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밑 아리에티”, 하야오 없는 지브리의 미래



올해로 70세의 나이가 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언제 처음 은퇴를 선언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1997년작 <원령 공주> 때였던 것 같은데 작품 자체가 워낙 좋기도 했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마지막 연출작이라는 소식에 일본에서만 2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을 했다던가 그랬었다. 그 이후로 감독의 은퇴와 복귀 선언이 반복되는 와중에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그리고 재작년 <벼랑 위의 포뇨>(2008) 을 계속 내놓으며 “지브리 스튜디오는 곧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등식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간 후계 양성을 목적으로 스튜디오의 애니메이터들에게 연출 데뷔의 기회를 여러 차례 주어왔지만 – <귀를 기울이면>(1995)의 콘도 요시후미, <고양이의 보은>(2002) 의 모리타 히로유키, <게드전기 : 어스시의 전설>(2006)의 미야자키 고로 – 그 가운데 어느 누구도 두번째 연출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곧 노감독이 마음 편히 뒷자리로 물러서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다름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195년에 처음 씌여진 영국 아동문학가 메리 노튼의 원작을 각색한 작품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각색과 기획, 제작을 담당하고 스튜디오의 애니메이터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이 연출 데뷔를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연출하지 않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을 접하게 되면 앞에서 언급한 스튜디오의 후계 구도에 관한 고민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 <마루 밑 아리에티>는 오로지 작품 자체로만 보았을 때에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후계자를 찾았다고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작품의 내용과 주제, 그외 기술적인 부분들까지 모든 면에서 창업주의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오히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근작 <벼랑 위의 포뇨> 보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의 데뷔작 <마루 밑 아리에티>가 훨씬 더 미야자키 하야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쏙 빼어닮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 과정에 각본과 제작자로 참여한 창업주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바꿔 말하자면 신인 감독의 재량권은 과연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방법이 없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원제목인 <The Borrowers>는 인간들의 도구와 음식을 빌려다가 사는 소인들이라는 의미다.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는 모르지만 마루 밑에 거처를 마련해놓고 인간들 몰래 필요한 가재도구와 음식물을 얻어다 쓰며 살아가는 이 존재들은 외관상 인간의 형상을 그대로 축소해놓은 듯한 외관을 갖추었지만 그 자체로 대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 인간 자신들을 모함해서 – 모든 생명체를 상징하는 듯 하다.

그런 상징적인 존재들이 조금씩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연민을 느끼고 무언가 행동으로써 도움을 주는 등장 인물의 모습은 곧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큰 줄기라고 할 수 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 돼” – 이 지극히 일상적인 작별의 인사말에 간절한 심정이 느껴지는 것은 <마루 밑 아리에티>가 지브리 스튜디오와 창업주의 세계관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곤 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과 비교할 때 <마루 밑 아리에티>는 비교적 작은 스케일의 작품이라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공간적으로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눈에 띄는 특별한 스펙타클을 전시하고 있지도 않는 편이다. 등장 인물들도 거의 만나자 이별인지라 개별 캐릭터에 깊이 감정이입이 되기 보다는 그들의 짧은 만남과 이별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 전반적으로 넉넉하게 진행되는 전개 속도와 섬세한 작화 스타일 만큼은 확실히 지브리 스튜디오 특유의 시청각적 체험을 재연해준다고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앞으로도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이 계속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을 연출하게 될런지는 알 수 없지만 – 사실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체제 하에서 연출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못할 것 같다고 했댄다 – 판타지를 기반으로 자연과 인간이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세상의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담아 때로는 인간의 파괴적인 행동에 대해 날선 비판을 던지기도 하는 지브리 스튜디오 고유의 작품 세계와 스타일이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에도 충분히 재현 가능한 것임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는 앞으로 자주 언급될 수 밖에 없는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영진공 신어지












 

“벼랑 위의 포뇨”, 벼랑 끝의 미야자키 할아버지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각종 해산물, 이종교배 생물 포뇨, 섬마을 사람들


2008년의 연말에는 산타 할아버지보다 한발 앞서 미야자키 할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어른은 물론 우는 아이들에게도 선물을 안준다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산타 할아버지와 달리 미야자키 할아버지는 남녀노소 모두 희희낙락 즐길 수 있다는 지브리표 애니메이션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들고 오셨더랬습니다.


아들이 먹칠한 회사의 명예를 다시 되살리고자 은퇴 선언을 철회하고 분연히 일어선 그가 선택한 것은 ‘인어공주’입니다. 극장수입은 둘째 치고 캐릭터 판매로도 매우 짭짤할 것으로 보이는 ‘포뇨’가 등장하는 당 작품은 제작 전에 과거로의 회귀를 천명한 것처럼 ‘토토로’ 적으로 훌쩍 타임머신을 탔습니다. 100% 수작업 셀화로 완성한 손맛이 살아있는 그림과 작품 의 주 대상을 아이들로 한 점 등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마냥 미야자키 할아버지는 그렇게 과거로 돌아갔습니다.


연어마냥 잘 뛰어 다니는 포뇨. 파도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일선에서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미야자키 할아버지의 모습은 물론 아직 작품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겠지만 사실 아직까지도 후계자를 정해놓지 못했다는 점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그 어떤 슈퍼스타도 결국 평생 전성기 일 수는 없습니다. 천하의 미야자키 할아버지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로 확실히 전성기가 지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비주얼을 벗겨내면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던 작품성은 ‘포뇨’에 이르러서도 나아지지 못한 모습입니다. 비록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밋밋한 이야기와 주먹구구식의 사건들 그리고 시대착오적 결말은 실망스럽습니다. 점점 진부해져가는 미야자키식 이야기는 이제 그가 슬슬 용단을 내려야 할 때임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비록 전성기는 갔지만 그래도 그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상상력은 여전히 가슴을 따스하게 녹여줍니다. 포뇨와 소스케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보는 것 만 으로도 영혼이 1g정도는 거뜬히 정화되는 것만 같습니다. 그가 앞으로 얼마나 더 작품 활동을 할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작품들은 내 인생에서 손난로와 같았습니다.


미야자키 할아버지. 뒤늦게나마 메리 크리스마스~^^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