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액츄얼리>, 결단의 순간 <영진공 69호>

재외공관소식
2007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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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러브 액츄얼리’를
보았다. 영국 수상으로 나오는 휴 그랜트는 비서 나탈리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를 읽곤 그 자리에서 바로 수행원을 호출해 차를
대기시킨다. 영화나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단호히 결단을 내리고, 신속히 행동한다. 뭔가 조짐이나 신호, 계시 같은 것이
보일라치면 바로 수화기를 들고, 방을 뛰쳐나가고, 오토바이에 오르거나 택시를 세운다. 그런 모습은 꽤 현실성 없게 보이곤 한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그렇게 ‘단호하고도 신속히’ 내릴 수 있는 결단은 ‘어젯밤 꿈이 심상찮았으니 이번 주엔 꼭 로또를
살테다!’ 정도 규모인 경우가 고작이 아닐까 싶으니까.

하지만 좀더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도 저런 순간들이 몇 번은
있었구나 싶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결단의 순간은 오래 전 어느 봄날이었다. 그날 나는 대학 종합관 4층 화장실 변기 물을 내리며
‘그래, 휴학을 하자’ 라고 결심하고 화장실을 나섰다. 그리고 교정을 걸어 내려가 다음 날 바로 휴학계를 제출하고 휴학에
돌입했다. 그때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아마 스트레이트로 학교를 더 다니고 졸업을 하고난 후 취업을 시도했을 거다.
그리고 휴학을 했기 때문에 복학 때까지 줄줄이 하게 되었던 ‘커피숍 서빙-학원생활-수능시험-취업-은둔자 생활-전시장
알바-재취업’ 같은 과정이 인생에서 쏙 빠졌겠지. 그랬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보니 그 동안 내가 내렸던 이런저런 결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나보다 많이 소심한 누군가의 눈으로
들여다본다면, 내 인생은 ‘뭐 저런 현실감 없이 단호한 순간의 연속’일 수도 있겠다. 하긴 그동안 연애하면서 떨어댄 온갖
방정들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결단들이었으니. 어쨌든 생각보다 우린 꽤 자주 ‘단호하고도 신속한’ 결단들을 내리며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결단은 이런 딴 생각을 딱 접고 코앞에 닥친 마감을 쳐내기로 결심하는 것이렷다.
끙.

결단은 단호하게
도대체(http://dodaeche.com)

장-피에르 멜빌, <그림자 군단> <영진공 69호>

과거사진상규명위
2007년 2월 26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Sabbath님이 열정적으로 보고싶다는 소망을 피력하셨던
바 있는 장-피에르 멜빌의 영화 <그림자 군단> 완전판이 마침 이번 서울아트시네마의 친구들영화제에서 상영된지라,
일종의 뽐뿌를 받아 상영 당시 보러 갔다. 워낙 장-피에르 멜빌 감독의 영화가 재밌다는 얘길 많이 들은지라 조금 기대를 하면서도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관한 영화라 내 취향에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게 웬걸. 이 영화는 매우 절제되고 건조한 이야기
진행에 매우 서정적인 음악이 기묘하게 충돌하는, 아니 그리하여 한차원 더 높은 멜랑꼴리를 만들어내는 그런 영화였다. (매우
취향이라는 얘기다.) 음악 얘길 꺼낸 김에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음악 외에도 전반적인 사운드 효과가 아주 인상깊었다. 특히
비시정권 본부로 호송된 제르니에가 탈출하는 장면에서, 빈 골목에 가득 울리는 제르니에의 발자국 소리와 헉헉대는 숨소리가 갖는
일정한 리듬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리노 벤추라와 장-피에르 카셀(뱅상 카셀의 아버지인 프랑스의 명배우), 시몬 시뇨레 등 한때 스크린을 풍미했던 위대한
배우들이 줄줄이 출연하는 이 영화는 레지스탕스를 그린 영화들의 흔한 상투성을 반복하지 않는다. 모두들 언급하는 대로, 고독하고
과도한 비장미를 풍겨대는 후까시 고뇌의 영웅들이 아니라 은신과 도망, 그리고 싸움과 엄격함과 금욕이 피로한 일상이 되어버린,
그러나 그 일상을 매우 성실하게 영위해내는 ‘보통사람들’로서의 레지스탕스를 그린다.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 청년. “조국을
너무나 사랑해서”와 같은 낯뜨거운, 그러나 대단히 선동적인 신념 때문이 아니라 그들은 그저, “해야 할 일이니까” 하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화면은 과장된 어리광의 비장미 대신, 절제된 슬픔과 인간 본연의 고독이 가득하다. 혹독한 조건 위에서 묵묵히
손에 피를 묻힌다. 총에 맞는 순간, 마틸드는 어쩔 수 없이 살고싶다는 욕망과 동지들에 대한 원망 사이에서도 차라리 동지들 손에
죽는 것이 행복하다는 상반된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들소’처럼 우리 역시, 마틸드를 죽여야 한다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는
강경한 제르니에의 태도에 순간적으로 질리고 거부할지언정 그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해야 한다는 것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렇게 스러져간 목숨들이다. 딸의 불행 앞에서 이성을 잃는 어머니, 왜소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40대 중년의 남자,
연이은 고문을 받아 피떡이 된, 더없이 허약하고 초라해 보이는 노인.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 은은한 빛이
난다. 첫 임무를 배신자 처단으로 받아 패닉 상태에 빠졌던 ‘마스크’ 클로드가 영화 말미에서 더없이 침착한 태도를 보이듯,
어느덧 살인과 처단에 익숙해지는 자신들을 보며 그들 스스로도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으랴. 그러나 그것은,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이 끝나기 전 모두 체포돼 죽음을 맞고 만다. 그들은 진정 그림자로 존재하던 군대였고, 그림자의 운명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아무런 영광도 기쁨도 없이, 보상도 없이,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것.

아마도 이런 ‘건조한’ 터치 때문이었던 것 같다. 멜빌의 이 영화는 프랑스에서 첫 개봉 당시 비시정권에 우호적이라는 오해를
받았던 모양인데, 아마도 장 웬 감독의 <귀신이 온다>가 중국인에게서 ‘일본에 우호적’이라 평가받은 것은 물론 한국의
영화평론가한테까지 ‘허허실실의 역사인식'(심영섭)이란 오해를 받은 것과 비슷한 궤일 것이다.

과거사진상규명위 상임간사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

ps 1. 멜빌 영화들을 쭈욱 보고싶은 욕심은, 작년엔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특별전을 한번 했었기 때문에 당분간 이뤄지기 어려울 듯. 그러나 올해엔 장 르노아르 특별전이 있다!

ps 2. 내가 본 버전은 완전판, 복원판 등으로 불리는데, 애초 개봉되었을 당시 잘려나간 10분을 복원했을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카날플러스에서 완전히 새로운 프린트로 복원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1969년 영화를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프린트로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도 부러운 일인지. 이번 친구들영화제의 개막작이었던 김기영 감독의
<고려장>이 프린트 2권이 분실된데다 비내리는 화면(이나마도 영상자료원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들여 프린트 세척과 복원을
하고 빠진 부분 줄거리를 자막으로 삽입한 버전)으로 본 것을 생각해보면, “진정한 영화강국” 프랑스가 부럽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그러나 워낙 열정적인 사람들이 제도권 안팎에서 노력하고 있으니, 우리 역시 그 빛을 분명 조만간에 볼 것이다.

“잘 참게 생기셨는 걸요 …” <영진공 69호>

재외공관소식
2007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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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 훈련장 입구에서 먼저 저벅저벅 들어가는 저 씨뻘건 모자들을 곁눈질할때. 그 찝찝함과 답답함과 막막함을 동반한 공포를 사회에서도 맛 볼수 있는 곳을 꼽아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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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없이 이곳을 뽑으리오..으으으으-_-;;

없다는 요즘 이빨치료를 하러 치과에 다니며 뼈를 깎고 살(잇몸도 살은
살이지? 음…)을 째는 고통을 2박 3일마다 한번씩 경험하고 있다. 어금니 하나의 신경치료를 하는 중인데.. 신경치료라는
것이 이렇게 자동차 할부처럼 두고두고 고통을 예약하는 것인줄 미리 알았다면 매일 밤 양치질마다 손목을 하드디스크처럼 회전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후회는 언제나 늦은 법. 치를 떨며 잇몸을 째고 사랑니를 뽑아낸 지 3년만에 다시 올라앉은 진료의자에서 나는 내 입속으로 난입하게 될 각종 도구들을 바라보며 고문도구 바라보는 포로가 된 기분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마스크를 한 간호사 언니가 먼저 와서 말을 건넨다.

신경치료 예약하신 분이죠?”

없다는 긴장되거나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선 멍청한 농담을 하는 버릇이 있다.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않을 이야기가 미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 밖으로 튀어 나오는데, 역시나 웃기는데도 실패하고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도 실패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근데 왜 하냐고…? 나도 몰라)

“아뇨 이치로…(‘이치료’를 이용한 언어유희. 순간 대단한 재치잖아? 라고 착각했다.)요. 하하하.”

“…..”


호사 언니는 눈만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말로 하는 것처럼 정확히 전달하는 기술를 선보이며(‘뭐 이런
새끼가….’) 예의넘치게도 나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는데, 물론 용서받을 수 없는 농담이긴 했지만 그날 나는 앞으로 닥쳐올
울트라 고통을 상상하며 사포로 갈아놓은 듯 까칠한 상태.
살짝 기분이 상했다. 코웃음이라도 좀 쳐주지 시바…

“저기, 근데.. 신경치료 말이죠… 혹시 스물일곱살 먹은 성인 남자가 견뎌내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게 치료받은 사람들의 통설이었나요?

“아프냐고요?”

“…(썅)예-_-;;”

잘 참게 생기셨는데요 뭘.”

“……..”


참게 생겨?  대게 건강해 보인다거나, 튼튼해 보인다고 하지 않나? 어떻게 생긴게 잘 참게 생긴거야? 둔하게 생긴 거? 고통도
못 느낄 정도로 멍청하게 생겼다는 말이야?  아님 그 면상을 해가지고 참을성마저 부재한다면 참으로 크나큰 문제가 아니겠냐는, 뭐
그런 의견을 피력하시는 겁니까? (쓸데없이 예민한 반응이었다는 거 알지만.. 치과 의자에 앉아 보라구. 까칠해 진다니까?)
조금 더 기분이 상했다. 아시다시피 본인은 뒤끝없는 깔끔한 위인이 못 되기에..

치료가 끝나고 이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만 이천 오백원이세요.”

다음과 같은 까칠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와우. 만 이천 오백원보다 어려 보이지는 않으신데요.”

“…………………….”

그러니까, 왜 돈에다가 대고 높임말을 하느냐, 만 이천 오백원 주시면 되요, 라든지 만 이천 오백원입니다 라고 해야 하는것 아니냐.. 라는 뼈를 담은 농담이었는데….. 물론 지금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_-;;
그나저나, 병원을 바꾸어야 하는 걸까? 다음에 갔을 때 마취주사 안 놔준다거나 하면 어떡하지?

언어 유희 일상 생활 적용 운동
거의 없다(1000j100j@hanmail.net)

“짬지 블로그의 마지막 글을 올리며 …” <영진공 69호>

언론중재위원회
2007년 2월 22일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어떻게 써야 하나. 이걸 써야 하나. 계속 생각해 봤는데.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포스팅이 이 블로그의 마지막 글입니다.


로그에 1년에 글이 올라오는 날이라고 해 봐야 채 한 달이 안 되고, 그나마 1년의 절반은 블로그를 방치해 두는 잠수 전문
블로거이기에 조용히,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사랑해 주신 분들과 가끔씩
방문하셔서 피식웃어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뿅~”하고 사라지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많은 말이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데 그걸 적으려고 하니, 막막해지네요.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그리고 이렇게 사라져서 죄송하다는 말. 그런 말들만 입안에서 맴도네요.


저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랑해 주신, 그리고 방문해 주신, 그리고 댓글 달아 주신, 추천해 주신
분들.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확인해 보니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방문자 수를 합하면
100만 명이 넘더군요. 미디어몹은 히트수로 측정되기에 100만명이라고 하기엔 뻘쭘하지만, 테터와 미몹, 그리고 네이버까지
합치면 100만이 넘네요. 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많은 숫자를, 하나씩 하나씩 늘려 주셨던 방문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100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전 세계의 로봇들과 스패머들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마지막 글이라고 생각해
보니, 이런 저런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이렇게 이 정도에서 그만 둘 줄 알았다면 더 많이 글을 썼어야 했는데. 아직 아웃룩
메모장에 적어 놓은 아이디어가 남아 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풀어보지도 못하고 버려야 하다니. 아쉬움 만땅 입니다.
블로그 스킨을 수정해서 장난치려 했던 것도 있는데, 그것 역시 머릿속에서 놀다 끝나 버렸네요. 섹스 이야기를 쓰시는 분들과 언제
한번 힘을 합쳐 팀블로그를 운영해 보려 했는데 이 역시도 공상이 되어 버렸고, 몇 년간 모임을 나가지 않은 영진공을 위해 무언가
해 주고 싶었는데 이 역시, 미안함만 남아 버린 채 끝나는 혼잣말이 되었네요.

광고 블로그라고, 성인 블로그라고
이곳을 쳐다도 보지 않은 분들도 많으셨을 겁니다. 때로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더랬죠. 지금이야 가끔씩
등장해 조용히 사라지니 욕 하시는 분들도 없지만, 지금보다 블로고스피어가 작았던 시절, 작은 이슈 하나만으로도 올블이나 블코같은
메타 사이트가 흔들리던 시절에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때문에 저는 더 조심스러웠고, 덕분에
아직까지 이 블로그가 다른 어떤 사이트보다 “덜 상업적이고, 덜 야한 블로그”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블로그 제목은
제가 봐도 짱입니다. 성인용품 주인의 블로그라니. 게다가 그 성인용품점이 짬지닷컴이라니. 제목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긴 하죠.
^^; 하여간, “상업적이고 야한 블로그”라는 오해를 가지셨던 분이 계셨다면, 이제 그 오해는 풀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에드센스에 비한다면 옆의 배너는 애교로 봐줄 수 있지 않나요? 더 야한 사진과 더 야한 내용을 포스팅하는 블로거가 수두룩한데,
이 블로그 정도의 야함은 웃어 넘겨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 다시 볼 사이도 아니잖아요?

아. 블로그 뿐만 아니라 짬지닷컴도 문을 닫을 계획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짬지닷컴을 닫으며, 블로그도 그만 둘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그렇게 보니까, 제가 광고 블로거가 맞긴 맞군요. -.-;


지닷컴도 사실 그래요. 성인용품 쇼핑몰이라는 것. 어떻게 보면 참 접근하기 힘든 것이죠. 페니스 모양의 딜도가 굴러다니고, 여성
성기를 꼭 빼닮은 자위기구가 넘쳐나는 곳. 누구에게는 천국(-.-)이겠지만, 대부분에게는 접근하기 힘든 [나와 다른 세계]로
느껴지겠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죠.

그런데요. 성인용품이 그렇다고 범죄는 아니잖아요?
성인용품을 사용한다고 누군가가 상처를 입는 것은 아니잖아요? 성인용품이 이상하게 생겼다고 누군가의 가슴을 후벼파는 것은
아니잖아요? 성인용품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 세상에 범죄가 가득한 곳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성인용품을 범죄인양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까요? 왜 짬지닷컴을 그런 음탕한 생각들의 온상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까요?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성인용품이라는 것은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의 한 부분일 뿐인데, 왜 사람들은 이걸 가지고 사회의 정의까지 생각하려는
걸까요?

저는 그냥 사이트를 운영했을 뿐입니다. 짬지닷컴. 제목은 우스꽝스러웠을지 모르겠지만, 내용은 언제나 알찼다고
자부합니다. 사이트에 접속하면 악성코드나 심으려하는 누구처럼 사이트를 운영한 적도 없고, 스팸이나 보내서 어떻게 해 보려는
업체들처럼 쓰레기를 만들어 본 적도 없고, 누구처럼 고객 정보가지고 장난쳐본 적도 없습니다. 회원정보는 전부 암호화되어서
운영자도 절대 알 수 없도록 보호 되었고, 사이트에 들어가기 위해 하는 성인인증에서 그 어떤 정보도 취합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름대로 정직하게 운영했고, 양심적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요. 사실대로 말할게요. 얼마 전에 중부 경찰서에 갔다
왔습니다. 사이트에 올라온 제품 사진이 너무 야하다고 누군가가 고발했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성인용품점을 40개 정도 고발한
모양입니다. 그걸 고발한 사람이나, 조사한 경찰이나, 거기에 가서 조서꾸미고 지장까지 찍고 나온 나나 매 한가지로 우습지만,
결국 상처는 저 혼자만 남게 되겠죠. 경찰서를 나오면서 문득 더러워서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얼마 전에는 관세청에 가서
밀수혐의로 조사 받고 왔는데 (밀수라뇨.. 신혼여행 빼고 외국에 나가보지도 못한 제가.. -.-;; 그것도 누군가의 신고로
조사를 받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경찰 조사라니. 평생 단 한번도, 경찰서에 가 본적 없이 조용히 살았는데,
아니, 신호위반 조차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고, 심지어 무단 행단조차 한번 해 보지 않고 살았는데. 이런 거지같은 상황이
나에게 생기다니. 지나치게 억울하더군요. 게다가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니.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나름대로
제대로 성인용품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들어오는 테클에 감당하기 힘들겠더군요. 그래서
짬지닷컴을 그만둘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짬지블로그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인인증을 하고 들어간 사이트의
인형 사진을 가지고도 고발을 당하고, 벌금을 받고, 전과자가 되는데 (벌금만 받아도 전과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젠장. -.-) 블로그라고 안전할리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만 두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더랬죠.
이쯤에서 다른 분들에게도 경보를 쏘고 싶습니다. 제 레이더에 걸린 분들이 여럿 계십니다. 성인관련해서 좋은 글을 쓰시는 분도
계시고, 야한 사진 열심히 펌질하고 계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전과자 되는 것. 지금 보니까 아주 쉬운
일이더군요. 특히나 사회적 관습 어쩌구 저쩌구를 가지고 음란을 평가하는 섹스파트 쪽에서는.

어쩔 수 없죠. 까라면
까야죠. 이걸 가지고 싸워서 전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싸워서 이긴다고 해도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행여나 작은 파이가 내 몫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결국 큰 몫은 내가 욕하는 기존의 성인용품점들이 고스란히 가져갈
거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거든요. 게다가 사실. 이길 수도 없어요. 여성 성기를 닮은 성인용품은 인터넷 쇼핑몰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있을만큼의 음란기준을 초과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더라구요. 싸우기도 싫고, 싸워서 이기기는
힘들고, 이긴다고 해도 좋을 것이 없는 상황. 어쩌겠어요. 접어야죠. ^^ .

그러고 보면, 사고라는 것은 겹쳐서
오는가 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운영하던 다른 쇼핑몰을 접었고, 그 보다 한달전에는 쇼핑몰 제작 파트를 없앴는데, 이제는
짬지닷컴까지 문을 닫아야 하다니. 순식간에 백수가 되어 버리네요. 지난달에 마지막 직원을 떠나보내고,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제
동생과 “이제 우리 둘이서 새로운 것을 한번 해 보자.”라고 다짐했는데, 그 새로운 일이 “짬지닷컴을 닫는 일”이 되어
버리다니. 참 황당할 따름입니다.

요 며칠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최면처럼 읊조리고 있지만, 잠도 안자고 열심히 일했던 지난날들을 생각나니 아스라해지더군요. 차라리 다른 쇼핑몰에 매진을 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좋았을 거라는 후회도 생기고, 작년 초 직원들이 돈 안 되는 짬지닷컴은 그만하고 접으라고 말할 때 오기를 부리지
않고 접었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움도 생기는군요. 그랬으면 이런 꼴은 안 당했을텐데요. 나 답지 않은 이런 후회들을 하다 보니,
하룻밤이 훌쩍 지나가 버리네요.

1월 말까지 일을 마무리 할 생각입니다. 여태껏 벌여 놓은 일들을 마무리 짓고,
2월 초에 계획되어 있던 성인용품 쇼핑몰 제작 건에 대한 마지막 PT를 마치고 나서는 완전히 성인용품 쪽에서는 손을 뗄
생각입니다. 어디 조용한 섬 같은 곳으로 동생이랑 며칠 여행이나 갔다 와야죠. 갔다 와서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고민을 할
계획입니다. 아. 좋은 아이템 있으신 분 연락주세요. 제 모든 능력을 다해 성심성의껏 머리를 맞대고 생각할 자신이 있습니다.
돈은 없지만, 의리와 양심은 출중하답니다. ^^

구질구질 말이 많았습니다. 마지막이다 보니, 이런 저런 할 말이 많군요. ^^; 글이 길어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고 싶지가 않아요. -.-; 정말로, 이 블로그에 쓰는 마지막 글이거든요.


들 블로그를 운영하실테니까, 아실겁니다. 자기 블로그라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저 취미일 따름이라 말을 한다고
해도, 여기에 쏟게 되는 관심과 정성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라는 것을. 저 역시 마찬가지거든요. 앞서도 말했지만,
일 년에 서너 달만 달랑 운영하고 숨어버리는 블로거라고 스스로를 자조하지만, 이 블로그에 대한 애정은 넘쳐 납니다.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백개의 글을 쓰며 애정이 없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마지막 글을 쓰려고 하니, 참 기분
묘해지네요. 오래된 친구와 헤어지는 기분이랄까. 연인과 헤어지는 기분이랄까. 성격상, 마지막이라고 말을 해 놓고, 다시 글을
쓰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미련이 남나 봅니다.

휴.. 시작할 때는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스러웠지만, 쓰다
보니 단숨에 달려 왔습니다. 글은 길지만 실상 내용은 없습니다. 블로그의 문을 닫겠다라는 이야기 하나 뿐이죠. 나머지는 감정과
미련의 주절거림일 뿐입니다. 더 이상 구질구질할 필요 없겠죠.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고, 짬지닷컴이라는 이름은 이 블로그에서,
그리고 블로고스피어에서 완전히 떠나겠습니다.

이 블로그를 찾는 모든 분들이 언제나 건강하시길,
그리고 언제나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록키 발보아>, 노병은 죽지 않는다. <영진공 69호>

상벌위원회
2007년 2월 20일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포기 하시하려 합니까 ?
인생 한방으로 결정나는 경우도 많겠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질질 살아가는게 인생입니다

가슴 한번 펴고 한숨 한번 푹 쉬고
다시 한번 신발끈 매고 시작 하시지요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시점이
가장 빠른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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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베스타 스탈론의 영원한 이미지 록키가 돌아왔다.
박물관은 살아있다를 보러간 날 시간이 30분정도 남아있기에 우연히
록키발보아의 마지막 30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록키시리즈 몇십주년을 기념하여 재 상영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스토리가 달랐습니다 팔팔한 록키는 사라지고
할아버지뻘의 아저씨가 계셨습니다.

눈이 찢어지고 애타게 아드레이를 부르던 그 장소에는 그의 딸이 자리를 대신하고
그래도 성난 파워와 힘센 몸짓으로 록키는 권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환갑을 바라보는 록키를 바라보면서 존경심이 우러러 나옵니다.
우리의 실베스타 형님이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나 아직 안죽었다고”
연기를 떠나서 그가 위대해 보입니다. 그리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몸집을
그리고 그 자기 관리가 존경스러워 집니다.

갑자기 내 자신이 부끄러워 집니다.
자기관리를 안하고 술과 담배로 혹사시킨 내 똥배가 나를 비웃습니다.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자는 마음을 먹습니다.

록키는 미국에서 하나의 전설인듯 싶습니다.
필라델피아시는 결국 10여년이상 끌어오던 토론 끝에 80년대 록키3을 찍으면서 기증받았던 록키 마르시아노 동상을 결국 영구
전시하기로 하겠답니다. 실베스타 스탈론은 기억에 사라질지 몰라도 그가 연기하였던 록키 발보아는 영원히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실례가 이 영화의 성공에서 실마리가 보여집니다.

미국 영화의 장기 시리즈 20-30년에 걸친 영화 그예가 스타트렉과 스타워즈인데 이 두개의 영화로 부모 자식간의 유대를
창조한다고 일전의 미국 잡지 엔터테이먼트에서 언급을 하였습니다만 록키 시리즈야 말로 부모 자식간의 유대를 이어 나갈 수 있는
그런 영화인 듯 십습니다. 권투를 싫어하시는 분들에게야 그저 그런 이야기이 겠지만. 영화의 끝에 자막이 올라가면서 올라오는
필라텔피아 시청앞 시민들 록키 공연을 미국인들에 대한 록키의 애정을 잘 표현 하는 듯 싶습니다. 극장에서 보실 분들은 이
뒷풀이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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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에 관한 숫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들

1. 스탈론 최고의 영화는 람보1과 록키1이다
두 영화다 속편으로 이어지면서 작품성이 확 떨어지지만 람보1은 반전주의를 나름대로 잘 표현 하였고 록키1은 그의 각본 주연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7: 최악의 배우들에게 내려지는 라즈베리상 수상 횟수
사실 실베스타 스탈론의 연기가 그다지 뛰어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보통이상은 되는데 의외로
그의 연기를 평가 절하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입니다. 같은 동종의 아놀드가 머리도 좋고 몸매도 좋은 사람으로 나오지만 스탈론은 머리만 나쁜 근육질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슴

10: 람보와 록키의 시리즈 총 편수, 또한 록키1을 찍을때 노개런티에 10% 이익분배를 조건으로 했는데 제작자들은 처음에 별 기대를 않했기에 좋아 했지만 결국 이 영화가 대박이 나서 스탈론 역시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12: 실배스타 스탈론이 옮긴 학교 횟수 그리고 12살때 부모가 이혼함

30. 동일 주인공이 나오는 최장수 시리즈 (30년)
스탈론이 록키로 데뷰한 나이
록키1이 1976년에 발표 되었고 록키6라고 할 수있는 이작품까지 30년간 실베스타 스탈론은 동일인으로 열연하였다. 보통 영화도 아니고 스포츠 영화에서 직접 경기 씬을 찍은 영화로서 그는 최장수의 시리즈를 진행하였다

32. 실베스탈론이 록키로 주연,각본을 할때까지 쓴 영화각본 물론 전부 퇴짜 먹은 수이다. 33번만에 록키가 받아들여 졌다.

49. 현재까지 스탈론이 나온 영화 포르노 제외

60. 환갑이 넘어서 권투씬을 찍은 실베스타 스탈론의 나이는 2006년에 60이였다

시와 함께 느껴보는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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