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브레이브(True Grit)”, 코엔 형제의 정통 서부극 리메이크





“진정한 용기”(True Grit)라는 멋진 원제목을 갖고 있는 영화 <더 브레이브>는 법 보다 무력이 위세를 떨치던 시절의 – 안그랬던 시절이 어디 한번이라도 있었느냐만은 – 이야기다.

아버지를 죽이고 인디언 거주지역으로 달아난 범인 톰 채니(조쉬 브롤린)를 잡기 위해 14살 소녀 매티(헤일리 스타인펠드)가 연방 보안관 출신의 백전노장 루스터 코그번(제프 브리지스)를 고용하고, 여기에 톰 채니에게 걸린 다른 현상금을 노리는 텍사스 레인저 출신의 라보프(맷 데이먼)가 가세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정통 서부극에 가까운 작품이 <더 브레이브>다.










코엔 형제 감독의 영화를 놓고 ‘정통 서부극’에 가깝다고 묘사한다는 것은 사실은 코엔 형제 특유의 장르 비틀기나 블랙 코미디의 요소들이 그 만큼 부족했다는 뜻이 된다. 물론 코엔 형제라고 해서 이렇게 다소곳한 표정의 서부극 한 편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늘상 기대해왔던 바와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가 전개되고 결국 마무리가 되고 나면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더 브레이브>는 한 편의 서부극으로서는 괜찮은 편이고, 코엔 형제의 영화로서는 다소 심심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 브레이브>는 코엔 형제 최초의 서부극이기도 하지만 두 번째 리메이크 영화이다. 동명의 원작은 1969년작으로 존 웨인이 애꾸눈의 술고래 보안관 루스터 코그번을 연기했었고, 이후 루스터 코그번을 주인공으로 하는 두 편의 영화가 추가로 제작이 되었으니 아마도 코엔 형제와 그 나이 또래의 미국인들에게는 나름 “추억의 캐릭터”와 같은 존재가 바로 루스터 코그번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더 브레이브>에서 루스터 코그번이 처음 등장하는 법정 장면은 어린 매티의 시선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몇 십 년만에 부활한 서부극의 괴짜 캐릭터를 다시 맞이하는 지금의 미국인 관객들의 심정을 고려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작의 예고편을 찾아보니 <더 브레이브>에서 봤던 씨퀀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코엔 형제는 최대한 원작에 충실한 방식으로 리메이크를 진행했던 것 같으니 <더 브레이브>에서 유난히 정통 서부극의 느낌이 나고 있는 건 어쩌면 대단히 자연스러운 일이란 생각이다.

그렇다면 코엔 형제는 어떤 이유로 유명 서부극의 리메이크 프로젝트에서 각색과 연출을 맡게 된 것일까? 자세한 경위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사실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자로 나선 작품이라는 점, 그리하여 <더 브레이브>는 코엔 형제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내에서 1억불 이상의 흥행 수익을 올린 히트작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원작 서부영화의 내러티브를 충실히 따라라고 있는 <더 브레이브>에서 가장 큰 볼거리라면 역시 좋은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을 들 수 있겠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험한 길을 나선 14살 당돌한 소녀 – 이 캐릭터가 미국 사회가 법치주의 국가로서 디딤돌을 놓는 데에 기여해온 유태인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 역할의 헤일리 스타인펠드와 이제는 루스터 코그번 만큼이나 백전노장의 배우가 되신 제프 브리지스, 그리고 비교적 작은 역할이었음에도 각자의 몫을 충실히 해주는 맷 데이먼과 조쉬 브롤린, 그리고 오랜만에 봐서 더욱 반가웠던 배리 페퍼의 연기 모두 보기 좋았다.



영진공 신어지


 






“블라인드 사이드”, 삶의 사각지대를 채워넣는 방법






산드라 블록은 헐리웃의 주연급 여자 배우들 가운데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스피드>(1994)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몇 년 반짝 인기를 끌다가 대중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잊혀진 여배우’들 가운데 하나쯤으로 기억될런지 모르겠지만 북미권에서 산드라 블록은 남성들 보다 여성 영화팬들을 중심으로 상당히 탄탄한 인기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그야말로 자신이 출연한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갖고 보러도 가고 빌려도 보는 일군의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배우가 산드라 블록이다. 화려함이나 섹시함 등 소위 한창 잘 나가는 여배우들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들과는 거리가 먼 대신 중산층들의 동료 의식과 친근함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를 그간 꾸준하게 구축해온 덕이 아닌가 싶다.

남성 관객의 시각에서 봤을 때 산드라 블록은 역시나 졸리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쪽은 처음부터 아니었지만 옆에 있어서 격려가 되고 남자들로 하여금 다시 일어설 수 있게끔 용기를 불러일으켜주는 청량제 같은 매력을 발산한다 – 국내 미개봉작이긴 하지만 <건 샤이>(2000)에서 우울한 주인공 남자들의 대장내시경 치료사로 등장하는 산드라 블록은 그 캐릭터 자체가 산드라 블록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말 잘 어울린다.

한번도 코미디언으로 분류된 적이 없으면서도 이처럼 코믹한 연기를 잘 소화해내는 주연급 여배우는 그리 흔치가 않다. 비교할 만한 상대로는 리즈 위더스푼 정도를 꼽을 수 있을까.











<블라인드 사이드>는 그런 산드라 블록에게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영화 자체가 워낙 성공적인 덕을 본 것도 있지만 <크레이지 하트>(2009)의 제프 브리지스와 마찬가지로 그간의 공로에 대한 표창의 성격이 강한 것 같다. 다시 말해 그간의 출연작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혼신의 연기를 눈에 띄게 펼쳐보였다기 보다는 ‘저는 그저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새삼스럽게 상까지 주시니’ 정도로 보인다는 뜻이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등장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인생의 ‘사각 지대’에서 버림 받은 삶을 살다 갈 수 밖에 없었던 거구의 흑인 소년이 어떻게 세상의 주인공으로 우뚝 설 수 있었는지를 차분하게 들려준다. 더군다나 이것이 현재진행형의 실화라고 하니 그 감동은 왠만한 인간 극장류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이 그랬듯이 <블라인드 사이드> 역시 영화 마지막에서 실제 주인공들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대중적인 감동의 소구 포인트를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온가족은 물론이고 단체 관람용으로도 적합한 좋은 영화다.











창작이 아닌 실제 있었던 일들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가 영화화된 것을 보았을 때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은 투오이 가족이 너무 부자이고 마이클(퀸튼 아론)의 성공을 위해 그 부의 위력을 아낌없이 행사하더라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돕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물질적으로 여건이 되지 못하면 그와 같은 인생의 기적은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올까 노파심이 든다는 것이다. 또한 가진 자들의 – 어떤 방식으로든 – 사회 환원이 불편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이클과 같은 사각 지대의 아이들이 만들어지는 사회 구조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별반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눈치여서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런 구조적인 원인을 짚어서 뭐 어쩔 거냐고 물으면 나 역시 답은 없다. 그런 점에서는 투오이 가족이 마이클의 인생을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어준 사례를 한 편의 영화로 담아 다른 누군가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답안에 가까운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영화의 실제 인물들인 투오이 가족과 마이클 오어

부디 이 영화 보시는 분들은 괜한 복잡한 생각없이 재미있게 보고 감동도 받고 그러시길.

이 영화는 누구나 갖고 있는 삶의 사각 지대를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정답에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진공 신어지

 

“시리어스 맨”, 코엔 형제는 만들기만 하면 걸작이구나


어떤 소재의 영화를 만들더라도 코엔 형제가 만들면 걸작이 되고 그들 특유의 내음이 난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돌이켜 보면 코엔 형제의 영화들 중에서도 범작은 있었다. 하지만 <시리어스 맨>은 분명 잘 만들어진 축에 속하는 작품이다.

<시리어스 맨>은 67년 미네아폴리스의 유태인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코엔 형제 자신들의 어린 시절 추억담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들도 분명 히브리어 학교를 다니고 유대식 성인 예식을 치렀으리라.

코엔 형제의 작품들이 종종 삶과 종교에 관한 메타포를 암시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작품 전체의 메인 테마로 삼았던 적은 <시리어스 맨>이 처음이라 생각된다.

주인공 래리(마이클 스터버그)는 굳이 비교하자면 구약의 욥과 같은 인물이다. 자신에게 닥쳐오는 안좋은 일들 – 아주 어처구니 없기까지 하다 – 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신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 랍비들과 상담하지만 결국 답을 얻지는 못한다.

특히 영화의 결말은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불가역성을 강조한다.
궁지에 몰린 래리는 마침내 한국인 학생의 ‘미스테리한’ 뇌물을 받아들이는데,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는 바로 그 순간에 무시무시한 전화를 받는다. 래리의 아들 대니는 압수 당했던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20달러 지폐를 되찾아 더이상 친구를 피해 달아날 필요가 없어졌지만 그 보다 더 무서운 토네이도가 다가온다. 집 안으로 잽싸게 피해 달아나는 식의 방법으로는 절대 피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영화 도입 부분에 삽입된 단편도 결국 불확실성에 관한 이야기다.

굳이 메시지를 뽑아내자면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건 코엔 형제의 영화를 보는 바른 자세가 아니다. 정리하려고 하지말고 그냥 보여주시는 대로 받아들일지어다.

유명한 스타 배우도 없고 코엔 형제 영화의 단골 출연 배우도 없다 – 물론 이것도 미국 영화니까 낯익은 배우 두어 명 정도는 나온다. 캐스팅의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건 간에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작품을 위해선 최상의 캐스팅이란 실은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흥행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었을테지만 낯선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종종 아주 사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곤 한다. 낯익은 배우들이 주는 기시감이나 고정된 이미지가 배제되기 때문에.

코엔 형제 영화의 출연진들은 대체로 매끈한 스타급 주연 배우와 함께 굉장히 재미있는 조연과 단역 배우들로 구성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시리어스 맨>은 스타급 배우가 없는 영화이니 만큼 출연진 전부가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나칠 정도로 희화화된 인물은 없지만 다들 이런저런 장기를 발휘하며 한 웃음씩 전해주신다.

소품 성격의 작품이긴 하지만 그 대신 아주 밀도 높은 연출의 내공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미장센과 음악의 사용도 훌륭하지만 특히 음향 효과의 사용이 유난히 특출나게 느껴진다.

다윗이 밧세바의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았듯이 래리가 이웃집 여인 샘스키 부인을 지붕 위에서 발견했을 때 샘스키 부인의 담배 태우는 소리가 거기까지 들려올 리가 만무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것으로 래리의 오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 어쩌면 뜻밖의 목표물을 발견한 남성의 능력이란 실제로 초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인지도. 그래서 이번엔 음향 편집 담당자의 이름을 찾아봤다. 코엔 형제와는 초기작부터 줄곧 함께 작업해온 스킵 리브시(Skip Lievsay)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모두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Somebody To Love로 장식했다. 그러고 보니 샘스키 부인 역의 에이미 랜데커에게서 그레이스 슬릭의 느낌이 난다.

감독, 작가, 프로듀서인 코엔형제(Joel & Ethan Coen)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