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스펙타클 보다는 재난 이후의 드라마





<야연>(2006), <집결호>(2007), <쉬즈 더 원>(2008)으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어느 정도 친숙해진 펑 샤오강 감독의 신작입니다. 1976년 24만 명의 희생자를 낸 중국 당산에서의 대지진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 얼핏 우리가 흔히 보는 재난 영화의 일종 – 2시간 동안 대지진의 참사 속에서 귀중한 생명을 구해내면서 감동을 주거나 하는 – 처럼 보일 수가 있겠습니다만 전체 136분의 러닝 타임 중에서 당산 지진을 재현한 장면은 영화 초반의 불과 10 여 분 정도 밖에 안되더군요.

<대지진>은 당산 지진으로 인해 헤어지게 된 어느 가족의 30 여 년 간의 이야기입니다. 영어 제목인 <After Shock>에 32 Years를 덧붙여 <32 Years After Shock>이라고 하면 영화의 실제 내용과 가장 부합하는 제목이 만들어지는 셈이 되겠네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당산 지진으로 인해 죽은 인명의 숫자는 어마어마하지만 <대지진>은 그 아픔의 깊이를 형상화하기 위해 그 중 한 가족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지진으로 남편을 읽고 이란성 남녀 쌍둥이가 건물 잔해에 깔린 상태에서 남매의 어머니는 둘 중에 하나만을 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자신을 대신해 죽은 남편과 시댁 식구들 때문이었는지 전반적인 남아선호 사상 때문이었는지 어찌되었든 어머니는 남자 아이를 선택하게 되죠.

이야기의 진짜 시작은 그 버림받은 여자 아이가 자신을 포기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고 게다가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더군요. 남편과 딸이 죽은 줄로만 알고 어머니와 사내 아이는 피난 행렬에 오르게 되고, 여자 아이는 난민 캠프에 들어갔다가 아이가 없는 군인 부부에게 입양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대지진>은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게 된 어느 가족의 30년 사를 잔잔한 톤으로 묘사하는 작품입니다. 지진으로 죽은 남편과 딸의 영정을 모시고 당산을 떠나지 않으며 속죄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머니와 한 팔을 잃었지만 젊은 사업가로 성공하게 되는 아들, 그리고 의과대학에 입학했다가 미혼모가 되어 전문의 과정을 포기한 채 캐나다인과 결혼하여 밴쿠버로 이민을 가게 되는 딸의 이야기가 교차로 보여집니다.

그러던 이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또 다른 지진 구호 현장에서 – 연도상 2008년의 쓰촨성 대지진인 듯 – 이루어지게 되는데 예상과 달리 펑 샤오강 감독의 연출은 이 순간 마저도 그닥 극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은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32년 간 가족들과의 재회를 외면해온 딸과 어머니의 재회는 대참사의 상흔 만큼이나 커다란 슬픔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대지진>은 의외로 최근 중국 대중영화들의 경향에서 상당히 벗어나있는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헐리웃 영화 못지 않은 큰 스케일과 기술력으로 영화를 만들되 중국 정부 당국자들이나 좋아할 – 물론 다수 관객들 역시 선호하는 – 대국굴기의 이념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시각에서는 다소 지루하게 보여지곤 했던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대지진>은 그 보다 훨씬 순수한 휴머니즘에 충실한 연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76년 대지진의 생존자 가족들 가운데에서 발굴한 이 기막힌 스토리 자체가 가진 힘이 좋아서 구태여 영화의 주제를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네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임순례 감독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에서 취했던 것과 같이 재연된 드라마에서 벗어나 실제 당산에 건립된 대규모 위령비와 그 앞에선 생존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 됩니다. 대지진의 스펙타클과 2시간 동안의 짜임새 있는 스릴러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다소 기가 막힌 내용과 결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적인 연출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대지진>의 내용 자체가 무가치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흔한 가족주의를 강조하기 보다는 재난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생명이나 인체의 일부를 잃고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이들의 아픔을 감싸안아주고 있는 작품이 바로 <대지진>입니다. 국내에 잘 알려진 배우들은 거의 없지만 연기가 상당히 좋은 편이고 다같이 가난하게 살던 모택동 시절로부터 2008년의 구호 현장에 헬기와 BMW의 SUV가 대거 등장하는 중국 사회의 현대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었던 것 같네요.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