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전쟁”(Old Man’s War, 2007), 균형추 없는 우주 엘리베이터를 건설하다니 무서운 놈들이군!




저자: 존 스컬지

역자: 이수현
펴냄: 샘터

제목에 대한 편견은 참으로 뿌리가 깊었다. 하인라인도 울고 갈 작품이라는 찬사가 들려옴에도 전혀 흥미가 발기되지 않는 ‘노인의 전쟁’이라는 제목 때문에 오래도록 외면하고 있었다. 게다가 후속작 마저도 ‘유령여단’이라는 것을 알고 유치뽕짝 쌈마이스러운 제목에 내 흥미는 36차원 공간으로 상전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어느 볕 좋던 마감 한때, 일은 안하고 인터넷 서점 따위를 방황하며 내가 놓쳤던 SF작품이 있었던가 뒤지던 중 다시 ‘노인의 전쟁’이 눈에 띄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인데 제목이 요따위 인데도 재밌다고 난리인가 싶어 별 기대없이 책소개글을 읽었다가 곧바로 결재버튼을 누르고 택배 아저씨를 목 놓아 기다려야만 했다.

일흔다섯에 사망신고를 하고 난 후에야 입대할 수 있는 CDF(우주개척방위군).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낸 주인공 늙은이 존 페리가 CDF에 입대해 다시 젊어진 몸을 받아 들고 은하 저편의 전쟁터로 냅다 뛰어들어 앞길을 막는 외계인 무리들을 차근차근 인수분해 시켜버리는 배달의 기수 은하계 편스러운 이야기는 작가의 맛깔나는 글솜씨와 어우러져 책장에 참기름이라도 발라놓은 냥 술술 넘어간다. 특히 이야기 초반 독자의 호기심에 불을 지르는 CU(우주개척연맹)과 CDF란 조직의 미스테리한 설정은 책장 넘기는 속도에 가속도를 더하게 한다.

CU와 CDF는 지구의 통제권을 벗어나 있는 초월적인 단체로서 지구를 보호해주는 대신 우주 개척과 개척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외계인과의 전투를 담당하고 있다. 이 두 조직은 철저히 비밀에 쌓여있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 역시 지구의 과학기술 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그 기술의 세부사항을 알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CU가 엄청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음을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가늠할 수 있게 할 요량인지 ‘우주 엘리베이터’를 들고 나온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양전하 입자포를 가졌느니 반물질 폭탄을 가졌느니 하며 밑도 끝도 없이 뻥 뛰기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현재 연구되고 있는 것에 약간의 허구적인 설정을 가함으로서 현실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만들어 독자들의 아래턱을 더 크게 낮추는 효과를 발휘하였다고 생각한다.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Konstantin Tsiolkovskii,1857~1935)




SF팬들은 이미 알겠지만 우주 엘리베이터는 아서 클라크의 ‘낙원의 샘’에서 등장한 적이 있는 아이디어다. 그럼 아서 클라크 할아버지의 오리지널 아이디어일까? 아니다. 이 재기발랄한 구상은 1895년 러시아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Konstantin Tsiolkovskii가 지상에서부터 정지 궤도까지 탑을 세우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1960년 러시아의 기술자인 유리 아르크타노프Yuri Artsutanov가 정지 위성에서 지구 표면으로 케이블을 늘어뜨리는 구상을 발표하였고 아서 클라크는 이것을 차용해 소설에 삽입한 것이다.


 


유리 아르크타노프(뒤)와 아서 클라크(앞).





우주로 나가는 데는 큰 비용이 든다. 그런데 그 비용의 대부분이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는데 쓰이는 만큼 엘리베이터 같은 걸로 지구 중력권만 벗어나도 우주여행의 비용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 그래서 현재 NASA를 비롯 미국과 일본, 유럽등 몇몇 나라와 과학자들이 우주 엘리베이터를 현실화하기 위해 회의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노인의 전쟁]에서도 군입대자와 개척민들을 태우기 위해 우주 엘리베이터의 정지궤도 정거장 주위에 우주선들이 대기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우주 엘리베이터를 가로막는 별처럼 많은 문제들 중 하나는 케이블의 소재이다. 철을 가지고서는 아무리 가늘게 만들어도 스스로의 무게 때문에 13~20km 정도의 길이에서 끊어진다. 즉 비중이 작고 강한 소재가 필요한데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탄소나노튜브다. 이론적으로 탄소나노튜브의 이상 강도가 정지궤도와 지상을 연결하는 데 충분하다고 하니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연구 중인 우주 엘리베이터.
[노인의 전쟁]에서는 균형추가 없는 우주 엘리베이터가 등장한다.


[노인의 전쟁]에서 작가는 CU의 엄청난 기술력을 나타내기 위해 CU가 우주 엘리베이터를 만들었다고 설정한다. 그리고 이 엘리베이터의 케이블 재료라던가 연료, 작동방식등은 비밀로 둠으로서 CU를 언빌리버블한 조직으로 포장하고 있다. 이 중 특이한 점은 우주 엘리베이터에 균형추가 달려있지 않다는 설정이다. 정지궤도에 위치하고 있는 정거장의 위쪽에 떠있는(?) 것이 균형추인데 중력이 아닌 원심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림 상으로는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균형추가 필요한 것은 정지궤도에 정거장이 위치해있어도 지상과 연결되어 있는 케이블의 무게 때문에 지상으로 추락할 수 있다. 그것을 상쇄하기 위해 우주를 향해 길게 균형추를 달아놓음으로서 원심력을 받아 위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함으로서 정거장이 추락하지 않게 하며 케이블을 탱탱하게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CU는 이 균형추가 없이 어떤 외계의 기술을 이용해 우주 엘리베이터를 지탱하게 만들었다고 하니, 소설 속 과학자 할아버지도 놀라고 책을 읽던 나도 놀라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메인스토리 만큼이나 베일에 쌓여있는 CU와 CDF 조직의 실체와 관한 이야기에도 흥미가 가지만 작가는 이야기 초반 이후로 이 조직들에 관한 이야기를 쥐똥만큼도 하지 않는다. 보아하니 다음 편 ‘유령여단’에서도 마찬가지 인 듯한데 3편에서는 말해줄까 기대해 보지만 2편이 국내에 출판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온다 해도 올해 말이나 나올 듯하다. 그래도 1, 2편이 제법 팔렸으니 3편도 출판은 해주겠지?! 노심초사 기대해 본다.




영진공 self_fish


 


p.s 뒷표지에 스포일러를 써놓는 끔찍한 짓을 자행한 것은 대체 출판사 어느 인간의 대뇌피질에서 나온 몹쓸 아이디어란 말인가.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깜짝 선물을 이따위로 뭉개 놓다니 블랙홀로 던져 버릴테다~!

 

 

“라푼젤”, 비쌌지만 디즈니에겐 충분히 값진 성과





상영이 시작되면 디즈니의 상징인 미키마우스의 모습이 나타나고, 이것은 곧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50번째 작품 – <라푼젤>을 소개하는 엠블럼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사실 숫자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만 <라푼젤>을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 엠블럼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자신들의 오랜 역사를 들먹이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CG 애니메이션 기술과 내용 모든 면에서 자신감을 드러낼만 했던 작품이 바로 이번 <라푼젤>이기 때문이다. 



1995년에 픽사의 첫번째 100%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몇 년 간은 등장 인물들의 감정적인 표현에 있어서 만큼은 새로운 기술이 기존의 방식을 넘어서기 어렵다 – 2D 셀 애니메이션이 더 낫다기 보다는 3D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이 이 부분에서는 아직 어색했기 때문 – 는 인식이 강했고, 그런 와중에 디즈니는 전통적인 컨텐츠들을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하는 쪽에서 강점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기가 바뀌고 예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이미지 처리 컴퓨팅 환경을 바탕으로 3D CG 기술이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CG 애니메이션은 더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픽사와 드림웍스가 CG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양강 구도를 갖추고, 이들에 의해 개발된 기술을 분양받은 유럽계 군소 스튜디오들이 우후죽순처럼 자기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한 와중에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마치 아날로그 시대의 영광에 사로잡혀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대비하지 못해 사라져버린 많은 기업들처럼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라푼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잃어버진 지난 10년을 단 한 방에 회복하는 역전 홈런 같은 작품이라 하겠다.










이번 <라푼젤>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2억 6천만불의 막대한 제작비와 그렇게나 많은 돈을 들인 만큼 때깔이 참 좋더라는 얘기일 것이다. 픽사와 드림웍스의 왠만한 대작 애니메이션의 제작비는 대략 1억 5천만불 수준이고, 실사 영화의 경우 최근에 만들어지는 왠만한 초대작 블럭버스터 영화들조차 제작비 규모가 2억불을 쉽게 넘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 참고로 역대 최대는 3억불을 쏟아부은 <캐리비안의 해적 : 세상 끝에서>(2007)였고,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2009)는 2억 4천만불 수준이었다.

<라푼젤>은 <월-E>(2008)가 갖고 있던 1억 8천만불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대, 실사 영화를 포함해서 4번째로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이 됐다 – 애니메이션 한 편 만드는 데에 그 정도로 많은 돈을 들였다는 사실 자체가 화제와 논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라푼젤>은 보면 과연 훌륭하게 잘 만들었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보다 훨씬 합리적인 규모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자연스레 가질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작년 9월에 국내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슈퍼배드>(Despicable Me, 2010)의 총 제작비는 7천만불 수준에 불과했다.

애니메이션의 명가를 재건하고야 말겠다는 사명감과 자신들의 50번째 작품조차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서는 안된다는 디즈니 의사결정권자들의 위기의식 기타 등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2억 6천만불짜리 애니메이션이라는 건 – 물론 작품의 외연에 불과한 대목이긴 하지만 –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영 찜찜한 대목이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뒷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만들어진 결과물은 대단히 훌륭하다. CG 애니메이션이 오랫동안 안고 있었던 숙제 – 동물이나 사물의 의인화가 아니라 사람 캐릭터의 생생한 감점을 어떻게 담아내고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드디어 찾아낸 작품이 바로 <라푼젤>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후로도 더 나은 표현력의 작품들이 계속 나올테지만 <라푼젤>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첫번째 요소로 다른 무엇보다 생생한 인물 묘사와 감정 표현력을 들고 싶은 것이다.



다음으로 같은 그림 형제의 동화집 출신이면서도 백설공주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마이너 취급을 받았던 라푼젤의 다분히 성적 은유가 가득했던 이야기를 가족애 중심의 지극히 대중적인 드라마로 각색해낸 스토리텔링이 꽤 성공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다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잘 다루지 않거나 다루더라도 상식 뒤집기로 접근해왔던 ‘왕자님이나 공주님이 등장하는 전래 동화’를 디즈니는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비중이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라푼젤>의 왕과 왕비는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하는 모습을 한번도 보이지 않고 오직 부모로서의 모습만이 – 두 사람은 극 중에서 대사조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데 이는 감정을 더욱 증폭시키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 두 사람이 잃어버린 아이를 위해 매년 등불을 하늘 위로 올리는 행사를 갖고, 자신들의 왕과 왕비를 따라 시민들이 함께 수 천 개의 등불을 함께 올리는 장면이 연출되면서 스크린은 온통 애틋한 감정의 폭포수가 되어 객석으로 넘쳐 흐른다.








두 젊은 남녀의 멜로 라인 역시 예상했던 이상으로 강력한 편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꿈과 생명을 내어주는 일 만큼 강력한 다른 무엇이 어디에 또 있으랴! 라푼젤은 자신의 치유 능력으로 유진 – 플린 라이더의 본명 – 을 살릴 수 있게 해주면 마녀의 곁에 영원히 머물겠다고 약속을 하고, 죽어가던 유진은 치유받을 수 있는 기회를 내던지고 라푼젤에게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8년간 길러온 라푼젤의 금발머리가 단번에 잘려 짙은 갈색으로 뒤바뀌는 극적인 순간은 특별한 시각 효과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장면에 불과했지만 앞서 보여진 그 어떤 장면들 보다 훨씬 더 스펙타클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라푼젤>은 감정이 담긴 시각적 스펙타클과 내러티브에 의한 극적인 스펙타클을 모두 훌륭하게 연출해낸 작품이라 할만 하다. 이 작품의 유일한 단점은 100분의 러닝타임이 너무 짧게 느껴져서 아쉽다는 사실 하나 뿐이다.




굉장히 비싼 댓가를 치르고 얻어낸 성과이긴 하지만 <라푼젤>이 보여주는 질감과 특히 등장인물들의 감정 표현은 확실히 이전의 3D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작품들과는 한 차원 다른 경지를 보여준다. 그 생생함에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즐겁고 놀라운 기분이 드는 수준이니 “놀랍고 신기한 볼거리”이었던 영화의 태생적 본질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앞으로 만들어질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분명 <라푼젤>을 통해 드디어 얻어낸 기술적, 예술적 노하우를 활용하게 될테니 관객으로서는 큰 기대를 가져볼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라푼젤>은 디즈니의 50번째 애니메이션일 뿐만 아니라 그 이전과 이후의 작품들로 구분하게 될 확고한 전환점으로 남게 될 작품이다.



영진공 신어지







“아고라(Agora, 2009)”, 히파티아는 과연 꽃처녀였을까?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좀 피던 시절 그리스에서 등장했던 자연철학은 인류문명사에 있어 매우 이례적인 문화였다. 실용적인 목적이나 돈, 명예와 같은 잿밥에 관심을 갖지 않고 순수하게 진리를 추구했다는 점, 국가나 단체의 지원없이 사적인 모임이나 동아리에 가까운 모임만이 존재했다는 점, 이전까지 다른 모든 문명에서 과학자가 익명이었던데 비해 일종의 개인의 지적 재산인 듯이 과학자의 이름이 등장했다는 점 등은 이전 문명에선 볼 수 없었던 문화였다.

그리스의 자연철학은 이후 알렉산더 대왕님이 등장해 세계를 한번 크게 휘저어 버리면서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가 꽃을 피우게 되지만 곧 대왕님이 요절하시고 로마가 패권을 쥐면서 결국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과학적 활동은 전반적으로 줄어들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학적 독창성의 수준도 낮아졌다. 새로운 지식의 발견보다는 옛 지식의 보존 쪽으로 점점 기울어갔다.

이렇게 그리스의 자연철학의 끝물에 등장한 것이 히파티아였다.



당영화는 영화사가 광고했던 ‘스펙타클’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영화 자체는 수작이다.





영화[아고라]는 400년대 초 알렉산드리아의 자연철학자 히파티아가 기독교도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던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사건은 잔다르크 만큼이나 영화화하기에 매우 매력적인 소재였을 것이다.

당시 쇠락해 가던 그리스 자연철학의 마지막 보루이자 이성의 상징이 종교에 의해 숨이 끊어졌다는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순결한 꽃처자가 거지 깽깽이 같은 광신도들의 손에 잔혹하게 죽임을 당함으로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감성적 부분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분을 충족시킨다. 게다가 영화는 히파티아를 짝사랑하는 노예 ‘노부스’를 등장시키고 코페르니쿠스보다 먼저 지동설 스포일러를 발설할 뻔 했다는 가상의 이야기까지 끼워 넣어 로맨스와 인문학적 재미까지 손에 거머쥔다.

히파티아 역으로는 레이첼 와이즈 여신님을 등장함으로써 이 비극적 사건의 현장으로 관객들을 300% 몰입시키니 마지막 결말에서 많은 관객들을 더욱 분기탱천하게 만드는 영화적 완성도마저 이뤄낸다.

하지만 이 역사적 사건을 영화로 옮기면서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재구성 하기위해 이것저것 넣고 빼고 가공했을 것은 뻔할 터이다. 좀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당시 사료들로 추정해보건데 히파티아가 죽임을 당할 즈음의 나이가 50대였을 거라고 한다. 아아 …… 현기증이 일어난다.



그래도 우리의 마음 속 히파티아는 레이첼 와이즈닷!


그럼 영화는 어디 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 까지가 가공된 것일까?


히파티아가 문학작품에 등장한 것은 18세기 근대유럽에서였다. 이후 예술적으로 승화되면서 엄친딸처럼 언제나 아름답고 젊고 똑똑한 철학자로 그려졌지만 정작 그녀를 이야기해주는 사료는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스콜라스티쿠스의 [교회사]나 10세기 비잔틴 사전인 [수다suda], 그녀의 강의를 들었으며 애제자였던 시네시우스의 편지등과 같은 극히 제한적인 사료만이 있을 뿐이었다.



히파티아의 애제자였던 키레네의 주교 시네시우스는, 영화에서와는
달리 그녀를
배신(?)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애정과 존경을 표한다.
오히려 그가 히파티아와 제자들에게
보냈던 편지는 현재 히파티아를 밝히는 중요한 사료가 된다. 무엇보다 히파티아가 죽임을 당할 당시 시네시우스는 이미 요단강을
건너 예수님과 면담 중이었다.




그녀는 흔히 주장하듯 370년경이 아니라 355년경에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테온으로 뛰어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국립 연구소라 할 수 있는 뮤세이온의 회원이었다. 그 아비의 그 딸답게 수학과 천문학과 더불어 철학에 이르기까지 히파티아는 팔방미인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동아리’에서 이러한 학문들을 강의했다.

그녀의 강의에는 지배계층과 부유한 자제들이 많았으며 적잖은 기독교 신자들 역시 그녀의 강의를 들었다. 그녀는 지배계층의 존경을 받았고 제국과 도시의 고관들과 부유하고 좋은 혈통, 세력있는 학생들에 둘러 싸여있었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문화적 측면만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막강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다.

385년이 되자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았던 대주교 테오필루스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직을 맡게 된다. 영화는 이즈음을 배경으로 시작하는데 테오필루스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교도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결국 이교도의 신전인 세라페움을 공격하여 교회의 손아귀에 넣는다. 


옛부터 행해져온 기독교의 남의 신전 땅밟기.
이 사건으로 신전 내 세라피스 동상은 물론 수많은 동상들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사실 히파티아는 이 싸움에서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한다. 기독교인이 많았던 알렉산드리아에서 히파티아는 기독교인들에게 호의적이었으며 이교 숭배에 무관심했고 종교적 분쟁이나 논쟁에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그래서 학자들은 그녀와 그녀의 제자들이 당시 세라페움에 있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한 사건 후에도 그녀의 활동은 교회로부터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테오필루스의 조카 키릴루스가 그의 계승자로 선출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기독교에서 키릴루스는 성인으로 그려지지만 동시대 사료에서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무자비하게 권위를 추구한, 충동적이고 권력에 굶주린 인간으로 묘사된다.


그는 영화에서처럼 안식일을 핑계로 유태인을 공격했고, 유태인들은 교회에 불이 났다는 거짓 경보를 발해 기독교인을 공격했다. 격분한 키릴루스는 대규모 군중을 이끌고 도시에서 수많은 유태인을 쫒아낸다.

일련의 사건에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관리였던 오레스테스는 분노했고 키릴루스는 그와 화해를 요청하지만 오레스테스는 거절한다. 키릴루스는 오레스테스를 압박하기 위해 오백명의 수사들을 도시로 불러모았고 그 중 암모니우스가 오레스테스의 머리를 돌로 내리치는 테러까지 일어난다.



오레스테스는 히파티아의 오랜 제자도 아니었고 그녀를 짝사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알렉산드리아에 부임하자마자 히파티아와 친해진 것은 예전부터
그녀의 명성을 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암모니우스는 오레스테스의 머리에 돌침(?)을 놨다가 당연히
오레스테스의 손에 죽게 된다.

돌침을 맞긴 했지만 오레스테스가 키릴루스와 대립각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알렉산드리아에 부임하자마자 돈독하게 지냈던 히파티아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히파티아는 주교의 권위가 제국과 도시의 행정영역까지 확대되어서는 안된다고 보았고 그녀의 지지에 힘입어 오레스테스는 정당을 만들기에 이른다.

키릴루스는 오레스테스의 당파와 더불어 그 뒤에 있는 히파티아와 그녀의 지지기반을 두려워한다. 오레스테스 역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 기독교 세력이 있었고 히파티아의 제자들은 제국과 교회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키릴루스는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며 그녀를 마녀로 몰아갔다. 특히 그녀의 지지기반은 부유층이었고 대부분의 빈민들은 그녀를 잘 알지 못했다. 키릴루스는 이런 빈민들을 부추겼고 페테르(Prter)라는 행정관리가 폭도들을 이끌고 마차를 타고 있던 히파티아를 잡아 캐사리온 교회에서 옷을 벗기고 깨어진 도자기 조각들로 죽인다. 시체는 도시 밖으로 끌고가 불태워버린다. 그리고 오레스테스는 이 사건에 식겁했는지 이후 종적을 감추게 된다.





영화에서만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인 노예 다보스는 히파티아를 짝사랑했다가
파라볼란이 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파라볼란은 알렉산드리아의 교회에
고용된 건장한 젊은이들의 단체인데 그들의 임무는 병든 사람이나 불구자
또는 집이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병원이나 교회의 구빈원에 데려다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또한 알렉산드리아 대주교의 군인으로 활동했으며
여러 다양한 장소와 상황에서 대주교의 적들을 공격했다.







키릴루스가 히파티아의 살인을 계획했는지 사료를 통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이 일에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상당 부분을 책임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히파티아를 비방하는 소문을 부추긴 장본인이며 그녀에 대한 편견과 악의를 조장했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료에서도 키릴루스는 질투심에 사로잡혀있는 위험한 인물로 히파티아의 죽음의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문학과 예술작품에서 그녀는 항상 아름답게 그려진다.
찰스 윌리엄 미첼의 그림. 히파티아


히파티아는 412~415년에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그녀가 죽었을 당시의 나이는2,30대의 꽃처녀가 아닌 약 60세 가량이었다. 이는 그동안 시네시우스의 무한한 존경의 대상이었던 점, 수학과 천문학 철학까지 모두 능통했다는 점, 지배계층의 존경을 받았다는 점에서 미루어 결코 젊은 나이는 아니었을거라는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윤리적 용기나 공정함, 정직함, 시민적 헌신, 그리고 지적 용기에 있어서 모범적 인물이었다는데 모든 사료들이 일치한다.


히파티아의 사건은 영화나 많은 문학작품들에서 그려지는 종교적 암살 보다는 정치적 암살이었다. 히파티아는 이교도 관습에 관심이 없었고 종교적으로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기독교도인들에게도 많은 존경을 받고 있었고 기독교도 제자들을 보호했다. 때문에 키릴루스는 이교도라는 핑계로 공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키릴루스 자신도 알렉산드리아에서 이교도를 핍박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의 적들은 기독교 내의 다른 정파들과 이단자들, 유태인들이었다. 히파티아는 그녀가 행했던 이교도의 지식 때문이 아니라 키릴루스의 정치적 행보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그래서 종교적인 이유로 그녀를 죽인 것으로 보긴 힘들다. 또한 히파티아가 죽음으로써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의 자연철학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죽고 나서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유행하였고 이슬람의 지배하에 들어가기 까지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여러 학자들이 계속해서 그리스의 수학과 천문학을 연구하였다.




히파티아의 ‘광장’에서 이교도와 기독교는 함께 공부하며 진리를 탐구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 말하는 천국이 아니었을까?


 

영진공 self_fish




뽀나스~ 그녀는 지동설을 알았을까?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 of Samos, BC 310~230)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으며
알렉산드리아 박물관의 연구원이었다.




영화에서 히파티아는 아리스타르코스가 주장했던 이론에 주목한다.  아리스타르코스는 태양을 중심에 놓고 지구는 자신의 축을 도는 일일 운동과 1년 동안 태양 주위를 도는 운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고대에 대단한 반말을 불러일으켰다. 왜냐면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면 지구 위의 모든 것들은 날아가 버려야 할 것이다. 즉 감각적 증거에 모순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히파티아는 이러한 점 때문에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정면으로 위반하기 때문에 고대 천문학자들 중 누구도 그 가설을 수용하지 않았다.

재밌는건 이 이론을 반대했던 이유 중 하나가 시차문제였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운동을 한다면 항성들의 시차가 관측되어야 하지만 그러한 위치 변화는 관측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아리스타르코스는 항성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위치 변화가 관찰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코페르티쿠스와 케플러도 같은 대답을 하였다.




지구와 항성과의 거리는 무지무지 멀기 때문에
그림에서와 같은 시차의 변화는 눈으로 관찰할 수 없다규~




이후 1세기에 활동했던 알렉산드리아 과학자이자 원추곡선을 연구했던 페르가의 아폴로니우스는 지구 중심론을 유지하면서 대안적인 모형을 만들었다. 그게 주전원과 이심원이다. 그리고 히파티아는 이 아폴로니우스의 주석서를 썼다. 주석이라 하면 대단찮게 들리겠지만 근대 이전에는 창작의 수단으로 쓰였다. 주장을 펼치기 위해 자기 이름으로 책을 펴내기 시작한 것은 근대로 접어든 뒤의 일이었고 그 전까지는 옛 대가들의 책에 주석을 달면서 자신의 의견과 사상을 내비치는 것이었다.


아폴로니우스의 주전원과 이심원은 이후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로 발전한다. 

 


즉, 그러한 이유로 아폴로니우스의 주석서를 썼던 그녀가 설령 아리스타르코스의 이론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이론에 동의했을거라 보기는 힘들다.



-참고 및 발췌-


마르자 드스지엘스카 저, 이미애 역, [히파티아], 우물이 있는 집, 2002
기태호 저, [아리스토텔레스와 이븐루시드], 김영사, 2007
제임스 E. 맥클렌란 3세, 해럴드 도른 공저, 전대호 역,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모티브, 2006 
버트런트 러셀 저, 서상복 역,[서양 철학사], 을유문화사, 2009



 


 


 



 


 


[근조]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리자베스 테일러

Elizabeth Taylor

(1932. 2. 27. ~ 2011. 3. 23.)


영화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 1951) 중에서

* 한글 약력:
http://movie.daum.net/movieperson/Summary.do?personId=13152

* 영문 약력:
http://en.wikipedia.org/wiki/Elizabeth_Taylor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영진공 일동

 

“백룡 레전드”, 일본 원전의 비밀은 과연 무엇인가? – 원자력 마피아 편


먼저 일본 동북 대지진으로 돌아가신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뜻을 표한다. 국적이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는 다 같은 인류이니까.

당면의 문제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후쿠시마의 원전이다. 쓰나미로 인해 비상 발전기가 박살나는 바람에 폭주하기 시작한 원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후쿠시마 인근에 치명적인 방사능을 뿌리고 있다.

도쿄 전력, 원전 공급업체, 일본 자위대, 소방청 등등에서 많은 인력이 파견되어 방사능을 뒤집어 써 가면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친 끝에 사건은 다행히 어느 정도 수습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원전의 안정성 문제를 다시 한 번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의 책임을 거의 독박으로 뒤집어 쓴 것은 후쿠시마 원전의 경영 주체인 도쿄 전력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 망할 놈들이 초기에 안이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사건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운 게 사실이니까.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사건이 전혀 엉뚱한 데 불똥을 튀겼으니, 그건 일본의 [주간 만화 고라쿠]에 연재되던 만화 [백룡 레전드(Legend)]다.

[백룡 레전드]는 일종의 야쿠자 만화로, 최근 새로운 에피소드 [원자력 마피아] 편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돈과 권력을 휘두르며 원전 건설과 운영에서 온갖 비리를 일삼는 동도전력(東都電力)을 상대로 하는 에피소드 같은데 – 여기 나오는 동도전력(東都電力)이 도쿄전력(東京電力)이란 건 누구든 쉽게 알 수 있으리라.


불행히도 이 에피소드는 3월 18일 잡지에 실린 것을 끝으로 연재가 중단되고 말았다. 실제로 일어난 원전 사고에 편승한다는 부담을 뒤집어 쓸까봐 겁이 났던 건지, 아니면 도쿄 전력에서 압력이 들어온 건지, 어느 쪽인지는 모른다.

연재중단이 발표된 직후, 일본의 투채널 등에선 이 만화의 최신 에피소드가 퍼지면서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어떤 만화일지 궁금해서 찾아 봤는데 – 과연 여러 가지 의미로 오싹해지는 만화였다.

일본에서 출간되는 잡지인지라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특성을 고려하여,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의미에서 대충 발번역을 붙여 일부를 올려본다. 작가분의 너그러운 양해를 바란다.

[백룡 레전드 – 원자력 마피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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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너희들은 원전의 현실을 전혀 모르니까 그렇게 느긋하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주인공 (?) : “원전의 현실….?”
안경 : “원전의 내부에선…. 매스컴에 발표되지 않는 사고가 빈발하고 있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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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그런 걸 전부 다….. 돈과 권력으로 덮어버리는 게 동도전력의 습성이다!”
숨어보는 자 : “미츠모토(아마도 안경) 녀석, 뭘 말할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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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히칸 : “원전이란 게 그렇게 사고가 많은 거야?”
안경 : “원전이란 건, 원자로나 터빈은 두말할 것도 없고 – 그걸 작동시키기 위해 수십만개의 파이프가 사용되고 있어. 말하자면….. 원전은 배관으로 이뤄진 발전 시스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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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만일 주요 배관이 날아가 버리면….. 체르노빌 급의 원전사고가 일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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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그 중요한 배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알고 있어?”
모히칸 : “그, 그야 당연히 중요한 배관이니까 최고 기술자를 써서 만들겠지.”
안경 : “그렇게 생각하고 싶겠지.”
모히칸 : “아, 아니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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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글머리 : “심하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공사가 되겠어?”
안경 : “될 리가 없지!”
안경 : “이를테면 용접 도중에서 파이프에 작은 구멍이 뚫릴 때가 있어. 그런 구멍은 배관이 깨지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비파괴검사를 해서 구멍의 유무를 체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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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검사는 주로 컬러 검사 방법을 써. 먼저 빨간 침투액을 파이프에 칠하고…. 그 위에 하얀 스프레이를 뿌리지. 깨진 데가 있으면 그 흔적이…. 떠오르게 돼!”
안경 : “하지만 구멍이 나거나 깨진 파이프를 몇 번이나 수리해도 컬러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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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그래선 공사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그럴 때 현장에선 먼저 하얀 스프레이를 칠하지. 그러면 침투액을 칠해도 깨진 부분이 떠오르지 않아서 검사를 통과할 수 있는 거야.”
뽀글머리 : “말도 안 돼! 그건 눈속임이잖아!”
안경 : “그건 그나마 나은 편이야….. 겨우 2미터의 파이프를 연결하는데 5센티미터나 벌어지는 바람에 연결할 수 없을 때도 있지. 그럴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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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3톤 급의 체인 블록을 몇 개나 파이프에 걸어서 잡아당겨 억지로 연결시키지!”
뽀글머리 : “그, 그런 짓을 계속하다간 어떻게 되는 거지….?”
안경 : “파이프에는 항상 원래대로 돌아오려고 하는 압력이 걸리게 되겠지…..”
안경 :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파열할 수도 있어! 혹시 그게 주요 배관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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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체르노빌의 재연이 된다!”
모히칸 : “그, 그런…..”






아마 다음 편에는 동도전력의 거대한 어둠과 맞서 싸우는 야쿠자들의 활약이 그려질 예정이었을 것이다. 에피소드가 갑작스럽게 막을 내리는 바람에 이 뒤를 볼 수 없게 된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

어쨌든 여기 나오는 원전 이야기는 굉장히 설득력이 높다. 어느 정도 과장은 섞여 있겠지만 실제로 취재한 사실에 입각하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읽다 보면 오싹해질 지경이다.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라 해서 그 오싹함의 강도가 덜하거나 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하청에 재하청에 재재하청을 주고, 눈속임을 일삼는 건 –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니까!


영진공 DJ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