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포 참관 후기

언론중재위원회
2006년 9월 13일

섹스포에 갔다 왔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그냥 보통의 성인용품 박람회더군요. 특별히 대단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인용품점이나 인터넷 쇼핑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것들 밖에 없던데, 왜 이리 난리가 난 것인지 모르겠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슈를 만들어내셨던 기자 분들이나, 관련 사회단체 분들이 성인용품을 낯설어 하셔서 그런 것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성인용품 쇼핑몰에 한번이라도 가 보신 적이 있는 분이라면, 콧방귀 이상 나오지 않는 박람회였거든요. ( 게다가 입장료 15,000원이라니.. orz )

금요일 사무실에 와서 바로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같이 섹스포를 관람했던 딴지몰 공장장님하고 도매하시는 분들하고 새벽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는 바람에, 게다다 주말에는 어디 놀러갔다가 오는 바람에 오늘에야 정리해서 올립니다.

사진기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그래서 사진이 구립니다. 그나마도 세상이 하 뒤숭숭한 탓에, 모자이크 처리 했습니다. 여기저기서 구속됐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거든요. -.-;;

사진만 봐도 짐작이 갈 겁니다. 얼마나 썰렁한 박람회장이었는지.
편의를 위해 사진 설명은 반말로 하겠습니다.







스트립쇼, 뱀쇼, 물쇼 같은 것을 기대했던 분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던 섹스포 메인 쇼.
그건, 동네 pc방 개업식때 볼 수 있는 나레이터 언니들의 나레이터 쇼였다.
이 쇼를 보며, 허걱했다. -.-


그나마 특이한 제품이라면 이런 풍선들.. 하지만 모양새가 남량특집스럽다.


3차원 입체 영상 모니터. 에로 비디오를 3차원 입체 영상으로 보면 더 야하다는 관계자 분의 설명에, 같은 장사꾼으로서, 물건을 팔아야하는 사람들의 애환이 느껴졌다.


메인 부스 정가운데 떡 하니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승마기구.
말 타는 연습을 하면 다이어트에 좋단다. 여기 부스에만 나레이터 언니들이 안내를 해 줬다. 다른 부스는 모두 잘 생긴 남자분들이..


건강 보조 식품. 정력에 좋은 게 있나 봤더니, 전부 노인분들을 상대로한 제품들이다.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감식초 음료수 파시는 분들도 계셨다.


유일하게 볼 만 했던, 리얼돌. 800만원 짜리란다. 관세청이 바짝 긴장했던 것은 이 제품 때문이었다. 다른 외국산 수입제품이야, 늘 있어왔던 것이고, 카메라 렌즈나 노트북 같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야무야 수입되는 것이라,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렇게 크고 고가의 제품이 수입되어 관세청이 긴장했다는 후문이다. ( 그럴만도 하다. 어디 백도어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제품이 수입될 수 있겠는가? )


혼자 웃었던, 돈 내고 돈 먹기. 아니, 돈 내고 성인용품 먹기
총 쏴서 성인용품을 떨어뜨리면 그 성인용품을 준다. 대단하다. 사람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다니. 상식을 깨는 성인용품 판매술에 감동했다.


돈 내고 성인용품 먹기. 이런 것도 있었다. -.-;


가장 황당했던 것은 이 옷가게였다. 전시장의 1/4을 차지하던 이 옷가게.
이것도 성인용품이란 말인가? 옷 안 벗고, 그러니까 옷 입고 섹스하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성인용품 부스란 말인가? 아니면 평소 이상한 옷만 입고 섹스 하시던 분들을 위해, 정상섹스를 위한 코스튬플레이 복장이란 말인가?


사진이 구려 잘 안 보이지만, 옷 가게 뒤쪽에 가구 전시장이 있었다.
가구? 성인용품 박람회에 왠 가구란 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전시 부스에 가슴이 막혀왔다. 상상력을 발휘해 봐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떠 오른 작년의 기사 하나.

기사 보기 : (네이버 링크) 가구가 성인용품이 된 까닭

혹시, 위 기사를 본 분이 저 부스를 차린 것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대단한 분이다. 보통의 가구를 특별한 용도의 성인용품으로 변종시켜 팔아먹을 생각을 하시다니. 존경의 마음 금할길이 없다.

끝입니다. 이게 성인용품 박람회, 섹스포의 전부였습니다.

같이 성인용품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비꼬는 글을 쓰는 일 자체가 제 얼굴에 침뱉는 것 이상이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심하더군요. 이벤트가 취소되지 않고, 모든 이벤트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할지라도 욕을 먹었겠더군요. 섹스포에 대한 제 생각은 이전 글에서 다 써 놨기에, 더 이상의 코멘트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조금 더 알차게 준비했더라면, 조금더 기획을 차분히 다듬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성인용품 업계가 온 몸을 추스르고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음란물 시비가 붙어, 현재 2개 업체의 사장님이 구속되었고, 20여개 업체를 조사중이라고 합니다. 이미 10개 업체는 경찰 조사를 받았고, 나머지 10개 업체는 언제 조사를 받을지 모른다고 합니다. 조사를 받지 않은 10개 업체는 누구인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들 더 떨고 있죠. -.-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제가 로또에 한 번도 당첨되지 않은 무운(無運)의 실력자이기에, 이번 랜덤 수사에도 걸리지 않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경찰에 걸리면 그때 글 올리겠습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경찰서에 가보지 않았기에 경찰서 탐방기 혹은 경찰조사 후기 같은 걸 올려도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철없는 생각이 들거든요. -.- 시간 되시는 분들. 저의 무운을 한번 빌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뱀다리 : 섹스포 행사장에서 만난 딴지의 너부리님 왈 “그거, 20개 업체에 안 걸려도 딴지몰로서는 쪽 팔린거 아냐?.” 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맞아요. 저희 짬지도 그래요.”라고 키득키득 웃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쪽 팔려도 좋으니, 안 결렸으면 좋겠습니다. -.-

<반지의 제왕>과 고디바(Godiva) 초콜릿으로 본 관음증과 노출증

명랑성과학연구회
2006년 9월 13일

강릉에 사시는 이 아저씨. 보여주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았으면..

얼마 전, 아내의 누드와 애인의 섹시한 사진을 올려놓고 구속( 혹은 불구속) 되었던 사람들은 강변한다. “이게 무슨 잘못이냐고. 우리가 성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아이들한테 사진 팔아먹은 것도 아니고. 우리끼리 조용히 모니터 보고 즐기자는 건데, 왜 이걸 가지고 지랄하는 거냐고”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다. 대학생부터 간호사, 대기업 직장인, 심지어 대학교 겸임교수까지 붙잡혀간 그 사건을 식당에서 같이 TV로 보며 밥을 먹던 옆에 아저씨는, “미친놈들”이라는 한마디로 일축했으니까.

이 정도가 가장 무난한 합법이다.

우리 사회에는 보여줘서는 안 될 것이 있고, 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이건 사회가 정한 룰이다. 사회마다 그 기준은 다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의 목 아래 10cm 미터, 배꼽 위 10cm까지는 어른만 볼 수 있다는 기준이 있다. 또한, 팬티 안은 어른이고 애고 자시고간에 절대 다른 이성의 것을 봐서는 안 된다는, 그리고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그게 법이다. 물론 결혼이라는 돈 많이 드는 절차를 통과하면, 같이 결혼한 사람끼리는 서로 보여줘도 되고, 봐도 된다는 더 상위의 법에 적용받게 되지만, 일단 결혼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이성의 팬티 안을 쳐다보는 것은 무조건 범죄행위다. ( 아. 애들 것은 “보여줘도 된다.”는 관습적인 합의는 있다. 단, 이 경우에도 함부로 보면 구속이다. )

함부로 보여주고, 함부로 보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이건 간에 있어왔던 조항이다. 사회마다, 문화마다, 시대마다 얼마나 보여줘야 처벌되는지 어떤 것을 훔쳐 봐야 구속되는지 그 기준은 매우 다르지만, 사회가 합의한 “보여주기의 범위와 훔쳐봐도 괜찮은 대상”을 벗어나는 경우 어느 시대를 막론하건 간에 처벌되어진 것은 역사적인 사실인 것이다.

King Candaules ( Oil on canvas, 1859 )

플라톤의 “국가론”에 보면 “기게스의 반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와 소설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되어서 더 유명한 이 이야기는 초등학교 도덕 참고서에 나오는 이야기만큼이나 건전한 것은 아니다. 리디아(서남 아시에 위치한 고대 국가. BC 680-546 )에 사는 기게스라는 양치기 소년(?)이 투명인간이 되는 반지를 얻고, 그 반지를 이용해 리디아의 왕인 칸다올레스를 살해해 왕이 된다는 이야기의 전후 맥락은 비슷하다. 하지만 권력을 얻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을 하는 것이 도덕적인가를 주제로 다룬 어린이용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와는 달리 어른용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에는 훔쳐보기와 보여주기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가 더해져 있다.

칸다올레스 왕은 투명 반지를 가진 기게스를 자신의 신하로 두게 된다. 그리고 기게스에게 자신의 아내인 여왕의 미모를 자랑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며, 가장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는 혼자 보기 아까웠는지, 기게스에게 투명 반지를 차고 들어와 같이 구경하자고 권한다. 3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투명인간이 되면 여탕에 가보는 것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남성 호르몬의 작동은 기게스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기게스는 왕의 제의에 따라 왕의 침실에서 왕비의 누드를 감상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실을 왕비가 알아챈다는 것이다. ( 여기서 의문이 든다. 도대체 왕비는 투명인간이 된 기게스를 어떻게 발견했던 것일까? 부피가 증가하면 투명도가 떨어진다는 법칙 같은 것이 있는 것인가?.. 하여간.. -.- ) 왕비는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이런 노출을 즐기는 왕을 용서하지 못했고, 이에 기게스에게 왕의 살해를 요구하게 되며, 기게스는 왕비의 이런 요청을 받아들여 왕을 살해하고, 왕비와 결혼해 새로운 메름나다이 왕조를 열게 된다.

동서양의 역사 속에서 보여주기의 노출증과 훔쳐보기의 관음증의 최초의 사례로 기록된 이 사건을 통해, 칸다올레스 왕 (King Candaules) 의 이름을 딴 칸달리즘(Candaulism)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된다. 칸달리즘은 두 사람이 성 행위를 하고 있는 동안에, 제 3의 상대자가 이를 관전하면서 성적 만족을 얻는 경우를 뜻하는 말이다. 앞서 아내와 애인의 누드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의 행위는 칸달리즘으로 쉽게 설명될 수 있다.

명품 초콜릿으로 유명한 고디바 초콜릿.. 맛있을까나.. -.-;;

노출에 대한 어원 연구를 하나 했으니 관음에 대해 건들지 않을 수 없다. 관음증은 영어로 voyeurism, 다른 말로 Peeping Tomism 이라고 한다. Peeping Tomism의 어원은 초콜릿으로 많이 알려진, 고디바의 전설에 등장하는 피핑 탐 ( Peeping Tom )에서 비롯되었다.

1043년 벨기에의 코벤트리라는 지역의 레오프릭 백작은 영내의 거주민들에게 가혹한 세금인상을 하자, 이에 소작인을 비롯한 영내 거주민들은 거세게 항의 한다. 그러나 악덕 지주인 레오프릭 백작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영내 소작인들은 백작의 부인인 고디바 ( Godiva )를 찾아가 하소연을 한다. 고디바는 레오프릭 백작에게 만약 세금 인상을 취소한다면, 자신이 머리카락만으로 몸을 가린 채 알몸으로 백작의 영내를 가로지르겠다고 약속을 하게 된다. 설마 16세의 어린 부인이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백작은 그러겠노라고 약속을 하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백작의 영토 내의 소작민들은 모두 창문을 잠그고, 백작 부인 고디바가 거리를 지나갈 때 부인을 쳐다보지 않기로 결의한다. 고디바는 약속대로 머리카락만으로 몸을 가리고 거리를 지나갔고, 이에 백작은 세금 인상을 취소한다. 이 전설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콘벤트리(conventry) 지역에서는 매년 고디바를 기리는 축제를 한다. 세계적인 초콜릿 명품인 고디바는 이 이야기를 컨셉으로 삼아 만든 제품이다.

Lady Godiva by John Collier

여기까지는 다 아는 이야기고, 잘 안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백작 부인이 거리를 가로질러 갈 때, 창문을 살짝 열고 훔쳐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양복 재단사인 탐(Tom)이라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지역 사회의 룰을 깨트렸나 싶은 동정도 개인적으로 있지만은, 하여간 전설에 의하면 탐은 그 일로 인해 눈이 멀게 되는 형벌을 받게 된다. ( 저절로 멀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람들에 의해 처벌을 받아 눈이 멀어 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 여기서 훔쳐보다라는 뜻의 Peeping과 아까 그 톰의 이름을 따서, Peeping Tomism 이라는 관음증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만들어지게 된다.

역사가 이야기하는 “사회의 합의를 넘어서는” 노출증과 관음증의 댓가는 이처럼 크다. 잘못 보여줬다가 목을 잃고 나라를 망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잘못 봤다가 눈까지 머는 형벌을 당하기도 했다. 현대라고 다를 바 없다. 전설 속에서 등장하는 허황된 처벌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형벌 – 예를 들어 벌금 500만원, 징역 1년 같은 처벌이 뒤따른다. 게다가 앞서 이야기했던 칸다올레스 왕이나 탐은 그나마 역사에 이름이라도 남겼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노출과 관음은 이름을 남기기는커녕, 잘못하다가는 범법자가 되어 족보에서조차 파이게 되는 잊혀짐을 얻을지도 모른다.

노출증이라고 하면 여대 앞에서 바바리를 입고 배외하는 일말의 아저씨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관음증이라고 하면 모텔촌이나 으슥한 갈대밭 근처에서 쌍안경을 들고 잠복하는 사람을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그렇게 프로페셔널한 분들만을 노출증과 관음증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성적 만족을 얻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가벼운 노출을 즐기는 사람이나 포르노를 즐겨 보는 사람들을 노출증과 관음증 환자로 규정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구분지어 버리면, 세상에 노출증 환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고, 관음증 환자 아닌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은 그건 이런데서 따질 일이 아니다. 법 만든 사람이나, 사회적 성적 한계를 규정해 놓는 분들이나, 노출증과 관음증에 대한 정신의학적 규정을 지어 놓은 분들에게 따질 일이다.

미셀푸코 캐리캐쳐

미셀푸코는 “몸은 역사적으로 절대 권력의 의지가 가해지는 곳”이라 했다. “몸”은 권력의 목적에 의해, 권력의 기준에 의해 평가되고, 금지되며, 통제되어 왔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노출증과 관음증 기준은 권력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금지하고, 통제하여 왔던 “몸”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권력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사회적 합의라는 말을 썼을 뿐이다. 권력과 사회적 합의는 다른 말이다. 사회적 합의는 권력이 되지만, 권력은 사회적 합의가 아니다. 현재의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단어가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은 권력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서가 아니었다. 권력이 작용한 의지인지,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낸 도덕적 기준인 것인지. 그건 사람들마다의 기준이 다른 일일 테니, 강조하고 싶지 않다. 다만, 저 분들의 처벌이 과장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행여 화를 내실 분이 있을 것 같아 덧붙이자면 “반지의 제왕”과 “고디바 초콜릿”은 낚시 미끼다. 이 정도의 낚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충분히 이유 있는 떡밥으로 인정될 수 있으리라 본다. 인정할 수 없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련다. “이 곳에서는 내가 절대 권력이다. 고로, 이렇게 제목을 정하는 것은 내 맘이다. -.-”
영진공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산하
성역사연구회 과장
짬지(http://zzamziblog.com)

<달콤, 살벌한 연인> – 두 가지 후회

짱가의 ‘너 사이코지?’
2006년 9월 13일


영화 <니모를 찾아서> 에서 아버지 멀린이 이렇게 한탄한다.
“나는 그 애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준다고 약속했었다구”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은
“그건 불가능한 약속이야. 그리고…정말 아무 일도 안일어나면 더 큰일 아냐?”

이 영화를 보며 떠올린 대사다.

배리 슈워츠가 쓴 유명한 책 <선택의 패러독스>에 따르면 선택에 따르는 후회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지?” 라는,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잘못 저질렀다는 후회이다. 다른 하나는 반대로 했어야 하는 일을 못했다는, “내가 왜 그걸 선택하지 않았지?” 후회다. 그런데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해버린 후회는 길어야 6개월만 지나면 사라지는 반면에,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다는 후회는 오래간다. 잘못 열어젖힌 문으로 인한 후회는 잠깐이지만, 열어보지 않았던 문은 끝까지 마음속에 남아서 나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이 책, 재미있습니다. 현대인의 심리를 이해하는 열쇠

이 영화에서 주인공 황대우(“박용우”)는 여자와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여자들이 하나같이 ‘혈액형 성격론’ 같은 한심한 얘기만 읇어댈 뿐이라서 상종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더 나은 선택인 것처럼 보였다. 책도 안 읽고 인터넷 포털에 나오는 연예인 기사나 보는 유치한 여자들과 엮인다는 것은 그에겐 피하고 싶은 사고(accident)일 뿐이었다.

이 장면은 강의할 때 써도 될 듯, 신세대 비판론 핵심요약정리라고나 할까...

하지만 나이 서른이 되던 해에 침대를 혼자 옮기다가 허리를 다친 이후 그는 우울증에 빠진다. 예전에는 그렇게 유치하게만 보였던 연애하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워 보이고, 쿨하게 혼자 지내는 줄 알았던 자신이 그저 외롭게만 느껴진다. 갱년기 증상도 아니고 요통이 원인도 아니다. 그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사이에, 지금까지 자기가 선택하지 않았던 길들에 대한 뒤늦은 후회가 쌓여서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야 그는 자신이 단 한 번도 사고를 치지 않았다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임을 깨닫는다. 이제는 연애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여자 앞에서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하는지,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연애백치가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일단 시작한 다음에는 평균이상의 지능을 가진 그는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저 처음에 연애를 시작하는 열쇠를 찾지 못했을 뿐.

백치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면

그러나가 그는 미나(“최강희”)를 만나 마침내 연애를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여자는 하지 않아서 하는 후회보다는 잘못 사고를 저질러서 하는 후회를 더 많이 끌고 다니는 유형이니, 30세 이전의 그였다면 펄쩍 뛰면서 피했을 상대였다. 하지만 거침없이 다가와 첫 키스를 선사한 그녀 덕분에 그는 우울증에서 벗어나 행복을 경험하고 자신감을 되찾는다. 이 영화의 절반쯤은 첫 연애가 주는 황홀감에 취해 해롱거리는 황대우의 행태로 채워져 있는데 이게 정말 실감난다. 황대우와 거의 비슷한 과정을 거쳐본 경험자로서 하는 말이다.

온갖 미친 짓은 다 하고...

영화제목이 암시하듯, 그의 선택은 인생 최대의 사고였음이 밝혀지고, 덕분에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에 휘말린다. 하지만 무사고 인간 황대우에겐 미나가 가져다준 일련의 사고가 충분히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 그는 성장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녀 앞에서 말도 꺼내지 못해 벌벌 떨던 황대우와 2년 후 싱가폴에 도착한 황대우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영화, 애초부터 다 까발려져 있다. 제작비 9억이라니 별로 욕심도 안 낸 듯...

심지어 상대가 연쇄살인범이라 할지라도 연애를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 않아서 하는 후회는 평생 남는다.
사고를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 영화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을 잔뜩 쌓아둔,
서른이 한참 넘은 사람의 하나로서
나는 이 교훈에 100%로 동의한다.

국립과학연구소장
짱가(jjanga@yonsei.ac.kr)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

재외공관소식
2006년 9월 13일

“지금까지 컴퓨터는 민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중에게 해를 끼치는데 사용되었다. 민중의 해방이 아니라 민중의 통제를 위해 사용되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때가 되었다.”
– 피플즈 컴퓨터 사의 성명서 (1972년 10월),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 중에서 발췌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차드 파인만 박사의 자서전에는, 동료 물리학자가 복잡한 계산을 하려고 컴퓨터를 배우다가 그만 컴퓨터 자체에 푹 빠져 버려 몇날 며칠 밤을 새면서 컴퓨터를 붙들고 있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리고 파인만 박사는 문제 해결의 수단인 컴퓨터를 목적으로 착각하는 건 대단히 어리석은 짓이란 뉘앙스를 풍겼다.

분명 컴퓨터는 평범한 인간의 두뇌로 처리하기 힘든 복잡한 계산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수학적인 기계에 불과하다. 도구라는 점에 있어서는 낫이나 망치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컴퓨터는 인간의 명령에 반응해서 다양한 결과를 도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양면에서 끝없는 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해커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컴퓨터를 다루는 일로 어떠한 이익을 창출하기보다는 컴퓨터를 다루는 일 자체에서 만족감을 얻었던 사람들, 컴퓨터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은 사람들. 그 중에는 개인적인 자부심을 위해 컴퓨터에 몰두한 이기주의자가 있었고, 컴퓨팅 능력은 정부기관이나 대기업에서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골고루 분배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이상주의자가 있었고, 컴퓨터야말로 하인라인이나 아시모프의 비전을 실현시켜줄 장치로 숭배한 낭만주의자가 있었다.

스티븐 레비의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다. 컴퓨터의 여명기인 50년대 말부터 시작해서 애플 컴퓨터를 시작으로 하는 80년대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MIT의 컴퓨터 연구실에서 홈브루 컴퓨터 클럽과 시에라 온라인을 무대로 삼아 펼쳐진 수많은 해커들의 역사적인 이야기를 꼼꼼하게 기록한 책이다.
‘모든 정보는 공유되어야 한다’는 해커들의 윤리는 70년대 말, 빌 게이츠가 알테어용 베이직을 유료로 판매하면서부터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했다. 워즈니악이 개발한 애플 컴퓨터가 날개돋친 듯이 팔리면서 공학자가 아닌 일반인 중에서도 컴퓨터 해킹에 몰두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었다. 해커였던 캔 윌리엄스는 애플 II용 어드벤쳐 게임을 만들어 대박을 터뜨려 컴퓨터 게임 회사 시에라 온라인을 설립했다. 해커들이 세운 회사는 성장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해커들 자신이 그렇게 증오하던 ‘공룡’ IBM과 마찬가지로 비효율적인 괴물이 되어버렸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1983년, 해커의 윤리가 사라지는 것을 한탄하며 그 소스부터 결과물까지 완전히 공개된 GNU 유닉스를 개발한 리처드 스톨맨의 이야기이다. 이 책이 나왔을 당시에는 아마도 전통적인 해커의 윤리는 ‘끝장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모양이다.

재미있는 것은 20여년이 지난 지금, ‘모든 정보는 공유되어야 한다’는 윤리가 다시금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개 OS인 리눅스를 필두로 하여 다양한 서비스와 API를 무료로 제공하는 인터넷 기업에 이르기까지, 소스와 결과물을 독점적인 판매물로 꽁꽁 묶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공룡’들이나 하는 짓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21세기에 와서 되살아나는 해커의 윤리, 그것이 전세기 인류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놨는지 알고 싶다면 읽어야 할 책이다. 10년 전인 96년에 나온 책이라 구해보기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재외공관 독서권장위원회
DJ. HAN (djhan@thrunet.com)

괴물 같은 세상

그럴껄의 뉴스서비스
2006년 9월 13일


1987년 노태우가 당선되면서 다시, 서울의 봄은 올 것같지 않았다. 그해 여름 보라매 공원과 여의도는 80년 광주에서 찢겨나간 살점들과 부마항쟁의 비명과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의 머릿수 놀음으로 때아닌 홍역을 치러야 했다.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베트남전에서나 볼법한 머리를 잃어버린 소년과 개처럼 끌려가는 형들과 신길6동 동사무소 아저씨들이 원정나온 모습을 차례로 봐야 했다.

아버지는 김영삼 유세 때 뿔피리까지 사가지고 회사가 아닌 여의도로 출근 하셨다.

1989년 전교조가 생기면서 고1의 눈이 바뀌기 시작했다. 폭력으로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세상에서 나는 힘이 없었다. 영웅본색에 열광했던 건 주윤발의 똥기마이 때문이 아니라 폭력적인 세상에 폭력으로 되갚는 인상적인 몇몇의 클리셰 때문이었던 것 같다.

1990년 전태일을 알게 되었고 돌베게를 읽게 되었고 세계철학사니, 변증법적 유물론이니 하는 책들을 읽는 ‘척’했다. 사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가 공부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이거 읽고 바퀴벌레 더듬이보다 조금 더 긴 정도의 지식을 통해 옆동네 여고 애들을 꼬실 생각이었다. 혁명은 피를 끓게하는 단어이며 피가 끓으면 몸도 끓는다는 것이 17살 후두엽에 각인된 공식이었다. 물론 그런 아름다운 계획은 실현될 턱이 없었다. 좌절했다.

1991년 고3의 여름은 종로에서 지샜다. 전고협 깃발이 붙었고 학교에 담을 넘어가 피를 뿌렸다. 종로 2가, 형들과 함께 대오 앞으로 나가있는 나를 발견 했을 때, 그리고 누군가 전해준 화염병에 불이 붙었을 때 잠시 망설였다. 본건 있어서 돌리긴 했는데 생각보다 뜨거웠고 무엇보다… 던지기 전에 다시 빼앗겼다.

“이새끼 뭐야? 얘 여기 왜있어? 너 누구야??”

“… 씨발, 나도 여기 오고 싶어 왔나? 밀려 들어온거지”

지랄탄이 내 발 밑에 떨어졌고 나는 스테로이드 먹은 벤존슨보다 빨리 대오 밖으로 이탈했다.

경희대에서 출발한 대오는 종각까지 왔다.

미국대사관은 괴물이었다. 8,9겹으로 둘러쌓인 살아있는 갑옷에의해 뚤리지 않는 괴물이었다. 이한열이 생각났다. 박종철이 떠올랐다. 무학여고 정문 앞에서 이한열을 목놓아 외치던 백기완 선생의 성성한 백발과 쉰 목소리가 생각났다.

“씨빨, 학력고사는 치르고 죽어야지”

그리고 몇년 후

설마설마 했던 수령님이 가셨다. 역시 두꺼비 아들이 세습했다. “남조선이건 북조선이건 정치하는 새끼들은 전부 저래”, “친일청산도 못하는데 그게 되겠어? 북한 욕할 거 없지”

김영삼 정부는 IMF라는 선물을 주셨다. 세상은 “영삼스럽게~”라는 문장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제주도를 강간도시로~”하는 말도 우스개소리로 돌기 시작했다. 영미식 시장경제인 금융실명제는 돈을 땅속에 박아두게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무기명 채권으로 곰팡이나는 돈들을 끄집어냈다. 손호철식으로 말하면 한은 풀었는데… 앙금이 풀리지는 않았다. 김대중의 두 아들은 모두 비리에 엮였다. 김현철과 다를게 없었다. 아버지는 “그나물에 그밥”이라고 했고 어머니는 “전라도 것들”이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전라도 분이셨다. 어머니에게 왜 존재를 부정하는 말을 하냐고 하고 싶었지만 씨알 먹힐 소리가 아니었다.

노무현이 드라마처럼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조선일보는 여러개 히트를 쳤다. “반미면 어떻냐?” “지금 막가자는 거지요?” 뇌가 없는 새끼들이 아니라면 인간들이 저러면 안되는 거였다.

인간쓰레기들…

뭘하든 앞뒤를 잘라서 말을 만들었고 말하지 않으면 뭐라 안한다고 약올렸다. 전여옥은 참 여러가지를 보여줬다. 그녀가 개그콘서트에 초대받지 못한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작통권을 넘겨받자는데 세금이야기나 하고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전쟁이 나면 대통령보다 끗발이 높다. 자기 좆이 작다고 쌀집아저씨한테 마누라 맡기는 꼴이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들과 사건이 지나가면서 세상도 변했다. 세월은 흘렀고 나는 여염집 가부장처럼 애도 낳고 대출도 갚고 빚도 지고 월급 받으며 살아내고 있다.

어제, 직장 상사와 술을 먹는데 나눔문화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박노해가 레바논 가는데 우리쪽 번역작가들 손이 좀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단다. 도움을 주고 싶다고… 7년간 침묵하는 그가 궁금해 거칠게 물어봤다.

“그양반 왜 변절했데요?”
“그거 답하기 전에 예전에 내가 본 만화 이야기 하나 하자. 그 조선일보에 신뽀리 그린 박광수 있잖아. 걔 내가 별로 안좋아하는데 머릿속에 안지워지게 그린 만화가 하나 있어. 고아원에 라면박스 쌓아놓은 대머리 사장 사진이 하나 있고 밑에 이런 대사가 있는거야… 난 졸부입니다…… 고아원에 라면이 아니라 걸레쪼가리 하나 가져다 주지 않은 새끼들이 어떻게 졸부를 욕해! 그래서 난 박노해 인정한다. 나눔문화 가서 내가 코딱지만한 도움이라도 되려는 거 그 졸부보다는 쪽팔리지 않을라고…”

일견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면 안된다. 선동하였고 외쳤고 그 사랑으로 커온 그다. 마누라가 정치판 모른다고 멍청하다고 “니가 말하면 뭐 알아 듣겠냐? 니랑 말 안해”하는 되먹지 못한 남편 꼴이다. 김문수, 이재오 씨발, 안착한 인간이 어딨어!!!!

홍탁을 거나하게 걸친 죄로 200번 좌석버스 안에서 졸았다.
머리 속에는 박노해와 1987년과 종로와 미국 대사관과 NL과 PD와 홍탁과 얼마전에 본 괴물이 뒤섞였다.


세상에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 사망자긴 사망잔데 안죽은 현서의 영혼이 미선이 효순이와 같이 ‘그나물에 그밥’ 국회의원들 어깨 위에서 계속 나를 야리고 있었고 이상황에서도 나는 잠이 왔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집과 독선을 내 딸년인줄 알고 붙잡고 뛰었으니 강두만 그런게 아니었다. 남일이가 돌리는 화염병에서 슬로우가 걸린거, 강두의 쇠창을 잡은 손에 베인 피. 1989년 종로에서의 일상이었다.

괴물은 허상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었다.
씨발,

‘진상은’ 앵커
그럴껄(titop@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