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그리고 문제적 인간 프린스


 

 


 


 


 



 


 


 


팀 버튼의 배트맨은 현대적 의미의 히어로 무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전에 슈퍼맨이 있었죠. 슈퍼맨은 1979년 리차드 도너 감독의 “슈퍼맨: 더 무비”에서 인간적(?) 혹은 크립톤 행성인과 지구인 사이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긴 하지만, 그러나 슈퍼맨은 슈퍼맨스럽게도 그 모든 고민을 초인적으로 헤쳐나갑니다. 그런데 팀 버튼의 배트맨은 그러질 않습니다. 그는 분노와 복수와 불안감이 마구 뒤섞인 감정 상태를 간직한채 끝까지 찜찜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 찜찜함은 사실 팀 버튼 영화에서 자주 다뤄지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찜찜함은 오히려 동화적 상상력이 되어주죠. 조커와 맞서는 배트맨의 유치하리만치 치사한 공격, 죽은 척하다가 공격한다던가, 한 방에 죽일 수 있지만 비행기를 맞춰 더 아프게 만든다던지. 그런데, 이런 장면들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에서 있었다면 바로 공분을 샀을 겁니다. 그런데, 팀 버튼의 배트맨은 그런 짓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죠.


 


그 까닭은 영화 속 장면들의 꾸밈새가 진지한 극영화이기보다는 환상과 전투를 오가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또 하나, 음악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영화 “비틀 주스”에서부터 지금까지도 단짝인 스코어의 마법사 대니 앨프먼이 있습니다.


 


대니는 정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록 밴드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었죠. 미국 출신이지만 주로 유럽서 활동을 했었고요. “Oingo Boingo”의 기타리스트 겸 리드 보컬이었던 대니는 함께 밴드를 하던 형이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나름 유럽서 성공을 거두고 있던 밴드를 걍 때려치고 형과 함께 돌아옵니다.


 


그에게 영화음악을 처음 부탁한 감독이 팀 버튼입니다. “비틀 주스”나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배배꼬이면서도 신비한 분위기, “가위손”의 아련함도 모두 팀 버튼과 대니 앨프먼의 합작입니다.


 


대니 앨프먼 음악의 특징은 무규칙적으로 오르고 내리는 정서의 변화입니다. 확실히 그는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들었고, 록 밴드 출신답게 이를 클래식적인 방식의 배치보다 “꼴리는대로” 마구 끌어다 붙이길 잘 하죠. 바로 이 무규칙성이 대니의 음악을 동화적이라 부르게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대니 앨프먼의 음악이 배트맨의 동화적이면서도 껄끄럽고, 우유부단하면서도 폭력적인 모습을 잘 뒷받침합니다. 박진감 넘치는 곡조에서 급작스런 현악 일색의 부드러운 곡조로 떨어지는 모습은 기-승-전-결을 따지는 클래식 작곡가들에겐 쉬이 상상할 수 없는 지점이죠. 그런데 대니보다 팀 버튼 버전 배트맨을 귀로 규정해주는 데 더 큰 영향을 끼친 이는 바로 “프린스”예요.


 


 


 



 


 


 


프린스는 1980년대 마이클 잭슨과 맞짱 뜰 수 있는 유일한 아티스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자신이 최고의 기타리스트였고, 송라이터, 프로듀서, 싱어, 댄서 였죠. 완벽하게 계산된 무대 매너는 1980년대 마이클 잭슨과 그 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죠. 배트맨은 스코어에서도 왈츠에서 광기 넘치는 타악, 웅장한 배트맨 테마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프린스는 이보다 한 발 더 나갑니다.


 


프린스가 이 음악을 원해서 만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습니다. 워너 브로스 뮤직과 프린스의 사이는 나쁘기로 유명했고, 음반사는 그런 프린스를 고깝게 봐서 계약 이행을 내세워 앨범 발매를 종용하는 일이 많았으니까요. 무시무시한 창작욕을 자랑하는 프린스답게 이 앨범 역시 정말 빠른 시간 안에 만든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음악이 후진 건 아니죠. 클럽튠에 가까운 댄스 음악 ‘Partyman’과 ‘Batdance’ 그리고 가성을 사용한 감미로운 알앤비 발라드 ‘Scandalous’, 시나 이스턴을 데려와 팝 발라드의 전형을 보여주는 듀엣 곡 ‘The Arms of Orion’, 가성으로 중성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는 ‘Vicki Waiting’까지.


 


킴 베이싱거 누님이 맡은 비키 베일의 이미지를 끈적하게 만들어놓는 ‘Vicki Waiting’의 그루브감은 확실히 프린스의 전매특허죠. 그러고보니 킴 누님과 염문도 있었네요. 전반적으로 1980년대 록 음악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훵키 비트와 효과음이 경쾌한 멋진 앨범입니다.


 


 





프린스의 대표곡, “When Doves Cry” 

 


 


157cm의 단신인 프린스는 재즈 보컬리스트인 어머니와 재즈 피아니스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10살 무렵 별거하던 아버지의 새 애인을 집에서 마주하는 경험을 하는 등 그닥 좋은 환경 출신은 아니었다네요. 물론 엄마, 아빠를 오가며 다양한 음악을 들었고, 자신의 밴드에 대해 평가를 부탁하는 등 음악에 대한 욕심은 부모 모두에게서 받았고, 또 부모를 이용하기도 했죠.


 


여튼 소속사 워너와 계약 문제로 끝장 법정 싸움이 불거지자 자기 뺨에 “Slave”라고 문신을 새기기도 했던 거 보면 보통의 인물은 아니죠. 남성과 여성의 심볼을 합친 자신만의 문양을 만들고, 그 문양을 이용한 기타를 연주하는 이 양반은 확실히 문제적 인간임에 틀림없습니다. 존재 자체가 배트맨의 양면성을 그대로 대변하죠.


 


프린스의 음악도 그래요. 흔히 훵크 가수로 분류하지만, 프린스의 음악에는 록의 요소가 짙죠. 고교 시절 첫 밴드에서 그는 지미 헨드릭스가 환생한 듯한 연주를 들려줬다고 하네요. 댄스와 퍼포먼스의 대가로 마이클 잭슨과 쌍벽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프린스의 퍼포먼스는 거의 레이디 가가를 방불케 합니다. 누군가 레이디 가가의 등장을 보고 “여자 프린스”라고 했는데, 딱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세대에겐 프린스가 1980년대에 레이디 가가처럼 기행을 일삼았던 남자 가수였다고 해야 이해할 지도 모르지만.


 


그런 프린스가 만든 영화 “Batman” 사운드 트랙은 영화를 떠나 음반 그 자체로도 높이 평가할만한 명반입니다. 대니 앨프먼의 스코어 못지 않게 영화에 이 음반 수록곡들이 슬금슬금 등장해서 영화의 분위기를 딱 잡아줍니다. 조커가 돈 뿌릴 때 흘러나오는 ‘Partyman’은 아주 대표적이죠.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Batdance’도 정말 매력적이고요. ‘Lemon Crush’는 록, 훵크, 소울이 뒤죽박죽 믹스된 정말 프린스다운 명곡입니다. 비키 베일 역을 맡은 킴 누님에게 딱 맞는 분위기의 곡이었죠. 그런데, 영화에서 비키 누님은 이런 끈적한 분위기를 낼 듯 하다가 맙니다. 그걸 프린스가 아쉬워 했을까요? 킴 누님에게 딱 맞는 곡을 만들어 영화에 넣었네요.


 


그럼 ‘Batdance’ 들으시면서 포스팅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Prince – Batdance (Batman Soundtrack) 작성자: Leroidukitch

 


 


 


영진공 헤비죠


 


 


 


 


 


 


 


 


 


 


 


 


 


 


 


 


 


 


 


 


 


 


 


 


 


 


 


 


 


 


 


 


 


 


 

수퍼맨, 헐크, 배트맨의 심리학

 


 


 


 



 


 

수퍼맨: 신 혹은 천사



수퍼맨은 현대판 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슈퍼맨을 볼 때마다 지상의 인간을 사랑한 나머지 천국에서 내려온 천사를 그린 <베를린 천사의 시> 라는 영화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는 하늘 저편에서 내려왔고, 애초부터 고귀하고 순수한 성품을 타고났고, 거기다가 지구상의 그 어떤 존재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이라기 보다는 신에 가깝습니다.


 


수퍼맨의 능력은 보통 인간의 능력과 비슷하지만 질적으로 다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 시선으로 눈빛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빛 공격은 심리적인 것이죠. 하지만 수퍼맨은 정말로 눈빛이 레이져 광선입니다. 우리도 숨을 들이마시고 내쉼으로써 촛불 정도는 끌 수 있지만 수퍼맨의 들숨과 날숨은 허리케인만큼 강하고 용암도 식힐수 있을만큼 차갑죠. 수퍼맨의 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초월(super)합니다. 그런 그가 정체를 숨기고 마치 평범한 인간인 것처럼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신이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옛날 이야기들을 연상하게 하는 설정이죠.



 






神 티를 팍팍 내는 포즈 …



 



수퍼맨을 이해하는 심리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재들의 고민이죠. 이건 ‘미운오리새끼’ 이야기랑 비슷합니다. 수퍼맨은 어릴 적에는 자신의 정체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지요. 그의 고민은 남들보다 뒤쳐저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너무 앞서기 때문에 생깁니다. 마치 오리들 사이에서 자라난 백조처럼 말이죠.

 


영재들도 그렇습니다. 남들보다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학교에서 잘 지낼 것 같지만 사실은 정 반대입니다. 대부분의 영재아이들은 선생님에게 딴지를 걸거나 논쟁을 벌이고(예를 들어, 선생님 말씀이 틀렸는데요. 이런 식으로 말이죠), 정상적인 수업은 너무 지루하기 때문에 딴짓을 하다가 사고를 치고, 친구들과도 전혀 다른 취미생활을 하다 보니 왕따를 당하기 쉽습니다.


 


비정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균에서 벗어나면 누구든 비정상이죠. 지나치게 낮은 지능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높은 지능도 문제가 되는 겁니다.


 








얘야, 교실에선 네가 선생보다 똑똑하다는 걸 티내면 안된단다 …


(이건 실제로 영재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첫번째 기술입니다)


 



두 번째 심리는 상황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정체감입니다. 수퍼맨은 그의 고향별 크립톤 행성에서는 정말 평범한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구에 오면 그는 수퍼맨이 되지요. 그의 유일한 약점이 크립톤 별의 물질인 크립토나이트라는 것도 이와 직결됩니다. 크립토나이트 앞에서는 그도 평범한 인간이 되는 거예요.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여, 유명 연예인은 TV나 영화 속에서는 정말 멋있고 대단해서 평범한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의 어린 시절을 잘 아는 친구들은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알거나 혹은 좋지 않은 모습을 뒤에 숨기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쟎아요. 아인슈타인도 우리는 인류의 평화를 걱정하는 순수한 과학자라는 모습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의 가족들은 무책임하고 위선적인 남편이자 아버지로 그를 기억하기도 한다지요.







 



 


 

헐크: 억압과 폭발



헐크와 부루스 배너는 인간의 양면성을 상징합니다.

헐크는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억압’이라는 방어기제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말하길 우리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욕구나 본능을 억누르고 부정하면서(이게 억압입니다) 무의식 속에 숨겨둔다고 했거든요. 그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거죠.

 


헐크의 다른 모습인 부루스 배너 박사는 착하고 점잖고 폭력을 싫어하는 공부벌레 순둥이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정말 완벽하게 착하고 점잖기만 할까요? 그렇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죠.


 


인간에게는 공격성이라는 본능이 있습니다. 즉 우리 모두에게는 공격성이 있는데 부루스 배너 박사는 그 공격성을 무의식 속에 꼭꼭 가두어둔 겁니다. 그러다가 과학실험이 우연히 이상한 영향을 미쳐서 그의 무의식 속에 감금되어 있던 공격성이 뛰쳐나오는 겁니다. 헐크가 바로 그 모습이죠.


 







난 늘 화가 나 있어… 평소엔 그냥 참고 있을 뿐이야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심리학의 원리는, 지나친 억압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도 헐크처럼 되는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요? 평소에는 순둥이처럼 굴다가 갑자기 분노를 폭발시켜버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깁니다. 불만이나 분노를 그때 그때 해결했더라면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인정도 받고 대우도 더 좋아졌을텐데, 갑자기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버럭버럭 화를 내니까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게 되지요. 그러다보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분노를 폭발시키며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물건을 부수었다면 손해배상을 해야 하거나 심하면 감옥에 가야 하는 등의 큰 손해도 보게 됩니다.




보통 건강한 사람들은 자기의 본능이나 욕구를 지나치게 억압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생산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하지요. 이런 방식을 ‘승화’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공격성이 높은 사람들이 자기 공격성을 승화시키면 경찰관이나 소방관, 혹은 격투기 선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이 발휘하는 공격성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공격성이죠.


 



 



 


 

배트맨: 강박과 불안



배트맨의 기본 심리는 불안감 입니다.

배트맨은 법이나 경찰을 믿지 않습니다. 어릴 적에 부모님이 대로변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았던 그는 국가권력이 개인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자력구제의 원칙을 따릅니다. 그런데 이런 그의 생활은 필연적으로 불안감을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사회와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렇다고 믿기 때문에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지요. 하지만 더 이상 사법 시스템을 믿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그래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결국 그걸 해결해야 하는 주체는 나 혼자라고 생각한다면, 도시는 끝없는 두려움의 원천이 됩니다. 모두를 의심해야 하고 늘 자기를 방어할 준비를 해야 하지요. 배트맨의 삶이 그래서 시작됩니다.


 


배트맨은 자기의 정체를 숨깁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믿을 수 없으니까요. 배트맨이 방탄망또와 배트카를 비롯한 온갖 장비를 몸에 두르고 다니는 이유는 범죄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보자면 배트맨의 심리상태는 편집성 성격장애와 강박성 성격장애가 혼합된 모습입니다.


 


편집성 성격장애자들은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의심합니다. 모두가 나를 질투하고 시기하며 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여기죠. 그래서 자기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면 누군가의 음모라고 여기고 복수를 준비합니다. 의처증, 의부증 같은 것도 편집성 성격장애의 일종인데, 이게 심해지면 정말 남을 해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아주 무서운 성격장애죠.


 


강박성 성격장애자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하는 일이 잘못될 까봐 늘 불안해합니다. 세균에 감염될까봐 맨손으로 문손잡이도 안 만지거나 악수도 못하고, 옷에 뭐가 묻을까봐 공원벤치에 앉지도 않고 음식점에도 못 들어가고, 일을 할때도 뭐가 잘못될까봐 끝없이 재검토를 하는 바람에 정작 중요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유형입니다. 그게 다 그저 불안하기 때문이지요. 배트맨이 온갖 장비로 완전무장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조커는 배트맨의 악몽 속에서 기어나왔음직한,



배트맨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의 총합





 

우리 모두에게는 어느 정도의 강박증도 있고 약간의 편집증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건 세상을 살아가는데 유용한 성격입니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뒤에나 외출하고 돌아와서 손을 씻는 것은 아주 좋은 습관이죠.

 


우리 세상에서는 언제든 사기 당하거나 잘못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유비무환의 정신을 가지는 것도 좋은 일이죠. 하지만 그게 지나치면 문제가 됩니다.


 


 


영진공 짱가


 


 


 


 


 


 


 


 


 


 


 


 


 


 


 


 


 



 

“어벤져스”, 너는 홀몸이 아니란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도 울었나 보다.”


 


 


근래 Made in 마블 코믹스 표 영화를 보던 내 마음을 표현해준 것은 이 시 한 구절이었다. 제아무리 매니아가 아니라면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는 영화라고 해도, “아이언 맨 2″부터 “토르”, “캡틴 아메리카”로 이어지는 마구잡이식 재고 대방출, 찍고보자식 영화 완성도의 꼬라지는 그야말로 암담한 수준이었다.


 


그건 매니아란 변명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배트맨”과 “엑스맨”의 완성도는 원작을 보지 않은과연 영화 붐을 타고 미국산 코믹스들이 번역 되기 전에 그 원작을 본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이들도 충분히 감동할 수 있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리고 드디어 2012년 세계 종말이 오기 전에 등장한 어벤져스. 대체 어떤 세기의 대작을 만들었길래 앞의 작품들을 그렇게 분탕칠 해야 했는지, 수능 시험 성적표를 앞에 둔 수험생 아니 재수생 마냥 내 가슴이 다 설레었다.


 


그렇게 “어벤져스”는 마블이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 났던 것이 이해가 갈 만큼 평일 관람료 8,000원을 후울~쩍 뛰어넘는 재미를 던져주는 작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앞서 마구 뱉아내던 작품들을 꾸역꾸역 보느라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 말초신경을 시원스레 경락 마사지해주었다.


 


그러나 “어벤져스”는 홀몸이 아니다. 앞서 3개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등장한 작품이 아니던가. 나 역시 울며 겨자 퍼먹는 심정으로 앞선 작품들을 다 보았기 때문에 어벤져스를 향한 나의 기대치는 평일 관람료 기준 아이언맨2(8,000)+토르(8,000)+캡틴 아메리카(8,000)이 포함된 32,000원이었다. (안타깝게도 어느 한 작품 조조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과연 “어벤져스”가 나에게 32,000원 어치의 기대감을 만족시켜 주었냐고 한다면 글쎄다. 연애에서도 상대방과 밀고 당기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보스급인 사슴머리의 존재감은 옥의 티가 아니었을까 한다. 기껏해야 헐크의 1회용 개그 소재 정도였으니 이렇게 폼 안나는 보스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주인공들이 워낙 넘사벽이라 적과의 싸움보다는 지들끼리 싸울 때 오히려 더 땀을 쥐는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래서 나의 점수는 32,000원 만점에 24,000원까지다. B급도 아닌 C급 특촬물스러웠던 영화 캡틴 아메리카는 지금 생각해도 안주 없이 소주 한 병 까게 만들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 전차로 니들이 진정 히어로라면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기 앞서 우리의 호주머니를 생각해서 앞으로 이 이상의 수준으로 3편 정도 더 나올 수 있게 혼신의 힘을 다해주길 바라는 바이다. OK?!



영진공 self_fish


 


 


 


 


 


 


 


 


 


 


 


 


 


 


 


 


 


 


 


 


 


 


 


 


 


 


 


 


 


 


 


 


 


 

“아이언맨 2”, 스칼렛 안나왔으면 도대체 워쩔?

아이언맨은 배트맨과 비슷한 점이 많은 수퍼히어로 캐릭터입니다. 토니 스타크는 브루스 웨인과 마찬가지로 외계인의 자식도 아니요 방사능에 노출된 벌레에 물린 일도 없는, 소위 ‘민간인’ 자격으로 수퍼히어로의 반열에 올라선 인물이잖아요. 두 사람은 모두 기업가 출신의 백만장자로서 악당들을 물리치는 데에 필요한 특수 복장이나 무기들을 스스로 마련해서 활약합니다.

물론 두 캐릭터 사이에는 다른 점들도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서 철저히 자신의 신분을 감추면서 활동하는 반면 토니 스타크는 기자들 앞에서 대놓고 “내가 바로 아이언맨”이라 밝히고 업적에 따른 댓가를 누립니다. 배트맨이 최근작의 제목처럼 ‘어둠의 기사’로 머물고 있는 반면 아이언맨은 그와 달리 ‘빛의 기사’나 ‘태양의 기사’로 자리매김합니다.

<아이언맨>(2008)의 인기는 그 천연덕스러운 밝음의 미학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같은 해에 개봉되었던 크리스토퍼 놀란 버전의 두번째 배트맨 시리즈, <다크 나이트>(2008)가 일반적인 수퍼히어로 영화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으며 평단과 객석 모두에게서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던 때에도 “내가 원했던 배트맨은 이런 게 아니었다”고 했던 관객들이 있었습니다.

백만장자로서의 오만방자함을 사칭하면서 막상 수퍼히어로로서는 끊임없이 고뇌해야만 했던 배트맨은 어쩌면 작품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캐릭터 자체의 매력은 내던져야만 했던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과감히 여타의 수퍼히어로들과는 다른 길, 즉 관객들에게 ‘깊이에의 강요’가 아닌 ‘2시간 동안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일에 충실함으로써 예상되었던 이상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속편이면서도 그 흔한 부제목이나 변형도 없이 그저 <아이언맨 2>입니다. 이토록 쿨한 제목짓기 만큼이나 내용면에서도 별다른 변화의 시도가 필요치 않았던 속편 프로젝트였습니다. 존 파브로 감독과 주연급 배우들의 대부분이 그대로 다시 참여해준 가운데 새로운 캐릭터들이 추가로 투입되었습니다.

<다크 나이트>가 그랬듯이 내용과 주제 의식에서의 깊이를 더하기로 했던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수퍼히어로물의 속편이란 물량으로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깊이를 포기하고 철저히 물량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수퍼히어로물이 어떻게 망가지게 되는지는 조엘 슈마허 감독이 연출했던 <배트맨 포에버>(1995)와 <배트맨과 로빈>(1997)이 좋은 선례를 남긴 바가 있긴 합니다.

<아이언맨 2>의 경우 물량 공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 만한 여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망가지게 될 특별한 사연이 있었던 것 역시 아니었던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던 만큼 관객 입장에서도 전편에서 보여주었던 만큼의 즐거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2시간의 관람이라면 충분히 만족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보게된 속편 영화입니다.

<아이언맨 2>에 새로이 투입된 물량이란 세 명의 배우와 CG로 만들어낸 다수의 로봇들로 요약됩니다 – 테렌스 하워드를 대신해서 출연한 돈 치들을 제외한다면요. 미키 루크와 샘 록웰이 불편한 악역 짝패를 이뤄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다른 한편에서는 스칼렛 요한슨이 토니 스타크의 가까이에서 기네스 팰트로만으로는 부족했던 2%를 확실하게 채워줍니다.

사실 스칼렛 요한슨이 매력적인 여비서 나타샤 로마노프로서만 등장할 때에는 그저 눈요기 정도로 끝날 것이었다면 뭐하러 나왔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블랙 위도우로 변신해서 특수 합금 갑옷의 아이언맨이 보여줄 수 없었던 육탄 액션을 선보일 때에는 아, <아이언맨> 시리즈가 이번에도 한 건 해냈구나 싶었습니다 – 아니, <아이언맨 2>가 전편에 비해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니요? 스칼렛 요한슨이 가죽옷을 입고 나왔잖아요!

전편에서 예고되었던 것처럼 제임스 로드 중령(돈 치들)이 또 다른 아이언맨 수트를 입고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과 콤비를 이룬다거나, 이안 반코(미키 루크)가 완성해낸 무인 조종 전투로봇들이 대거 등장하며 화려한 공중 추격전을 벌이는 등은 아이언맨에 심각하게 열광하는 관객이 아니고서는 그야말로 물량 이상의 각별한 재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았던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서류 가방 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이동형 아이언맨 수트가 새롭게 선보였고 그외 토니 스타크의 연구실이 홀로그램 시스템 등으로 이전 보다 훨씬 첨단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들 역시 이런 정도의 영화에서라면 당연히 나와줘야 할 눈요기 거리 정도 밖에는 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직접 연기하는 – 일부 장면에서는 대역을 쓴다 할지라도 – 매력적인 캐릭터의 등장과 활약은 분명히 물량의 확대 그 이상의 효과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아이언맨 2>와 같이 캐릭터의 매력이 중요시될 수 밖에 없는 속편 영화에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엔딩 크리딧이 무지하게 길 것으로 예상되어서 영화가 끝나자마자 상영관을 빠져나오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습니다만 – 물론 미리 알고 생각을 해두었더라면 참았겠지요 – <아이언맨 2>에는 전편과 같은 보너스 컷이 있다고 하더군요. 이번에는 토르(Thor)라는 마블코믹스의 또 다른 수퍼히어로의 등장이 암시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아이언맨> 시리즈는 그것 하나만으로 계속 이어져갈 계획이었던 것이 아니라 마블코믹스의 수퍼히어로들이 각자의 영화화된 작품들로 출발해서 종국에는 모든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종합편을 선보인다는 계획 하에 진행된 프로젝트의 일부인 것이라고 하는군요.

역시나 일일 연속극인 것도 아닌 바에야 2 ~ 3년에나 한 편씩 선보이는 장편 영화의 시리즈물로서, 그리고 이미 그 바닥을 훤히 드러내기 시작한 <아이언맨> 시리즈나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를 좋아하기 시작한 관객들에게까지도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소식인지요.

아니나 다를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스칼렛 요한슨의 2012년 출연 예정작은 마블코믹스의 수퍼히어로들이 총출동한다는 <어벤저스>라고 합니다. 그들이 다 모인다고 해서 그 전에 없었던 작품의 깊이가 갑자기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아이언맨>을 처음 보았을 때 만큼의 재미는 보장해줄 수 있는 묘수는 이미 마련해놓은 셈이라 하겠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 보기 전까지 저는 아이언맨을 잘 몰랐고 블랙 위도우도 몰랐습니다. 앞으로 보게 될 토르나 캡틴 아메리카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영화화하고 있는 사람들은 필요하다면 스칼렛 요한슨의 할머니를 데려와서라도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낼 줄 아는 이들이라는 건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영진공 신어지

오바마와 덴트, 너는 내 운명!


<다크 나이트>는 여타 슈퍼히어로물과 비교해 여러 모로 진화한 텍스트다. 볼 때마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해 곱씹어보는 재미를 준다. 처음 봤을 때는 미국이 처한 정치적 현실의 은유라고 생각했다. 배트맨의 출현이 더욱 강한 적을 부른다는 설정 때문에 세계 영웅을 자처하다 아랍권의 거센 반발로 오히려 국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린 미국의 모습과 겹쳐졌다. 두 번째 감상에서는 배트맨과 미국을 동일시,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어둠의 기사가 될 수밖에 없는 미국 영웅주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알레고리로 읽혔다.  

세 번째는 또 달랐다. DVD로 다시 본 <다크 나이트>는 대통령 당선 전 버락 오바마에게 보내는 영국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충고 혹은 경고로 해석됐다. (여담인데, 미국 내부에 대한 가장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 감독은 언제나 외부인이었다.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 <아메리칸 뷰티>(1999)의 감독은 영국 출신인 존 슐레진저와 샘 멘데스였고, <아이스 스톰>(1998)의 이안 감독은 대만 출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 배경이 시카고이고 둘째, 극중 고담시의 차기 시장 선거가 중요하게 언급되며 셋째, 하비 덴트가 혼란한 고담시를 구원해줄 영웅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선, <다크 나이트>가 시카고에서 촬영됐다는 점은 흥미롭다. 전작 <배트맨 비긴즈>는 세트 촬영이 주를 이뤘기 때문에 실제 로케이션 장소가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말 그대로 고담은 허구의 장소였던 셈. 그랬던 고담이 <다크 나이트>에서는 세트를 박차고 나와 시카고 시내에서 영화의 60%를 촬영했다. 놀란의 인터뷰에 따르면, “브루스의 내면에 집중한 <배트맨 비긴즈>와 달리 <다크 나이트>는 한 인물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뤄야 했기에 고담 시의 물리적 범위를 더욱 크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왜 시카고였을까? 고담은 뉴욕의 옛 이름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실제 로케이션 장소는 뉴욕이 돼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

나는 <다크 나이트>가 결국 버락 오바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뉴욕이 아닌 시카고를 촬영 장소로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시카고는 오바마가 처음 정치를 시작한 곳일 뿐 아니라 정치생명의 꽃을 핀 자궁과 같은 도시다. 이곳에서의 성공적인 정치활동을 등에 업고 백악관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영화는 배경을 시카고로 삼을 뿐 아니라 지방검사로 등장하는 하비 덴트가 고담시의 차기 시장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임을 계속해서 환기시킨다. 심지어 선거가 3년 뒤에 실시됨에도 말이다. (브루스 웨인은 하비 덴트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시장 선거 후보로 후원하도록 하지.”라고 말한다. 이에 덴트 왈, “선거는 3년 뒤인데요.” 그러자 웨인 왈, “내가 후원하면 당선이나 다름없다고.”)

안 그래도 덴트는 무너진 고담시의 법치질서 회복에 대한 의지가 강한 인물이다. 지역 마피아와 손잡은 공권력의 부패가 고담시를 더욱 나락에 빠뜨리는 상황에서도 원칙과 소신을 강조하며 악의 퇴치에 앞장 설 뿐 아니라 잠시지만 조커를 생포하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고담시를 구원할 차세대 영웅 하비 덴트 등장이요!

브루스 웨인/배트맨이 하비 덴트를 후계자 삼아 고담시의 평화를 회복하려 했듯 부시 정권 하에서 미국적 가치의 끝없는 추락을 목격한 국민들은 버락 오바마라는 새로운 영웅이 간절히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놀란 감독은 극중 고담시의 차기 시장 선거를 전략적(?)으로 언급하며 미국 대선이 실시됐던 해에 개봉한 <다크 나이트>가 차기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임을 은연 중에 환기시킨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으로 추측해 보건데, <다크 나이트>의 하비 덴트는 버락 오바마를 모델로 했을지 모른다는 심증을 들게 한다. 그리고 오바마는 흑인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며 새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그런 점에서 <다크 나이트>는 2008 미국 대선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셈이 되는 것이다.

다만 이런 의문도 든다. 오바마를 모델로 했다면 덴트 역의 배우를 백인인 애론 엑하트가 아니라 흑인으로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냐는. 그럴지도. 사실 내가 덴트와 오바마를 연결시킬 수 있었던 건 이미 미국 대통령이 결정되고 난 후 <다크 나이트>를 봤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론적 관점일 뿐이다. <다크 나이트>의 전 세계 동시 개봉일은 2008년 8월 6일.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맞붙은 민주당 전당대회는 한 달 뒤인 9월에 있었으니 정말로 놀란 감독이 오바마를 모델로 덴트를 캐릭터화했다면 그것은 모험에 가까웠을 터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 촬영 당시의 미국적 상황을 고려하건데 부시의 이념과 반대되는 인물을 차기 대통령으로 예측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을 거다. 덴트 역에 애론 엑하트를 캐스팅한 것에 대해 놀란 감독이 “미국의 이상주의를 실현할 영웅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 건 그런 맥락이었으리라. 그러니까 덴트 역의 모델은 현 시점에서 보면 버락 오바마이지만 개봉 당시를 고려하면 미국 차기 대통령이라고 하는 편이 옳다.

글 초반에 ‘<다크 나이트>는 대통령 당선 전 버락 오바마에게 보내는 영국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충고 혹은 경고’라고 말했다. 여기서 잠시 덴트와 오바마의 연결성은 제쳐두고 질문을 다시 해보자. 크리스토퍼 놀란은 미국 차기 대통령에게 무엇을 충고하고 싶었던 걸까. 이 질문은 이렇게 바꿔도 무방하다. 배트맨과 조커의 대결 구도만으로도 충분했을 영화에 굳이 하비 덴트를 끌어들인 이유는 뭘까. 극단적인 가치 추구는 광기와 같다, 즉 “진실만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조커의 말을 빌린 놀란 감독은 흡사 ‘흑과 백’의 구도로 흐르는 배트맨과 조커의 대결 사이에 ‘투 페이스’ 하비를 끼워 넣고 윤리적 딜레마를 일으켜 현실 정치의 회색빛 진실을 알려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조커와 배트맨은 서로 정반대에 위치한 인물들이다. 조커가 절대 악을 상징하고 배트맨이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외형상으로 드러나는 특징들은 정확히 대립을 이룬다. 하얗게 분칠한 얼굴과 검은색 슈트, 질서의 파괴와 수호, 익살스러움과 심각함, 부랑아와 부자, 그리고 과장과 은신까지. 극단적인 선은 악과 닮은꼴이듯 조커와 배트맨은 노골적으로 다르지만 그래서 같은 인물이다. (극중 조커가 배트맨을 향해 “넌 나를 완전하게 만들어”라고 말한 대사를 상기하라!)

결국 동전의 양면처럼 등을 맞대고 있는 두 캐릭터는 어느 면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현상의 출발점인 셈이다. 그리고 이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인물이 바로 하비 덴트, 즉 투 페이스다. 원래 대통령과 같은 책임자의 위치에 서게 되면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하물며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의 대통령이라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세계정세의 판도가 달라질 것임은 자명하다. 당신이라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앞면? 뒷면?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전 세계가 그렇게 바라마지않던 평화가 찾아오는 것인가?
<다크 나이트>가 흥미로운 텍스트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크 나이트>는 세계의 혼돈에 대한 영화적 탐구다. 진실만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며 맹목적인 믿음을 버리라고 한다. 맹목적인 믿음이란 광기와 같아서 한 번 불붙으면 걷잡을 수 없다고 영화는 말한다. 괴물을 잡기 위해 자신까지 괴물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고담의 미래를 책임질 영웅이었다가 희망이 꺾이자 곧바로 조커의 영역에 투신하는 하비, 아니 투 페이스의 행보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바꿔 말해, 현실은 이상과 달라서 악을 뿌리 뽑을 필요가 없다. 굳이 뿌리 뽑지 않아도 되니 적절히 용인하는 가운데 그 스스로가 악역을 맡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중도(中道)의 묘를 발휘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배트맨처럼. 누구에게? 미국 차기 대통령에게. 그러니까, 버락 오바마에게.

이와 관련, 최근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좋은 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무차별 공습을 감행하며 죄 없는 민간인을 사살하자 세계의 이목은 다름 아닌 오바마에게로 향했다. 동전 앞면을 선택해 말 그대로 이상적인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것인지, 뒷면을 선택해 전쟁을 묵인하며 자국의 이익을 추구할 것인지. 이스라엘에 대한 전 세계의 비난이 폭주하는 가운데 오바마는 “미국은 이스라엘의 안전을 약속합니다. 위협에 대한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합니다”라고 이스라엘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그것이 바로 정치요, 현실이다.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 프랜차이즈 역사상 유일하게 ‘배트맨’이 제목에 들어가지 않은 경우다. ‘어둠의 기사’(Dark Knight)라는 별명과 함께 배트맨을 지칭하는 또 하나의 이름은 바로 ‘망토 입은 십자군’(Caped Crusader)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 교황청이 이슬람에 파견한 군대. 세계 평화를 가져오겠다며 대선 전부터 기염을 토한 현실의 하비 덴트는 어둠의 기사가 되어 고담으로 변모한 가자 지구에서 망토 입은 십자군으로서의 맹활약을 예고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바마를 향한 충고는 멋지게 들어맞은 셈이 됐다. <다크 나이트>는 보면 볼수록 무시무시한 영화다.


영진공 나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