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반전(反轉)에도 원칙이 있다.

    

1. 제대로 된 반전의 조건

요즘에는 반전 없는 영화는 앙꼬없는 찐빵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개나 소나 반전을 집어넣는다고 난리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많은 자칭 반전 영화 중에 쓸만한 반전의 짜릿함을 건네주는 넘을 찾기란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 이건 아마도 영화 만드는 이들이 반전 원칙을 숙지하지 못한 탓이리라 사료된다.
 
이에 이러한 작태를 짜증스레 여겨 제대로 된 반전의 기본 조건을 풀어놓으니 모든 영화제작자로 하여금 쉬이 익혀서 제발 반전 같지도 아니한 반전을 만든다고 삽질 좀 그만 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반전의 기본 구성은 아래와 같다. 이건 제멋대로 만든 게 아니라 Incongruity-Resolution Theory (번역하면 ‘부조화 해소 이론’쯤 된다)의 기본 도해이다.
 

이 도식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 우선 모든 이야기(혹은 사건)에는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요소들을 포함하는 초기설정이 존재한다.
② 관객들은 이 초기설정을 근거로 나름대로 이야기의 결말을 예측한다.
③ 만약 이야기의 결말이 관객의 예측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면, 관객은 그 이야기에서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보통 말하는 “뻔한 스토리”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④ 그러나 이야기의 결말이 관객의 예측을 벗어난다면 관객은 우선 놀라움을 경험한다.
⑤ 그리고 관객은 이야기의 초기설정에서 어떻게 그런 결말이 도출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탐색해 본다.
⑥ 만약 관객이 초기설정 속에서 문제의 예측 밖의 결말의 근거나 규칙을 찾지 못한다면, 역시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쉽게 말해 그 이야기는 “황당한 스토리”가 된다.
⑦ 그러나 만약 관객이 초기설정 속에서 문제의 예측 밖의 결말의 근거나 규칙을 찾아낸다면, 관객은 비로소 제대로 된 즐거움을 경험한다.

예상외의 반전으로 유명한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센스』를 예로 들어보자.
만약 『유주얼 서스펙트』를 처음 보았던 관객이 이 영화의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면, 이 영화는 폭삭 망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성공의 첫 번째 조건은 관객의 예측을 벗어난 결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결말이 뜻밖이었다 하더라도, 영화 속에 절름발이가 무서운 악당일 개연성이 전혀 심어져 있지 않았다면, 역시 이 영화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관객들은 뜻밖의 결말에 놀랐지만, 돌이켜보니 그거야말로 가장 그럴듯한 결말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재미를 느낀 것이다.

이는 영화 『식스센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 결말의 단서는 이미 영화의 도입부에 들어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처음에 시치미를 떼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따라간다. 왜 주인공이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것처럼 구는지, 처음에는 그냥 이 넘 충격이 컸었구나 정도로 생각하던 관객들은 영화 마지막의 반전을 통해 그 이유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단순히 ‘외로운 심리치료사의 설정’ 정도로 봐주기에는 2% 부족하던 사소한 사건들(왜 마누라는 주인공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는지, 왜 주인공은 애 말고 다른 사람과는 한마디도 대화를 하지 않았는지, 왜 이 인간은 맨날 똑같은 옷을 입고 나오는지…)도 완전히 설명된다. 이게 반전의 파괴력이다.

여러분도 다들 알 듯이 이런 단서들을 복선이라고 부른다. 복선이 얼마나 치밀하게 반전과 연결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황당한 영화와 짜릿한 영화의 갈림길이 나눠지는 것이다.

물론 어디에나 개인차는 있다. 『식스센스』를 보면서 영화 초반부터 무슨 반전이 있을지 예측해버린 관객이 있는가 하면,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파악을 못하는 관객도 있다.

두 번째 경우는 어쩔 수 없다고 치고(이건 지능의 문제니까), 첫 번째 같은 영악한 관객들을 위한 대책은 있다. 이들은 애초부터 기막힌 반전을 기대하지 않고 영화관에 들어선다. 대부분 영화의 기본 공식에 빠삭하기 때문에 앞에 돌아가는 몇몇 에피소드만 봐도 다음에 예상되는 수준이라 별로 짜릿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객들이 바라는 것은 반전이 아니라 상식을 벗어나지 않고 영화 기본 공식을 지켜가되 보다 창의적인 변주를 하는 장르 영화다. 사실상 영화의 기본은 “말이 되는 이야기”다. 그게 갖추어진 다음에야 반전이고 뭐고 찾을 수 있는 것이다.

2. 반전과 속임수의 차이

이렇게 반전 얘기를 푸는 이유는 사실, 영화 『연인』을 보면서 경험했던 충격 때문이다.  이런 류의 영화를 보면서, 그놈의 어줍쟎은 반전 집착이 영화를 얼마나 쒯스럽게 만들고, 관객을 도탄에 빠트리는지를 뼈속 깊이 느끼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 소위 반전이랍시고 내놓은 것들은 모조리 관객을 허탈하게 만드는데 기여할 뿐이다.

스포일러 있다능 …  주의하라능 …

첫 번째 반전, “”장쯔이”가 사실은 장님이 아니다”를 보자.
이 반전이 제대로 먹히려면, 얘가 장님 같지만 장님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있어야 한다. ‘콩따라 북치기’ 가 그런 거였다고? 무협영화의 공식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그 퍼포먼스는 장쯔이가 얼마나 대단한 장님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지, 결코 두 눈 멀쩡한 애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두 눈 멀쩡하고 팔다리 멀쩡해도 고수가 아니면 결코 그런 고난도 퍼포먼스는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장면 뿐만 아니라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던 목욕탕 결투 장면에서도 장쯔이는 초지일관 소리에만 집중한다.  장님이 아니라면 뭐하러 그런 짓을 하느냔 말이다.  이렇게 아무런 단서도 없다가 갑자기 또릿또릿 바라보며 말하는 장쯔이를 보는 관객들의 심정은 금성무보다 더 허탈하다.  이게 도대체 뭐다냐… 반전이 주는 짜릿함은커녕, 전반부에 쌓아왔던 모든 이야기의 무게가 그냥 날아가 버리는 거다.

두 번째 반전, “”유덕화”가 사실은 첩자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무협판 “무간도4″다)도 마찬가지다.

역시 문제의 목욕탕 결투. 여기에서 유덕화는 장쯔이를 정말로 작살내버린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말이다.  둘이 애인이고 같은 편이라면 꼭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감독이 이 둘의 결투를 아주 중요한 사건인 것처럼 슬로모션으로 보여준다는 게 문제다. 그 느린 화면 어디에도 이 둘이 짜고 친다는 단서는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둘이 같은편이었네~ 하면 반전이 되나?  관객들이 느끼는 건 배신감 뿐이다.

이 같쟎은 반전의 행진을 보며 갑자기 장예모는 혹시 반전을 속임수와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여기서 반전은 그냥 속임수다. “장쯔이”의 속임수, “유덕화”의 속임수, 그리고 감독의 속임수… 뭐 유주얼서스펙트 같은 영화에서야 속임수가 반전이었지만, 식스센스의 서늘한 반전은 속임수가 아니었는데…

3. 말이 되는 이야기

그러면 이야기 자체는 말이 되느냐 … 솔직히 이 영화가 어떻게 흥행에 성공하였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아무리 이성의 세기인 20세기가 지나갔다고 하더라도 왜 이렇게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영화가 흥했했던 것일까? 예전 영화들 중에도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성공한 적이 있던가? 그렇지는 않은거 같은데 … 갑자기 관객들이 비이성적이 되기로 결심한건가? 아니면 사람들은 애초부터 논리 같은건 따지지 않았던 걸까?

그래 뭐 “유덕화”는 무간도에서 처럼 완벽한 내부첩자였다고 치자. 그리고 “장쯔이”는 아직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서로 뻔히 아는 “유덕화”와 싸울 때 조차도 장님행세쇼를 했다고 치자. (뭐 주변에 관객들도 있었나부지) 중국의 기후가 워낙 개떡같아서 한가을 날씨가 순식간에 한겨울로 바뀔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런거 까지는 말 된다고 믿어주자…

아무리 그래도 “비도문” 진영까지 와서 벌어진 일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비도문 두목은 새대가린가? “유덕화”가 왜 그동안 비도문에 충성해왔는지 두목은 진정 몰랐단 말인가? 둘의 대화는 듣지 못하고 몸싸움만 봤냐?
“장쯔이”의 배신을 비참하게 인정하고 돌아가게 만들면 “유덕화”가 조직에 얼마나 위험한 존재가 될지 두목은 몰랐단 말인가?

그리고, “장쯔이”가 “금성무”에게 어떤 감정인지 대강이라도 짐작 못했나? 그걸 알면서도 “장쯔이”에게 “금성무” 처치를 맡겨놓고 둘이 들판에서 한바탕 질펀하게 놀수 있도록 내비둔거냐? 혹시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내비뒀나? 둘이 같이 도망가라고?

그렇게 부하들의 마음을 모르고서도 두목 행세 할 수 있냐?

“금성무”, “장쯔이” 너네들도 그렇다. 아무리 서로 눈빛만 마주쳐도 불타오를 단계라지만 그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그럴 여유가 있던가?


아아… 이런거 따져서 무엇하리…

아무래도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포르노 비디오와 동일한 구조였던 모양이다.
포르노 영화에서 모든 사건은 결국 섹스장면을 위한 곁다리에 불과하듯, 이 영화에서도 모든 사건이나 모든 반전이나 모든 이야기(그렇게 불러줄 만한게 혹시라도 있다면)는 결국 뽀대나는 고속촬영장면을 위한 곁다리에 불과했던거다. 그래서 감독도, 관객도 지금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신경끄고 장쯔이의 우아한 춤사위나 몸놀림, 칼이나 화살의 비행을 고속촬영으로 감상하는 거에만 집중하기로 약속된 영화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약속이 있다는걸 관객에게 미리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것도 모르고 본 나 같은 사람은 어쩌라고…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