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풍선>, 성찰의 시간을 제공하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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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 샤오시엔 감독께서 어인 일로 프랑스까지 가서 영화를 만드셨는가 의아했는데 오르세 미술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에 초빙되어 만든 작품이라고 하는군요. 영화 속에도 직접 언급되는 알베르 라모리세 감독의 단편 <빨간 풍선>(1956)과 똑같이 생긴 빨간 풍선이 등장합니다. <쓰리 타임즈>(2005) 까지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해온 주천문 작가가 이번에는 빠진 대신 제작자인 프랑소와 마골랭이 공동 각본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미리 같이 썼다기 보다는 현장에서 이렇게 합시다, 저렇게 합시다 얘기 나누고 프랑스어 대사를 프랑소와 마골랭이 적어서 배우들에게 나눠주고, 뭐 그렇게 작업하셨겠지요. 아마 그랬을 겁니다. 같은 파리에서 새 영화를 찍은 홍상수 감독도 그렇게 작업하셨을테고요.

정윤철 감독의 <좋지 아니한가>(2007) 의 리뷰에서 “전체적인 내러티브가 후련하지 않다”고 했던 불만은 사실 이번 <빨간 풍선>을 비롯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대부분 작품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렇다할 스토리가 없는 영화입니다. 파리에 살고 있는 배우이자 이혼녀 수잔(줄리엣 비노쉬)에게 어린 아들이 하나 있고(다른 나라에 딸이 하나 더 있죠), 이들은 영화를 전공한 중국인 유학생 송 팡을 새로운 베이비시터로 맞아들입니다. 아래 층에는 전 남편의 친구가 세들어 사는데 1년치 방세를 내지 않고 있어 결국 쫓아내기로 한다, 이게 전부입니다. 영화를 통해 일반적으로 얻고자 하는 서사적인 재미라는 관점에서는 완전 빵점인 영화인 겁니다. 그러나 달리 말하자면 애초에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는 그런 재미를 목적으로 했던 것이 아니라는 얘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재미를 추구하는 대부분의 영화들이 어떤 형태로든 ‘판타지’를 구현한다면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는 ‘일상’을 있는 그대로 담는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특히 대만이 아닌 해외에서 만들어진 두 작품 <카페 뤼미에르>(2004)와 <빨간 풍선>이 그렇습니다. 평범한 인물들이 서로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각자의 일에 열중하다가 때로는 추억에 잠기기도 하는 모습들을 담담히 관찰하는 이런 영화를 보는 동안 발견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세상 어느 곳에서든 자신의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캐릭터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문득 스스로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하여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는 다름아닌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선물하는 영화라 부르고 싶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판타지를 경험하기 위해 찾는 곳이 영화관이라 하지만 막상 일상 속에서 그 자체를 관조할 수 있는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극장 안에서 잠시 아주 일상적인 것들을 찬찬히 바라보는 기회를 갖는다는 건 의외로 각별한 경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들이 거장이라고 부르는 감독의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일년에 수십 편의 판타지를 경험하는 와중에 나 자신의 모습을 잠시 돌아보게 해주는 영화라면 한 두 번쯤은 값지다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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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