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 토리노 (Gran Torino, 2008)”, 노인네에서 할아버지로


감독_ 마초 노인네


출연_ 마초 노인네, 아시아 이민자들

노인이란 참 피곤한 존재다. 이미 수십 년에 걸친 자신의 가치관이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이제 그 누구의 조언이나 가르침도 스며들어갈 틈이 없는 옹고집 외골수다. 게다가 예의마저 닳고 닳아버려 흔적마저 찾기 어렵다면 진정한 민폐가 아닐 수 없다. 당 영화의 주인공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란 노인네가 딱 이짝이다. 게다가 젊은 시절 한국전까지 치뤘다니 … 아찔하다. 이거 우리나라로 치자면 희끗희끗한 머리로 군복입고 다니며 젊은 시절의 베트남 전 무용담을 말하던 해병대 마초 노인네 다름 아닌거다.
 




어린 노무 쉐이들이. 뭘 안다고~!


이런 마초 노인네 ‘코왈스키’는 모든 게 불만이다. 손녀딸의 배꼽티도 불만이고 아들놈이 일본 자동차 회사 다니는 것도 불만이고 옆집의 미개한 아시아 이민족들도 불만이다. 그에게는 이제 집과 강아지와 포드사의 72년산 그랜 토리노 만이 유일한 삶의 낙이요 지켜야 할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남은 거라곤 욕심뿐인 그의 마음을 열어준 것은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아시아 이민자들이었다. 조금씩 마음을 여는 코왈스키는 아직 인생이 서투른 ‘타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고 자신의 그랜 토리노가 아닌 그들을 위해 총을 들기도 한다. 코왈스키는 ‘노인네’에서 ‘할아버지’가 되어간다.

 




내가 니 나이 땐 나한테 삽 한자루만 쥐어주면 빌딩을 하나 세웠어!
노인의 허풍은 조심하자 …


이 넘이 72년산 그랜 토리노 되게따 ...

젊은 시절 한국전에 참전했던 마초 노인네의 오픈 유어 마인드를 그리고 있는 당 영화는 공화당을 지지하며 젊은 시절 잦은 이혼과 동거를 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듯한 ‘코왈스키’역을 맡아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 옹고집쟁이 노인네의 심술맞은 표정연기가 인상깊었던 그가, 어쩌면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연기를 그만둔다고 하니 매우 아쉽다. 무려 79세라는 허리가 휘청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감독과 주연을 맏아 그의 오랜 인생의 깊이를 담아낸 당 영화는 박스오피스 1위는 물론이요 이미 여러 상을 수상했고 또한 수상할 예정이다.
 




진정한 부친남(부인친구 남편) … 아니 할친할(할멈친구 할아범)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노인이란 오랜 삶을 통해 체득한 지혜가 가득 담겨있는 오래된 책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적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수십 년의 값진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처럼 노인은 그의 아이들, 가족, 사회에 그가 살아오며 쌓아온 지혜를 나눠준다.

곱게 늙는 다는 것은 오만과 편견으로 굳어진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닌 오래된 책과 같이 늙어가는 걸 말하는 것일게다. 자신의 그랜 토리노를 지키기 위해 총을 빼어드는 코왈스키가 아닌 ‘타오’를 지키기 위해 총을 내던지고 분노에 이성을 잃은 그를 옳게 이끌어준 코왈스키와 같은 ‘할아버지’의 지혜를 대한민국의 자칭 원로(?)라는 이들에게서 볼 수 있기를 빌어본다.

 




제발 곱게 늙으시길.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