공 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