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메 칸타빌레” 전편, 극장판은 극장에서 즐기자!



사람은 누구도 짓눌려 살지 않아, 어디서든 표출하거든.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결국 ‘누군가를 짓누르지 않는 것’이야.
                                           – 압박 붕대로 가슴을 짓누르던 대화



영화관에 갔더니 “노다메 칸타빌레”가 한 편짜리가 아니라 ‘최종악장 전편’ 이었다. 후에 크레딧 올라간 뒤 나오는 후편 예고를 보고 알았지만 이미 후편도 올 봄에 일본에서 개봉을 했었나보다.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유럽편에서 이어지는 스토리로 최종악장을 그려내고 있고, 기존 캐릭터를 알고 본다면 더욱 즐거울만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꼭 극장에서 보시길 권장하는데 – 기왕이면 사운드 좋은 곳에서 – 클래식은 둘째 치고라도 이 영화에서 전달하는 메시지 중 하나가 꼭! 시원한 사운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1. 노다메 팬티 노출 Scene
    난 도대체, 일본 애들 영화 볼 때마다 가끔 느끼는 건데 쓸데없는 노출 – 전혀 야하지 않다. 아무리 우에노 주리라 할지라도. – 을 넣는 이유를 모르겠다. AV의 나라 일본이라서 그런가? 뭐 어쨌든 그 빨간 팬티는 귀엽다.

  2. 악단 오디션 Scene
    꽤 귀가 즐거운 장면들인데 – 참고로 이 영화 외국 배우들의 대사는 전부 일본어로 더빙되어 있다. – 몇몇 악기들의 기교 섞인 솔로 플레이를 들어볼 수 있음에 재미나고, 흔한 ‘루저’들의 성공기라 즐거우며, 그나마 ‘치아키’의 표정이 살아 있는 몇 안 되는 장면이다.
    더불어 아마 여성 관람객들 중에 치아키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녀석 셔츠 입은 것만 봐도 환장할 텐데, 그 멋드러지게(응?) 걷어 붙인 손목하며, 눈매하며,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지휘하는 모습보다 더 멋있게 나온 장면이라 생각된다.

  3. 차이코프스키 1812년 서곡 Scene
    주인공이 꾸려나가는 악단은 생활고에 부딪힌 인간군상이 모여서 하모니를 이끌어내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삶에 찌들어 있는 모습을 ‘큰’ 감정이입이 되지 않게 적당히 거리 – 라고 나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연출력이 떨어져서 어색한 장면들인데 나 스스로 호감도를 부여해서 ‘적당히 거리’라는 표현을 쓰는 것인지도 – 를 두고 있다가 이 장면을 통해 한 방에 그들의 삶에 찌든 설움을 날려버린다.
    곁다리로 썰을 풀자면 차이코프스키 1812년 서곡은 최근 – 이라고 해봤자 벌써 5년 되었나? – ‘V for Vendetta’에서 의사당 폭파 장면에서도 나오는 음악으로, 나폴레옹에게 위협받던 러시아가 결국 나폴레옹 군을 몰아냈던 1812년의 기록을 그대로 묘사한 곡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행진하는 부분에 해당하는 곡이 이 곡의 절정부분으로 무척 즐겨 듣는데,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도 그 곡의 웅장함을 그대로 전해들을 수 있다. 꼭. 사운드가 좋은 곳에서 감상하길 바란다.


만화같은 설정과 구성도 재미있지만 드라마 때와 달리 영화답게 치아키의 지휘 부분에서도 유럽편에 비해 훨씬 나아진 연기와 구도를 즐길 수 있으며, 후편도 충분히 기대될 정도로 둘 사이의 미묘한 관계도 긴장을 끌어올린 채로 전편이 마무리 된다.

영화 보고나서 아무래도 “노다메 칸타빌레” 드라마를 다시금 구해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게 즐겼다.


영진공 함장


 

“시”, 자의적 불감증의 시대를 향해 쓰다






이창동 감독의 다섯번째 영화. 논란이 될 만한 내용과 관점을 다루기는 하되 비교적 대중적인 화법을 견지해오던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2007년작 <밀양>과 특히 이번 <시>를 통해서 비교하자면 거의 순수 문학에 가까운 연출 스타일로 변모하고 있음을 – 서정시나 풍경화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미학을 추구한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있어서 – 확인시켜주고 있다.

영화의 소재와 주제 의식에 있어서는 갈수록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으면서도 작가로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되도록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니 자칫 이런 훌륭한 작품들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너무 적어지게 될까 싶은 걱정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몇 명의 가장 뛰어난 우리나라 영화감독들 가운데 작품을 통해 다루는 내용과 주제의식에 있어서 가장 높은 경지에 올라있는 이가 바로 이창동 감독이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시>는 어린 여중생의 죽음에 관해 시 한 편을 남기는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다. 늘그막에 시 문학에 심취한 여성의 이야기라고 해서 언듯 인생과 예술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는 예술가 영화 쯤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비극적인 사건에 연루된 범죄 행위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할 것인지에 관해 묻는 매우 민감한 주제의 작품이다.

때마침 노무현 대통령의 1주기를 맞아 개봉한 이 작품을 놓고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작품이라 생각해보는 것 역시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그러고보면 같은 주에 개봉한 <하녀>(2010)에서 은이(전도연)가 복수의 방법으로써 선택했던 그것 역시 두 영화가 동일한 시대 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하녀>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비판했다면 <시>는 그 안에서 마취된 상태로 살고 있는 우리의 양심과 윤리 의식을 일깨운다. <시>에서 양미자(윤정희)가 정물이 아닌 자살한 소녀에 관한 시를 남겼듯이 이창동 감독은 이 시대가 죽음으로 몰고간 누군가에 관한 영화를 만든 셈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던 사람이나 그를 죽게 만든 다른 이들에 관한 영화라기 보다는 그런 사건들과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태도에 관한 영화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죽은 여중생에 관해 알고 싶어했던 미자가 사실은 그 사건으로 인해 매우 복잡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는 영화의 설정과 전개는 내가 직접 관련되지 않은 비극적인 사건 사고들이 사실은 우리 자신들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 쓰기에 몰두하느라 죽은 여중생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서도 엉뚱한 소리만 하다가 돌아나선 미자가 결국 자신의 시작 노트를 통해 강 노인(김희라)과 지극히 현실적인 필담을 나누게 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시>에는 누군가를 죽게 만든 이들과 그런 잘못을 덮어버리려고 애쓰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당장의 악으로 묘사되는 것은 아니다 –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사람들의 속물적인 행동들 속에서조차 삶의 진실을 발견해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밀양>에서 확인되었던 바다. <시>는 ‘그들의’ 무감함을 비판하기 보다 ‘우리가’ 다시 살려내야 할 도덕적 감각을 일깨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작품이다.











에필로그처럼 들려지는 양미자의 시, “아녜스의 노래”가 진정성을 갖게 되는 것은 그것이 순간적인 감상을 제대로 포착해낸 솜씨있는 언어의 조합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감각을 일깨우던 미자가 마침내 자신의 삶 속에서 이루어낸 결단을 관객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여중생 박희진(한수영)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다시 그녀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그러고 보면 영화 <시>는 병원에서 처음 박희진의 죽음에 관해 알게된 미자가 시를 쓰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 여중생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감정을 이입하다가 마침내 그 입장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는 미자가 함께 배드민턴을 치던 손자를 경찰에 넘기는 장면이었다. 세상에 아파트 단지에서 한가롭게 배트민턴을 치는 장면 하나가 이토록 보는 이의 가슴을 뒤흔들 수 있다니. 그 자체로 놀라운 반전이기도 했지만 등장 인물의 극도로 자제된 감정이 스크린 안을 가득 채우다 못해 흘러넘치는 광경이기도 했다.

너무 완벽한 귀결이라 정나미가 떨어질 법도 하건만 그 순간의 터질 듯한 감정을 꾹 눌러버리는 연출 앞에서는 그저 벅차오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개를 내젓는 수 밖에 없다.



노년의 나이로 인해 치매 현상이 찾아온 미자에게 의사는 “처음에는 명사를 잊게 되고 그 다음은 동사”라고 말한다. 우리는 어느새 잘 먹고 잘 사는 일을 핑계로 자의적 치매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이어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법 마저 잊고 만다.

<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특정한 정치적 사건이나 작금의 상황과 굳이 연관지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다.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하고 심지어 나름의 대가를 통해 가족으로부터 조차 잊혀지게 된 어린 소녀의 죽음을 매개로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완성해내는 삶의 불가역성과 예술의 상관 관계에 관한 영화로만 보여지더라도 – 그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달리 읽혀질 수 있는 영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시>는 수준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을만 하다.

그러나 영화 한 편을 통해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해내고 시를 쓰는 예민한 감각으로 그 죽음에 관련된 일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기적은 오직 영화 <시>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일이다.


영진공 신어지

 

“퀴즈 왕”, 장진의 설계도는 뻔해야 제맛???



결국 설계의 문제야. – 인간이 풀어내야 하는 모든 문제의 귀결

장진 감독은 전직 코메디 작가답게 꽤 재미날 수 있는 상황을 잘 만들어낸다. 뻔히 보이는 것들도 있지만 왜 그렇게 뻔한 상황인데도 피식 웃게 만들어버리는 것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뻔함이 익숙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장진식 코메디(?)의 묘미는 그 ‘설계’에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마치 연극 ‘라이어’ 시리즈가 그런 말장난의 설계에서 놀아나듯, 인간 감정의 부딪힘 보다는 말놀이의 부딪힘이 더 드러난다. 그래서 장진 감독이 일부러 우겨내 만들어낸 감성의 장면들은 그렇게도 어색하기 이를 데 없다.

아쉽지만 지금까지는 그렇다.

1. 날아오는 자살녀의 등장 Scene
이 냥반 정말 낙하하는 여성 좋아하는 것 같은 데 영화 ‘아는 여자’에서도 한 명 낙하 – 이번 영화에서는 류승룡 와이프로 나오는 장영남 배우 – 시키더니 이번에 또 낙하 시킨다.

전혀 섞일리 없는 사람들을 한데 섞기 위한 도구로 ‘강변북로’를 사용하는 데다가 강변북로 여자 귀신 얘기도 아니고 이건 난데 없이 두 시 방향에서 날아드는 투신녀라니 호러물도 아니고 – 심지어 사람이 치이는 데 코믹한 –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없다.

2. 우울증 온라인 정모 Scene
또 또 나왔는데 영화 ‘아는 여자’에서 은행털이 온라인 정모를 하더니 이번엔 우울증 정모라니! 더군다나 이번엔 온라인 정모에서 일어나는 ‘쌈박질’을 개그 소재로 차용했다.

동시대 젊은이의 일상 코드에서 코믹한 요소로 이끌어내는 데는 확실히 수준급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3. 장진 감독 파출소 Scene
이번에는 그냥 카메오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한 자리 직접 꿰차고 진행을 하셨는데 역시나 감독으로써 자신이랄까? 연기가 짝짝 감기는 것이 맛깔나게 잘 했다.

강력계 마반장이라니. 등장부터 관객들이 킥킥대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이만큼 감독 얼굴 익숙히 아는 우리 영화도 드물지 싶다.

4. 동치성의 등장 Scene
정재영이 특별출연하는 데 정말 그렇게 과격한 몸놀림(?)을 했는데도 정면 클로즈업 샷을 보기 전까지는 정재영인줄도 몰랐다.

더 재미난 것은 이 캐릭터의 극 중 이름이 ‘동치성’이라는 것이다. 아 이 맛에 장진 감독 영화 보는 거 아니겠는가? 동치성의 재등장이라니. 정말 아름답다 아름다워.

영화의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임하룡 배우가 안 나온다는 점이다. 나름 장진의 배우들에 합류해서 나오실 만도 했지 싶은 데 끝까지 출연하지 않았다. 영화 ‘아저씨’에서 노형사 역할 했던 이종필 배우도 잠깐 나왔는데 이 냥반은 얼굴만 봐도 웃겨서 큰일이다. 나름 맛깔나는 배우인데 말이다.

그토록 말놀이를 풀었음에도 기억에 남는 대사하나 없건만, 그나마 이번에 건진 건 ‘장진 감독 영화’에서 눈시울을 적실만한 내용이 나온 점이다.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송영창의 아내가 눈물을 또르륵 흘리는 장면이나, 송영창이 엉엉 울어대며 병실로 들어가는 장면은 정말 이전 작품에서 보기 힘들 정도의 설정이자 묘사였다.

아 송영창 아저씨.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영진공 함장


 



 


 

“아이언맨 2”, 스칼렛 안나왔으면 도대체 워쩔?

아이언맨은 배트맨과 비슷한 점이 많은 수퍼히어로 캐릭터입니다. 토니 스타크는 브루스 웨인과 마찬가지로 외계인의 자식도 아니요 방사능에 노출된 벌레에 물린 일도 없는, 소위 ‘민간인’ 자격으로 수퍼히어로의 반열에 올라선 인물이잖아요. 두 사람은 모두 기업가 출신의 백만장자로서 악당들을 물리치는 데에 필요한 특수 복장이나 무기들을 스스로 마련해서 활약합니다.

물론 두 캐릭터 사이에는 다른 점들도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서 철저히 자신의 신분을 감추면서 활동하는 반면 토니 스타크는 기자들 앞에서 대놓고 “내가 바로 아이언맨”이라 밝히고 업적에 따른 댓가를 누립니다. 배트맨이 최근작의 제목처럼 ‘어둠의 기사’로 머물고 있는 반면 아이언맨은 그와 달리 ‘빛의 기사’나 ‘태양의 기사’로 자리매김합니다.

<아이언맨>(2008)의 인기는 그 천연덕스러운 밝음의 미학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같은 해에 개봉되었던 크리스토퍼 놀란 버전의 두번째 배트맨 시리즈, <다크 나이트>(2008)가 일반적인 수퍼히어로 영화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으며 평단과 객석 모두에게서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던 때에도 “내가 원했던 배트맨은 이런 게 아니었다”고 했던 관객들이 있었습니다.

백만장자로서의 오만방자함을 사칭하면서 막상 수퍼히어로로서는 끊임없이 고뇌해야만 했던 배트맨은 어쩌면 작품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캐릭터 자체의 매력은 내던져야만 했던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과감히 여타의 수퍼히어로들과는 다른 길, 즉 관객들에게 ‘깊이에의 강요’가 아닌 ‘2시간 동안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일에 충실함으로써 예상되었던 이상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속편이면서도 그 흔한 부제목이나 변형도 없이 그저 <아이언맨 2>입니다. 이토록 쿨한 제목짓기 만큼이나 내용면에서도 별다른 변화의 시도가 필요치 않았던 속편 프로젝트였습니다. 존 파브로 감독과 주연급 배우들의 대부분이 그대로 다시 참여해준 가운데 새로운 캐릭터들이 추가로 투입되었습니다.

<다크 나이트>가 그랬듯이 내용과 주제 의식에서의 깊이를 더하기로 했던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수퍼히어로물의 속편이란 물량으로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깊이를 포기하고 철저히 물량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수퍼히어로물이 어떻게 망가지게 되는지는 조엘 슈마허 감독이 연출했던 <배트맨 포에버>(1995)와 <배트맨과 로빈>(1997)이 좋은 선례를 남긴 바가 있긴 합니다.

<아이언맨 2>의 경우 물량 공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 만한 여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망가지게 될 특별한 사연이 있었던 것 역시 아니었던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던 만큼 관객 입장에서도 전편에서 보여주었던 만큼의 즐거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2시간의 관람이라면 충분히 만족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보게된 속편 영화입니다.

<아이언맨 2>에 새로이 투입된 물량이란 세 명의 배우와 CG로 만들어낸 다수의 로봇들로 요약됩니다 – 테렌스 하워드를 대신해서 출연한 돈 치들을 제외한다면요. 미키 루크와 샘 록웰이 불편한 악역 짝패를 이뤄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다른 한편에서는 스칼렛 요한슨이 토니 스타크의 가까이에서 기네스 팰트로만으로는 부족했던 2%를 확실하게 채워줍니다.

사실 스칼렛 요한슨이 매력적인 여비서 나타샤 로마노프로서만 등장할 때에는 그저 눈요기 정도로 끝날 것이었다면 뭐하러 나왔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블랙 위도우로 변신해서 특수 합금 갑옷의 아이언맨이 보여줄 수 없었던 육탄 액션을 선보일 때에는 아, <아이언맨> 시리즈가 이번에도 한 건 해냈구나 싶었습니다 – 아니, <아이언맨 2>가 전편에 비해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니요? 스칼렛 요한슨이 가죽옷을 입고 나왔잖아요!

전편에서 예고되었던 것처럼 제임스 로드 중령(돈 치들)이 또 다른 아이언맨 수트를 입고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과 콤비를 이룬다거나, 이안 반코(미키 루크)가 완성해낸 무인 조종 전투로봇들이 대거 등장하며 화려한 공중 추격전을 벌이는 등은 아이언맨에 심각하게 열광하는 관객이 아니고서는 그야말로 물량 이상의 각별한 재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았던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서류 가방 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이동형 아이언맨 수트가 새롭게 선보였고 그외 토니 스타크의 연구실이 홀로그램 시스템 등으로 이전 보다 훨씬 첨단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들 역시 이런 정도의 영화에서라면 당연히 나와줘야 할 눈요기 거리 정도 밖에는 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직접 연기하는 – 일부 장면에서는 대역을 쓴다 할지라도 – 매력적인 캐릭터의 등장과 활약은 분명히 물량의 확대 그 이상의 효과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아이언맨 2>와 같이 캐릭터의 매력이 중요시될 수 밖에 없는 속편 영화에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엔딩 크리딧이 무지하게 길 것으로 예상되어서 영화가 끝나자마자 상영관을 빠져나오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습니다만 – 물론 미리 알고 생각을 해두었더라면 참았겠지요 – <아이언맨 2>에는 전편과 같은 보너스 컷이 있다고 하더군요. 이번에는 토르(Thor)라는 마블코믹스의 또 다른 수퍼히어로의 등장이 암시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아이언맨> 시리즈는 그것 하나만으로 계속 이어져갈 계획이었던 것이 아니라 마블코믹스의 수퍼히어로들이 각자의 영화화된 작품들로 출발해서 종국에는 모든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종합편을 선보인다는 계획 하에 진행된 프로젝트의 일부인 것이라고 하는군요.

역시나 일일 연속극인 것도 아닌 바에야 2 ~ 3년에나 한 편씩 선보이는 장편 영화의 시리즈물로서, 그리고 이미 그 바닥을 훤히 드러내기 시작한 <아이언맨> 시리즈나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를 좋아하기 시작한 관객들에게까지도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소식인지요.

아니나 다를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스칼렛 요한슨의 2012년 출연 예정작은 마블코믹스의 수퍼히어로들이 총출동한다는 <어벤저스>라고 합니다. 그들이 다 모인다고 해서 그 전에 없었던 작품의 깊이가 갑자기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아이언맨>을 처음 보았을 때 만큼의 재미는 보장해줄 수 있는 묘수는 이미 마련해놓은 셈이라 하겠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 보기 전까지 저는 아이언맨을 잘 몰랐고 블랙 위도우도 몰랐습니다. 앞으로 보게 될 토르나 캡틴 아메리카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영화화하고 있는 사람들은 필요하다면 스칼렛 요한슨의 할머니를 데려와서라도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낼 줄 아는 이들이라는 건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