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닮은 컴퓨터


 

현재 컴퓨터의 발전 속도는 슬슬 한계에 봉착한 느낌이다. 물론 매번 업그레이드 된 하드웨어들이 발표되고는 있지만 단지 수치적인 향상일 뿐 우리가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향상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의 데스크탑은 부팅시간을 활용해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으며 노트북을 구매할 때 마다 가볍지만 비싸고 성능이 떨어지는 모델과 무겁지만 성능이 좋은 모델 사이에서 괴로워해야 하고, 까페에 들어서자마자 사냥하는 늑대의 눈으로 전원코드를 찾아 두리번거려야 한다. 결국 지금과 같은 컴퓨터의 메커니즘이라면 속도와 무게, 발열, 전력 소모에 있어 획기적인 개선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이미 우주 최고 스펙의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 그건 바로 우리의 뇌다. 1천억 개의 신경세포와 약 3천억 개의 교질세포로 이루어져있으며 이들은 100개조에 달하는 시냅스로 병렬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동시에 여러 대규모의 정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복잡한 연결구조 임에도 또한 대단히 유동적이어서 마음대로 뉴런의 수를 늘이고 부피를 키우면서도 똑같은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엄청난 처리속도와 용량에도 불구하고 중량은 맥북 에어와 비슷한 1.4kg정도에다가 샌드위치 하나의 열량이면 하루 종일 뺑뺑이 돌릴 수 있는 놀라운 연비마저 보여주고 있다.
이에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컴퓨터로서의 뇌의 기능에 주목하고 이를 접목시킨 차세대 컴퓨터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인간의 뇌는 정말 위대한 창조물이다

컴퓨터를 구성하는 요소를 간단히 나눠본다면 알고리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로 나눌 수 있다. 그래서 뇌를 닮은 컴퓨터를 만들려 한다면 이에 대응 하는 3가지 각기 다른 분야의 성과가 필요하다.

먼저 뇌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뇌에서의 신경전달 방식은 모두 밝혀졌지만 신경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즉 뇌신경 연결지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2005년 세계적인 뇌과학 연구자들은 휴먼 커넥톰 프로젝트(Human connectome project)를 출범시키고 2009년 7월에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행하였다.
 

하지만 뇌신경이란 것이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전선으로 연결 되어 있어서 뇌를 반으로 쩍 잘라서 눈으로 보고 그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뇌신경 연결지도를 만들기 위해선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신경의 전체적인 연결망을 파악한 후 다시 현미경으로 세포 수준의 미시적인 연결망을 찾아내야 하는 노가다가 필수다. 그러다보니 뇌신경 한 개당 10명의 연구자가 1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이를 토대로 얼추 계산을 해보면 완벽한 뇌신경 연결지도를 그리기 위해선 1,00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래서는 차다리 외계생명체를 찾아서 그들에게 기술을 전수받는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히 과학기술의 발전은 연구에서의 지루한 단순노동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 줄 것이다. 이미 2010년 후반기에 기존의 MRI보다 7배나 빠르며 해상도가 높은 기술이 개발되어 커넥톰 프로젝트의 앞날에 장미꽃을 뿌려주었다. 이 새로운 MRI기술이란 뇌기능영상측정법(fMRI)의 가장 빠른 MRI기법인 에코 플라나 영상법(EPI)의 두 가지 기술을 결합한 것이다.

현재 프로젝트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미국 미네소타대학과 워싱턴 대학의 연구팀이 연구하고 있다. 2014년까지 건강한 성인 1,200명의 뇌 연결 방식을 분석할 예정이며 10년 후 뇌 연구에서 큰 진척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많은 과학자분들의 고된 노가다를 통해 뇌 기능에 대한 정확한 해부학적 모델 구축이 완성된다면 건강한 사람과 정신질환자의 뇌지도를 비교 분석하여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길도 열릴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된다.




두번째는 인간의 뇌를 모방한 소프트웨어의 개발이다. 2005년 시작된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Blue brain project는 스위스 로잔 공과대학의 앙리 마르크람
Henry Markram
박사와 IBM이 손을 잡고 슈퍼 컴퓨터 ‘블루 진Blue gene’을 이용하여 신피질의 상호 소통방식을 3차원 시뮬레이션 모델링으로 완성하려는 프로젝트다.

신피질은 인간 뇌의 85%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언어, 기억, 분석, 판단 등을 담당하는 인간 뇌 중 가장 복잡한 부분으로 인간의 창조 활동의 원천이다. 마크람 교수는 2~3년 안에 신피질 모델을 완성하는 것을 1차 과제로 잡고 있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구피질과 뇌간 등 뇌의 다른 부분으로 모델링 작업을 확대해 10년 안에 인간 두뇌 전체에 대한 컴퓨터 뇌 모델을 완성하려고 한다. 이것은 합성 신경전달물질이나 여러 기분제어 약품 제조기업들이 동물실험 없이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약효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2009년 7월 22일 영국 옥퍼드에서 열린 TED(기술,오락,디자인)글로벌컨퍼런스에서
 
스위스 로잔 연방공대 교수인 헨리 마크람이 “10년 안에는 인간의 뇌 구조를
컴퓨터로 
 설계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세 번째는 인간의 뇌처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하드웨어의 설계이다. 프로세서와 메모리 간의 정보전달은 컴퓨터의 효율적 설계를 위한 최대 난제 중 하나다.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칩이 있다면 연산능력과 에너지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어 우리가 더 이상 노트북을 구매할 때 무게와 성능을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멤리스터(memristor)라는 기술이 등장했다.

멤리스터 심볼마크


1971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레온 추아Leon Chua교수는,
 멤리스터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하였지만 구현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다 2008년 HP사에서 자외선
차단제나 흰색 페인트에 사용되는,
 이산화티타늄titanium dioxide을 나노 크기로
제어하다가 멤리스터를 만들게 되었다.

시냅스는 신경세포(뉴런) 사이를 연결하는 부위로서 정보는 이 시냅스를 통해 오고간다. 이때 시냅스는 마지막으로 경험한 전기 정보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세게 지나갔는지 기억한다. 멤리스터는 시냅스처럼 작동하는 전자소자로서 마지막에 경험한 전기자극을 기억한다. 그래서 전하의 흐름을 방해하는 저항처럼 작동하면서 동시에 메모리 기능도 갖고 있다. 멤리스터(memristor)란 이름은 이런 특징을 보여주는, 메모리(memory)와 저항기(resistor)를 합친 말이다.

멤리스터는 플래시 메모리에 비해 이론적으로 값이 더 싸고 휠씬 더 빠르며, 보다 많은 메모리 밀도를 가능케 한다. 또한 램(RAM) 칩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를 켰을 때 예전에 작업하던 것을 정확하게 기억해 내어 즉시 하던 작업으로 돌아갈 수 있다.

HP사는 메모리 뿐만 아니라 연산 기능까지 갖춘 멤리스터를 개발하고 있어 CPU를 대체할 가능성 까지 제시되고 있다. 보다 저렴한 가격과 여러 부품들을 병합할 수 있는 멤리스터의 장점으로 주머니에 쏙 들어갈만한 사이즈에 더 빠른 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미국 국방성 산하 국방차세대연구프로젝트원(DARPA)와 HP·IBM·HRL연구소 등이 함께 손을 잡고 메모리와 레지스터를 통합한 ‘멤리스터’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곰 존슨Gorm Johnsen 교수팀은 피부에 어떤 전기가
처음 걸리느냐에 따라 멤리스터처럼 저항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피부 속 땀구멍에 있는 땀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여러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뇌를 연구하며 공학 기술로서 구현하기 위해 밤낮없이 매달리고 있다. 이렇게 진행되는 연구의 진척을 보면 생각보다 그리 멀지않은 시기에 뇌의 성능을 지닌 컴퓨터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 참고
   파퓰러 사이언스 2011. 2월호
   커넥톰 프로젝트에서 쓰이고 있는 발전된 MRI기술에 대한 자료
   http://humanconnectome.org/about/project/pulse-sequences.html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49744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