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윤성호

 

재능 있는 친구들을 보면 몸살이 날 정도로 질투를 한다. 

또 몸살이 날 거 같다.

<우익청년 윤성호> <은하해방전선>을 만든 윤성호 감독의 <두근두근 배창호>

개봉관을 세 번이나 찾게 만들었던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의 한 장면을 패러디해서 사랑을 얘기한다. 재치 넘치는 저 대사.

“이성은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고 키에슬로브스키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그토록 각잡고 썰푼 주제를 두 번의 빵빵 터지는 웃음과 함께 8분 만에 전달하는구나.

시바. 다음에 혹 만나게 되면 사귀어달라고 찐따 붙어야겠다.

* 보태기

생각해보니 <기쁜 우리 젊은 날>을 개봉관에서 3번 본 게 아니다. 재개봉관이었다.

왕조현에 대한 풋사랑에 빠져 극장 입구 홍보용 스틸 사진을 밤마다 뽀리까러 다니던 중삐리 시절. 극장 주인은 스틸사진 광고판에 끝내 자물쇠를 채우고 말았다.
그때 <천녀유혼>을 상영하던 재개봉관에서 동시상영해준 영화가 <기쁜 우리 젊은 날>이었다. 처음엔 왕조현 때문에 보게 된 <기쁜 우리 젊은 날>이 나중엔 <기쁜 우리 젊은 날> 때문에 왕조현을 덤으로 관람하게 만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하튼 <기쁜 우리 젊은 날>과 <천녀유혼>의 동시상영. 이 얼마나 놀라운 작품 선정인가. 재개봉 동시상영관은 우리 감성의 자양강장제였다.

돌이켜보면 항상 그랬다. <영웅본색>을 보러 동시상영관에 갔다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만났다. 찰리 채플린이라고는 바른손 문고에서 나오는 노트 디자인으로만 알고 있던 시절이었다. 흑백의 무성영화라는 사실에 친구와 나는 극장을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 자리에 눌러붙고 말았다. <영웅본색>의 윤발 형님 쌍권총 보다 더 놀라운 충격이었다.

<산딸기>를 보러 갔다가 만난 영화는 <스카페이스>였다.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는 정확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무섭고 멋있고 슬프고 안타까운, 정체불명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외에도 수없이 많은 영화를 나는 재개봉관에서 만났다.

값도 비싸고 대부분이 미성년자 관람불가라서 입장할 수 없었던 개봉관과는 달리 재개봉관은 알면서도 중삐리 고삐리들을 받아줬다. 물론 주된 관람 목록은 <여왕벌 시리즈> <애마 시리즈> <딸기 시리즈> 등등이었고 좌석에 앉아 담배도 뻑뻑 태웠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놀라운 영화들을 무려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작은 해방구라고 할까?

당시에는 수입 금지 영화도 부지기수였다. 당시 명분 없는 정권은 좌파의 색이 묻어나는 영화들을 특히 남미나 유럽 영화들을 우리와 차단시켰다.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안전하면서도 전두환의 3S에 부합하는 헐리웃 영화들.

그래서 영화에 관심 있는 이들은 더더욱 목마를 수밖에 없었다. 갈증이 커지니 욕망도 커지고, 욕망하면 상상력도 풍성해지는 법. 9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그 재개봉관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류승완처럼.

이젠 영화가 너무 흔하다. 흔하기 때문에 찾아보는 노력도 안 들이게 된다. 그리고 지금 나는 영화에 대한 관심이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모던 타임즈>와 <영웅본색>을, <천녀유혼>과 <스카페이스>를, <7인의 사무라이>와 <파마탱>을, <맨하탄>과 <촉산>을 함께 하는 극장이 있다면 다시 걸음이 옮겨질 것도 같다.


영진공 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