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최고의 영화 (1): 벙찌는 대사 大賞


올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며 2010년의 영화를 정리하는 기분으로 몇몇 부문의 상을 정해보려고 한다. 그 첫 번째 부문은 바로 “최고의 벙찌는 대사” 상.

그 영예의 수상작은 <아저씨>, 물론 해당 대사를 읇은 이는 원빈 님하 되시겠다.
그럼 문제의 대사는 뭐시냐? 그걸 지금부터 설명드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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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내가 무슨 상?

영화 <아저씨>는 일상적인 형사와 마약 범죄자들간의 쫒고 쫒기는 전쟁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누군가 마약을 빼돌리고, 그 마약이 범죄자들도, 형사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 인물, 차태식(원빈)에게 연결되면서 모든 것이 예상을 벗어나 굴러가기 시작한다.

그런 면에서 이 주인공은 애초부터 주변사람들을 벙찌게 하는 존재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A Man from nowhere]인데, 번역하자면 <어디선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놈> (줄여서 ‘갑툭튀’)라 하겠다. 실제로 이 영화의 설정은 전형적인 액션영화, 예를 들어 <다이하드>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데, 주인공이 원래 계획을 어그러지게 만드는 ‘의외의 요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어? 얘가 왜 여깄어 …

실제로 이 영화에서 차태식을 묘사하는 말들은 전부 ‘갑툭튀’를 내포한다. 태국 용병 ‘람로완’은 그를 “He looks different” 라고 한다. 처음 차태식을 조사한 형사는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놈인데… 기록이 없어!” 라고 한다. 말 그대로 갑툭튀 되시겠다. 모두 그가 의외의 인물이라는 걸 알지만, 그 의외성이 어떤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는 사람은 아주 적다.

특히 그의 의외성에 희생되는 자들은 특히나 그걸 너무 뒤늦게 깨닫고, 그래서 이 갑툭튀의 파괴력이 빛을 발한다. 바로 이 갑툭튀스러움이 이 영화에서 ‘원빈의 휘황한 광채’ 를 제외해도 재미를 보장한다. 물론 그 외에도 이 영화가 초반부에는 차분하게 정서를 절제하다가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제대로 터트려주는, 온도조절에 성공했다는 점도 매우 큰 요소라 하겠다.


아, 람로완(타나용) …

차태식의 갑툭튀 스러움은 특히 대사에서 잘 드러난다. 이건 사실 감독의 절묘한 트릭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원빈의 대사처리가 부자연스러운건지 대사 자체가 부자연스러운건지, 혹은 설정상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건지 참으로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나는 세 번째로 봐도 좋다는 입장이다. 즉, 차태식은 원래 이상한 인간인 것이다(딴걸 다 떠나서 생긴 걸 봐라…). 그는 형사들의 세계에도 속하지 않고, 악당들의 세계에도 속하지 않으면서도 둘 다를 압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 이해하기 어려운 가치관과 행동방식을 가진 ‘갑툭튀’ 그 자체이며 그 갑툭튀스러운 기운이 대사를 통해 스물스물 기어나오기에 아무리 원빈이 어색하게 대사를 읇어도 그럴듯해 보이는 거다.

도대체 어떤 대사가 그러하느냐고?

전당포에 찾아온 동생 악당에게 “전당포는 하루 지나도 한달 이자 받는다…” 를 읇는 것도 매우 갑툭튀 스럽고, 유명한 “너희는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에게 죽는다 …” 도 갑툭튀스럽다.

하지만 차태식이 내뱉는 뜬금없는 갑툭튀스러운 대사의 압권이자 본 영화를 ‘올해 최고의 벙찌는 대사’ 수상작으로 결정할 수 밖에 없었던 바로 그 결정적인 대사는 그것이 아니다.



문제의 대사는 바로 2010년 한국영화, 아니 한국 영화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액션신이라고 해도 좋을 터키탕 액션 직전에 나온다.

형 악당이 차태식을 한껏 조롱한 다음, 무릎꿇고 질질짜고 있던 차태식이 일어나더니 조용히 이렇게 묻는 것이다.

“충치가 몇 개냐?”

아, 이 어찌 2010년 최고의 뜬금없는 대사가 아니라 하겠나!! 당연히 영화 속 악당들도 벙찌고, 관객들도 벙찐다. 다들 너무 벙쪄서 그 대사 다음에 오는 “금니빨 빼고, 모조리 씹어먹어줄게” 라는 어색한 문장도 그냥 넘어갈 정도로 … 나쁘게 보자면 빵꾸를 더 큰 빵꾸로 메꾸는 어느 나라 대통령 같기도 하다.

그러나 좋게 보자면 원래 차태식이 좀 그런 인간이라는 설정에도 잘 어울린다. 특히 차태식의 보직이 섬멸조이자 훈련교관이었다는 설정을 고려하면 이게 더 그럴듯하다. 딴 데는 몰라도 교관이라면 이런 성격이 딱이거든.


충치가 몇개냐고 …

군대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훈련소에서 저런 교관을 만났다고 상상해보시라. 이게 얼마나 살 떨리는 일인지 좀 감이 잡힐 것이다. 겁주고 욕하는 교관은 그래도 상식선에서 무섭고, 상식선에서 조심하면 되는 인간들이다. 하지만 도대체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고 맨날 어딘가 사차원 같은 소리만 하는 교관이 있다면, 그런데 그 인간의 손에 내 운명이 달려있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공포다.

그가 무서운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그 인간은 예측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관들이 표정을 감추고, 모자로 눈빛도 감추는 이유는 훈련생들에게 바로 그런 의외성에서 오는 두려움을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방금 전에 충치 찾던 애가 이러고 있다 … 얼마나 무섭냐.

고로 이 대사 “충치가 몇 개냐?” 라는 짧은 문장에는 의외로 다양한 층위의 맥락과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미시적으로는 차태식의 사차원스러움을 배경으로 깔고 있으며, 그 사차원 차태식의 사차원스러운 분노를 표현한다.

그리고 중시적으로는 영화 전체의 긴장감이 폭발직전에 이른 순간, 주인공과 악당이 서로의 빈틈을 노리는 바로 그 순간에 푸드득 날아가는 새가 지린 똥오줌처럼, 순간의 방심을 유도함으로써 모든 긴장을 폭발시켜버리는 방아쇠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거시적으로는 관객들에게 끝까지 사차원스러운 차태식이란 인물을 던져줌으로써 캐릭터의 일관성과 신비스러움을 최대화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이 대사야 말로,
2010년 최고의 벙찌는 대사상 수상작으로 부족함이 없다 하겠다.



김비서가 룸살롱에, 유인나는 어쩌고?

영진공 짱가

“22 블렛”, 좋은 건 혼자 다 해먹는 대부들의 속성





<22 블렛>은 22발의 총탄에 맞고도 살아나 ‘불사신'(L’immortel)라고 불리웠던 마르세이유 마피아의 대부, 찰리 마테이(장 르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전기 영화라고까지 보기 어려운 것은 찰리 마테이의 성장 과정를 포함하여 인생 전반에 관해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프란츠-올리비에 지스베르의 원작부터가 객관적인 전기물이 아닌 소설이었고 이것이 다시 영화화를 위해 각색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은퇴한 마피아 보스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라는 기본 줄거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조무래기들을 해치우고 중간 보스를 꺾은 다음, 마지막에는 최종 보스와 대결을 하는 식인 거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거나 아예 무감한 편인 일부 관객을 제외하고는 국내용 제목인 <22 블렛>이 주인공의 몸에 박히게 될 총탄의 숫자를 의미한다는 것과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나서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자들과 대결을 펼치게 되리라는 것을 사전에 인지를 하게 될 터인데, 그런 점에서도 이 영화는 장르 영화로서의 예상된 결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다소 실망스러운 내러티브를 선보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 가족의 가치를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작품에 설득력을 가져다주기 보다는 대중적인 액션물로서 필요로 하는 꽃장식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 작품들에게서 기대해 봄직한 서늘한 감동은 얻기 힘들다는 얘기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생략이 많은 등장 인물들의 대사와 약간씩 건너뛰고 있는 듯한 씨퀀스 간의 편집이 과연 달라도 뭔가 다른 ‘유럽 영화’라는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이 때문에 관객에 따라서는 영화 초반에 약간의 부적응을 경험할 수도 있겠으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 일단 복수극의 궤도에 올라탄 이후로는 찰리 마테이의 활약에 악당들이 하나씩 쓰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물론 찰리 마테이의 복수란 약자가 절치부심 끝에 자신 보다 훨씬 강한 자들에게 재도전하는 고전적인 느낌의 그것이 아니라 전지전능한 신께서 감히 제 주제를 모르고 도전해온 조무래기들을 하나씩 응징해주는 그런 느낌이라 영화 전반에서 느껴지는 서스펜스란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게 된다.




그나마 <22 블렛>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을 꼽으라면 납치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철조망의 숲을 맨몸으로 뚫고 나가며 그 간절한 심정을 전달하려는 장면이라 하겠는데, 문제는 우리의 불사신께서 그 정도의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뛰어든 상황 그 자체에 납득이 잘 안되는 데다가 – 그러다 보니 철조망에 연이어 찢기는 모습이 안타깝기 보다는 어처구니가 없게 느껴질 따름 – 그로 인해 차 트렁크에 갖혀 있던 아들이 찰리 마테이의 피범벅이 된 얼굴을 보고 더 놀라지나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만든다.

관객에 따라서는 그 수가 너무 뻔히 보이는 플롯 구성이 문제라는 얘기인데 그럼에도 배우들의 연기력이 좋아 의외로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는 여지는 있는 편이라 하겠다.




영화가 내세울 수 있는 주제라는 측면에서는 마지막 최종 보스 – 한번 우정은 영원한 우정이라며 함께 맹세했던 친구 자키아(카 므라) – 와의 대화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는데 이는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에 깔리는 찰리 마테이의 나레이션과 어우러져 한번 발을 들이면 평생 빠져나올 수 없는 어둠의 세계를 묘사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관한 메시지가 단지 피상적인 수준이 아닌 관객들이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장 르노가 연기한 찰리 마테이라는 인물이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될 필요가 있었다.

<22 블렛>은 현역 시절 그 누구 보다 냉혹한 마피아 보스였던 찰리 마테이의 과거에 대한 묘사를 생략한 채 비교적 합리적이고 가정적이며 심지어 정의롭게 보이기까지 해서 관객들이 감정 이입을 하기에 좋은 모습만을 다루고 있는데 이로 인해 인상적인 느와르 영화로서는 완전히 실패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크게 흠잡을 데 없이 잘 만들어진 작품이고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 크게 지루한 감은 없었던 영화다. 찰리 마테이의 딸 에바 역으로 출연한 조세핀 베리는 감독 리샤르 베리의 딸인데, 어린 시절의 샤를롯 갱스부르를 연상시키는 모습이 눈에 띄더라. 조만간 다른 영화에서도 볼 수 있기를.



영진공 신어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울 아가


아이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아직 두 돌도 안 된 아이를 붙잡고 억지로 그림을 가르치는 만행은 저지른 적이 결코 없으니 아마도 내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따라하는 것인가보다.

돌이 지나면서부터 내 펜을 쥐고 그리길래 아내는 커다란 전지와 색연필을 사주었다. 그 후로 틈만 나면 엎드려서 그림을 그리며 놀더니 18개월 된 지금은 단지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을 넘어서 동그라미 안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윤아의 그림.

아이가 그저 선을 찍찍 긋는 단계를 지나서, 의식을 갖고
손에 쥔 색연필을 어느 정도 컨트롤 하면서, 가장 처음 그리는 것이
세모도 네모도 아닌 동그라미라는 것이 참 흥미롭다.
다른 아이들도 그런지 궁금하다.


한 달 전부터는 자기가 좋아하는 곰과 뱀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연인줄 알았는데 그려보라고 할 때마다 매번 비슷하게 그리는 것을 보니 자기가 인식을 하고 그리는 것으로 보인다.
 





윤아는 다른 사물들 사이에서 곰과 뱀을 알아낸다.
특히 뱀은 눈에 잘 구분되는 형태 때문에
매우 정확하게 찾아낸다.
그림은 윤아가 곰과 뱀의 어떤 특징을 기억하여 다른 사물과
구분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2차원적으로 표현하는지 알아볼 수 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딸 앞에 펼쳐져 있는 무한한 가능성, 그 미지의 가능성을 향해 항해를 떠나는 선장의 두근거림이랄까.

재밌고 흥미로운 모험이 펼쳐질 것 같은 기분이다.

영진공 self_fish

“배틀 LA”와 현실의 전쟁, 그 묘한 연관성



2011년에 개봉할 영화 <배틀 LA>의 티저 예고편이 나왔다.

들리기로는 최근에 개봉했던 대형 떡밥영화 <스카이라인> 제작진이 사실 원래 위 영화 특수효과담당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배틀LA>측에서는 <스카이라인>제작진이 특수효과 하면서 슬쩍한 아이디어로 미리 짝퉁을 만든 것으로 간주해서 좀 시끄럽다고 ……


이 예고편에는 우리나라 서울도 등장한다. 물론 사진을 아무리 봐도 서울같지는 않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 침공장면이 익숙하다는 거.

최근 <트랜스포머>나 <우주전쟁> 기타 등등 외계인 영화를 많이 봐서 익숙한게 아니라, 실제 전쟁장면 특히 이스라엘이나 미국이 아라비아 반도 근처에서 벌이곤 하는 포격이나 공습장면을 연상케 한다.

아마 그 동네 주민들이 딱 저런 심정이었을거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구 포격장면. <배틀 가자> 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미국과 미국 주민들이 바로 이런 식으로 공습을 당한다.
왜 헐리웃에선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몇가지 가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미국을 공습할 수 있는 나라는 외계인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아무리 미국이 지금 좀 빌빌거려도 나머지 국가는 감히 덤빌 생각말라는 거.
미국의 군사비가 나머지 전세계 국가의 군사비와 삐까삐까한 건 사실이니 ……

둘째 가설은,
미국이 원하는 적을 상상한 결과라는 거.
미군의 장비와 체계가 상정한 적은 원래 미군과 비슷하게 강한 장갑과 무장을 갖춘 정규군이었다. 세계최강의 탱크, 세게 최강의 전투기, 스텔스 폭격기가 그래서 필요했다.

수에즈 운하를 지나가고 있는 항공모함의 모습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그런 적은 없고 어이없게도 급조폭발물 터트리고 저격하는 게릴라들을 상대하며 소진되어 가고 있다. 그러니 상상속에서라도 한판 크게 맞짱뜨고 싶은 마음이 표현된 것이라고 할수 있는 거다.

마지막 가설은,
영화제작자들의 양심 한구석에 또아리 튼 죄책감이다.

우리가 전세계에서 맨날 이런 짓 하고 있으니 언젠가 우리도 그렇게 당할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상상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거다.

어쨌거나 전쟁은 영화 속에서 볼 때나 그럴듯하다.
현실로 다가오면 그건 비극이고 재앙일 뿐이다.
우리 모두의 삶을 파괴할 ……

연평도 포사격 훈련날 아침 출근길에 일렬주차된 차를 낑낑거리며 밀다가
아파트 앞에서 주부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아이들을 어떤 캠프에 보내기로 했던 모양인데 어느 집에서 안보내기로 했단다.
왜냐면 언제 전쟁날지 몰라서. 애를 멀리 보낼 수 없다고 ……

10년도 지나지 않았다.
남북한의 대표자가 나란히 앉아서 건배를 하던게 …
그런데 이제는 곧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더 속편한 모양이더라.
오히려 그 당시가 빨갱이 세상이었다고 …
평화는 빨갱이가 가져오고 전쟁은 파랭이가 가져온다면
백번천번 빨갱이가 낫다는게  내 입장이지만,
이 나라 사람들이 죄다 전쟁을 해서라도 빨갱이(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싹 없애야 하겠다면, 결국 그렇게 가게 될거다.
그게 민주주의니까.

어쩌다가 이꼴이 되었을까….

참, 그 사이에 한명숙 전 총리 공판에서 벌어진 일은,
TV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공판장에서 누가 쓰러져 119에 실려가는 일은 드라마에서만 있는 줄 알았는데…

[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10122017314745009&linkid=4&newssetid=1352 ]

올해는 참 더디게 간다.
모든 일이 질질 끌면서 …

내년도 더디게 가겠지.
무슨 5년이 한 50년 가는 것 같다.
끝나고 나면 다 늙어있을 것 처럼 …

후우 ……

영진공 짱가

“크레이지 하트”, 절주를 결심하게 하다




Crazy Heart, 2010 



토마스 콥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크레이지 하트’는 술에 절어 사는 늙은 컨트리 가수 배드 블레이크(제프 브리지스)의 모습을 담담한 시선으로 조명한다. 영화의 주인공이라기엔 지나치게 현실적인 모습의 배드는, 지난 사랑에 변명하지 않고, 차갑게 대하는 아들에게조차 자신의 이야길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단념한 듯 인생의 마지막 근처의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신문기자 진(매기 질렌할)의 등장은 특별하다.

언제나처럼 난, 순진한 관객이 되어 영화같은 사랑의 해피엔딩이라든지 아들과의 훈훈한 재회 같은 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감상적인 기대에 흔들리지 않고, 애초 벗어둔 연민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롭게 제 갈 길을 걷는다. 남녀의 만남이 사랑 말고도 내면의 변화를 일으킬 긍정적인 힘을 지녔음을 고요히 전하며. 

영화를 오롯이 ‘감상’토록 이끄는 힘은 배우에게 있는데, 제프 브리지스는 마치 배드 블레이크인양 열연을 펼쳤다. 남은 감상을 관객의 몫으로 남긴 크레이지 하트는 좋은 영화다.

극적 반전도, 운명의 장난도 등장하지 않지만 감정을 드러내고 설명하기보다 되레 한발 물러나 인물의 ‘그대로’를 쫓는 이 영화가 좋다. 스스로를 객관화하곤 자신을 들여다보며 제 마음의 정리정돈을 잘 하는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 하듯이.

또 하나, 배드 블레이크의 거친 숨소리와 빈번한 토악질, 대충 풀려진 허리춤을 보노라면 진심으로 절주를 결심하게 된다. 그런면에서도 … 이 영화 참 괜찮다.


영화의 주제곡 “Weary Kind” by Ryan Bingham
 


영진공 애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