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검사의 역사 (3), 지능검사를 인종차별의 수단으로 전용한 헨리 고다드



비네와 사이먼은 프랑스 사람이다. 그러니 비네 검사의 문항과 해석방법 그리고 관련 자료는 모두 프랑스어로 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이 지능검사가 영어권에 이식되기 위해서는 영어로 번역될 필요가 있었다. 이 작업을 한 사람은 영국이 아니라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클라크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헨리 고다드 H.Goddard (1866-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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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학에서 배운 것이 바로 유전심리학이다. 지금도 행동유전학이라는 심리에 있어 유전인자의 역할을 연구하는 학문이 있지만 그가 배운 1900년초의 유전심리학은 거의 우생학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바보의 자식은 바보가 되고 천재의 자식은 천재가 된다는 식의 이론으로 앞서 프랜시스 갈톤이 그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고다드는 박사학위를 받고는 정신박약아들을 위한 훈련프로그램을 개발 중이었는데 이 정신박약아들 조차도 그 능력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유럽에 가서 이 아이들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비네의 지능검사를 발견한 것이다. 시험삼아 이 검사를 영어로 번역해서 아이들에게 실시해보니 오, 놀라워라! 그 전에 사용한 그 어떤 검사보다도 딱딱 맞아떨어지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비네 검사의 신봉자가 된다. 그리고 비네 검사체계를 미국에 소개하는 전도사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고다드는 비네가 정신 수준(Mental level)이라고 했던 지능을 정신 연령(Mental age)라는 개념으로 바꿔치기 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연령’이라는 개념이 애매모호한 ‘수준’이라는 말 보다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비네의 검사결과 지능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경우에 해당하는 용어도 새로 발명했는데, 그 중에는 ‘저능아’(moron)라는 단어가 있다. 당시에는 학술적인 용어였지만, 지금은 함부로 ‘모론’ 이라는 단어를 쓰면 차별주의자로 취급받거나 총맞기 딱 좋다.

고다드는 비네 검사를 단지 정신박약아들을 위해서만 사용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의 꿈은 더 원대했다. 유전심리학자로서, 그리고 미국의 미래를 염려하는 우생학자로서 그는 미국에 유입되는 이민자들의 질을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인간의 품성에 대해서, 고다드는 히틀러와 똑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

그가 보기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오는 이민자들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북유럽과 서유럽 출신의 전통적인 이민자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영국과 프랑스, 독일, 스위스나 핀란드 같은 나라 출신 이민자들이다. 이들은 앵글로 색슨족이었고, 청교도이며, 교육수준도 높은 편이었다.

반면 두 번째 유형의 이민자들은 남유럽과 동유럽 출신인데, 국가로 치자면 폴란드, 이탈리아, 러시아 출신으로서 인종적으로는 유태인이나 집시이고 종교는 카톨릭이나 유태교, 교육수준은 낮은 사람들이었다.

1800년대에는 주로 첫 번째 유형의 앵글로 색슨 이민자들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1900년대에 들어서자 두 번째 유형의 비 앵글로색슨 이민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앵글로 색슨 이민자들은 이 신참 이민자들을 차별하고 경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다드도 그런 앵글로 색슨 이민자 중의 한명이었다.


앨리스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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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앨리스섬 이민국의 풍경

그래서 그는 비네-사이먼 검사를 이용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지적으로 검열하고자 했다. 당시 자유의 여신상에 세워져있던 앨리스 섬은 이민국 사무소가 설치되어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이민자들을 심사하고 이민/추방 여부를 결정하는 곳이었다. 1912년에 고다드는 몸소 여기를 방문해서 비네 검사가 이민자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지를 실험했다. 그런데 그의 실험방식은 지금 기준으로는 엉망진창이었다.

그는 모든 이민자들에게 지능검사를 실시한 것이 아니라, 겉보기에 좀 떨어져 보이는 듯한 어린 소년을 하나 골라서 어려운 문제를 낸 것이다. 통역담당자가 “이건 나도 못 풀어!” 라고 항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검사결과를 기초로 고다드는 비네 검사가 실제로 저능한 이민자를 가려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년 후의 2차 방문시에는 좀 더 준비를 많이 해서 165명의 동남유럽 출신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비네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그 165명 중에서 40% 정도는 저능아라는 쇼킹한 결과를 얻었다. 이민국 사람들은 고다드의 연구결과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결국 비네 사이먼 검사는 이민국의 표준검사 절차중 하나가 되었다.

모든 이민자에게 실시한 것이 아니라 조금 지적능력이 의심되는 이민자들만에게만 실시하는 검사 중의 하나가 된 것이었다. 사실 그 전에는 이민자들을 추방하고 싶어도 뚜렷한 명분이 없었으나 고다드가 과학의 이름으로 추방의 빌미거리를 하나 제공한 것이다.

그 결과 고다드가 방문하기 전에 이민국에서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본국으로 추방한 이민자는 전체의 2% 정도였지만, 비네 사이먼 검사를 채용한 이후에는 그 추방율이 10% 정도까지 높아졌다. 지능검사를 서북유럽 출신 이민자들에게도 실시했다면 고다드가 확신한 것처럼 지능검사가 이민자들의 질을 평가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랜 항해를 마치고 신대륙이라는 낯선 곳에 막 도착한 데다가 수많은 사람과 관리와 서류들로 가득찬 곳에서 생판 처음 접하는 검사를 해야 했던 사람들이 과연 제대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나. 동남유럽 출신이든, 서북유럽출신이든 상관없이 대부분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다드가 실시한 지능검사는 과학적으로 이민자들을 선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다드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결국 조국 미국 주민들이 “우둔한” 이민자의 피로 오염될까봐 두려워했던 고다드의 노력 덕분에, 한동안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앨리스 섬은 과학의 이름으로 위장된 인종차별이 제도적으로 시행되는 무서운 곳이 되어버렸다.


지능검사에 통과해야 아메리칸 드림도 꿔볼 수 있단다 …

영진공 짱가

지능검사의 역사 (1), 최면술에 열광했던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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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는 1857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법학을 공부했으나 1878년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비네는 소르본 대학교에서 과학을 공부하면서 파리의 국립도서관에서 심리학 책을 빌려 읽으며 독학으로 심리학을 공부했다.

1883년에는 프로이트도 배웠던 샤르코의 최면술에 열광해 최면술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나중에 그런 사이비 과학에 부화뇌동했다는 이유로 학계로부터 사과요구를 받기도 했다. 1885년과 1887년 두 딸이 태어나자 비네는 관심을 최면술에서 인간의 성장으로 옮겼고 그 이후 자신의 두 딸이 성장하는 과정을 관찰하던 21년간 실험심리학, 발달심리학, 교육심리학, 사회심리학 그리고 비교 심리학 분야에 대한 책을 2백권 넘게 저술했다.

비네가 자기 딸들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얻은 심리학적인 통찰은 이후 지능검사를 개발하는 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한데, 비슷한 사례는 삐아제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발달심리학을 연구 하려면 자녀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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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코의 최면치료를 묘사한 유명한 그림. 사실 이 그림 밖에 없는 듯 …

비네는 이후 연령별로 아이들의 지적인 능력이 어떻게 발달하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동료인 테오도르 사이먼Theodore Simon과 함께 먼저 여러 연령대의 정상적인 아이들과 비정상적인 아이들을 선발한 다음, 이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제를 풀어보게 하면서 그 나이 또래의 정상적인/비정상적인 아이들이 각각 뭘 할 수 있고 뭘 못하는지를 면밀하게 조사했다. 이를 통해서 연령별로 아이들의 지적인 능력을 측정하는 검사항목을 만들었다.

검사항목 중에는 단순히 검사자와 악수를 할 수 있는지, 혹은 불켜진 성냥의 움직임을 쫒아가며 시선을 옮길 수 있는지와 같이 아주 쉬운 문제도 있었고, “옆집에 낯선 손님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사가, 그 다음에는 변호사가, 가장 최근에는 신부님이 다녀가셨다. 옆집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와 같이 어린아이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도 있었다(다들 아시겠지만, 이 문제의 답은 ‘옆집의 어른이 죽어간다‘이다. 위독하기에 의사가 다녀갔고, 유언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변호사가 필요했고, 종부성사를 위해서 신부가 다녀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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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게 뭘까?

그러던 중 1904년 프랑스 정부에 의해 프랑스 아동심리 전문가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 위원회의 목적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는 지체아동을 어떻게 찾아낼 것이며 그 아동들에게는 어떤 특수 교육을 시켜야 하는지를 밝혀내기 위함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최초로 보통교육을 실시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국민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민을 표준적인 보통교육을 통해서 기본적인 상식과 공통적인 의식을 부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보통교육 시스템은 몇 살짜리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표준적인 교육안을 필요로 했는데 아무도 각 연령대의 아이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1900년대 당시에는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다음 셋 중 하나로 구분되었다. 아예 혼자서 생활을 할 수 없는 백치(idiots), 도움을 받아 혼자 생활이 되지만 학업은 불가능한 치우(imbeciles), 학업이 가능하지만 특수교육이 필요한 약질(debiles). 그런데 이 세 유형을 구분하는 기준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에 따라 같은 아이의 진단도 다르게 나왔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위원회가 설립된 것이었다.

이 위원회의 일원이었던 비네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기초로 공립학교에서 표준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 즉 특수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검사도구를 만들었다. 이것이 최초의 지능검사였다. 이 검사는 이후 6년간 꾸준히 수정 보완되어 마침내 1911년 최종판이 완성되었으며, 그와 동료인 사이먼의 이름을 따서 비네-사이먼 검사라고 불린다.
 


비네-사이먼 지능 검사 도구

이 비네-사이먼 지능 검사는 원래 검사자와 검사 대상 아동이 1대 1로 실시하는 개인용 검사였다. 지능 검사의 내용은 3세부터 15세 까지의 아동을 대상으로 같은 연령대의 정상적인 아이들에 비해서 얼마나 지능이 더 높거나 낮은지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앞서 자신의 연구를 통해서 만들어진, 각 연령대에 해당하는 정상적인 아이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의 목록을 가지고 비네는 그 연령대 아이들의 지능 표준을 만들었다. 이렇게 연령 단위로 아이들의 지적인 능력을 측정했기 때문에 비네의 지능 검사는 IQ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정신 수준(Mental level)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정신 수준을 산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만약 어떤 3살 짜리 아이가 표준적인 3살짜리 아이들이 풀 수 있었던 문제 10개를 모두 푼다면, 그 아이의 정신 수준은 3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가 표준적인 3살짜리 아이들이 풀 수 있었던 문제들 중에서 절반을 풀지 못한다면, 그 아이의 정신수준은 3살에 미치지 못하며 2.5 정도에 해당한다. 만약에 표준적인 3살짜리 아이들이 풀 수 있는 문제를 전부 풀고 4살짜리 아이가 풀 수 있는 문제 중에서 절반을 푼다면 그 아이의 정신수준은 3.5가 되는 것이다.


정신수준 개념

이제 인간의 지적능력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려는 노력의 첫번째 성과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지능 즉 아이큐가 되기까지는 아직 몇단계를 더 거쳐야 했다.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