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총] – 1장: 2차대전 중 일본군의 안습 무기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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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와 비슷한 질문 먼저 해보죠.
총이 먼저일까요. 총알이 먼저일까요? 닭과 달걀 질문과 마찬가지로(진화론에 따르자면 달걀이 먼저겠죠) 이 총과 총알 질문에도 대답이 있습니다. 언제나 총알이 먼저입니다. 총기를 개발하는 과정은 일단 적절한 위력을 가진 탄약을 만들거나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일단 총알을 정해놓고, 그 다음에 그 총알을 가장 효과적으로 쏠 수 있는 총을 만드는 거죠. 총은 총알을 쏘아 보내는 수단일 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총은 바뀌어도 총알은 쉽게 바뀌지 않지요. 탄을 통일하는 건 여러 가지로 좋습니다. 무엇보다 보급이 편하죠. 그래서 각 군은 될 수 있는 대로 탄의 규격을 줄이고 표준화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대체로 어떤 규격의 탄들이 사용될까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주요국가인 미국과 독일의 경우를 살펴보죠.

먼저, 2차 대전 중 미군 보병들이 사용한 탄약 규격은 크게 넷입니다.
(물론, 대형 기관포탄이나 호신용 소형권총탄까지 포함하면 더 복잡합니다만, 여기서는 그저 보병들이 전쟁터에서 사용한 탄으로 국한시킨겁니다)

첫 번째, 권총과 기관단총에 사용하는 .45 ACP 탄.
제식권총인 콜트 M1911과 기관단총인 M2 톰슨, M3 그리스건이 이 탄을 씁니다.


불멸의 콜트 M1911 …


톰슨 기관단총

두 번째, 소총과 경기관총에 사용하는 30-06 탄.
유명한 M1 개런드 소총과 BAR이라는 경기관총, 30구경 중기관총에 이 탄을 씁니다.


M1 개런드 소총, 우리나라 제식소총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에무왕 이라고 불리던…


BAR (브라우닝 자동소총Browning Automatic Rifle의 약자) 역시 우리 군도 쓴 적 있습니다.
아직도 무기창고에 꽤 있다고…


캘리버 30 기관총. 제식 명칭은 M1917 이라고 하죠.

세 번째, 중기관총에서 사용하는 50구경 브라우닝기관총(BMG)탄.
아직도 마르고 닳도록 사용하는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이 바로 이 탄의 주인이죠.
보통 우리 군에서는 MG50 이라고 부르는… (이건 정식 명칭 아닙니다)


MG50, 아니죠~  M2 HB 맞습니다~

네 번째, 소총탄과 권총탄의 중간급인 30구경 카빈탄.
우리나라에서 예비군들이 얼마전까지 썼던 M1, M2 카빈이 바로 이 총알을 씁니다.


이게 M1 카빈, M2 카빈도 있는데 그건 완전자동사격이 됩니다. M1은 반자동사격만 가능


맨 오른쪽이 카빈탄, 나머지는 당시의 일반 소총탄

독일군은 더 간단해요. 세 가지입니다. 그나마 전쟁후반에 사용된 세 번째를 빼면 이들은 딱 두 가지 탄만으로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첫 번째, 권총과 기관단총에 사용하는 9mm 파라블럼탄
제식권총들인 P08 루거, P38 월터 권총과 MP40 같은 기관단총이 이 탄을 쓰죠.


P08 루거 권총


MP40 기관단총

두 번째, 소총과 다목적기관총에 사용하는 7.92mm 마우저탄
독일군의 제식소총인 마우저 소총Kar98K, 세계최초의 다목적 기관총인 MG34, MG42 모두 이 탄을 씁니다. 이쪽은 다목적기관총으로 모든 기관총을 통일했기 때문에 미국처럼 50구경 중기관총 같은 게 없습니다.



MG 34 기관총, 삼각대에 얹으면 중기관총처럼, 그냥 양각대만 쓰면 경기관총 처럼 쓸 수 있다는..
그래서 다목적기관총GPMG


MG42 기관총. 역시 다목적이란게 뭔지 보여주는 전시

세 번째, 전쟁 말기에 등장한 7.92mm Kurz 탄
세계최초의 돌격소총인 STG43에 사용된 탄입니다. 연발사격에 적절한 반동과 위력을 위해 소총탄보다는 약하고 권총탄보다 센 탄을 목표로 만들어졌죠. 미국의 카빈탄과 비슷하지만, 이쪽은 소총탄에 더 가까워서 위력이 더 좋습니다. 이 총탄은 AK47과 M16 같은 현대 돌격소총탄의 원조이기도 합니다.


이게 세계최초의 돌격소총 STG44, MP43 이라고도 불리우고… 여튼 AK47과 M16의 원조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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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이 아래에 나올 6.5미리 아리사카, 하나 건너 세번째가 30구경 카빈탄,
바로 그 옆 4번째가 7.92미리 Kurz탄, 그 옆 5번째가 AK47용의 AK47 탄,
오른쪽에서 3번째는 M16 용의 5.56미리 레밍턴탄

자….그렇다면, 일본이 2차 대전 중에 사용한 탄약의 규격은 모두 몇 개 였을까요?
자그마치 7종입니다. 국내 유일의 총기전문지 <플래툰>지 2005년 6월호에 그 일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 권총에 사용하는 8mm 남부 탄
남부 1식, 14식 등의 권총들과 100식 기관단총에 사용된 탄입니다.
위력은 .38ACP탄 정도로 미/유럽 쪽이었다면 그냥 호신용 탄에 해당합니다.


남부 14식 권총


100식 기관단총


왼쪽 두개가 남부 탄, 오른쪽 두개는 독일에서 쓰던 9mm 파라블럼탄.
크기는 비슷해도 난부 탄 쪽이 위력은 훨씬 약했다고 합니다
.

두 번째, 38식 제식소총에 사용하는 6.5mm 아리사카탄
해방직후 우리나라도 공여 받아 사용했던 38식 소총에 사용된 탄입니다.


38식 소총

세 번째, 11식 경기관총과 96식 경기관총에 사용하는 6.5mm 아리사카G 탄
모양도 구경도 위의 6.5mm 아리사카탄과 같습니다만, 약간 화약량을 줄인 탄입니다.
38식 소총에 쓸 수는 있지만 위력이 약해집니다.


11식 기관총

네 번째, 호치키스 기관총의 일본명칭인 호식 기관총에 사용하는 6.5mm 호치키스 탄
구경은 위의 6.5mm 아리사카탄과 같지만 모양이 좀 다릅니다. 프랑스제 총탄이니까요. 구경은 같아도 38식 소총이나 11식 기관총엔 못쓰고 호식 기관총에만 쓸 수 있습니다. (어떤 자료에서는 호식 기관총의 탄약이 위에 말한 6.5미리 아리사카탄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일본제식탄의 종류는 7종이 아니라 6종으로 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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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키스 경기관총

다섯 번째, 신형 제식소총인 99식 소총,99식 경기관총에 사용하는 7.7mm 아리사카 탄
38식 소총탄이 위력이 약하다고 해서 약간 탄의 크기를 키운 탄입니다.
원래는 이 99식 소총으로 38식 소총을 대체할 계획이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죠.
총 만들기도 허덕거리는 와중에 총에다 천황 하사품이라는 의미의 국화꽃 문양까지 새기느라…-_-;;; 생산량이 부족했습니다.


99식 소총


99식 경기관총, 체코제 BREN 기관총을 거의 그대로 카피한 총.

여섯 번째, 영국에서 수입한 루이스 기관총의 일본명칭 루식 기관총에 사용하는 7.7mm 탄
영국제(영국군 제식탄인 .303 브리티쉬)라서 탄 전체 모양이 다릅니다. 일본에서는 이걸 따로 해군형 7.7mm라고 이름붙였다는데, 당연히 92식이나 99식에 사용할 수도 없죠.


영국제 루이스 기관총, 일본 해군에서 썼다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등장해서 낯익은 총



일곱 번째, 92식 중기관총에 사용하는 7.7mm 세미림드 탄
위의 루식 기관총탄을 흉내낸 92식 중기관총용 탄입니다. 기본은 7.7미리 아리사카탄인데 303브리티쉬를 흉내내어 탄피 아랫부분의 림이 더 튀어나왔습니다. 구경은 같아도 탄피모양이 달라 99식 엔 못씁니다. 장전은 될지 몰라도 탄피를 뽑지 못하게 되죠.



이게 7.7미리 세미 림드


7.7미리 아리사카. 뭐가 달라보이나요? 탄피 밑둥이 약간(아주 약간)다릅니다.

93식 기관총 이야기도 써놨었는데, 다른 자료를 보니 제가 어디서 잘못 본 것 같더군요. 그래서 지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8종이라 썼었는데, 7종으로 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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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보다 더 많았을 지도 모릅니다만, 적어도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이렇습니다.
쓰는 저도 헷갈립니다.

이렇게 다양한 탄약을 운용한 결과, 일본은 안 그래도 부족한 공업생산력으로 탄약보급에 벅찬 와중에 총마다 다른 탄약을 보급하느라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 게다가 여기에 등장한 탄 규격 중에는 겉보기에는 똑같은데, 속에 채워 넣은 화약량만 다른 탄까지 있어요. 6.5mm 아리사카G 탄이 그렇죠. 보통 약장탄이라고 부르는 건데, 기관총에 사용하는 탄들이 주로 이런 약장탄이 많았습니다. 6.5mm 계에는 호치키스 기관총용 탄까지 있었으니 같은 구경의 제식탄이 자그마치 3종입니다. 7.7mm 계에도 똑같이 3종이 혼용. 안 그래도 종류가 많아서 헷갈려 죽겠는데, 구경이나 모양이 같으면서 용도는 다른 탄까지 있으니 돌아버릴 지경이었겠죠. 도대체 왜 그들은 이런 미친 짓을 했을까요? (전쟁을 일으킨 것 자체부터 미친 짓이지만…) 플래툰 2005년 6월호에 따르면 그 이유가 이렇습니다.

일단 첫 번째 이유는 기술부족입니다. 원래는 일본군도 탄의 규격을 통일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소총탄을 기관총에 넣고 쏘니까 잘 작동이 안 되는 겁니다. 기관총을 만드는 기술이 부족해서 소총탄의 위력을 감당하지 못했던 거죠. 그래서 결국 규격은 소총탄과 같은데 (기관총이 감당할 수 있도록) 위력만 낮춘 탄을 쓴 겁니다. 겉보기는 같으면서 위력만 다른, 보급담당자를 돌아버리게 만드는 탄이 등장한 겁니다. 이런 경우, 기관총용 약장탄을 소총에 넣고 쏘면 그럭저럭 위력은 약하지만 문제없이 총알이 날아갑니다. 하지만 반대로 소총탄을 기관총에 넣고 쏘면 조만간 기관총이 고장나죠. 아예 구경이나 모양이 다르면 장전 자체가 안 되니까 문제가 없는데, 이건 모양은 같으니 멀쩡하게 장전은 되는데 정작 쏘면 문제가 되니… 보급뿐만 아니라 사용할 때도 주의할 점이 많아진 겁니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전쟁터에서 이 총알이 기관총용인지 소총용인지까지 신경써야 한다면, 정말 미칠 노릇이었겠죠. 괜히 일본군이 총검돌격을 했던 게 아닐 겁니다. 총알 분류하다가 살짝 돌아버렸는지도.

하지만 꼭 그래야 했느냐면, 그런 선택만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총알이 아니라 기관총을 고치는 겁니다. 미국이나 독일도 했는데 왜 일본이라고 못하겠어요. 러시아 같은 경우는 자동화기에는 부적절하다는 림이 튀어나온 탄을 지금까지도 기관총용으로 잘만 쓰고 있습니다. 근데 일본은 총알을 고쳤죠. 아예 총알을 고칠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다면, 기관총 설계에 더 집중해서 같은 총탄으로 소총에도 쓰고 기관총에도 쓸 수 있는 탄을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죠. 왜냐하면 그것이 일본 문화 자체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다음 글에서는 그 문화차이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영진공 짱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 왠지 그녀들이 전부 나 같다.


제가 이렇게 펑펑 울다니요. 아줌마가 되어서 설움이 많아졌는지, 눈물이 많아졌는지. 암튼 펑펑 울었습니다. 이해할 수 있어서 내 설움에 울고, 너무 안 되었어서 연민에 울고 그랬습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바로 보여지는 핸드볼 경기. 예닐곱살 쯤 된 아이가 경기장으로 달려들어오고, 골키퍼를 보던 수희(조은지)가 당황을 합니다. 미숙(문소리)이 손짓해 아이더러 나가라는 신호를 보내고, 동료 중 하나가 아이를 데리고 나갑니다. ㅎㅎㅎ 저 이 장면부터 울었어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경기해야 하는 문소리 처지에 울고, 중요한 경기 중에 뛰어드는데도 배려해 주는 동료들 배려에 울었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 ‘핸드볼 큰잔치’라는 현수막 위로 텅빈 객석과 터지는 분수불꽃. 울던 참에 더 울었습니다.


‘아줌마’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저도 어느새 저를 ‘아줌마’라고 표현하고 있구요. 가끔 ‘제3의 성’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고, ‘수치를 모르는’, ‘뻔뻔한’, ‘억척스러운’, ‘앞뒤 분별이 없는’, ‘무식한’, ‘세상물정 어두운’ 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지요. 저의 스무살 시절. 아르바이트해 모은 돈을 가지고 처음으로 전자기타와 앰프를 사러 낙원상가에 간 날. 부족한 예산에 앰프 값 때문에 고민할 때 악기상 청년이 권한 것이 ‘아줌마 앰프’라는 것입니다. 일정한 상표도 없고, 베이스 건 기타 건 아무 거나 꽂아도 되는 앰프. 그것이 ‘아줌마 앰프’라니 참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기가막히게 잘 어울리는 조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바로 아줌마거든요. 이름도 무엇도 없고, 뭐든지 다 하긴 해야 하는 존재.


결혼해서 애를 낳고 나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아줌마’라는 계급이 됩니다. 경제적 여유가 조금 있건, 없건, 남편에게 사랑을 받건, 못 받건, 대학을 나왔건, 말았건, 직업이 있건, 없건, 그냥 ‘아줌마’가 됩니다. ‘사모님’이라는 약간의 예외들이 있긴 하지만. ‘아줌마’는 그 자체로 계급입니다. 경제적 여유가 약간 있는 혜경이나, 빚과 생활고에 쪄든 미숙이나, 불임 때문에 고생하는 정란이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십시오. 세계적인 선수이건 말건, 유명팀의 감독이건 말건, 남편의 사랑을 진하게 받는 국밥집 사모님이건 말건, 다, 그냥, 아줌마입니다. 나도 아줌마가 되어서 그런지 왜 어느 아줌마 하나 짠하지 않은 아줌마가 없습니다. 그들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그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 아줌마가 되고 나니 오지랖이 넓어지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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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에서 최고에 올랐건, 금메달리스트이건 간에 그들은 '아줌마'입니다.


미숙. 아이고. 경기 끝나고 어떻게 했을지. 화면 속이라도 들어가서 남편 파산 신청하고, 이혼하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만. 그 또한 쉽지 않겠지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혜경의 처지도 그만그만 이라는 것을 보면요. 전 혜경이 아이와 일본어로 소통하며 안아주는 장면에서도 울었습니다. 아무리 경제력이 있어도, 또 미숙과 달리 챙겨주는 친정엄마가 있어도, 그저 혼자 몸으로 힘들게 애를 키우는 이혼녀일뿐인걸요. 돈 벌겠다고 타지까지 가서 -애 아빠가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는 모르지만- 그곳에서 애를 맡기고 키우느라 자신의 아이와의 소통마저 일본어로 해야하는 그녀의 삶은요. 에효. 구질 구질 애들 키우느라 고생 바가지를 해도, 또 애 안생기는 정란은 이들이 부럽겠지요. 그래도 그들은 정란이 못해본 국가대표 생활을 지겹도록 해 본 이들이고, 그녀가 못 낳은 아이를 하나씩 꿰찬 여자들이니까요. 에효. 대관절 애가 뭣이관데.


근데, 아줌마한테만 그렇게 공감이 가는 게 아닙니다. 어린 선수들부터 낀 세대 수희까지. 그들 안에 제가 있고, 또 저 안에 그들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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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 세대 수희. 롤모델도 동기도 없는 그녀가 안 쓰럽습니다.
일단 수희요. 수희는 ‘낀 세대’입니다. 기라성 같은 핸드볼 선수들로 호령하던 왕년의 혜경과 미숙과 같은 세대는 아닙니다. 그들과 같이 뛰어본 경험이 있고, 그들로 부터 배운 세대지요. 그리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문법을 가진 장보람과 같은 아랫세대와 뛰어야 하는 세대입니다. ‘대안 없는 골키퍼’라는 수희의 포지션도 참 상징적입니다. 수희는 낀세대라는 것만으로도 ‘롤 모델도 없고, 자신이 롤 모델도 될 수 없는’데,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그 위상을 더욱 강화합니다. 동기는 필드에 없고, 그렇다고 자기가 일인자인 것도 아니고. 참으로 막막한 세대입니다.

제가 입사할 때 저희 부문 공채입사자 중 여자는 저 하나였습니다. 그때는 참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는데, 회사 생활 하면서 느꼈던 그 적적함이 수희를 보면서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윗 선배들한테 참 싹싹하게 하면서 진심으로 대하고, 배려심 많은 수희를 보며. ‘그래 니가 나보단 백배 낫다. 수희 화이팅!’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장보람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물론 착각이었습니다마는) 입사 초 저는 제가 대단한 인재일 거라는 생각을 했었고, ‘월급쟁이로 시작을 했으면 별을 따야지’라는 성공할 수 있다는 야심도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갖고 있었습니다. 헌데, 입사하고 보니 현실은 좀 이상했습니다. 제가 입사한 직후, 첫번째 여자 임원이 탄생을 했습니다. 선망의 대상이었지요. 하지만 얼마 후 녹취록을 작성하러 들어간 임원회의에서 제 우상이 남자임원들에게 완전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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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애들은 근성이 없어 vs 선배처럼 살기는 싫어요

으로 밟히는 것을 보고는 거의 절망을 했지요. 그녀의 평소의 고군분투는 내가 꿈꾸는 임원의 모습과 달리 전혀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도 알아버렸구요. 왁왁대는 김혜경과 애나 끌고 다니는 한심한 미숙을 보았을 때의 그녀의 심정을 알것만 같습니다. “요새 누가 맞으면서 운동해요?”라는 보람의 말도 저는 가슴 절절히 이해가 됩니다. 회사에서 꽤 자리잡고, 높은 자리에 오른 여선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찬찬히 보면 ‘여성성을 완전히 버린 선배’ ,’아첨과 아부가 남자들보다 더 완벽하게 자리잡은 선배’, ‘나 몸하나 망가지는 것 쯤은 신경쓰지 않는 완전 희생형 선배’, ‘후배들 등쳐서 치고 빠지는 선배’들이어서 그 누구도 롤모델로 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진정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불러서 밥을 사주며,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해라’라며 코치해 줄 때, 저는 마음 속으로 ‘아니오 선배. 저는 그렇게 까지 해서 성공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라고 외쳤었습니다. 비주류로 마이너로 취급받으면서도 잡초같은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그 선배들에 비해, 그래도 ‘표면적으로는’ 주류로 인정해 주는 가운데 사회생활을 시작한 저를 ‘요샛것들은 근성이 없어.’라고 생각했을 것은 당연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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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세대 보다 못한 불안한 뒷세대

현자나 진주의 아줌마 선수들을 무시하는 싸가지 없는 모습도 저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돌 갓지난 아이를 데리고 혼자 기차를 타고 시댁에 간 적이 있습니다. 기차안에서 아이가 빽빽 울어대고 내가 어쩔 줄 몰라 당황을 하면, 안쓰러워 도와주는 것은 같은 처지의 애엄마들이고, 무관심한 것은 남자들이며,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는 것은 곱고 예쁜 처자들입니다. 애를 데리고 지하철을 탔을 때, ‘애 있으면 다니지 말지’라며 싸가지 없는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사람들은 여고생, 여대생, 젊은 20대 초반 여성들입니다.
저는 속으로 “너는 아줌마 안 될줄 아냐?” 하고 욕했지만, 나중엔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나는 저렇게 되기 싫어’라는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애기 단속시키는데 애초의 자기의 일이 아닌 남자들이야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약간 불쾌해도 참고 마는 것을 거구요. 간신히 엔트리에 들어와서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현자와 진주 앞에 나타난 아줌마 트리오가 반가울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건재한데, 사는 모습을 보자니 형편없고, 그런데 자신들은 그들보다 실력조차 못하니까요. 그들을 볼 때마다 그들 보다 더 암담한 자신의 미래가 떠오지 않았을까요. 한번도 일인자였던 적이 없는 저는 왠지 현자와 진주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 싶습니다.


모든 여자가 다 나 같습니다. 다 이해를 할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제겐 너무 완벽한 영화입니다. 미장센이건, 스포츠 장면의 박진감이 부족하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저에겐 모든 여성의 삶이 박진감 넘치게 보여진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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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한번만 힘빼고 좀 울어주지...울어도 괜찮아.

다만, 저도 엔딩장면 하나만큼은 이렇게 되었었더라면… 하고 욕심을 내 봅니다. 저는 ‘지더라도 울지 않는 거다’라고 말했던 안승필이, 그 잘난척 하던 면상을 가지고 오히려 여자 선수들보다 더 펑펑 우는 것으로 엔딩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미숙을, 혜경을, 보람을, 현자를 끌어안고 더 서럽게 무릎꿇고 엉엉 울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제가 원하는 남자들과의 화해와 소통의 방식입니다. ‘우리 울지 않기로 했잖아요’라며 잘난 척을 떠는 것이 본래 못난 남자들의 속성이라 해도 말입니다.


열라 어렵게 영화 보고 몇자 썼네요.
원래는 TV나 보는 아줌마
영진공 라이

엔딩 크레디트, 끝까지 보시나요?

맨 처음 제작사 로고부터 시작해 맨 마지막에 엔딩 크레딧 끝에 카피라이트 로고까지 봐야 영화 한 편을 온전히 봤다고 느끼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영화에 대한 꽤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이건 사실 imdb를 뒤지면 대부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들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엄청난 데이터베이스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것이 가능해진 지금도 왜 여전히 엔딩자막을 끝까지 보고 있을가요. 사실 자막도 자막이지만, 사운드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자막까지 끝나야 영화가 끝난 거라 생각하고(바꿔 말하면 엔딩 자막이 흐르는 때는 아직 영화가 끝나지 않은 때라고 생각하고), 엔딩자막에 흐르는 음악이나 여타 사운드들을 가만히 듣고있는 걸 굉장히 좋아합니다. 특히나 너무나 가슴벅찬 영화를 봤을 땐,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테마음악을 들으며(보통 그 영화의 가장 중심되는 테마곡이 엔딩 자막 때 나오는 게 일반적입니다.) 마음을 추스리고 감정의 여운을 되새기는 편이지요. 또 어떤 영화들은 감독이 자막 맨 끝에 보너스 화면을 숨겨놓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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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색, 계>를 봤을 땐, 맨 마지막의 양조위의 표정을 볼 때까지만 해도 그냥 아… 이러고 있다가, 엔딩 자막이 올라가면서 왕치아즈의 테마가 흘러나오는데 바로 그 음악 때문에, 그만 저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치솟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그길로 곧장 <색, 계> OST를 사러 갔습니다.) <아메리칸 갱스터>의 맨 끝에 보너스 화면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덴젤 워싱턴이 화면 앞으로 걸어나와 관객들을 향해 총을 한 방 빵, 쏩니다. 최근 가장 인상적인 엔딩 크레딧의 사운드는 단연 <미스트>였습니다. 자막이 흐르는 동안 흔히 그러듯 음악이 나오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군대의 움직임 소리가 들립니다. 헬리콥터 날아가는 소리, 탱크가 전진하는 소리, 간간이 총을 쏘거나 폭탄이 터지는 소리… 그게, 5.1채널 서라운드 시스템의 스피커에서 들려나오는데 그 공간감, 사운드 효과감이란, 그리고 배가되는 공포란. <미스트>의 엔딩이 강력한 건, 단순히 내용상의 그 ‘설정’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던 내내 나오던 그 사운드 효과들이 그 설정을 더욱 강력한 것으로 증폭시키고 있었습니다.


엔딩 타이틀이 흐르기 시작하자마자 벌떡 일어나 나가버리는 관객들을, 저는 별로 탓하지 않습니다. 그네들이 제 시야를 가리는 건 아주 잠깐일 뿐이고, 대체로 그런 사람들이 제가 사운드를 내내 듣고있는 걸 방해할 정도로 큰 소음을 내거나 하지는 않으니까요. 어두운 곳에 갇혀있었던 셈인데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고요. 아니, 전 그렇게 빨리 나가버리는 사람들이 차라리 고맙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앉거나 서서 계속해서 떠들어대는 사람을 볼 때죠. 며칠 전에 일반상영장도 아닌 ‘기자시사회장’에 심지어 ‘두 살 정도 된 아가를 데리고’ 입장했던 어떤 젊은 부부가 그런 식으로, 그 영화를 보며 그 아름다움과 슬픔 때문에 격정에 빠질 뻔한 저를 짜증과 분노로 이끌며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제대로 망가뜨려 주었습니다. 심지어 자막이 다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끝없이 떠들고 계시더군요. 얼마나 그 소리가 컸던지, 제가 바로 옆자리에 있다가 같은 줄의 맨 구석, 통로 저쪽 자리로 옮겨 앉았는데도 다 들릴 정도였습니다. 혹은, 혹시 한동안 엔딩자막 사진으로 찍어 인증샷 올리는 게 유행을 탄 적이 있나요? 타이틀 흐르는데 플래시 터뜨리면서 계속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을 보고 경악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하이퍼텍나다였던 것 같은데…


하지만 제겐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보다가 겪은 아주 아름다운 미담에 대한 기억도 있답니다. 자막이 흐르는 걸 보며 자리에 앉아 눈물을 좀 흘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자막이 끝나자 저처럼 끝까지 앉아있던, 제 옆에옆의 자리에 앉아있던 커플 관객 중 여자분이 제게 휴지를 건네시더군요. 고맙다고 하면서 그 분과 저는 멋적은, 그러나 암묵의 공범자와 같은 미소를 주고 받았습니다. 벌써 5, 6년 전의 일인데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요.


아마 평소에 자막을 끝까지 보지 않던 사람들도, <색, 계> 같은 영화를 보고 나면 자막이 흐르며 음악이 나오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꼼짝도 못한 채 감정을 추스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감독들이 자막 끝까지 관객들이 앉아있어줬으면 하는 것도, 영화에 대한 예의니 뭐니 말을 하긴 하지만 실은 그런 것, 그러니까 밀려오는 감동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간절히 원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급하게 나가는 사람들 역시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거예요. 극장 안은 원래 답답하고 공기가 탁하기 마련이기도 하고요. 자막이 다 끝나기 전까지 영화가 아직 안 끝난 거라 생각하지만, 영화가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모두 다 정좌를 한 채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영화가 끝나기 전에 나가는 건 그 사람들의 자유이고, 그 사람들에게 오히려 제가 나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심지어 저 한 사람 때문에 극장 입구에 계속 서 있는 직원분께 미안하고 민망한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제가 영화를 끝까지 즐길 권리가 ‘심각한 수준으로’까지 방해받는 건 여전히 속상한 일입니다. 과거엔 극장들이 그 권리를 당연하다는 듯 빼앗아 갔는데, 거의 대부분의 극장들이 그 권리를 존중해주고 있는 지금, 좋은 영화를 봐놓고도 오히려 화가 나서 극장을 나오는 일이 생길 때마다 마음이 안 좋습니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관심이 없는 건 각자의 자유이고 취향이지만,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보는 사람들을 심각하게 방해하지는 말아주세요. 제발…


영진공 노바리

[Sugar & Spice – 風味絶佳] – 모든 인연은 스쳐간다.

Sugar & Spice - 風味絶佳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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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란 무엇일까?

그저 두근두근 설레이던 어린 날의 추억?

가슴 타들어가도록 아쉬웠던 기억을 갖게 한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첫사랑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얘기하지만 글쎄…
대한민국에서는 꽤 많은 남녀가 ‘처음 같이 잔 – 혹은 잘 – 이성’과 결혼을 하고 있다.
굳이 ‘같이 자는 것’을 포함해야 첫사랑이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사랑에 ‘같이 자는 것’을 빼면 그게 사랑이던가?

어느 새 내가 ‘남자’가 되었음을 느낄 때가 있다면 그 중 하나는 ‘다정다감하던 내 모습’을 벗어버렸을 때다.
그저 좋은 사람, 결혼하기 괜찮은 남자. – 물론 이 속에는 소녀의 시각이 숨어있다. –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것은 ‘다정함’하나로도 족하다.
쓸쓸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누군가의 다정함이 아니던가?
그러나 현재의 사랑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정함 뿐만이 아니다.
달콤함이 달콤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톡 쏠 수 있는 향신료가 필요하다.

‘풍미절가’는 고상한 맛이 더 없이 훌륭하다는 뜻이다.
내 죽기 전에 몇 번의 사랑을 더 거칠 수 있을까?

매 순간의 사랑에,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터.
Sugar & Spice - 風味絶佳 의 한 장면
영화 ‘Sugar & Spice – 風味絶佳’는 제목만큼이나 깔끔한 맛을 갖고 있다.
언제나 스쳐가는 인연.
그것이 몇 달이 되었든, 몇 년이 되었든, 혹은 몇 십년이 되었든.

모든 인연은 스쳐가는 법.

한 때의 풍미가. 더 없이 훌륭한 기억으로 남는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사랑이 있을 수 있을런가?


영진공 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