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택과 조코비치

1. 하나

이형택의 경기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다.

더 중요한 투어대회를 위해 국가대항전에 나서지 않는 선수도 수두룩한데

서른셋의 적지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한국 테니스의 희망으로 뛰어주는 그에게

어찌 감동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새벽 3시 40분까지 사투를 벌였던 제2단식은 물론이고

콜슈라이버에게 아깝게 진 3단식을 보면서  

난 이형택에게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자신보다 랭킹이 더 높은 콜슈라이버를 맞아

발집에 커다란 물집이 잡힌 채로 강력한 스트로크 대결을 벌이던 그 투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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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둘

투어 대회에서 늘 이형택을 두번째로 나이 많은 선수로 만드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비요르크만이다.

1972년생이니 우리나이로 서른일곱인데

우리나라의 이형택이 그런 것처럼 비요르크만은 토마스 요한슨과 더불어

테니스강국의 이미지가 퇴색한 스웨덴의 희망으로 군림하고 있다.

2대 2로 팽팽하게 맞선 이스라엘과의 월드그룹 다섯번째 게임에서

비요르크만은 3대 1의 역전승을 엮어내며 스웨덴을 8강에 올린다.

늘 이형택이 은퇴할까 조마조마한 나로서는

그보다 네살이 더 많음에도 여전히 코트를 지키는 비요르크만을 보면서

스스로를 위안한다.

“이형택도 3년은 더 뛸 수 있을거야”라며.

3. 셋

작년 US오픈에서 인구 천만인 세르비아는 자국 선수를 세명이나 남녀 4강에 올렸다.

그리고 올해 호주오픈에선 급기야 우승자를 배출했으니 그 이름 바로 조코비치다.

페더러한테는 안될 것이라는 내 예상을 깨고 결승에 진출한 조코비치는

돌풍을 일으켰던 총가를 3대 1로 꺾고 스물둘의 나이에 우승컵을 안았다.

하지만 그때 그가 보여줬던 체력적인 문제는 우려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만일 총가가 어영부영 4세트를 따냈더라면 조코비치가 5세트를 견딜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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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비이스컵 월드그룹 1회전에서 첫 두 단식을 러시아에 내준 세르비아는

할 수 없이 복식에 조코비치를 출전시키며

조코비치는 승리를 따내 기대에 부응한다.

2대 1로 따라간 4번째 경기, 조코비치의 상대는 전 세계 4위 다비덴코였다.

이형택을 압도했던 무시무시한 스트로크의 소유자인 다비덴코는

하지만 호주오픈 우승으로 물이 올라있는 조코비치를 당하지 못했다.

1, 2세트를 거푸 따내며 승리를 목전에 둔 조코비치는

3세트부터 체력적 문제를 드러내며 (부상이라지만…잘 모르겠다) 한세트를 빼앗기고

4세트엔 결국 기권함으로써 2회전 진출권을 러시아에 넘겨준다.

나달과 페더러는 최근 10번의 그랜드슬램 우승컵을 나누어가졌고,

그 둘의 독식을 깬 것이 바로 조코비치인데

이런저런 문제점을 안고 있는 조코비치가 과연 얼마나 롱런할 수 있을지,

나 역시 회의적이다.


영진공 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