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방송은 몰락할 것인가?



1월 3일, 일본 라이브도어 뉴스에 일본 경제학자 이케다 씨가 쓴 [TV 종말의 시작]이란 컬럼이 올라왔다(원문링크 : http://news.livedoor.com/article/detail/5246269/ ). 내용을 대충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연말연시는 전혀 TV를 보지 않았다. 간간히 몇 분인가 눈을 돌렸지만, 어느 방송에서나 화려하게 차려입은 연예인들이 노래하고 떠들어대는 프로만 나왔다. 이 극단적인 백치화의 원인은 광고수입의 감소 때문이다. 며칠 전, 모 방송업계 심포지움에서 민간방송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는데, 다들 제작비를 절감하라는 강력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절감 폭을 늘리는 건 간단합니다” 라고 어느 PD가 말했다. “자존심을 버리면 되거든요.”

TV 시청자는 천만 명 단위로, 뭐가 팔릴 지 방송국 측에서 알기는 어렵다. 이런 경우, 가능한 수준이 낮은 시청자를 노리는 게 요령이다. NHK의 경우에는 이케가미 씨처럼 엄청나게 초보적인 것부터 해설한다. 민간방송도 그걸 알아차리고, 요번 연말 연시에는 이케가미씨 출연을 둘러싸고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케가미 씨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TV의 평균시청자는 [어린이 뉴스] 정도의 눈높이를 가지고 있다. 민간방송의 경우, 일본 TV의 츠치야 씨가 말한 것처럼 “바보에게 어떻게 보여질까”를 늘상 생각하고 있다. 제작비를 절감하려면 만드는 쪽도 자존심을 버리고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드는 쪽이 시청자를 바보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이 시청자들에게 전해지고 있으니만큼, 제대로 된 사람이 TV를 볼 리가 만무하다. 그리고 점점 TV를 보는 사람은 노인이나 전업주부 같은 정보약자 정도로 축소된다….. 라는 마이너스의 루프에 TV가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금년 7월의 아날로그 방송 정지는 TV 업계의 종말의 시작이다. 정부의 선전대로라면 이미 디지털 TV는 80% 보급율을 자랑하고 있지만, 이건 세대 기준의 숫자일 뿐이다. 댓수 기준으로는 반을 조금 넘었을 뿐이다. 즉, 거실 TV는 디지털 TV로 바뀌었지만 개인 방의 TV는 대부분 아날로그다. (그리고 아날로그 방송 정지와 동시에) 개인 방의 TV는 불연성 쓰레기로 버려질 것이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은 타블렛 단말기로 유튜브나 니코니코 동화를 볼 테니까.

이것은 일본의 회사가 처한 상황의 전형이기도 하다. 과거의 성공체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지 않은 채 품질 관리를 게을리하고, 인건비를 삭감하고, 하청을 늘리기만 한다. 모두 다 같이 천천히 가라앉기 때문에 경영자가 문책당하는 일은 없지만, 이 “삶은 개구리” 같은 상황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끝>


이 글을 보고 나는 문득 10년 전 일을 떠올렸다. 당시, 나는 모 케이블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때 이미 방송국 PD들은 공공연하게 “우리나라 방송은 초등학교 4학년에서 6학년 정도의 눈높이에 맞춰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황당한 일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에서 6학년의 눈높이에 맞춘 방송 프로그램이라니! 내가 그런 걸 보고 있었다니!

그 이후, 나는 급속도로 방송에 흥미를 잃었다. 일단 내가 초등학교 4, 5, 6학년 학생들과 지적 수준이 비슷하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거니와 – 인터넷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졌기 때문이다.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 연예인들이 나와서 말장난이나 하는 프로, 또는 정권에 비비발발 붙어서 한 자리 해먹으려는 앵커들이 떠벌이는 뉴스, 아니면 신데렐라 얘기 내지는 백설공주 얘기의 변주에 불과한 드라마 따위를 보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게 옳겠는가? 아니다! 차라리 웹질을 하면서 야동을 받아보는 게 훨씬 더 보람차고 즐겁지 않겠는가?

예전에는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켜놓고 멍때리고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제는 컴퓨터 앞에서 웹질을 하거나 타블렛을 들고 페북질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이제는 내 주변에서도 TV를 안 보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컴퓨터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스마트폰이 미친듯이 보급되면서, 여가 생활의 중심축이 거실 TV에서 개인화된 인터넷으로 옮겨지는 현상은 점차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방송 광고 수익은 국내에서도 분명하게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 2010년에 발표된 자료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공중파 방송 3사의 광고 수익은 2007년에서 2009년까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아마 2010년 역시 마찬가지로 줄었을 것이다.

[ 참고기사 : 지상파 2년째 매출 하락…광고수익도 감소 ]


국내에서도 제작비 절감의 압박이 상당한 모양이다. 이미 공중파 드라마는 거개가 외주 제작으로 돌려졌고, 돈 많이 드는 다큐멘터리나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방송 시간은 줄어들고, 연예인들이 입담으로 시간을 때우는 예능 프로그램 숫자만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하니 위의 컬럼에서 언급했듯이 – 제대로 정신이 박혀먹은 사람이 이런 걸 보느라 시간을 낭비할 리가 없다!


광고 수익이 줄어든만큼, 컨텐츠 2차 판매로 손실을 보전한다는 것도 쉬운 얘기는 아니다. 일단 국내에선 DVD 시장은 거의 죽다시피 했다. 흠, DVD 판매로 돈 벌긴 틀렸군. 케이블이나 IPTV는 공중파보다도 매출이 더 안 나온다. 흠, 여기도 텄군. 한류 붐을 등에 업고 해외 시장에 나간다? 지금 당장은 괜찮겠지. 하지만 외주 제작으로 대충대충 만든 드라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팔아먹을 수 있을까? 글쎄올시다. 그나마 드라마를 제외한 나머지는 더 암울하다. 예능? 그런 걸 어디다 돈 받고 팔겠냐. 다큐멘터리? KBS, MBC, SBS에서 볼만한 다큐멘터리 만든 게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디지털 TV니, 3D TV니, 스마트 TV니, 지금도 TV 시장을 둘러싼 격전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콘텐츠를 공급하는 방송국들이 활력을 잃고 시들거리면, 그 콘텐츠를 재생하는 플랫폼인 TV의 매력과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방송국들의 수익성 악화는 TV 시장 – 특히 현재 주류라 할 수 있는 거실용 대형 TV 시장의 쇠퇴로 이어질 공산이 높다.  온가족이 모여앉아 TV를 보는 광경은 우리들의 일상에서 사라지고, 타블렛이나 스마트폰에서 연령별, 성별로 분화된 TV 프로그램을 선택해 보는 것이 일반화될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거실 TV가 가족간의 교류를 돈독히 하는 수단이었노라고 주장하는 문화 평론가가 나올 것이고, 거실 TV앞에서 부모님과 함께 막장 드라마를 보며 분노와 기쁨과 지루함을 공유하던 시절을 추억하며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물론 세상 일은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2, 3년 내로 TV 방송국이 기적 같은 매출 신장을 일으키고, 케이블 방송과 IPTV가 초고속 성장을 거듭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KBS건, MBC건, SBS건, 어디가 됐건, 지금처럼 저질 드라마나 시시껍절한 예능 프로나 틀어주는 한, 내가 TV를 보는 데 시간을 투자할 일은 없을 것이다. 절대로!


…… 그나저나, “과거의 성공체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지 않은 채 품질 관리를 게을리하고, 인건비를 삭감하고, 하청을 늘리기만 한다.”라는 거, 도저히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런 된장, 띠바!

영진공 DJ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