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 팬더, “아이를 믿어주세요.”

 


감독: 마크 오스본, 존 스티븐슨

출연: 팬더곰, 표범군, 거북이, 모래쥐




자기의 꿈은 거세당한 채 부모들의 대리만족을 충족시켜 주는 존재로 살아야 했던 두 포유동물의 인생역전기. 결정적인 삶의 순간 스스로 결정하여 자신의 삶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는 팬더곰과 반대로 아버지의 희망대로 살아오다 그 꿈이 좌절되어 패륜아로 전락하는 표범군을 통해 우리나라의 가학적인 교육풍토와 아이를 자기의 대리만족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알게 모르게 똥침을 놓고 있는 영화다.


아. 씨발. 그러니까 내가 의대 안간다고 했잖아!


게다가 모래쥐 사범님과 그의 무적 5인방 똘마니들을 통해 특성이든 적성이든 이딴 것은 쓰레기통에 내다버리고 그저 대학 갈 놈과 못갈 놈으로만 나누는 우리 교육의 폐해까지 콕콕 집어주시니 참교육 영화라 해도 무방해 보인다.




니 그리 해서 대학 가긋나?



이렇게 진정한 교육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며 그저 용전사 만들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우리 부모들에게 거북이 할아버지는 지금 우리 교육에서 빠져있는 것은 믿음이라고 일갈하신다.

아이들을 믿어라. 당신이 아이를 믿어준다면 그 아이는 분명 용전사, 국수장인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영진공 self_fish

정부가 준 악몽


 

경찰은 촛불집회를 옹호 지지하는 자, 촛불 집회에 한번이라도 참여한 자를 색출하기 위해 전국 거주지 무차별 압수수색을 강행하기로 했다. 그 무식한 컨테이너를 하늘까지 쌓아버렸는지 벌개야 할 대낮의 하늘은 칠흑같이 어둡고, 세상은 귀를 찢는 사이렌 소리로만 가득 차 있었다. 인터넷으로 어젯밤 촛불집회의 상황을 살피던 나는 이내 컴퓨터를 껐다. 사복경찰들이 아파트 복도를 오르내리는 빠른 발구름 소리가 감지됐기 때문이었다. 집에는 나 혼자뿐이다. 불안은 놀랍도록 큰 공포가 되어 나를 감쌌다.

어디로 숨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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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 Dog, a Caricature of People’s Fear of a Mad-Dog and of Rabies, 1826


이대로 있다간 그대로 연행될지 모른다. 아니 그렇다면 다행이지. 왜 문을 일찍 안 열었냐며 발길질을 할지도, 집안 꼴이 이게 뭐냐 이 꼴을 보니 네가 주범임이 확실하다며 뺨을 갈겨댈지도 모를 일이었다. 21세기에 최루액을 살포해 무고한 시민들까지 다스리겠다는 제대로 똘끼도는 정부가 아닌가.

초인종이 울렸다. 공포는 인간의 자제력을 잃게 한다. 겨우 옷을 걸친 나는 3층 아래로 뛰어내리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애초에 문이 열릴 것을 기대하지 않은 듯, 곧장 문을 부쉈다. 다급해져 숨을 곳을 찾았지만 눈에 띄는 곳은 작은 옷장뿐이었다. 옷장 안에 엉덩이를 밀어넣고 두 다리를 올리려는데 마음처럼 몸이 따르질 않았다. 몸을 작게 웅크리면 배가 쪼였다. 이러다간 뱃속의 아기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곧 뭉뚝한 발톱 같은 대빵과 아래애들 두 명이 신을 신은 채 집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와 내 앞에 섰다.

“사진 몇 장 찍고 갈 겁니다. “ 발톱이 발톱과 같은 딱딱한 투로 말했다. 그는 힐끗 집안을 살피더니 지금 쓰고 있는 모자를 벗고, 두 손을 올리고 자신이 볼 수 있도록 손바닥 앞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덜덜 떨고있는 나는 그리하였다. 이어서 얼굴의 정면 사진을 수 차례 찍어댔다. 번쩍이는 플레쉬 세례를 맞으니 눈알이 따끔거렸다. 발톱 아래 애들 중 한 명은 진공청소기의 먼지 통을 들여다보며 촛불집회 때 쓰여졌을 법한 어떤 것을 그 안에 숨겼는지 꼼꼼히 살폈다. 이어서 발톱에게 보고했다. “깨끗합니다.” 남은 한 명은 옷 방의 잡다한 것들을 모조리 뒤졌다. 그는 왜 이렇게 먼지가 많냐고 툴툴거리더니 “이상 없습니다.” 라고 소리쳤다.

발톱은, 옷 방의 하얀 문에 검정 매직으로 알아보기 힘든 사인을 갈기고는 아래 애들 둘을 데리고 떠났다.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그대로 주저앉음과 동시에 그대로 눈을 떴다. 기분 나쁜 악몽이었다.

꿈은 현실을 반영한 무의식의 세계다. 오늘 아침 내가 꾼 꿈은 말도 안 되는 현 시국과 그것이 공포가 된 무의식이 동시에 반영된 것이다. 지금 이명박과 그의 정부는 분명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더구나 아무 죄 없는 나의 충분한 수면을 방해할 만큼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도 안겼다. 이런 꿈을 꾸며 사는 지금의 우리가 다시는 잠들고 싶지 않을 만큼 … 가엽다.

영진공 애플

폭력과 비폭력 그리고 지금의 우리

—–

1986년 영화 <미션 (The Mission)>입니다.


역사적 실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롤랑 조페가 감독하였고 제레미 아이언스와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을 맡았다.  그리고 1987년도 오스카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700년대 중반 브라질과 파라과이 국경이 만나는 이구아수 폭포의 밀림 속에서 원주민들을 교화하는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 분)와 그에 이끌려 함께 밀림으로 오게 된 로드리고 멘도자 (로버트 드 니로 분).  둘은 원주민과 함께 생활하며 선교와 봉사를 행하게 되고, 전직 노예 사냥꾼인 로드리고는 자신도 목자의 길을 가겠노라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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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시 남미의 식민정복자들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교황청의 묵인하에 이 지역을 정치적으로 거래하고, 예수교회는 포르투갈령으로 넘어가게 된 이 지역의 신부들에게 철수를 명한다.

그들이 떠나고나면 함께했던 원주민들은 노예 사냥꾼들에게 포획되어 비참하게 팔려 나가거나 죽게 될 게 뻔한 상황에서, 둘은 교회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 곳에 남아 원주민을 지킬 것을 결심한다.

허나, 둘이 선택한 방법은 서로 달랐다.  로드리고는 무기를 들고 정복자의 무리들과 싸웠고, 가브리엘 신부는 폭력이 아닌 사랑의 힘을 믿으며 기도로 저항하였다.

그리고 …
 

여기에서 비폭력과 폭력을 구별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요, 어느 쪽이 더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뒤에 숨어있는 갈등의 원인이자 시작이며 가장 험악한 폭력이,
권력이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커다란 어금니를 애써 숨기지도 않은 채 도덕을 설파하고 있는 모습을 잊지말자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그러하듯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Kyrie Eleison …

영진공 이규훈

“원티드 (Wanted)”, 당신은 요즘 얼마나 처량한 놈이었나?

 

그래, 이 맛이야!!!!!!

벅찬 감동, 폐부를 찌르는 리얼리티, 관조적 시선, 숨이 멎을듯한 전율 …
이런 거 음~따.

출생의 비밀, 부모를 죽인 원수, 천골지체, 사악한 마두, 어설픈 반전, 몹쓸 도덕론 …
이런 거 다 있다.

그냥 즐겨라.  차가운 지성 같은 거 어울리지 않는다.
줄거리 따위에 몰입하지 마라.  재밌자고 보는 영화다.
인물과 갈등에 신경 꺼라.  휙휙 날라다니는 것들에 탄성 날려주시면 된다.

무협지에서 “협”이 빠지니 좋더라는 라이 님의 포스트가 있었다만( http://0jin0.com/1389 ),
무협의 세상에서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자들에게 “협”이 없다면,
잠깐 한 눈 파는 새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총질과 칼쌈 속에서 그들이 느낄 심리적 공황과 생명경시에 따른 갈등을 무엇으로 해소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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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밀라 원작, J.G. 존스 그림의 6부작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 “원티드 (Wanted)”.  제임스 매커보이, 안젤리나 졸리, 모건 프리먼 등이 출동해 주신다.

지키자고 정해놓은 윤리와 도덕에 충실하려는 안젤리나 언니의 모습이나,
분명 미국산임이 분명한 쇠고기 스테이크를 맛있게 썰어 먹는 모건 형아의 모습은,
현재 우리 나라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듯도 하지만 … 아무런 과학적 상관 관계 없다 …

그대,
나날이 짜증만 쌓여가는 일상을 잊어보고 싶거나,
두 시간 남짓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걸로 내일의 전투력 증강에 보태고자 한다면,
이 영화 강추다!

즐기라 그리고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당신이 본 모든 걸 잊어버리라.
두고두고 머리에 담아놓고 곱씹을 무언가 따위는 없으니.

단, 이후 당신이 세상을 즐기며 살아갈지  아니면 그저 평소처럼 조*튼 삶에서 허우적 거릴지는 전적으로 그대의 선택이다.

What the f**k have you been lately?
(당신은 요즘 얼마나 *까튼 놈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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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이규훈

경제를 살리려면 제대로 살려라


 


경제를 살리겠단다.  그런데 누가?  물론 주어는 없다.


에혀, 말장난도 이젠 재미읎다.  그냥 담백하게 이야기해봅시다.


 


현 행정부가 넉 달여에 걸쳐 펼쳐 보인 경제정책의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공지출의 삭감과 세금인하, 국영기업의 민영화, 노동조합의 활동규제, 통화정책에 입각한 인플레이션 억제, 기업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 빅뱅(big bang) 등을 통한 금융시장의 활성화, 작은 정부의 실현, 산학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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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심의 경쟁우선 교육정책”




이건 누차 얘기한 거지만 결국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의 복사판입니다.
* [대처리즘]
http://www.encyber.com/search_w/ctdetail.php?gs=ws&gd=&cd=&q=&p=1&masterno=725702&contentno=725702 
* [레이거노믹스]
http://ko.wikipedia.org/wiki/%EB%A0%88%EC%9D%B4%EA%B1%B0%EB%85%B8%EB%AF%B9%EC%8A%A4



, 과연 이런 정책이 현 시기의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요?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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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에 있는 컵에 주전자로 물을 넘치도록 부으면 그 물은 아래에 있는 컵으로 흘러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물은 다시 그 아래에 있는 컵으로 들어갈 것이고 …




이게 현 행정부의 경제살리기 요체입니다.


될 놈을 대차게 밀어주자.  그러면 그 놈이 먹다먹다 남는 게 넘쳐나서 저절로 각 경제주체 및 단위에 골고루 흘러 들어갈 것이다.


 


그럴 듯 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선행조건이 있습니다.


모든 경제주체 및 단위가 hierarchy 구조로 구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어로 쓰니까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실제 이런 구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로 피라미드 구조입니다.

이 구조는 공급되는 물과 물줄기의 흐름이 의도대로 잘 유지된다면 무척 효율적입니다.  그런데 다 아시다시피, 이 구조는 왜곡되기도 쉽습니다.

맨 위의 컵에 호스를 달아서 다른 쪽으로 물줄기를 빼돌린다든지, 자기가 원하는 컵들에만 물을 댄다든지 하는 꼼수 말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종속관계에 있는 아래 컵들은 물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며 마냥 맨 위의 컵을 떠받들고 있어야합니다.

재벌 중심 경제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저런 탑이 여러개 존재한다고 할 때, 주전자가 모든 탑에 골고루 물을 주지 않고 선택적으로 골라서 줄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선택받지 못한 탑의 컵들은 모두 마른채로 있어야 합니다.

관치 경제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자, 그런데 현재 우리의 경제가 저런 구조로 이루어져 있나요?  아니죠.

IMF 구제금융 사태를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이 바로 재벌+관치 중심 경제는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간, 실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얽히고 설켜있는 기업집단을 정비 또는 해체하고 관치를 최소화 및 공정화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자본시장도 개방하고요.

아래 그림과 같은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겁니다.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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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 상황에서 커다란 컵에다 물을 계속 부어봅시다.

뭐, 결과는 뻔합니다.
큰 컵이 다 차면 물은 넘치고 그 물은 바닥에 버려지겠죠.

물론 큰 컵에 물이 다 차면 주전자가 움직여 다른 컵들을 채우면 된다고 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현 행정부의 정책 방향은 정부 규제 폐지, 민간 자율성 강화, 작은 정부 만들기입니다.
즉, 주전자를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이죠.

주전자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물을 고루 분배할 수 있을 까요?

다시 <그림 1.>처럼 피라미드 구조를 만드는 방법이 있겠습니다만, 그건 이전에 이미 부작용이 너무 심하다는 게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피라미드 구조가 아니어도 주전자가 움직이지 않으면서 물이 고루 분배되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어야겠죠.
아래의 그림처럼 …

<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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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컵에 물이 차 올라 넘칠 정도가 되면 호스를 통해 작은 컵들로 물줄기가 흐르게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저런 장치를 큰 컵이 자율적으로 갖추기를 바라기는 힘들테니, 제도적 의무적으로 갖추게 해야겠죠.  그리고 그건 민간과 행정, 입법, 사법부가 함께 노력하여 작동시켜야 할 것이고요.

자, 그럼 이 글의 시작에서 살펴본 현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이런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스크롤해서 다시 올리기 귀찮으실테니 그냥 다시 써 봅니다.

“공공지출의 삭감과 세금인하, 국영기업의 민영화, 노동조합의 활동규제, 통화정책에 입각한 인플레이션 억제, 기업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 빅뱅(big bang) 등을 통한 금융시장의 활성화, 작은 정부의 실현, 산학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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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심의 경쟁우선 교육정책”

아무리봐도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현 행정부가 정말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우리의 경제구조부터 다시 파악해 보시기 바랍니다.

현재의 모습과 추구하고자 하는 모델 그리고 로드맵을 잘 도출하여 제시하고 이를 “소통”을 통해 평가받은 뒤 그에 기반하여 정책을 마련, 집행 하시라는 말씀입니다.

30 여년 전의 영국과 미국에서 실시하였던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리고 있는 정책들을 무작정 밀어붙이려 하지 마시란 말씀입니다.

불도저는 아무 생각 없이 닥치는대로 마구 갈아엎으라고 만들어진 기계가 아닙니다.  면밀한 검토에 의해 도출된 도면에 따라 정해진 구역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정리하라고 만들어놓은 기계입니다.

쫌 제대로 하시란 말입니다.


영진공 이규훈

※ 그림은 도대체 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감사하다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