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殺サ-クル (자살클럽)> <영진공 68호>

과거사진상규명위
2007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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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소노 시온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5382 

http://imdb.com/title/tt0312843/ 

이 영화를 볼까말까, 심각하게는 아니지만, 몇년을 망설였습니다. 살점이 날라다니고 피가 튀기는 영화 같은 걸 즐길만한 기력이 이젠 없어졌지만, 고어 이상의 완성도를 갖춘 영화라는 평도 꾸준히 접해왔거든요. 싼 가격에 충실한 내용 때문에 제가 매주 사다보고 있는 < Film 2.0 >에서 소노 시온의 ‘자살 3부작’의 두번째 영화 <노리코의 식탁>이 개봉한다는 소식과 함께 ‘우리 시대 가장 날카롭고 파괴적인 거장’같은 소리를 해대는 바람에, ‘역시 뭔가 있는거야’ 싶어서 결국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소노 시온의 영화는 이게 처음이 아니에요. 얼마전에 모니터에다 뭔가를 확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며 <기묘한 서커스>를 봤었거든요. 역시 전 근친상간, 신체손상, 섹스중독, 새디즘 같은 악질적인 소재만 잔뜩 나열한 얼치기 예술영화에 열광할만큼 속물이거나 심각한 평자는 못되더군요. <기묘한 서커스>에서 가장 거슬리는 혹은 그나마 볼만한 장면은 여성의 노출씬이나 섹스씬 등 여성의 性에 대한 착취였습니다. 감독의 의도야 어떻든 그런 장면들은 그저 선정주의로밖엔 비춰지지 않더군요.

<자살클럽>의 첫장면은 소문대로 굉장했습니다. 54명의 고등학생들이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집단자살하는 장면말입니다. 바퀴에 짓눌려 터지는 머리, 날아다니는 팔다리, 쏟아지는 피, 비명,… 이후 계속되는 고어씬-대패로 피부 벗기기, 그렇게 벗겨낸 수백명분의 피부로 줄만들기, 오븐에 머리 넣기, 요리칼로 손가락 자르기 등등-도 이 방면의 매니아들은 환호를 할만한 꽤 근사한 장면들이었어요.

하지만, 굳이 그렇게 자극적인 장면이 필요했던 걸까요? 이건 이 영화의 선정주의와도 관련된 물음인데, <기묘한 서커스>와 마찬가지로 <자살클럽>도 여성의 신체에 대한 대상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직접적인 강간씬도 등장하고, 대패로 피부를 벗겨지기 위해 상반신을 드러내는 것도 전부 여성이지요. 무엇보다 자살자 중 상당부분이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자살은 그다지 큰 비중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어요. 가령 첫장면의 54명 집단자살자 중엔, 제가 영화를 잘못 이해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남자도 섞여있지 않던가요?

선정주의의 혐의가 가장 짙은 건, 후반부로 갈수록 플롯이 엉망진창이라 정확한 해석은 힘들지만,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아이돌 그룹과 일단의 ‘아이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결말입니다. 무슨 악령의 저주가 씌인 것도 아니고, 초딩들이 저런 일을 한다는 게 말이 되냐구요.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거나 의외의 결말을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이 결국 ‘범인은 아이들이었다’같은, 찌라시 헤드라인 같은 충격요법에 의지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이 방면의 걸작인 쿠로사와 키요시의 <큐어>와 비교해봐도 이 영화의 선정주의가 얼마나 설득력이 없나 쉽게 드러납니다. <큐어>에선 부검을 위해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난도질당한 시체 정도는 등장하지만 <자살클럽>처럼 심각한 고어씬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백주대낮에 뜬금없이 저질러지는 살인장면은 이 영화의 노골적인 고어잔치에 비하면 우아해 보이기까지 하구요. 또한 존재의 심층을 건드리는 질문을 통해 선량한 사람들이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다는 <큐어>의 설정은 최면술과 오컬트적 분위기로 나름의 개연성을 확보합니다. 아무리 자살이 미화되는 해괴한 전통을 가진 나라라 하더라도, 수십명 수백명이 떼거지로 자살한다는 것에 대해 뚜렷한 설명이 없다는 게 말이 될까요? 가령 장난으로 자살을 흉내내던 고등학생들이 실제로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할만큼 정신나간 나라인가요, 일본은? 과장과 극단을 보여주는 것이 예술가의 방법론인지는 몰라도 저에게는 콧방퀴만 뀌게 만드는군요. 게다가 이 영화의 자살 교사자는 말이 너무 많아요.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줘”라고 말하는 <큐어>의 살인 교사자와 달리 이 영화에선 “당신과 당신의 관계는 무엇입니까?”같은 알듯말듯한 소리부터 시작해 쉴새없이 떠들어댑니다. 감독이 원래 시인 출신이라는군요.

여튼 <자살클럽>은 인상적인 고어씬 때문에 나름 즐거운 부분도 없진 않지만, 그럴듯한 주제와 평단의 지지와는 달리, 속이 빈 허망한 영화입니다. 자극과 충격이 관객을 모종의 진실로 인도할 거라는, 동의하기 힘든 방법론의 영화이구요. 이번에 개봉하는 소노 시온의 <노리코의 식탁>, 보러 가지 말아야겠습니다.

p.s.
<런던하츠>의 ‘가치매기는 여자들’ 코너에 가끔 나오는 사토 타마오가 조역으로 등장해 깜짝 놀랐어요. TV에서 ‘뿜뿜’ 거리며 나이에 맞지 않는 귀염을 떨 땐 한대 확 쥐어박고 싶더니만, 영화속에서 보니 꽤 이쁘군요.

과거사진상규명위 발굴1팀장
꼭도(http://cocteau.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