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 (Last Life in the Universe, 2003), “어떤 날의 백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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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속에 살아남은 유일한 생명체인 것 처럼, 그리하여 절대적인 외로움만이 나의 존재를 설명해주는 모든 것인양 느껴지던 어떤 날의 백일몽과 같은 영화가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다. 무엇이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시종일관 모호하게만 느껴지는 이 영화는, 사실 눈에 보여지는 100%가 전부 꿈이며 환상이다. 유일한 현실이라고는 영화 초반 주인공의 짧은 독백이 전부다. 영화 시작부터 주인공은 이미 목 매달아 죽은 상태인데, 그것이 ‘3시간의 후의 내 모습’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영화는, 3시간 후 자살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이후의 전개는 모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도마뱀 같은 환상의 연속이다. 이런 방식의 전개는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일찌감치 설명이 주어지는데, ‘잠시 정신을 잃고 눈을 떠보니 다른 인생으로 태어나 살고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일이겠느냐’고 한다. 그리하여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세 번씩이나 죽음을 맞는다. 그러고도 계속 살아간다. 물론 이전과는 약간씩 다른 인생이다. 그리하여 죽음만이 유일한 안식이라 믿었던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나 나의 존재를 위로받고 또 내가 누군가를 위로해줄 수 있게 되는 달콤한 여름 날의 꿈을 끊임없이 전개시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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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것 자체가 본래 2시간의 꿈 이야기일 수 밖에 없기는 하겠지만, 이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가 한낯 팬터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대한 자의식을 이렇듯 숨김없이 드러낸다. 영화 타이틀이 영화가 한참이나 진행된 중간에 뜬금없이 보여지는 것이나, 일본 문화원 내에서 아사노 타나노부의 출연작 “이치 더 킬러”의 포스터를 걸어놓은 것, 그리고 거의 끝나가기는 하지만 아직 영화가 완전히 끝나지도 않은 마당에 공항에 앉은 여주인공이 바라보던 TV 화면 위로 엔딩 크리딧을 미리 올려 보내던 장면 따위도 모두 마찬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은 영화를 보는 동안에, 그리고 영화가 끝나자 마자 금새 알아챌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영화 속 현실과 꿈의 경계는 시종일관 모호하고, 그래서 영화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심지어는 영화 속에 들리는 대사들을 단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사노 타다노부의 존재감과 크리스토퍼 도일의 ‘끊임 없이 대화하는 듯한’ 카메라, 그리고 엠비언트 계열의 미니멀한 배경 음악들만 보고 듣는다 하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 꿈이 너무 좋아서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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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

보이지 않는 물결 (Invisible Wave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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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본 영화를 두번, 세번 다시 보는 일이 거의 없는 편이지만, 2005년도에는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와 <이터널 선샤인>을 두번씩 봤었다. (<카페 뤼미에르>도 한번 더 봤어도 좋았을 영화였지만 결국 그러지 않았다)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는 아사노 타다노부의 출연작이기 때문에 보러 간 영화였지만 펜엑 라타나루앙이라는 외우기 힘든 이름의 태국 감독의 존재를 각인시킨 영화가 되었다. 프라우다 윤의 각본이나 크리스토퍼 도일의 영상, 후알람퐁 리딤의 음악도 모두 좋았지만 기존의 영화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 영화의 새로운 감각은 분명 연출자가 창조해낸 것에 틀림이 없었고 나는 그 세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보이지 않는 물결>은 전작에 비해 훨씬 ‘보이지 않는’ 영화다. 정리해보면 비교적 명확한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는 작품이지만 영화는 드라마나 캐릭터에 집중하지 않고 일부러 엉뚱한 주변부로 헤매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분명 최종본 보다 훨씬 많은 장면들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편집 과정에서 다 들어낸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지금은 굳이 말하자면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라는 펜엑 감독의 인터뷰 정도가 유일한 힌트다. <보이지 않는 물결>에 비하면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는 엄청 친절하고 꼼꼼하고 또한 귀엽기까지 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영화 한 편 볼 때마다 매번 명확한 기승전결을 얻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정도만 아니라면, 아직 변화하는 중인 미래의 거장과 현재 시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히려 큰 만족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입증된 걸작들의 회고전 보다 개봉작을 먼저 찾게 되는 공식적인 변명이기도 하다. 박물학적 영화 감상 보다는 때로 실패하는 일이 있더라도 발견의 기쁨을 구하는 일이 내겐 더 즐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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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