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살벌한 연인> – 두 가지 후회

짱가의 ‘너 사이코지?’
2006년 9월 13일


영화 <니모를 찾아서> 에서 아버지 멀린이 이렇게 한탄한다.
“나는 그 애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준다고 약속했었다구”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은
“그건 불가능한 약속이야. 그리고…정말 아무 일도 안일어나면 더 큰일 아냐?”

이 영화를 보며 떠올린 대사다.

배리 슈워츠가 쓴 유명한 책 <선택의 패러독스>에 따르면 선택에 따르는 후회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지?” 라는,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잘못 저질렀다는 후회이다. 다른 하나는 반대로 했어야 하는 일을 못했다는, “내가 왜 그걸 선택하지 않았지?” 후회다. 그런데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해버린 후회는 길어야 6개월만 지나면 사라지는 반면에,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다는 후회는 오래간다. 잘못 열어젖힌 문으로 인한 후회는 잠깐이지만, 열어보지 않았던 문은 끝까지 마음속에 남아서 나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이 책, 재미있습니다. 현대인의 심리를 이해하는 열쇠

이 영화에서 주인공 황대우(“박용우”)는 여자와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여자들이 하나같이 ‘혈액형 성격론’ 같은 한심한 얘기만 읇어댈 뿐이라서 상종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더 나은 선택인 것처럼 보였다. 책도 안 읽고 인터넷 포털에 나오는 연예인 기사나 보는 유치한 여자들과 엮인다는 것은 그에겐 피하고 싶은 사고(accident)일 뿐이었다.

이 장면은 강의할 때 써도 될 듯, 신세대 비판론 핵심요약정리라고나 할까...

하지만 나이 서른이 되던 해에 침대를 혼자 옮기다가 허리를 다친 이후 그는 우울증에 빠진다. 예전에는 그렇게 유치하게만 보였던 연애하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워 보이고, 쿨하게 혼자 지내는 줄 알았던 자신이 그저 외롭게만 느껴진다. 갱년기 증상도 아니고 요통이 원인도 아니다. 그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사이에, 지금까지 자기가 선택하지 않았던 길들에 대한 뒤늦은 후회가 쌓여서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야 그는 자신이 단 한 번도 사고를 치지 않았다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임을 깨닫는다. 이제는 연애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여자 앞에서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하는지,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연애백치가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일단 시작한 다음에는 평균이상의 지능을 가진 그는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저 처음에 연애를 시작하는 열쇠를 찾지 못했을 뿐.

백치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면

그러나가 그는 미나(“최강희”)를 만나 마침내 연애를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여자는 하지 않아서 하는 후회보다는 잘못 사고를 저질러서 하는 후회를 더 많이 끌고 다니는 유형이니, 30세 이전의 그였다면 펄쩍 뛰면서 피했을 상대였다. 하지만 거침없이 다가와 첫 키스를 선사한 그녀 덕분에 그는 우울증에서 벗어나 행복을 경험하고 자신감을 되찾는다. 이 영화의 절반쯤은 첫 연애가 주는 황홀감에 취해 해롱거리는 황대우의 행태로 채워져 있는데 이게 정말 실감난다. 황대우와 거의 비슷한 과정을 거쳐본 경험자로서 하는 말이다.

온갖 미친 짓은 다 하고...

영화제목이 암시하듯, 그의 선택은 인생 최대의 사고였음이 밝혀지고, 덕분에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에 휘말린다. 하지만 무사고 인간 황대우에겐 미나가 가져다준 일련의 사고가 충분히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 그는 성장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녀 앞에서 말도 꺼내지 못해 벌벌 떨던 황대우와 2년 후 싱가폴에 도착한 황대우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영화, 애초부터 다 까발려져 있다. 제작비 9억이라니 별로 욕심도 안 낸 듯...

심지어 상대가 연쇄살인범이라 할지라도 연애를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 않아서 하는 후회는 평생 남는다.
사고를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 영화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을 잔뜩 쌓아둔,
서른이 한참 넘은 사람의 하나로서
나는 이 교훈에 100%로 동의한다.

국립과학연구소장
짱가(jjanga@yonsei.ac.kr)

“<달콤, 살벌한 연인> – 두 가지 후회”의 한가지 생각

  1. 잘 읽었습니다. 일단 저지르는 게 좋은 거라고 하시는군요 결혼도 과연 그런 걸까요. 일단 저지르면 되는 건지요. 하고 나서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요? 저지르면 좋은 게 모든 것에 적용되지 않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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