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쌍의 “Ballerino”와 시체 애호증

 리쌍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시체 애호증이란 소재를 다룬다 . 물론 그런 소재에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이다 .’ 라는 통속적인 변명을 적용시킨다면야 섬찟하면서도 가슴 절절한 뮤직비디오가 되겠지만 어찌보면 그런 변명만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 사실은 스트립 댄서였던 여자를 자신의 상상 속에서 발레리나로 포장하고 있는 장면만 봐도 , 이 뮤직비디오는 많은 것을 은유하고 있는 듯하다 . 시체 애호증은 1차적으로 보이는 도착증세에 불과하며 , 실 그것이 은유하는 바는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 타인의 의지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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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애정을 가장한 기만은 누구나 다 겪어왔고 , 또 겪고 있지 않나 . 선생님에게서 , 부모님에게서 , 연인에게서 . 개인의 의지만이 적용되는 , 침범할 필요가 없는 범위까지 그들은 애정이라는 허울좋은 무기를 들고 그 공간을 침략하지 않았던가.

 아무튼 이 뮤직비디오는 , 류승범이라는 대중적 아이콘에 시체 애호증이라는 매니악한 소재를 ‘묻어가게’ 끔 하는 것 같다.  아직 신문지상에 딱히 파란이 일어나지 않은거 보면.

 시체 애호증에 대해 검색하다가 , 내가 가진 fetishism 이 생각나서 사전에선 뭐라고 정의하며 관련된 단어들에는 무엇이 있나 호기심이 일어 ‘페티쉬’ 란 단어로 검색을 해보았는데 역시나 성인인증이 필요하다 . 시체 애호증은 성인 인증 안 하더니만 … 일부 도착증엔 19세 딱지 붙이지 않는 건 케이블 TV나 검색엔진이나 마찬가지인가보다.
 

  

영진공 담패설

술 취해 들어가던 저녁

장안평에 붉닭집을 내고 8개월만에 폐업이냐, 오기냐를 고민하는 친구를 찾았다.
멀기야 멀지, 거기가 어디라고… 하지만 불알친구같은 놈이 개업후 한번도 반짝여보지 못한채 쓸쓸히 빚을 떠안고 정리하는 가게를 안갔다는 건 내 게으름을 탓해야 하는 거다.

“왔냐?”
“왔다”
세 병의 소주와 두 병의 맥주, 한마리의 닭과 한접시의 오돌뼈를 씹으면서 이승엽의 2안타를 안주로 소주를 삼켰다.

“얼마 까진거냐?”
“8천”
“아직 나보다 4천 적구나.”
“개새끼”
“마시자”
“탁”

“주욱”
“주욱”
“주욱”

9시가 넘어 일어섰지만 휘청했다.

“좀 마신거 같네”
“마지막이겠구나”
“가라”
“응”

환승을 하러 종로 3가에 내렸을 때 중국산 만원짜리 리모콘 자동차를 하나 집었다. 대가리에 붙은 바퀴가 몸통을 축으로 회전하는 놈이었다.

자고 있는 놈 머리 맡에 두고 누으니 꼭 그 자동차 같은게 우리 삶이었다.

존나게 돌리고 달려도 몸통의 반 높이도 안되는 장애물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가는 모습이나 설레발치며 뱅글뱅글 돌아봐도 결국 지 몸뚱아리 하나 건사하는게 전부인 부산함이나 그게 그거지 뭐…

자고있던 마누라를 발로 깨워서 소주 한잔 달라고 했다가 정확히 인중과 쇄골을 왼손 훅으로 맞고서야 조용히 등 돌리고 누웠다.

‘씨발, 가게 나올 때 잘 될거라고 말이라도 해줄걸.’

마누라한테 맞은 인중이 너무 아퍼서 어깨가 들썩이는 걸 마누라가 아는지 모르는지 얕은 코골음이 조금 높아졌다.

1줄요약.
내 장롱에 쌓인 먼지들아, 니들도 내인생 같구나.


영진공 그럴껄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데뷔작, <졸업>을 다시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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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졸업생'(발음은 '그래듀잇')이다
미국의 6, 70년대 청년들 모두가 섹스, 마약, 로큰롤에 탐닉한 건 아니었다. 어느 시대에나 어느 그룹에나 너드 범생은 한둘 씩 꼭 있기 마련이고 이들이 언제나 충실하게 기성세대의 가치를 재현하는 것도 아니다. 나만 해도 너드였던 학창시절 속으로는 반항심이 드글거렸으며 그 결과 지금 이 모양으로 살고 있으니까. 하여간, 그럼 그 당시 겉으로는 아주 충실하게 부모 말 잘 듣는 생활을 했던 아이들은 실제로 어떤 생각과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았을까. 이게 궁금하다면 <졸업>을 보면 될 것이다.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부터 벤저민의 고난은 시작된다. 고등학교 땐 대학이, 대학에 가서는 졸업이 목적이었지만 대학을 졸업한 지금 그에겐 마땅히 하고픈 일도 없고 무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다. 그렇다고 부모가 요구하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마뜩치 않다. 그에게 처음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은 로빈슨 부인의 유혹에 의해서며, 섹스, 마약, 로큰롤의 시대이던 당시에 대학을 졸업하고도 버진이었던 그는 로빈슨 부인의 유혹을 받고 결국 매일 밤마실을 나가게 되면서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드는데, 문제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자발적 선택’이라곤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거다. 어리버리하고 멍한 벤저민의 영화 초반 모습은 충분히 코믹하며, 더스틴 호프먼이 새삼 코미디 배우로서 얼마나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 되새기게 된다. 이 영화는 더스틴의 출세작이기도 하지만 첫 주연작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모든 일에 어수룩하고 어리버리하던 벤저민이 비로소 사람 꼴이 돼가는 건 일레인을 만나면서다. 자신에게 성의 신비로운 세계를 처음 알려준 ‘어른 세대’인 로빈슨의 말을 거역하면서까지 일레인을 만나고, 일레인이 다니던 학교 근처로 이사가 그녀를 뒤쫓고, 결혼식까지 깽판놓게 되는 건 모두 벤저민 스스로의 선택과 결단, 그리고 행동에 의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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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람은 실제론 6살 차이


여기엔 꽤 재미있는 해석 가능성’들’이 있다. 일단 그의 세계를 열어준 것이 모두 여성이고, 어머니 또래의 여성을 배반하면서 자기 또래의 여성을 선택하는 것을 외디푸스 컴플렉스의 변형으로 해석해도 재미있을 것이며, 벤저민의 반항과 선택에서 적으로 설정되는 것이 자신의 부모, 특히 아버지와 로빈슨 씨가 아닌 로빈슨 ‘부인’으로 설정된 것에서도, 당시의 시대가 가지고 있던, 여성주의 관점에선 ‘한계’로 볼 수 있는 지점들(즉 아버지에게 반항 못하니 어머니 혹은 유사-어머니한테 반항하는) 혹은 이것을 오히려 ‘한계’라기보다 또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지점들(가부장제는 성인/기득권 계층의 ‘여성’의 도움 없이는 완성이 불가능하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학을 졸업한 뒤에서야 처음 성관계를 하고 자신의 선택을 하는 벤저민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차 사회화가 늦어지면서 성인이 되는 시기가 늦어지는 현상, 즉 키덜트가 등장하게 되는 현상의 시초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의 시스템이 지극히 폭력적이며 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거기에 저항할 수 없기에 무력감을 느끼며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조건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그 본질을 드디어 뻔뻔하게 까발리고도 그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들이 완성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해 개인은, 청년들은 분열증을 겪으며 결국 어른이 되기를 스스로 멈추거나 거부하고, 혹은 자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 더스틴 호프먼이 7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스타’이자 아이돌로만 머물지 않는 진정한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이러한 청년상과 사회상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배우였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졸업>은 67년도작이다.) 그리고 그 계기는 바로 <졸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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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어찌나 아름다우신 옵퐈의 옆 모습이신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일레인과 버스를 잡아타고서 뒷자리에 앉은 벤저민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많은 평론가들은 그간 결코 밝을 수 없는 미래, 해피엔딩이지만 결코 해피하지 않는 엔딩 방식에 대해 말하곤 했다. 나는 ‘어느 순간 굳는 표정’ 보다는, 일레인과 벤저민이 서로를 바라보는 타이밍이 계속해서 어긋난다는 사실이 더 의미심장해 보인다. 사실 ‘표정이 어떻게 굳나’ 아무리 지켜봐도, 표정이 확 굳어버리는 건 벤저민보다는 일레인 쪽이더라는. 그리고, 이건 지극히 당연하지 않겠는가. 당시는 여성의 운명이 여전히 배우자가 누구냐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오히려 결단은, 비록 벤저민의 입장에서 ‘상대’이자 ‘타자’가 되었기에 선택의 대상이 되긴 했으나, 그 선택을 받아들인 일레인의 결단이 더 크다. 내가 오히려 재미있게 보았던 것은, 버스 뒷좌석에 막 앉아 마주 보고 미소지었던 이 두 사람이, 얼굴을 돌린 후에는 상대를 바라보는 타이밍이 번번이 서로 어긋나서 둘이 다시는 결코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분명히 벤저민은 그곳에 자기 차를 몰고 왔는데, 왜 떠날 때엔 버스를 타고 떠나지? 벤, 차는 어쨌수?) 나는 이 엔딩을, 결코 ‘그럼에도 밝지 않은, 언해피 엔딩’으로 보고 싶지가 않다.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협력하여 이루어 가는 관계라는 걸, 그렇기에 서로 마주보는 것도 사랑이지만 함께 나란히 같은 방향을 보는 것도 사랑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으로 보고 싶다. (아, 나이가 드니 더럽게 해피엔딩 좋아하게 되는구나. 클클)

영진공 노바리


ps. 로빈슨 마님의 그 능란한 ‘작업 기술’은 본받아 마땅한 교본감이다. 권위에 꼼짝 못하는 아이를 잘도 얼르다가 호통치다가 한다. 만세!! (이 영화 찍을 당시 앤 밴크로프트는 더스틴 호프만보다 불과 6살 연상이었다.)


ps2. 마이크 니콜스는 원래 연극감독이었다. 이 영화를 자세히 보면, 세트 안에서 배우들의 동선과 카메라의 위치 움직임이 확실히 연극적인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마이크 니콜스는 연극이 아닌 영화에서 카메라의 앵글이 창출해내는 특별한 효과도 알고 있었고 이를 적절히 써먹고자 했다. “로빈슨 마님 다리에 갇힌 벤저민 샷”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샷 중 하나다.


ps3. 역시 ‘신인감독’ 마이클 니콜스는 젊구나.


ps4. 이 영화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아메리칸 뉴 시네마 특별전과 시네바캉스에서 상영되었습니다. 제가 본 날은 7월 21일 토요일 오후 다섯시 반이었군요. 일하다가 그대로 뛰어나가 영화보고는 다시 들어와 일을 했다죠.

새우깡 먹는 갈매기

clm1222.bmp며칠 전에 여객선 탈 일이 있었다.
배가 떠날 때-난생 처음으로-갑판에서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주었는데
워매, 족족 잘도 받아먹는 갈매기들이여.
내 쪽으로 돌진하는 갈매기들이 무서워서
던지고 뒷걸음질, 던지고 뒷걸음질, 을 반복하면서도
결국 한 봉지를 다 던졌다.
갈매기가 미처 낚아채지 못한 새우깡은 바다 위로 둥둥.
그것들도 갈매기들이 잽싸게 집어먹긴 하더라만은
과자 기름때문에 바다 오염되는 것도 상당하겠네… 란 생각 들더라.

어쨌든 다음 날. 다시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
이번엔 새우깡을 일부러 구입하진 않았지만
배에 타자마자, 다른 관광객들이 던지는 걸 받아먹는
갈매기들을 열심히 구경하였다.
갈매기들은 배 주위에 원을 그리며 빙빙 돈다.
과자를 낚아채며 휘잉 한 바퀴 돌고 돌아와
또 낚아채고 다시 휘잉 한 바퀴… 계주 주자 같다.
그 애들은 배가 오갈 때마다 먹을 게 생긴다는 걸 알고 있겠지.
그러니 그렇게 배를 따라다니며 새우깡 달라고 깍깍거리겠지.

배 주위를 날며 새우깡을 받아먹는 갈매기들을 보고 있자니
저 애들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새우깡 먹는 갈매기, 가 되었구나 싶더라.
갈매기는 전세계에 분포해 있다는데
전세계 갈매기들이 모두 새우깡이 주식은 아닐 거 아녀.
물고기인지 조개인지 벌레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살기 위해선 뭔가 잡아 먹는 행위를 하고 있을 거 아녀, 세계 각국 갈매기들이.
근데 내 눈앞에서 날고 있는 이 놈의 갈매기들은
이 지역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새우깡 먹는-그것도 받아먹는-갈매기가 되었단 말이지.

30분마다 출항하는 배 주위를
악착같이 따라다니면서 새우깡을 얻어 먹다가
배가 다니지 않는 밤엔 쉬고
다시 날이 밝으면 또 배를 따라다니는 일과를
보내게 된 거란 말이지. 이 지역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그런 삶을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 거란 말이지.
갈매기로서의 원래 식성이나 생활양태 같은 게 뭔지 판단할 겨를도 없이
태어나서 정신 차려보니 새우깡이 날아오고 있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새우깡 먹는 갈매기들이
꼭 사람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거시기했으.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살아가는 방법도 많을텐데
새우깡 받아먹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서
의심 한 번 안 해보고
그 쉬운 걸 안 받아먹는 놈을 비웃고
새우깡 받아먹는 것에 익숙해진 애들 틈에선
새우깡 낚아채는 실력으로 강자와 약자가 구분되고.
어떤 심정이었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냉소는 아니었어. 처량한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눈 앞의 갈매기들을 멍하니 보면서
이런저런 오만 생각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돌렸더니
어느 샌가 배가 육지에 닿아 있는 거라. 아쉬워서
“아, 벌써 도착했네.”
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일행이 기가 찬 듯 말하더군.

“저기, 아직 출발도 안 한 거야.”


-재외공관통신원
도대체(
http://dodaeche.com)

선빵의 사실관계, 그리고 <디워>의 마케팅에 대해서 한 말씀…

※ 편집자 주: 이 기사는 원래 인기 블로그인 <한윤형의 블로그>의 글에 리플로 달린 것인데, 영진공 독자께서 제보하여 주신 것입니다.  편집진이 이 기사를 검토한 결과 나름대로의 근거와 논리가 기사화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글쓴이의 허락을 받아 이를 게재하는 바이며, 이 기사에 거론된 관계자 측의 반론이 있다면 이후 역시 동일한 비중으로 게재할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밝히자면, 저는 영화 언저리에서 서식하는 사람입니다. 업계의 고급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10년차 이상의 짬밥을 먹은 영화계 인간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있고, 업계 동향에 대해 딱 그만큼의 통빡을 지닌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평범한 10년차 영화인’이라는 얘깁니다^^;;블로깅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 아직 둥지가 없는 눈팅족이기도 합니다. 한윤형님의 블로그에 좀 길다 싶은 댓글을 달고자 하는 것은, 둥지 없는 눈팅족 주제에 좀 심하게 입이 근지러워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윤형님 말마따나, 논쟁을 해도 좀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고들 했으면 싶어서 노가다 좀 했습니다.

쇼박스가 <디워>를 라인업에 올린 것은 2006년 2월 언저리입니다. 관련 소식을 전한 프레시안무비 오동진 기자의 기사가 2월 25일자이니 2월 말 경이군요.

영화계에서 투자 좀 한다는 투자사들 치고 심형래 감독과 미팅 한 번 안 해본 투자사는 아마 없을 겁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몇 년 간 지속적으로 심 감독의 요청을 거절해왔지만, 어쨌거나 심감독의 뚝심으로 영화는 완성단계에 있었고 투자배급사들은 다시 한 번 심 감독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막판 투자와 배급 때문이었죠. 전화를 피하는 투자사가 대부분이었지만, 쇼박스는 심 감독을 만나주었습니다. 물론, 똑똑한 쇼박스는 이때쯤 이미 주판알 다 튕기고 전화 받은 겁니다. 쇼박스는 무서운 회사입니다. 쇼박스가 당시로서는 누구나 꺼려하던 이 골치 아픈 작품을, 말 많고 다루기 힘든 심형래 감독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래도 남는 장사라는 명확한 판단이 이미 섰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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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산업이 극장체인을 소유한 메이져 주도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후발주자였던 쇼박스는 언제나 과감한 승부수를 통해 점유율 1위에 올라선 회사입니다(CJ와 쇼박스는 매년 자신들이 산출한 점유율 자료를 공개하면서 자기들이 1등이라고 주장합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원래 압도적 1위여야 마땅한 CJ가 사실은 늘 밀리는 듯이 보이는 게 실상입니다. 쇼박스는 1000만 영화가 벌써 두 편이잖아요?^^).

후발주자 쇼박스는 어떻게 업계 1위로 올라섰는가? 이를테면,
영화관람료 인상에 대해 영화인들은 언제나 몸을 사렸지만(오르면 좋지만 관객 반발이 무서워서 영화인들 스스로 영화관람료 올리자는 소리 잘 못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쇼박스는 걍 해치웁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영화사들과도, 동종 극장업계와도, 문화관광부와도 한 마디 상의 없이 ‘주말 관람료 8,000원’을 시행해 버렸고, 몇 달 안 가서 CJ와 시네마서비스도 따라했고, 문광부도 그럭저럭 넘어가 주었습니다. 저질러 버림으로써 업계 표준을 재정립하는 과감한 승부수. 이것이 쇼박스의 스타일이라는 걸 보여준 최초의 사례입니다.

두 번째 사례는 ‘유료시사회’입니다. 시사회인데 유료라는 이 얄궂은 시도는, 영화계의 ‘주말개봉’ 관행을 완전히 깨뜨려버립니다. <친구>가 대박 터지던 2001년까지 영화계에서는 ‘주말 개봉’이 관행이었고, 여러 개봉관 중 메인 상영관은 늘 ‘서울극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 영화계의 눈길은 일제히 서울극장 앞으로 향합니다. 경쟁자인 동시에 나름 끈끈한 동업자들이기도 한 충무로 사람들은 그래서 토요일 마다 서울극장 앞으로 모이곤 했습니다. 어떤 영화가 대박이 터지면 자기 일 아니더라도 쥔장으로부터 밥 얻어먹을 수 있으니 좋고(저도 진짜로 ‘1만 원 권’이 든 ‘만원사례’봉투를 <친구> 개봉 날 받았더랬습니다^^), 망하는 꼴 보면 빈말이라도 위로 한 마디 던지고 가는 장소가 바로 서울극장 앞 커피숍이었습니다. CGV로부터 시작된 멀티플렉스가 서서히 힘을 발휘하면서 이런 풍경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 때부터, ‘주말개봉’ 관행이 와해되기 시작하고 금요일 저녁 개봉 같은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주말 박스오피스에 금요일 저녁 개봉분 정도라도 더 얹으면 세 과시가 되니까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금요일 저녁, 금요일 오후 개봉이 추진되었습니다. 토요일 오전 서울극장 개봉이 지닌 의미는 당연히 흐려지죠. 전날 저녁 CGV 강변에 얼마나 관객이 들었는지 다 아는 처지에 토요일 오전 서울극장에 나가볼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 때 쇼박스가 한 건 합니다. ‘유료시사회’라는 명목을 붙여서, 목요일 개봉을 추진해버린 거죠. 금요일 저녁만 해도 어떻게 주말로 봐줄 만 한데,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 벙찐 CJ와 시네마서비스는 어떻게 했는가? 조용히 쇼박스를 따라합니다^^. 그 후로 슬슬 수요일 저녁 ‘유료시사회’도 열고 뭐 그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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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대대적인 스크린 독과점과 과다한 마케팅비 지출’로 대표되는 ‘본격적 블록버스터 마케팅’의 시대를 연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쇼박스에만 손가락질 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걍 ‘선빵을 가리는’ 중입니다^^;;;. 최초의 ‘1천만 관객 영화’인 <실미도>가 개봉당시 325개관을 확보했고 그것만으로도 논란이 일고 있을 때, 쇼박스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개봉하면서 440개 개봉관을 확보, ‘400개관 개봉’ 시대를 엽니다. 2년 후, <괴물>을 배급할 때는 ‘600개 관 개봉’을 밀어부칩니다. 그래서 CJ나 시네마 서비스가 낫다고 말하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투자배급사가 극장까지 독점하고 있는 이 막돼먹은 한국영화 시장에서 더 나은 놈이 누가 있겠습니까? 똑같은 게임의 법칙 속에서 싸우고 있는 그들은 불과 몇 년 만에 한국영화 시장을 승자독식의 진흙탕시장으로 만들어 놓은 똑 같은 놈들이죠. 다만, 저는 지금 ‘차마 아서야 할 짓’을 쇼박스가 늘 앞장서서 해왔다는 얘길 하고 있는 겁니다.

극장체인을 소유한 메이져 배급사라는 건 정말 악질적인 괴물입니다. 이 괴물은 영화를 완전한 소모성 진열상품으로 전락시킵니다. 일 년에 30편 이상 신작에 투자하는 투자배급사가 극장체인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투자하는 작품 하나하나의 흥행성적에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영화를 걸면 극장이 매출의 50%를 가져갑니다. 매점 운영 등을 통한 부가수익도 있죠. 최근엔 극장 매출에서 매점 매출이 영화 티켓 매출을 상회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극장체인을 소유한 투자배급사는 그 영화가 일단 완성되어 극장에 걸리기만 하면 상당한 액수의 투자분을 쉽게 회수 할 수 있겠다는 통빡이 나옵니다.

정작 영화를 제작한 제작사가 수익을 분배 받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투자배급사가 한 작품에 투자를 결정하는 순간, 1.5%에서 2%의 관리수수료를 총제작비에서 공제받습니다. 배급을 하면 수수료 20%를 뗍니다. 이것들은 모두 ‘최우선적’으로 공제되는 항목입니다. 영화 제작 총 기간에 해당하는 기간만큼 계산해서 금융비용도 제합니다. 사채업자들의 행태라고 볼 수 있죠. 평소 저는 관리수수료와 금융비용 공제관행이야말로 영화투자가 진정한 ‘투자’가 아닌 ‘마이킹’에 해당한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요즘 영화개봉 시 과다한 마케팅비 지출이 자주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순제작비 30억짜리 영화에 마케팅비가 보통 15억. 영화가 잘 되거나 사전에 뻥튀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20억도 아깝지 않게 씁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영화를 걸어 매출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위에 열거한 항목들을 ‘선 공제’한 후에는, 순제작비 보다 먼저 회수하는 항목이 바로 마케팅비이기 때문입니다. 마케팅비는 명목상으로는 투자자와 제작자가 상호 합의해서 규모와 지출내역을 정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사실상 배급사가 전적으로 계획하고 운용하는 것이 통상관례입니다. 투자배급사는 분위기를 띄워야할 필요성이 있거나 반응이 좀 온다 싶으면 아까운 줄 모르고 마케팅비를 지릅니다. 과다하게 지출된 마케팅비가 매출에서 공제되는 만큼, 순제작비 회수는 그 만큼 뒤로 밀리게 되고, 영화가 정말 장사가 잘돼서 위의 여러 항목에 대한 공제가 끝나고, 마케팅비 회수도 끝나고, 순제작비까지 똔똔을 맞추고 나야만 제작자는 가져갈 몫이 생깁니다. 대한민국에서 극장체인을 소유한 메이져 투자배급사는 이런 식으로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대박영화를 내놓은 제작자들도 메이져와의 갑을 관계에서는 꽤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극장에서 내리고 난 후 제작사인 MK픽쳐스는 쇼박스를 고소할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습니다. 쇼박스의 정산서에 계상되어있는 마케팅비 액수가 너무나 터무니없었던 거죠. 천하의 강제규, 이은, 심재명 삼각동맹도 결국 쇼박스 앞에서는 칼을 거둡니다. 침 한 번 뱉고, 고소를 접은 겁니다. 아무튼, 요즘 종종 제기되는 ‘과다 마케팅비 논란’도 쇼박스가 선빵을 질렀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교차상영’도 메가막스와 CGV 두 체인의 골드회원인 제 기억으로는 메가박스 측이 먼저였던 것 같네요(요건 정확한 입증이 필요한 얘깁니다만…^^). 너무 길게 쇼박스 얘기만 한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요즘 한국영화시장의 폐해라고 지적되는 현상들을 대체로 이 회사가 시작했다는 거. 그래서 그들은 시장에서 승리했다는 거. 쇼박스의 지난 행태를 알면 한국영화시장의 문제점이 다 보인다는 거. 이것이 요점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디워>를 선택했다는 거. 쿠궁—

쇼박스가 <디워>를 선택할 때 CJ는 <중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천> 못 보신 분들,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스토리가 삑사리’라는 점에서 <디워>와 동일하사용자 삽입 이미지지만 CG 하나 만큼은(그것도 완전 국산CG) 오히려 <디워> 보다 윗길이라고 보여지는 이 영화가 그토록 처절하게 망하도록 내버려둔 디워빠들의 무관심을 이해할 수 없답니다. 그들은 그 때 뭘 하고 있었을까요?

잠시 옆길로 샜습니다. 죄송.

어쨌든 쇼박스는 <디워>에 약 100억 이내의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사실 관계 확인이 어렵습니다. 기사 마다 60억에서 100억까지 고무줄입니다). 300억 가량의 제작비 중 1/3 혹은 5/1 정도를 투자하고, 국내배급권과 해외배급권을 챙깁니다. 물론 그 액수만 하더라도 웬만한 국내 블록버스터에 전체 투자하는 규모입니다. 쇼박스는 아마 이런 식으로 주판알을 튕겨 보았을 것입니다.

1) 2006년 말 <중천>에 맞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칠 수 있는 확실한 블록버스터 확보.
(< 디워>와 계약할 당시 연말 개봉을 예상했었다고 합니다. 좀 늦어졌죠) 투자금액 면에서는 <중천>보다 적은 투자로 맞싸울 수 있음. <중천>의 정우성, 김태희가 스타성이 있지만, 심형래의 매체 홍보력도 막강. 그리고 그에 대한 부정/긍정 양면의 강한 호기심이 시장에 존재한다는 점 참조. 순전히 쇼박스의 투자금액 만 고려해보았을 때, 쇼박스는 <디워>를 배급해서 국내 흥행성적 150만 만 거두어도 본전을 회수한다는 판단(극장 매출만으로). 물론 그 렇게 되면 기타 투자자들이나 심형래 감독은 한 푼도 못 벌지만, 쇼박스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매뉴얼에서는 고려할 필요 없는 사항임.

2) 계약 전 <디워>의 해외시장 접근 가능성 면밀히 검토. 몇 년 간 심형래 감독이 직접 진행해온 사항들을 검토하고, 쇼박스의 자체 해외마케팅 능력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까지 뚫어낼 수 있는 지 진단. 긍정적 결론 내림. 실제로 쇼박스 해외마케팅팀은 <디워>를 팔 수 있는 시장을 잘 알고 있었고 2006년 칸 영화제를 기점으로 1년 이상 이 부분에 공을 들여왔음. 쇼박스와 계약 이전 간간이 있었던 심 감독의 인터뷰 기사들에 의하면 심 감독은 ‘미국의 메이져’와 배급 계약 추진이 거의 다 된 것처럼 예전의 뻥튀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쇼박스가 프리스타일 같은 회사와 최종 계약을 맺은 것은 매우 현실적인 판단이었다고 사료됨(애초에 미국의 B무비 시장을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추정됨).

3) 이러한 검토 결과를 놓고, 쇼박스는 <디워>의 배급권을 확보하면서부터 국내에서의 적극적인 블록버스터마케팅과 해외 시장에대한 현실주의적 접근이라는 양동작전을 작정했을 것임.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위의 1)항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시장에서 300만 명만 들어도 쇼박스로서는 본전을 회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사업이란 정말 도박과도 같아서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 국내마케팅에서 위험 요소가 있다면 ‘심 감독의 전적’일 것임. 신지식인 1호로 뜨면서 온갖 블러핑을 일삼았지만 결국 개봉 당시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불만이 많아 개봉 2년 후 영화의 80%를 다시 만들어 재개봉까지 해야 했던 심 감독의 전적을 고려할 때 <디워>의 완성도에 대해 쇼박스는 전혀 마음을 놓을 수 없었음(계약 당시 <디워>는 전체 가편집본도 없이 여전히 트레일러 수준의 동영상만 있었음). 더구나 <용가리> 개봉 후 여러 투자자들과 주 개봉관이었던 세종문화회관으로부터 피소되었던 전력 등. 이처럼 심 감독의 전적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요소와 더불어 말 많고 블러핑 심한 그의 캐릭터 역시 부정적인 요소로 판단됨.

이 모든 점을 고려하여 쇼박스는 이 영화를 마케팅 함에 있어 ‘애국주의 — 신비주의 –, 인간극장’의 컨셉을 최대한 활용하는 블록버스터 전략을 도출해냈을 겁니다. <디워>의 애국주의 마케팅은 개봉을 전후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쇼박스와의 계약체결 직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합니다.

2006년 상반기는 한국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 문제로 열심히 싸우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 외제차 타고 조폭영화나 만들어대는 영화인들을 비난하던 네티즌들은 이미 심형래 감독과 <디워>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를 내비치며 ‘충무로는 스크린쿼터 같은 개소리 하지 말고 심형래 발끝에 때 만큼 이라도 따라가 보라’는 식의 댓글질이 관련 게시판 마다 넘치고 넘쳤습니다. 이미 디빠들은 그 때부터 <디워>의 강림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심형래<–>충무로’식의 대립관계는 그 때 이미 예비 디빠들이 유포시키고 있었습니다(당시 게시판들에서 근거를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으나 물리적으로는 심한 노가다라서 걍 넘어갑니다. 필요하다면 제시 가능). 2006년 2월. 스크린쿼터축소저지 투쟁이 한창이었고 게시판 마다 영화인들을 성토하는 댓글들이 도배되던 그 때, 마침 <디워>의 배급계약을 체결한 쇼박스는 이런 동향을 보면서 심형래 감독을 한국영화의 새로운 희망으로 띄워내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하면서 기분 좋게 웃었을 겁니다.

이때부터 영화 개봉 약 3주 전까지 정확히 1년 간, 쇼박스는 심형래 감독에 대한 철저한 입단속에 들어갑니다. 매체 인터뷰를 최소한으로 제한한겁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심 감독 성격에 수많은 매체에 대고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고, <디워>에 대한 기대감이 일각에서 일고 있는 상황을 증폭시키기 위해서는 철저한 신비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심 감독은 이 기간 중 드물게 한 어느 인터뷰에서 “쇼박스의 인터뷰 통제가 심해서 입이 근질거려죽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 <디워>에 대한 해외시장의 반응, 진척된 포스트프로덕션 작업 성과의 일부 노출, 예상 개봉시점을 넘긴 후로는 ‘도대체 언제 개봉하나’를 중점적 기사거리화 시켜 홍보지속 등. 쇼박스는 개봉전까지 철저한 신비주의 마케팅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개봉 약 3주 전.

사용자 삽입 이미지쇼박스는 드디어 심 감독의 인터뷰 제한을 풀어줍니다. 물론 해야 할 말과 안해야 할 말을 철저히 숙지시켰을 것이고, 무엇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킬 것인지도 사전 숙지시킨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가 그 동안 참아왔던 말들을 원 없이 내뱉을 수 있도록, 자기 영화의 개봉을 앞둔 영화인 모두가 부러워하는 3대 방송사 메인오락프로그램 싹쓸이 출연일정을 포함한 거의 모든 매체를 대기시켜둔 것도 쇼박스였죠. 네이버 기사 검색 기준으로 8월2일 개봉 전 검색어 ‘<디워>’로 검색한 기사의 수는 1680여 건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전인 올해 초. 제가 책임 있는 위치에서 제작에 참여했던, 전작으로 대박을 쳤던 감독이 연출하고 꽤 비중 있는 배우들이 출연했던 어떤 영화는 개봉 전 기사 개수가 290여 건이더군요. 아주 대중적인 스토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 있는 배우와 이름 있는 감독의 작품이었는데도 말이죠(^^;;; 잠시 넋두리였습니다).

방송3사 메인오락프로그램 싹쓸이 출연. 이거 국내 톱스타 두 세 명이 나오는 영화라 해도 쉽지 않은 겁니다. 방송프로그램들 간의 경쟁 때문에라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심 감독은 해냅니다. 현재 오락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있는 MC들의 까마득한 선배이며 지난날의 거성이었다는 점이 여기에는 크게 작용합니다. 이경규의 경우에도 심형래 만큼은 해내지 못했습니다. <복면달호> 개봉할 때, 사실 이경규는 방송출연에 일부러 소극적이었지요. 나중엔 많이 출연했지만, <복면달호>가 영화 자체로 꽤 주목을 받을 시점 즈음에 뒷심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모양새였습니다. 대체로 그는 쑥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심 감독은 당당했습니다. 까마득한 후배 MC들 앞에서 꽤 꼰대질까지 섞어가면서, 심형래는 그렇게 약 2,3주 간 한국 오락프로그램들을 평정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에서 본격적인 ‘인간극장 마케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거의 출연한 모든 프로그램에서 당장 헐리우드를 집어삼킬 것처럼 호기를 부렸고, 그 동안 충무로에서 당한 설움을 토로하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당당하다는 듯, 실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듯,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스스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희망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방송출연을 마무리합니다.

그즈음 본격적으로 네티즌들이 호응하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강림한 <디워>는 오랫동안 한국영화의 새로운 희망에 목말라했던 디빠들을 빠르게 결집시킵니다. ‘쇼박스’가 알바를 동원했다거나 <디워>개봉을 즈음하여 연일 상한가를 쳤던 어느 코스닥 상장사(<디워>에 부분투자한 회사라고 함)의 사이버 작전세력이 네티즌 여론을 주도했다거나 하는 얘기들이 마치 ‘음모론’처럼 회자되기도 했는데, 물론 ‘물적 증거’는 없다는 전제하에, 그런 일이야 뭐 당연히 있을 수도 있는 일들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화 개봉할 때 인터넷 알바 동원한다는 게 관행처럼 여겨진 지도 오래됐고, 그런 관행이 영화계의 자정노력으로 없어졌다는 뉴스는 들어본 바 없습니다. 헐리우드 배급사 소니도 몇 년 전 가짜 평론가까지 만들어서 작전을 펼치다가 적발되기도 했는데, 증권가 사이버 게시판에 작전세력이 댓글 알바 동원하는 것도 뭐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처지에, 응당 상상 가능한 정황이지요.

정리합니다.

쇼박스는 1년전, 투입 대비 기대수익을 철저히 따져 본 결과 충분히 가능성 있다는 판단 아래 <디워>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애국주의 — 신비주의 — 인간극장’의 순서로 정리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추정의 근거는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그간 <디워>의 홍보마케팅 흐름을 살펴볼 때 정확히 위의 순서로 해당 이슈들이 대중에게 유포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물론 ‘애국주의’ 코드는 쇼박스와의 계약 체결직후 ‘기대감 상승’을 목적으로 제시되었고 이후 개봉시점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된 바 있습니다. 이미 2006년 2월부터 형성된 충무로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디워>에 대한 기대감이 이러한 코드 설정에 중요 참고요소가 되었으리라고 추정됩니다.

문제는, 쇼박스가 이런 식으로 마케팅을 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따지는 데 있지 않습니다. 쇼박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사의 이익을 위해 매우 필연적인 선택을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제가 쇼박스 담당자라면 안 그랬을까요? 마케팅을 하는데 위험과 기회, 강점과 약점을 분석해 보면 <디워>에서 무엇을 강조해야 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저 이상 적확한 게 없을 겁니다. 저라도 당연히 그렇게 몰고 갔겠지요.

문제는 디빠들입니다.

디빠들은 쇼박스에 낚인 겁니다. 그들은 정확히 쇼박스의 예상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행동해주었으니까요.

개봉 전까지 <디워> 마케팅에서 쇼박스가 어떤 전략을 구사했는가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데, 문제는 개봉 직전부터 개봉 이후까지 벌어진 논란이 아마도 쇼박스의 예상을 많이 뛰어넘어 커다란 노이즈마케팅 효과를 냈던 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 실제로, 역시 네이버 기사 검색에 의지해 보면, <디워>는 개봉 전 보다 개봉 후 논란들을 통해 훨씬 많은 기사노출을 기록합니다.

개봉 직전 ‘심형래 vs 충무로’ 구도를 설정, 유포하여 심 감독의 ‘고난’을 강조하고, 눈물로 호소한 것은 명백한 쇼박스와 심 감독의 의도에 의한 플레이이고, <디워>에 긍정적인 여론은 대부분 이러한 호소가 먹힌 결과였습니다. 그후 논란의 확대과정에서 ‘선빵’의 사실관계들은 한윤형님의 정리가 정확합니다. 의도적 언론플레이에 의해 충무로와 평론가들을 심형래를 핍박한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디워빠들 중 래디칼한 무리들이 디워를 혹평하는 네티즌, 감독, 제작자, 기자에게 ‘선제테러’를 가한 것이 ‘사실’입니다. ‘평론가’가 요즘 힘이 있네 없네 그런 얘기는 다른 분들이 많이 하셨으니까 접어두고, 일단 사실관계에 기초해서 볼 때 선빵을 날린 것은 불특정 다수의 디워빠들 맞습니다.

문제는, 심 감독과 쇼박스의 ‘인간극장 마케팅’이 대단히 ‘악의적’이라는데 있습니다. 심 감독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는, 철저히 비즈니스의 측면에서 볼 때, 적어도 ‘용가리’부터는 충무로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비즈니스의 측면’을 강조하는 것은, ‘개그맨 출신 아동영화 감독’에 대해 충무로 영화인들이 그를 충분히 대접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분리해서 봐야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무슨 ‘인간극장’적 고난이고 역경이겠습니까? 실제로 그런 식의 왕따 행위가 심 감독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비즈니스적인 배타성으로까지 작용해야만 그가 ‘인간극장’적인 역경을 겪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영화 만드는 과정 자체의 고난과 역경은 영화를 만드는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일이죠.

심 감독은 <용가리>와 <디워>를 진행하면서 충무로의 어느 초일류 감독, 제작자, 배우도 따내지 못할 규모의 투자를 이끌어낸 사람입니다. 그것도 매번 충무로를 좌지우지하는 일류투자배급사로부터 인정받았던 사람입니다. <용가리>때는 충무로에서 투자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많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용가리>는 그 당시 업계 1위였던 시네마서비스의 주요 투자자였으며, 신흥 메이져로 주목받고 있었던 ‘삼부파이낸스 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하고 배급했습니다. 이 회사, 그 당시만 해도 충무로의 신흥재벌이었습니다. 부산의 삼부파이낸스라는 제2금윤권 금융회사를 모 회사로한 이 회사는, 막강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었고, <쉬리>를 마지막으로 영화사업을 접은 삼성영상사업단의 핵심브레인들을 스카웃 해서 한국영화판의 새로운 강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한참 키우고 있던 회사였습니다. 이 회사 회장 양재혁씨는 <용가리>의 제작자로 크레딧에 올라있습니다(네이버 영화정보 <용가리> 상세정보란 참조). 1999년 7월 10일자 한국경제신문 기사에 의하면, <용가리>는 메인투자자인 삼부파이낸스 엔터테인먼트와 더불어 대한상공회의소까지 직접 나서서 투자유치활동을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충무로 메이져와, 대한상공회의소가 직접 나서서 투자설명회도 하고 유치까지 이뤄낸 영화가 바로 <용가리>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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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리> 미국판 DVD 표지
<용가리>는 1999년 9월17일, 대중영화사상 최초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봉되었습니다. <용가리> 개봉 초기, 초반 기대감으로 흥행세를 타는 듯하자 이 영화에 투자했던 산은캐피탈의 주가가 1999년 7월 20일 당시 상한가를 기록했다는 머니투데이 기사도 있더군요. 산은캐피탈도 당시 ‘주류 충무로’의 든든한 부분투자회사였습니다(지금도 그렇습니다). 1999년 7월 15일자 한국경제신문의 기사에 의하면, <용가리>는 서울에서 20개, 전국 100여 개 극장에서 개봉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이 규모면 1999년 당시로는 꽤 큰 규모로 개봉하는 겁니다. 흔히 <용가리>는 충무로로부터 철저히 버려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전혀 사실무근입니다. 디워빠들의 댓글 중에는 ‘극장도 <용가리>를 무시해서 시민회관 같은 데서 개봉했다’는 얘기도 있던데, 웃기는 얘기죠. 물론 시민회관 상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아동 영화’들이 흔히 취하는 개봉방식일 뿐입니다. 이미 전국 100개관에서 상영하고, 서울의 ‘시민회관’인 세종문화회관에서도 하는데, 지방 시민회관, 구민회관에서 안 할 이유가 없죠.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면 말이죠.

<디워>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시장점유율 1위의 메이져가, 1년 넘게 투자하고 전략적인 마케팅을 수행하고 해외배급선까지 챙겨주었습니다. 어느 모로 봐서 왕따였다는 걸까요? 저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끌어당긴 돈의 규모와 ,어떤 비즈니스 파트너와 손을 잡았느냐는 점에 있어서 심 감독은 충무로의 어느 누구 보다도 유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충무로를 원망하면서 눈물을 보인 그는, 그래서 뭣 모르는 네티즌들에게 ‘가상의 적’을 심어준 그는, 철저한 거짓으로 대중을 속인 것입니다.

사실이 아닌 거짓을 유포해서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동정심을 유발하고,

사실이 아닌 거짓을 유포해서
영화계 전체를 자신과 지지자들의 적으로 설정한

심 감독의 악의적 ‘인간극장’ 언론플레이야 말로,
선빵 중의 선빵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왜곡된 인식 따라 가상의 적에 대한 적개심으로 충만했던 디워빠들이 한윤형님이 정리한 바와 정확히 일치하는 순서에 따라 사이버 테러질들을 하고 다녔습니다.

이 현상이 노동계급과 산업예비군과 룸펜프롤레타리아로 이루어진
폭주족 집단의 아나키적 반항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요?

그러니까, 디워빠들의 사이버 집단행동이,
역시 리버풀 노동계급과 산업예비군과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문화적 저항이었던 록음악 초창기 문화와 같은 의미라고요?

폭주족을 바라보는 기성세대, 중산층의 혐오가
진중권, 이송희일, 김광수, 허지웅 같은 영화/문화계 기득권 인텔리집단의 <디워> 비판과 같은 맥락이라고요?

폭주족들과 리버풀 록밴드들은
계급적으로 막막한 현실에서 자신들을 정서적으로나마 해방시켜주는
자신들만의 문화에 심취했던 것이지 유포된 허위사실에 속아
허위의식 속에 허우적거리며 테러질을 했던 건 아니라고 봅니다.

진중권, 이송희일, 김광수, 허지웅은
중산층 부모세대이기는커녕
이 광분하는 디워빠 무리에게 아무런 권위도
물리력도 행사할 수 없는,
하찮은 지식인들에 불과하답니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그들이 ‘<디워>를 재미있게 본 관객 일반’을 억압하고 모욕했다는 겁니까?

사실관계를 짚어보면 전혀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그런 식의 주장을,
이제는 질긴 변명처럼 거듭하고 있는 김규항님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김규항님이 이번에 ‘나태하고 게을렀다’는 노바리님의 지적이 전적으로 옳다고 봅니다.

그리고 “김규항이 “타인의 취향”을 쓸 때, 쇼박스는 “콧노래 부르며 힘을 더 해 간다.”는 한윤형님의 지적 역시 적확한 핵심 되겠습니다.

한국영화산업과 영화를 향유하는 문화가 갈수록 개판이 되고 있는 이 때에, 적당하게 포지셔닝하고 적당한 스탠스나 취하는 게 김규항님 같은 이가 할 일은 아니지요. 진정한 적을 찾지 못하면, 항상 엉뚱한 적을 설정하고 공격함으로써 적을 돕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되는 법. 뒤늦게나마, 상황인식에 얼마나 철저하지 못했는지 김규항님이 아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영화인들은, 심형래 감독이 ‘충무로’를 국민의 적으로 만든 것에 대해 대체로 분노하지만, 쇼박스가 돈 많이 벌어서 올 상반기 동안 내내 잠궈 놓았던 수도꼭지를 열고 투자를 재개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환영하고 있다고 보면 정확할겁니다.

또 참고로, 그렇다면 디워빠류의 대중은 ‘귀여니’를 개 무시하는 문학평론가들을 왜 테러하지 않는가? ‘귀여니’ 소설이 번역돼서 전 세계 300만 부 정도 팔리면 문학평론가들을 공격하기 시작할텐가? 대단히 궁금합니다.

영진공 객원 리포터 tan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