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맨”,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외로움


 





톰 포드라는 인물 하나가 <싱글맨>이라는 영화에 관해서 참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디자이너였고 게이로서 커밍아웃을 했다는 사실만 알아도 영화의 외양과 내용 모두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얻게되는 셈이다.

<싱글맨>은 톰 포드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의 1964년 원작을 각색해서 만든 작품이지만 원작에서 조지라는 이름 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주인공에게 톰 포드 자신의 미들네임인 칼라일과 첫 연인이었던 이안 팔코너의 이름을 따라 ‘조지 칼라일 팔코너’라고 불리우게 한 것을 보면 단순한 영화 연출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던 것은 확실하다. 여기에 톰 포드는 <싱글맨>의 제작비 전액을 자비로 충당하기까지 했다.




톰 포드의 영화 데뷔작이라서 화제가 되는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비전문가의 아마추어적인 시도 쯤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여지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톰 포드라는 인물을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싱글맨>을 보는 편이 오히려 낫지 않겠냐는 생각도 든다.

영화는 그 내용과 주제에 부합하는 시청각적 스타일을 선택한 것이라 봐야 하겠지만 – 앞으로 몇 편을 더 만들런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이런 연출 스타일만을 고집하기는 어려울 듯 – <싱글맨>은 누가 패션 디자이너 출신이 만든 영화 아니랄까봐, 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남다른 미감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근사하게 그림이 나오는 몇 장면 찍어서 어설프게 넣어준 정도가 아니라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 한 순간까지, 프레임 안에 담기는 미세한 어느 한 조각이라도 놓칠세라 아주 꼼꼼한 미장셴의 연속이다.

기존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매우 낯선 독창적인 이미지나 내러티브 구조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 서투르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과, 시점을 달리하는 씨퀀스들을 교차 편집하면서 조금씩 색감을 달리함으로써 관객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는 점 또한 <싱글맨>의 외양에서 매우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톰 포드 영화의 ‘이토록 우아한 세계’가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면 그야말로 취향의 문제일 따름이니 누구를 탓할 이유는 없다.

대학 교수님치고는 지나치게 수트빨이 좋은 조지(콜린 퍼스)를 비롯해서 등장 인물들의 차림새와 살림살이가 비현실적으로 좋아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 전체가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인양 몽환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구 소련의 핵미사일이 쿠바에 배치되었다는 소식에 미국 전체가 공포의 도가니에 휩싸였던 냉전 시대의 LA라는 구체적인 시공간적인 배경을 명시하고 있는 작품이 <싱글맨>이기도 하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영화의 내용은 14년 간 완벽한 사랑의 파트너였던 짐(매튜 굿)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이후 결국 자살을 결심한 중년의 대학교수 조지의 마지막 며칠 간의 – 정확히는 아마도 단 하루 동안의 – 이야기로 핵전쟁에 관한 시대적인 공포감과는 무관하게 진행이 되는 편이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그게 또 결코 무관하지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인공의 직업이 대학교수이거나 특히 대학생인 경우 영화 속 주제와 밀접한 내용의 강의 장면이 들어가곤 하는데 <싱글맨>에 나오는 조지의 유일한 강의 장면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강의는 과제로 내주었던 올더스 헉슬리의 책으로 시작하지만 학생들과 질문과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실재하지 않는 이유, 공포감’과 그것이 ‘사회적 소수’를 괴롭히는 원인이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는 조지가 짐의 부재로 인해 겪고 있는 절망감을 설명해주는 단서가 되어준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느껴진 점은 조지가 강의에서 이야기하는 ‘공포감의 매커니즘’이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롬바인>(2002)에서 다뤄졌던 미국 사회에 대한 분석과 거의 동일한 맥락이라는 점이었는데, 만약 이 대목이 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의 원작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면 마이클 무어의 분석도 결국 어디에선가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에 불과했던 것 아니었냐는 생각을 – <볼링 포 콜롬바인>을 봤을 때 나는 진심으로 탁월한 분석이라 생각했다 –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콜롬바인 고등학교 사건을 계기로 미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공포감의 매커니즘을 그토록 알기 쉽게 설명해준 공로까지 무색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싱글맨>은 진실로 사랑했던 자인 동시에 홀로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외로움에 관한 영화다.

사회적 소수자로서 사랑했던 이의 장례식에조차 초대받지 못했던 깊은 절망감 역시 주인공의 자살 결심의 이유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지가 자살하고자 했던 이유를 아마도 본인이 강의 중에 이야기했던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감’으로 설명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느 순간 불현듯이 그 공포감에서 벗어나게 되자 조지는 자살하기로 했던 결심을 철회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인생의 아이러니는 조지가 다시 살기로 마음 먹었던 그 순간에 비로소 영원한 안식을 선물하고야 만다. 자기 삶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건 간에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애써 재촉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그외에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싱글맨>이 비전문가의 아마추어적인 시도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