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FF] 축제를 마치고 돌아오다 –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6)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경로를 좀 다르게 잡아 봤습니다. 남해 2번 국도를 따라서 진주까지 갔다가 거기서 ‘전라도’로 넘어가 서해안을 타고 올라가겠다는 계획이었지요. 구라청의 비 소식도 있었기 때문에 언제 비가 떨어질지 몰라서 오전에 출발했습니다.


일요일이라서 동기 녀석들을 보러 진해에 들렀는데 한 녀석도 없더군요 ㅡ.ㅡ 아무리 급 번개지만 이런 배신감이! ㅋㅋㅋ 그나저나 진해는 변한 게 없더군요 – _-)a 외곽 도로 새로 놓은 거 외에는 – _-)a

마산 시내는 정말 최악이에요. 가는 길마다 도로 번호 이정표가 끊어져 있어서 마산 시내 벗어나는 데만 30분 정도 쓴 것 같아요. 외박 나오면 고속버스만 타고 다니던 옛길을 더듬다 보니 저도 참 많이 늙었구나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진주 시가지를 벗어나기 직전이었습니다. 진주남강유등축제 기간이어서 시내는 시끌벅적하더군요.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올라오면서 들리는 시마다 하나씩 축제를 하고 있더군요. 아니 대체 축제를 이렇게 같은 날에 몰아서 하면 대한민국 국민들 어디 가야할지 모를 것 아닙니까?!?!


진주에서 3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가 함양에서 26번 국도로 꺾어 탔습니다. 줄기차게 산길을 올라가다보니 어느새 육십령 고개에 도달했더군요. 여기서부터 ‘전라도’ 땅입니다. 아 이 얼마나 감격입니까?!!?

육십령 고개 내려오는 길은 참으로 험하더군요. 제가 모터사이클 타면서 코너에서 발가락이 닿은 건 여기가 처음입니다. 물론 부츠를 신었으니 보호대가 긁히는 소리만 ‘다그라라락~’

오히려 봄철에 ‘전주영화제’를 하는 전주 시내는 아무런 축제 없는 듯 조용하더군요. 꼭 휴일의 지방 도시 시가지처럼 마냥 조용하고 제 고향 같은 느낌의 지방 도시라 벗어나면서 아쉬움까지 느껴지더군요.

전주에서 익산 방면으로 쭉 직진하다가 23번 국도를 타고 ‘논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때부터 고민이 됐지요.


충남으로 넘어온 김에 서해안을 타고 올라가느냐 아니면 밋밋하게 그대로 올라가느냐.

역시 모터사이클 하면 서해안의 석양을 받아가며 한 번 달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바로 또 다시 ‘축제’를 하고 있는 부여 시내를 지나 40번 국도로 갈아타고 ‘보령’까지 진행했습니다. 아쉽게도 보령 머드 축제는 여름에 하지요.

보령부터 횡성까지 서해를 벗삼아 질주한 후에 ‘아산’으로 꺾어져 들어가니 어느 새 해가 뉘엿뉘엿 져버렸습니다.


해가 지면 엄청나게 추워지기 때문에 쟈켓에 속피를 끼고 따뜻한 두유 한 잔을 위해 휴게소에 들렀지요. 역시 차가운 바람에 뜨뜻한 물이 들어가면 몸이 찌르르 떨게 되는 겁니다.

지 도 상에서 본 대로라면 아산에서 39번 국도만 타고 올라가면 제 집인 고양시까지 직선으로 올라오게 됩니다만….. 이 39번 국도가 엉망이더군요. 시흥시가지 진입한 뒤로는 마산처럼 도로 번호 표지판이 엉망으로 되어 있어서 시내 주행을 얼마나 돌아가면서 했는지 도로 관계자들 욕을 수도 없이 했을 겁니다. 뭐 어쨌든 덕분에 밤 9시 전에 집에 도착하긴 했지만요.


이번 PIFF 여행에서 모터사이클로 주행한 길입니다. 강원도 지역을 제외하고 거의 국토의 절반을 다녀온 셈이네요. 어쨌거나 피곤하고 힘든 여정이었지만 꽤 나름 즐거운 추억이 된 셈이니 기쁩니다.


PIFF에서 이 많은 감독들의 영화 중 한 편 밖에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틀 동안 분위기를 만끽했으니 좋습니다.


프레스 배지도 발급받아 프레스 센터에 앉아 노닥거리기도 하고, 우에노 주리도 실물로 만나보고,


게스트 하우스에 앉아서 공짜 커피도 마시고, 임순례 감독을 비롯, 류승완 감독 같은 좋아하는 감독들도 만나볼 수 있어 더욱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보너스 영상은 부산MBC에서 취재해 간 뉴스데스크 방송 영상. 1분 31초 쯤 제가 잠시 등장 합니다 – _-)v 목소리도 얼핏 나온다능 – _-)v

영진공 함장

‘여성 감독’이 아닌 그냥 동일한 ‘사람’일 뿐 – PIFF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5)



PIFF 빌리지 오픈카페 – 도대체 아무리 국제 행사라지만 ‘한글’로 된 장소명은 없냐능 – 에서 벌어진 ‘아주담담’ – 어차피 행사명은 한글이면서 말이죠 – 중 제 관심사와는 별개로 시간이 남는 바람에 관람하게 된 것이 <한국의 여성 감독들>이란 주제의 대담이었습니다.


오픈 카페 행사치고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 경우인데요. 아마 대부분의 PIFF 행사 관객이 ‘여성’이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5인 감독인데 이 중 임순례 감독을 제외하곤 전부 최근 ‘잇뽕’을 한 감독들입니다. – ‘잇뽕’도 이라는 일본어죠. 뭐 어차피 데뷔도 우리말 아니고. –



사실 진행자의 질문부터 시작해서 좀 뻔한 이야기였어요. 다들 ‘연출부’의 일을 겪었느니, 스크립터 일을 했을 때 경험이 도움됐다. 이런 식인데…. 이건 너무 상투적이잖아요. 도대체 대한민국 사회에서 ‘씨다’ 생활 안 하는 사람은 엄친아나 엄친딸 밖에 없지 않나요? – 물론 제 주위의 엄친아들은 다들 씨다 생활 합니다 ㅡ.ㅡ –

관객들이 그나마 궁금할 수 있던 ‘여자라서 힘든 점’을 묻는 이 뻔한 레퍼토리는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했어요. 그만큼 이 나라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힘들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사실 제가 ‘여성 감독’의 입장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아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미국 드라마 <ER>의 감독 ‘미미 레더’가 <딥 임팩트>라는 영화를 감독할 때 ‘여성 감독’과 ‘남성 감독’의 시선 차이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거든요.

당시에 <딥 임팩트>는 똑같이 혜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소재로 ‘제리 브룩하이머’ 제작,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아마겟돈>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이 되어버렸어요. 결론은 <아마겟돈>의 승리일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저는 <딥 임팩트>가 훨씬 섬세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는 감동으로 다가왔다는 점이에요.

더군다나 <딥 임팩트> 이전에, ‘미미 레더’가 감독했던 <피스 메이커>는 액션 영화의 감각 또한 ‘여성 감독의 시선’을 씌우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어요.

그런데 전 거기에서 하나 더 의문이 들었죠.

시장 논리와 비슷한 것인데, 제가 미미 레더 감독의 이런 ‘시선’을 통한 영화들에 신선한 감각을 느끼면서 즐거워할 수 있지만 과연 ‘다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선택할까라는 의문이 든다는 거죠. 심지어 여성 관객층이 엄청나다 하더라도 흥행성을 비롯하여 영화의 선택에서 이 ‘여성’ 들이 과연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할지는 모른다는 겁니다.

여성 감독의 영화라서 ‘여성 다수’가 공감한다는 건 억측이라고나 할까요? 아니면 무모한 주장? 또 다른 편견?

사실 PIFF 행사에서 ‘여성감독들’이란 주제로 아주담담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미 ‘여성의 시선’이라는 것이 하나의 독립적일 수 있는 인간의 관점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나 전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거죠.

남성 감독도 여성만큼 섬세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고, 여성 감독의 이야기가 남성들에게 충분히 공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퍼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간과하고 ‘아~ 여성 감독이라서…’ 라고 잣대를 댄 이야기를 충분히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럼 뭔가요?

장애우 감독이 등장해야만 장애우의 시각을 제대로 다룬 영화가 나오나요? 레즈비언 혹은 게이 감독의 영화가 등장해야 ‘제대로 된 시각’을 반영할까요?

또 다시.

결국 소통 이야기로 흘러가는 <은하해방전선> 같은 뻔한 이야기가 되는 거죠.

우리는 ‘남성중심의 사회’이자 군대에 갔다 온 남자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쥐면서 ‘군대의 상하 계급 문화’를 적용시킨 일종의 ‘병영국가’에 살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의 시각’이 새롭게 비치는 것은 그만큼 ‘볼 수 없었던 시선’이었기 때문이고, 그들이 ‘비주류’였기 때문이죠.

영화도 똑같은 거예요. 우리 모두 할리우드 키드이자 홍콩 키드죠. 한국 액션 영화가 60년대에 어떤 영광을 누렸든 간에 – 제 기억에도 어렴풋이 남아 있는 팔도사나이나 손가락 7개? 8개만 가지고 액션을 펼쳤던 영웅도 남아있지만 결국 영웅본색과 같은 느와르나 무협영화, 강시영화 아니면 전부 할리우드 영화니까요 – 머릿속에 그동안 보아온 영화가 그런 ‘엄청난 영화들’이었으니 여성 감독들이 뱉어내는 이야기들이 ‘신선’하다고 보이는 것은 당연한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뜬금없이 여성 감독들의 이야기가 튀어나온 것도 아니죠. 그들의 시각이 ‘신선’하다구요?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현재 대한민국의 ‘문화’관련 주 소비층은 이미 여성이 다수입니다. 20~30대의 여성층이 거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죠.

덕분에 여성 감독의 잇뽕도 늘었죠. 이뿐인가요? TV를 비롯해 드라마작가, 구성작가 다수가 여성이에요. 이 여성들이 내뱉어내는 이야기에 남성상이 그려지고 여성상이 그려지고 있어요. 보수적인 – 나쁜 의미의 보수가 아닌 – 남성들은 그런 TV 시스템에 숨막혀 갈 곳을 잃어가고 있지요.

아마 어떤 페미니스트가 보면 기가 찰 겁니다. 아니 아직도 이 사회의 양성 평등은 갈 길이 먼데 무슨 헛 소리냐고.

관객과의 질문대답 시간의 가장 마지막에 제가 물었던 질문의 요지는 딴 게 아니었어요. ‘여성 감독’이라는 주변 시각 때문에 영화감독으로써 이야기를 매만질 때 ‘자체 검열’을 하게 되는 경험이 있는지가 궁금했죠.

임순례 감독의 대답은 참으로 ‘당연하고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어요.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영화감독이라면 제작자의 압박이고 나발이고 ‘하고픈 이야기’를 해내야죠.

이건 그러니까 우리의 정체성 이야기와도 관련이 있어요.

내가 우파인데 자신 있게 우파라고 얘기 못 하는 사람들 – 좌파도 마찬가지 -.

주변 시각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믿는 바를 꺾어가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까발려 놓고 ‘그렇게 힘들게 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만드는 영화가 ‘여성 감독’의 시선으로 포장되지 않는 사회를 바라는 거예요.

사람은 ‘합리적’이려고 노력하는 동물입니다. 이때의 ‘합리’라는 것은 이익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성에 합치하려는’ 것을 말해요. 여성 감독들에게 거는 기대가 남성 중심의 시각에 얽매이지 않고 ‘합리적’인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라면 그건 억지스런 주장일 수밖에 없어요. 이미 대다수의 여성 감독을 노려야 하는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씨다’를 거쳐 입뽕을 향해 나가는 겁니다.

물론 감독들의 말마따나 ‘영화판’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 거의 없다고 믿는다손 치더라도 그들이 만들어내고 이야기 해야 하는 이 사회는 안 그렇다는 거죠. 동떨어진 이야기를 만들어낼 순 없잖아요? 그리고 임순례 감독의 그 섬세한 이야기 밀도를 보세요. 그게 ‘차별’을 안 겪은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던가요?

결국 ‘깨어 있는 사람’이 그 마음을 잃지 않고 ‘감독’이 되어야 – 아니 개인적으로 이 나라에서는 ‘제작자’가 되어야 라고 쓰고 싶습니다만 – 하겠지만. 역시나 어려운 일이죠.

그냥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여성 감독이라서 달라’가 아니라 사회의 차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감독. 그 감독의 성별이 여성이 되었든 남성이 되었든 결국엔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우리가 ‘여성 감독의 영화’로 분류하면 할수록 그건 ‘우리 이야기’로 100% 동화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영진공 함장

[PIFF]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2) – 부산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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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하면 주로 먹을거리로 생각하는 것이 바닷가 근처다 보니 회나 해산물일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서울이나 그 외 타지방에서 먹는 해산물보다 훨씬 싱싱한 것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만 저처럼 해산물을 싫어하는 사람 – 물론 회라면 꺼벅 죽습니다만 – 은 먹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요.

동래파전도 해물 한가득, 그나마 밀면은 덜하려나요? 그러나 밀면은 맛있게 하는 집이 아니면 참 곤욕스럽기도 합니다. 밀가루 면이다 보니 까칠하죠.

PIFF 에서 영화와 야외 행사를 쫓아다니다 보면 맛집을 찾아다니긴 더욱 어렵습니다. 시간 맞춰 무엇을 먹기도 힘들거니와 유명 맛집의 경우엔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영화 예매 시간을 가볍게 넘기기 일쑤니까요.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부산의 밤’은 언제나 PIFF의 뜨거운 열기로 활발합니다. 그러나 당장 해운대 앞 재래시장의 경우엔 밤 10시면 상당수의 가게가 문을 닫아겁니다. 기나긴 영화제의 밤에 먹을거리가 빠지면 아쉬움도 일지요.

그래서 소개합니다. 오후 4시부터 새벽 5~6시까지 영업을 하는 ‘석쇠 화로구이 전문점’!


가마솥이 이 위치에 생긴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으로 옮기기 전부터 장장 20년 동안 부산에서 ‘석쇠구이’를 취급해 온 곳이지요. 가게 주인이 직접 고기를 골라서 사 오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데다가 양념에 버무린 갈비 맛은 정말 웬만한 갈빗집에서 맛볼 수 없는 부드러움과 달콤함까지도 묻어납니다.


가격도 멋집니다. 돼지갈비 맛이 일품이지요.


함께 나오는 밑반찬들 또한 맛에 넘칩니다. 물김치도 한 대접이 나오고 도라지 무침도 나와서 함께 구워 먹는 맛 또한 최고입지요. 간장게장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공깃밥을 시킬 때 함께 나오는 된장국 또한 커다란 뚝배기에 나오며 된장국뿐만 아니라 시래깃국도 나옵니다. 시래깃국만 있어도 밥 한 공기 뚝딱 입니다.


더군다나 식후에 건네 주는 이 커피 한 잔! 아 멜라민 걱정되는 크림 없습니다! 달착지근 투명한 설탕커피! 거기에 얼음 동동 이면 매운 마늘에 얼얼한 혓바닥도 금세 사르르 녹는다는!!!



이리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위치가 대로변이 아님에도 역시 소문만 듣고 찾아온 유명인사들이 대거 있습니다. 특이하게 사인을 받아서 붙여두는 게 아니라 아예 선팅지에 커다랗게 사인을 해두었더군요.

PIFF에 오셔서 해운대 근처의 해산물 먹을거리에 지치신 분들. 이곳 한 번 찾아보세요. 굳이 PIFF 기간 아니더라도 부산에서 맛난 고기를 찾으신다면 들러볼 만 합니다.


걸어서 가기에 조금 빠듯하다고 느끼신다면 해운대 PIFF 빌리지에서 택시를 타셔도 2,500원이면 충분히 다다를 거리입니다.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아 정말 오늘은 배부른 밤입니다.


영진공 함장

모터사이클 다이러리 – PIFF(부산국제영화제) 가는 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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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PIFF에 Press ID를 얻게 되어 부산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뭐 계획한 것도 없거니와 Press ID로 얻을 수 있는 표는 결국 ‘복불복’이기 때문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보다 부산 유람이나 하자는 요량으로 자가용(?)을 끌고 내려갈 생각을 했지요.


장장 500km에 이르는 머나먼 길이라 센터에 들러 타이어 공기압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점검을 하고 출발을 합니다. 뒤에 실린 짐에는 노트북과 몇 가지 옷만 넣었지요.


출발 전 셀카질을 합니다. 저 얼굴이 얼마나 초췌해질지 비교용이지요.

이것저것 챙겨 준 화전오토바이 조경식 기사님 감사합니다. (경식아 네 애인보다 더 적게 사랑해줄껭 ㅋㅋ) 먼 거리 간다고 킥 스텝을 조절하느라 삽질해 주어서 얼마나 미안한지 ㅡ.ㅡ

화전 항공대 앞에서 12시 30분에 출발하여 연대 앞 -> 광화문 -> 동대문을 거쳐 천호대로를 타고 잠실로 빠져나와 3번 국도에 올랐습니다.

성남으로 빠져서 장호원까지 쭉 이어지는 3번 국도는 평일 낮이라 그런지 그리 막히지 않았습니다. 들판에 벼는 추석 때 비해 훨씬 노랗게 익었고 시원한 가을 바람과 따사로운 가을볕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 따로 없게 만들지요.



가는 동안 시간마다 휴게소에 들러 커피도 마시고 허리도 펴주고 팔과 손도 주물러 주고 그렇게 잘 내려갔습니다.

충주에서 25번 국도로 갈아타고 수안보를 향했습니다. 수안보를 지나 문경새재는 이륜차로는 처음 지나갔습니다만 역시 이화령 고개를 넘는 게 아니라 터널을 빠져나가다 보니 딱히 코너 도는 재미는 없었지요. 어쨌거나 경상도 땅에 넘어오면서 이제 금방 ‘대구’에 다다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대구까지 76km 정도 남은 상황.

출발지로부터 240km 부근에서 그만 출력이 떨어졌습니다. 쓰로틀 – 자동차로 치면 액셀 – 을 최대한 열고 달리고 있었음에도 시속이 계속 떨어져 갔습니다. 이런 상황은 보통 연료가 완전 Empty 상태가 되면 나타납니다. 제 스포츠 바이크의 경우 보조 연료를 위한 통이 없어서 이 상태가 되면 방법이 없지요. 그러나 계기판에 분명히 연료 게이지는 ‘한 칸’ 남은 상태로 나와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료 게이지가 Empty가 되어도 연료는 3.5L 남기 때문에 최소 100km는 더 갈 수 있거든요!

어쨌든. 곧 시동이 꺼졌습니다. 클러치를 쥔 채 달려오던 관성을 이용해 옆으로 빠져 갓길에 세웠습니다.

막막하죠.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잘 정비된 국도….. 에서 이런 상황이! 어디에 정비소가 있단 말인가!!!

시동을 걸려 열쇠를 돌리니 ‘따르르르르르륵’ 소리가 납니다. 우왕 이를 어째!


배터리 문제인가 싶어 열어봤는데 배터리 나사는 괜찮고….. 여기 저기 둘러보니 역시 연료 펌프가 주입되는 연료가 없으니 ‘따르르르르르륵’ 소리를 냅니다… 밥달라는 소리 ㅠㅠ

연료가 충분히 있으니까 배터리와 연료 펌프 사이 배전에 문제가 생겼으리라 생각했는데 연료 게이지 부레가 고장이 난 것으로 판단. – 아무래도 이전 급유해 준 데서 꽉꽉 채워 안 넣어준 것으로 생각되어용. 그 주유소 가지 말아야지 –

한 10분 정도 연료가 조금이라도 고이길 기다렸다가 다시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리곤 이륜자동차의 최대 장점인 최고속으로 달려 놓고 ‘시동 끄고 클러치 잡고 관성으로 주행 신공’을 펼쳤지요. 일반 공도에선 위험천만이지만 다행히 1km 안에 주유소가 있다는 것을 지나가던 아저씨가 가르쳐 주셔서 과감히 결행했습죠.

100km/h 까지 올려 놓고 클러치를 쥐고 시동을 껐습니다. 이륜자동차는 시동이 꺼져도 브레이크가 작동합니다. 국도에서 내려 마을로 꺾어 들면서 정확히 주유소까지 도착하는 ‘기적적인 행운’이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제 신용카드 할인이 안 되는 타 정유사 주유소 ㅠㅠ

아 그래도 역시 난 운도 좋아.


연료 때문에 시간을 허비해서 원래 계획인 ’17시 대구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퇴근 시간대인 18시에 대구에 진입하게 되었지요.

대구 시가지는 8년 만에 들어갔습니다. 생도 때 외박 나오면 마산까지 나와서 구마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에 들어와 다시 안동까지 가는 고속버스로 갈아타고 또 안동에서 영주까지 가는 고속버스를 갈아타면서 고향에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군요.

그에 비하면 모터싸이클로 부산 가는 건 정말 식은 죽 먹기죠.

어쨌든 퇴근길의 혼란인 대구 중심부를 관통해야 했습니다. 대구 약령시를 지나 경산 경계까지 오고 나서야 한 시름 놓고 편의점에 들러 쉴 수 있었지요. 그때 벌써 위 사진처럼 해가 뉘엿뉘엿 지더군요….. 아직 경산도 못 들어갔는데!!!! orz

25번 국도를 타고 계속 내려갔습니다. 이윽고 어둠이 내리고 소싸움의 고장인 청도를 지나 영화 ‘밀양’의 배경인 ‘밀양’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아 정말 올라가는 길엔 ‘밀양’을 낮에 와보고 싶어요. 도무지 어두워서 어디가 어딘지 ㅡ.ㅡ 고갯길도 캄캄해서 꼭 늑대라도 나올 분위기!

해도 지고 배도 고프고 하던 차에 눈에 띄는 간판!


찐빵 보다는 ‘만두’!!!! 넵, 저는 만두 킬러입니다.

만두집에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누님의 경상도 사투리의 정겨움이란 캬~

서울에서 왔다니까 바로 ‘해운대 가시나봐요?’하면서 알아채시는 센스!

정말 맛나게 먹어치우고 나왔습니다.

배도 든든하겠다. 밀양은 부산에서 지척 거리!

25 번 국도를 계속 타고 가게 되면 ‘창원’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 25번을 이어나가면 ‘마산’으로 넘어가고, ‘진해’를 거쳐 ‘부산’으로 접어듭니다. 그런데 전 14번 국도를 선택해 김해 쪽으로 시도했습니다. 창원-마산-진해 (보통 ‘창마진’으로 불리는 연계 도시) 라인은 과거에 많이 간 길이라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했지요.

그러나 이게 웬일? 14번 국도 접어들자마자 눈에 확 띄는 이정표가 나옵니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가 2.8km랍니다.

우왓! 밤 8시 반인데도 이런 기회를 놓칠세라 바로 꺾어 듭니다. 전 도로변에서 그렇게 가까울지 몰랐거든요. 매번 ‘봉하마을’ 사진을 보면 완전 시골로 보여서 어디 산속 깊숙이 있는 마을인 줄 알았습니다.

꺾어 들어보니 2km에 달하는 구간이 전부 ‘공단’입니다. 공단을 벗어나자 작은 마을이 하나 시작되더이다.

우와 완전히 속았다니까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 온다는데 주차장 규모 – 물론 가장 먼저 보이는 주차장만 들렸지만 – 는 기껏해야 승용차 30대 정도 주차하는 공간이고 주차장 옆에는 봉하마을회관이 있더군요. 밤에도 ‘아이들’ 목소리가 회관 안에서 두런두런 새어 나올 정도로 조용한 마을이었습니다.


주차장에서 고작 150m밖에 안 됩니다. 호화 저택은커녕 그냥 조금 큰 양옥집이더이다. 야간인데다가 입구에 공사 중이라 의경이 경비를 서고 있더군요. 묻는 말에 친절히 웃으며 답해 주는 의경에게 수고하라고 전하고 내려와 주차장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습니다.

언론에 비치는 노무현 대통령 생가는 늘 잔칫집일 것 같은 데 이건 뭐 제 어릴 적 산골 외가보다 더 조용합니다. 딱 고향에서 야간에 교외 공설운동장 같은 시설의 자판기 커피 마시러 드라이브 나올 것 같은 그런 주차장 풍경에 왠지 친근함이 느껴지더군요.

다시 헬멧을 쓰고 부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14번 국도는 부산 찾으시는 분께 아직 권하고 싶지 않더군요. 부산까지 완전히 이어지지 않아서 북부산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김해에서 꺾어져 들어가더라도 계속 고가도로 아래로 달리면서 그리 좋지 않은 노면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어쨌거나 ‘서면사거리’ 이정표를 계속 쫓아 서거나 가거나를 반복하면서 눈요기를 즐겼습니다. 광안대교를 야간에 꼭 보고야 말겠다는 신념도 잠시. 생도 때 외출할 때마다 나와 놀던 서면에 들어서니까 만사가 다 귀찮더군요. 그리고 그제야 ‘부산에 도착했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면에서 해운대로 넘어와서 요트경기장 앞을 지나자 ‘PIFF’ 관련 깃발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현재 부산에서 ‘비엔날레’를 포함해 국제 행사가 3가지가 열리고 있기 때문에 무척이나 분주해 보입니다. 밤 11시였는데 말이죠.


해운대 모텔이 모여 있는 곳으로 접어들어 몇 군데 들러봤습니다. 2인 일반실 비용이 6만 원에 1인 증원할 때마다 1만 원 추가더군요. 더 재미난 건 아예 간판에 ‘25,000원’ 적어둔 집이 그럽니다.

더 재미난 건 연휴기간이자 PIFF 개막일, 황금 주말은 이미 ‘예약’이 다 된 상태이며 2인 일반실이 10만 원이랍니다.

이건 바가지도 이런 바가지가 없어요. 이건 시장 논리도 아니고 수요 공급 이론 문제가 아니라 분명히 ‘바가지’죠.

부산시는 뭐 하는 건지. 혀를 찰 수밖에 없네요.

일단 몸이 너무 피곤해서 자고 일어나고 나서 내일부터는 송정이나 좀 더 멀리 나가서 방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어쨌거나 무려 삽질한 1시간을 제외하더라고 장장 8시간이 걸려 도착했습니다. 7시간 예상했는데 노무현 대통령 생가에다가 사진 기록 남기느라 자주 쉬어 줬더니 1시간이 늘어났네요.

이 정도 모터사이클 체력이면 일본 스즈카 8시간 내구 레이스 출전해도 되지 않을까요? ㅋㅋ

그럼 내일부터 아니군요 벌써 오늘이군요. 사흘간 PIFF에 빠져보도록 합지요.

영진공 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