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야마와 전미라

스기야마 아이가 올해 마지막 그랜드슬램 대회인 US오픈 2회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2회전 상대가 러시아의 무명 마카로바라 무난히 이기지 않을까 싶었지만 3세트를 6-2로 내주며 덜미를 잡힌 것. 스기야마는 1975년생, 우리 나이로 서른셋이다. 이십대 후반만 되도 노장 취급을 받는 테니스계에서 서른셋이면 대회 참가 선수 중 최고령으로 1, 2위를 다툴 거다. 비록 정상권 선수는 아닐지라도 스기야마는 여섯 번의 단식 타이틀을 차지했고, 그랜드슬램 대회에서도 한차례 8강에 든 걸 포함, 10번이나 16강에 진입하는 등 비교적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스기야마는 단식보다 복식에 더 강해 그랜드슬램 타이틀 3회를 비롯, 총 34회의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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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야마를 처음 본 건 95년경이었다. 다테 기미코로 대표되는 일본 테니스 파워가 세계를 강타할 무렵, 스기야마 역시 돌풍의 주역 중 하나였다. 당시 세계 1위 그라프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우리와 체구가 비슷한 동양 선수들이 그리도 잘하는 건 부러워 죽겠는 일이었다. 한국인이라면 갖고 있을 일본 선수에 대한 체질적인 반감을 떠나서 난 외모가 별로인 그녀에게 별반 호감을 갖지 않았지만, 스기야마가 십여년간 보여준 테니스에 대한 열정은 날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스물여섯살인 2000년부터 스기야마의 성적은 한층 좋아졌고, 2003년에는 3번의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16강에 올랐다. 한때 세계 8위까지 올랐던 그녀에게 진 선수 중엔 마르티나 힝기스와 클리스터스, 쥐스틴 에냉, 데이븐포드 등이 있다. 그녀 정도의 명성이면 올림픽코트에서 열리는 챌린지급 대회인 한솔배가 우습게 보일 수 있지만, 그녀는 매번 대회에 참여하여 좋은 성적을 올렸고, 작년 말 나달과 페더러가 서울서 시범경기를 보일 때도 초청에 응해 내용은 모르겠는 덕담을 하기도 했다.

1미터 63센티의 아담한 키를 가진 그녀를 보면 동양 선수들이 테니스를 잘치기 어렵다는 말은 최소한 여자에겐 변명이 아닐까 싶고, 올해 윔블던과 프랑스오픈에서 3회전까지 오른 걸 보면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어느 분의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Wikepedia란 인명사전은 스기야마에 대해 이렇게 기술해 놓고 있다.
“강한 체력과 스피드, 그리고 강한 서브와 발리를 주무기로 스기야마는 그녀의 선배인 다테 기미코보다 훨씬 공격적인 테니스를 보여준다.”
경기 때 보여주는 플레이도 물론 멋지지만, 난 스기야마가 잘 웃는 여성이어서 좋다. 꼭 이기려고 테니스를 치는 사람도 있지만 스기야마는 정말 테니스를 좋아하고 즐긴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웃음은 전염성이 있어 경기를 보는 나까지 즐겁게 만든다.

스기야마가 프로에 입문하던 시절, 한국에는 전미라라는 유망주가 테니스계를 흥분시켰었다. 힝기스와 주니어대회 결승에서 만나기도 했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던 전미라는 2년쯤 전 드라마에 출연한다며 매스컴을 탔고, 작년인가는 윤종신과 결혼한다며 다시금 뉴스의 초점이 됐다. 스기야마보다 3년 늦게 태어난 전미라의 나이는 지금 서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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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