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THE ARRIVAL), 흑백 무성영화처럼 흘러가는 가슴 아련한 동화.


글,그림_숀 탠

펴냄_사계절 출판사




현대 사회에서의 고독한 개인을 그렸던 ‘빨간 나무’나 유럽의 제국주의 혹은 산업화의 횡포를 이야기한 ‘토끼들’에서 어린이 책을 넘어선 주제들을 기발한 아이디어와 그림으로 풀어냄으로 어린이를 비롯 어른들에게까지 큰 감동을 주었던 숀 탠은 이번엔 직접 스토리까지 쓰며 4년간의 노력 끝에 신작 ‘THE ARRIVAL’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번 작품은 여러모로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가 없는데 (물론 그가 발표하는 작품을 접할 때 마다 나는 매번 충격에 휩싸였지만!) 무엇보다 동화책이 아닌 그래픽 노블이라는 점입니다. 동화책이라는 매체의 한계(12~15장)를 벗어나 그는 무려 781컷의 그림을 통해 보다 마음껏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숀탠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보여주는 유려한 그림실력과 기발한 상상력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간과 사회를 이야기하는 주제의식과 자칫 어둡게 빠질 수 있는 이야기를 아름답고 유쾌한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능력에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이민, 난민이라는 인류의 어둡고 슬픈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책은 따스하고 아련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치 빛바랜 흑백사진과 같은 그림들이 뭉클하고 아련하게 다가온다.


그가 ‘이민, 난민’을 주제로 택한 이유가 그의 아버지가 이민자였다는 개인적 가정사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 살고 있는, 이민자들로 세워진 호주 대륙의 역사 때문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과 호주라는 대륙을 넘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책 속에는 가난을 피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떠나야만 했던 부모님 세대, 지금 코리아 드림을 꿈꾸며 하루 12시간 이상을 노동하고 있는 우리 주변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가난과 전쟁, 폭력을 피해 고국을 버리고 낮선 나라에 정책해야만 했던 가슴 아픈 이들의 상처를 저채도의 정성스런 소묘화를 통해 따스한 손길로 그려내었습니다. 물론 그의 기발한 상상력은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그의 상상력은 이 어둡고 슬픈, 그래서 딱딱하거나 신파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부드러운 한편의 동화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대사가 없는, 빛바랜 사진처럼 그려진 그림들은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 한 편의 무성영화처럼 흘러갑니다. 



아픈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싹은 언제나 피어난다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저는 국내 출판은 어렵지 않을까 해서 원서로 구입하였는데 이번에 사계절 출판사를 통해 국내에서도 정식출판이 되었습니다. 출판사의 좋은 안목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좋은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되어 기쁘지만 아쉽게도 동화책으로 분류되어 서점에서는 동화책 코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