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울프>, “디지털 실사보다 더 감탄스러운 건 …”

내용보단 볼거리를 추구하는 영화를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300’에 대해서 관객의 평가가 극과 극인 건 나같은 사람도 여럿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오울프를 본 건 순전히 미녀가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도 메가박스의 3-D 상영이 종영되었기에 일말의 기대도 없이 영화를 봤다.

하지만 이건 내용보단 볼거리를 추구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CG가 워낙 강렬해서 그렇지 스토리도 나름 짜임새 있었고
세대를 이어가며 대물림되는 저주라는 발상도 마음에 들었다.
어떤 이는 ‘안젤리나 졸리가 겨우 5분 나온다’며 별 하나를 줬고
네이버의 평점도 6점대에 불과하던데,
내가 원했던 건 영화 속에서 대충 다 구현이 되어 있어 다행이었다.
‘폴라 익스프레스’에서 혹평을 받았던 CG는 거의 사람에 가까워졌는데,
그냥 사람을 쓸 것이지, 왜 배우들이 연기한 걸 다시 디지털로 재현하는,
어려운 말로  ‘퍼포먼스 캡쳐’를 했는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공부를 조금 해보니 이 방식의 장점은 여럿 있었다.
일단 잔혹한 장면이 나오더라도 CG니까 관객에게 그다지 징그럽게 다가오지 않으며
전라가 나오더라도 야한 느낌보단 신기하단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눈을 찌르는 등의 잔인한 장면이 나옴에도 미국에서 이 영화가
15세 등급을 받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단다.
혹자는 ‘베오울프’를 ‘영화의 미래’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가본데,
기발하긴 해도 대단하단 생각은 하지 않았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이렇게 대단한 야심가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미래의 영화가 다 이런 식으로 바뀐다면,
실제 배우들의 연기를 더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에겐 좀 서운한 일이 되겠지만 말이다.

디지털 실사보다 더 감탄했던 건 베오울프의 성기 가리기였다.
이 베오울프란 자는 뻑하면 전라 장면을 연출하는데,
괴물과 싸우던 날에는 자기만 갑옷을 입으면 괴물한테 미안하다고 전라로 잠을 청한다.
아니 갑옷 대신 나이트 가운이라도 입을 것이지 왜 그런 희한한 일을 할까?
전라로 달려 본 사람은 알겠지만, 막상 다 벗고 싸우려면 거기가 덜렁거려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닌데.

필경 그건 미모가 좀 되는 왕비한테 그것의 크기를 과시하기 위함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크기를 가지고 으시대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의 크기를 키워주겠다는 메일이 나한테도 아주 많이 온다.
말이 잠깐 딴데로 샜는데
하여간 베오울프가 전라로 마루에 누울 때는 오른쪽 다리를 살짝 구부려 성기노출을 피하고
누운 뒤에는 다른 병사의 머리가 화면 중앙에 위치해 절묘하게 성기를 가린다.
천장에 올라갈 때는 샹들리에에 가려서 안보이고, 나무 틀에 가리고…
어쩜 그렇게 절묘하고 자연스럽게 성기를 가리는지,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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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스포일러.
베오울프가 죽여야 했던 괴물은 이전 왕의 업보인데
베오울프 역시 이전 왕이 저지른 죄를 답습해 또다른 괴물을 만든다.
이렇게 세대를 이어가며 왕들이 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단 하나,
안젤리나 졸리의 미모가 워낙 탁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졸리는 단 5분만 나왔어도 극 전체의 주인공인 듯 강한 카리스마를 남기는데
스토아 학파에 속하는 편인 나도 졸리의 유혹을 받는다면 눈을 딱 감아버릴 것 같다.
그 역에 졸리 대신 다른 여배우를 썼다면, 스토리의 치밀성에 큰 구멍이 뚫렸으리라.
다른 여배우는 대체 배우가 있지만, 세상에서 졸리는 하나 뿐이니까.
들켜 버렸다. 내가 졸리 빠라는 사실을.


영진공 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