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너는 홀몸이 아니란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도 울었나 보다.”


 


 


근래 Made in 마블 코믹스 표 영화를 보던 내 마음을 표현해준 것은 이 시 한 구절이었다. 제아무리 매니아가 아니라면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는 영화라고 해도, “아이언 맨 2″부터 “토르”, “캡틴 아메리카”로 이어지는 마구잡이식 재고 대방출, 찍고보자식 영화 완성도의 꼬라지는 그야말로 암담한 수준이었다.


 


그건 매니아란 변명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배트맨”과 “엑스맨”의 완성도는 원작을 보지 않은과연 영화 붐을 타고 미국산 코믹스들이 번역 되기 전에 그 원작을 본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이들도 충분히 감동할 수 있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리고 드디어 2012년 세계 종말이 오기 전에 등장한 어벤져스. 대체 어떤 세기의 대작을 만들었길래 앞의 작품들을 그렇게 분탕칠 해야 했는지, 수능 시험 성적표를 앞에 둔 수험생 아니 재수생 마냥 내 가슴이 다 설레었다.


 


그렇게 “어벤져스”는 마블이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 났던 것이 이해가 갈 만큼 평일 관람료 8,000원을 후울~쩍 뛰어넘는 재미를 던져주는 작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앞서 마구 뱉아내던 작품들을 꾸역꾸역 보느라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 말초신경을 시원스레 경락 마사지해주었다.


 


그러나 “어벤져스”는 홀몸이 아니다. 앞서 3개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등장한 작품이 아니던가. 나 역시 울며 겨자 퍼먹는 심정으로 앞선 작품들을 다 보았기 때문에 어벤져스를 향한 나의 기대치는 평일 관람료 기준 아이언맨2(8,000)+토르(8,000)+캡틴 아메리카(8,000)이 포함된 32,000원이었다. (안타깝게도 어느 한 작품 조조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과연 “어벤져스”가 나에게 32,000원 어치의 기대감을 만족시켜 주었냐고 한다면 글쎄다. 연애에서도 상대방과 밀고 당기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보스급인 사슴머리의 존재감은 옥의 티가 아니었을까 한다. 기껏해야 헐크의 1회용 개그 소재 정도였으니 이렇게 폼 안나는 보스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주인공들이 워낙 넘사벽이라 적과의 싸움보다는 지들끼리 싸울 때 오히려 더 땀을 쥐는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래서 나의 점수는 32,000원 만점에 24,000원까지다. B급도 아닌 C급 특촬물스러웠던 영화 캡틴 아메리카는 지금 생각해도 안주 없이 소주 한 병 까게 만들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 전차로 니들이 진정 히어로라면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기 앞서 우리의 호주머니를 생각해서 앞으로 이 이상의 수준으로 3편 정도 더 나올 수 있게 혼신의 힘을 다해주길 바라는 바이다. OK?!



영진공 self_fish


 


 


 


 


 


 


 


 


 


 


 


 


 


 


 


 


 


 


 


 


 


 


 


 


 


 


 


 


 


 


 


 


 


 

[근조] 도나 섬머

 



 



 


 


 


도나 섬머


Donna Summer


(1948. 12. 31. ~ 2012. 5. 17.)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영진공 일동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조개화석 (1/2)


 


 


 


 










 


 


레오나르도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과 같은 세기의 걸작을 비롯하여 예술, 수학, 물리학, 해부학, 건축학, 공학, 광학, 천문학, 지질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넘나들던 호기심 대마왕이자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천재였다.


 


레오나르도가 사후에 남긴 것은 비교적 적은 15점의 회화 작품과 방대한 양의 소묘와 메모다. 그러나 당시 그의 육필 문서들은 매우 가까운 지인 외에는 동시대인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며, 16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그의 유산을 상속한 프란체스코 멜치Francesco Melci가 회화에 관련된 문서를 선별해서 엮은 [회화론]을 내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1570년 멜치가 죽은 직후부터 다 빈치의 노트와 메모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서유럽 각지의 왕족, 귀족의 서고에 고이 쳐박히게 되었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꼬추 아이콘이 된 레오나르도의 스케치


 


 


레오나르도의 문서들은 20세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문서들에 담긴 내용이 호기심 닿는 대로 손댄 개별적 관찰이나 순간 떠오른 생각을 급히 휘갈겨 써 둔 메모에 불과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가 역학과 수학 분야에서 남긴 메모들 전부가 그의 독창적 사색의 결과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현재 판명되었다. 예술적인 부분과 건축의 일부분을 제외하면 레오나르도의 기술연구에서는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학자들의 야박한 평가다. 그럼에도 탁월한 관찰력과 미대생도 부러워할 데생력 그리고 권위나 거창한 말 보다는 직접 손발로 실험해보는 솔선수범 장인 기질은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레오나르도가 남긴 문서들은 해석하기가 쉽지 않았다. 순간의 단편적인 아이디어들을 적어놓은 데다가 속어인 토스카나어를 좌우 반전시킨 독특한 문자를 사용해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쓰여 있으며 거울로 글자를 반사시켜야 읽을 수 있는 장치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신만 아는 기호들을 사용하였기에 동시대의 이탈리아인이라 해도 간단히 읽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즉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노트가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레오나르도는 관찰과 생각들을 수많은 메모로 남겼지만 그것들을 잘 정리해서 논문이나 책으로 완성시킨 적은 없다. 원래 레오나르도는 개개의 관찰력에선 무척 뛰어났지만, 이를 일반화하고 체계화하려는 노력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레오나르도의 연구가 자신을 위해서만 이뤄졌을 뿐, 널리 동시대인을 계몽시키려는 목적은 없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는 유명하긴 했지만 그가 행했던 과학과 기술의 연구가 동시대에 미친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암호 같은 문서들은 후세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특이한 기계 장치들과 멋들어진 스케치, 암호와도 같은 글들은 소설의 소재로서 매우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레오나르도의 종교적 성향도 눈길을 끈다. 그는 ‘최후의 만찬’을 그린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게도 예수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자신의 종교적 성향을 과감하게도 작품에 몰래 표현해 놓았다.


 


 





레오나르도가 여러 메세지들을 숨겨놓은 ‘최후의 만찬’.


그는 세례 요한의 자리를 빼앗은(?) 예수를 싫어했다. 


 


 


2000년대 등장했던 댄 브라운의 소설 [다 빈치 코드]는 이러한 레오나르도의 특징들을 잘 활용하여 만든 작품이다. 작가의 치밀한 연구와 작품의 개연성으로 인해 일부 고지식한 기독교도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진실인가에 대한 해설서가 책과 영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면서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영화로도 대박을 친 다빈치 코드


 


 


이처럼 레오나르도는 그가 남긴 뛰어난 회화작품들과 데생들로 인해서 흔히 예술가나, 더 넓게는 독특한 기계장치 그림들을 그린 공학자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자연과학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지질학과 화석연구에 있어서도 많은 관찰과 연구를 하였다.


 


레오나르도가 쓴 것 중 가장 주요한 노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레스터 사본Codex Leicester]은 그가 1506년에서 1510년 사이에 밀라노에서 작성한 72쪽짜리 공책으로 바위, 물, 화석에 대한 스케치와 해부학에 관한 글들로 채워져 있다. 1690년대에 세상에 알려졌으며 1717년에 레스터 경(卿)이 사면서 그의 이름을 따서 [레스터 사본]으로 이름이 불려지게 되었다.


 


1994년 경매에 등장했을 때 [레스터 사본]에 군침을 흘린 대여섯 개의 유럽 국가들이 가격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빌 게이츠가 3080만달러(418억원)의 거액을 제시하여 ‘대여섯 개의 유럽 국가들’을 제치고 그 원고를 사들이는 재벌의 위엄을 보였다. 빌 게이츠는 해마다 [레스터 사본]의 전시를 원하는 곳에 대여해 주지만 책의 훼손을 막기 위해 그가 제시하는 까다로운 전시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은 대여를 신청했다가 조명시설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기도 하였다.


 


 





국가와 경매를 붙어도 절대 밀리지 않는 빌 형님


 


 


[레스터 사본]에서는 댄 브라운의 소설만큼이나 흥미로운 레오나르도의 지구순환 이론을 엿볼 수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레스터 사본]에서 드러나는 레오나르도의 지구이론을 그의 에세이에서 자세히 소개하였다.


 


 





이거슨 세상에서 제일 비싼 공책!


 


 


* 2부에서 계속 됩니다. *


 


 


 


영진공 self_fish 

 


 


 


 


 


 


 


 


 


 


 


 


 


 


 


 


 


 


 


 


 


 


 


 

“익스트림 OPS”, 실감나기 위해서 연출이 필요한 이유

 



 


 



 


재미있고 멋질 것 같지?



 


우리는 가끔 ‘아, 내 경험은 드라마 그 자체야!’ 라고 말하곤 한다. 정말 자기 경험을 드라마로 옮기면 모두들 재미있어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모두들 그런 드라마 한 두개씩은 가지고 산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정말 대단한 드라마 같지만, 그게 실제로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나면 정말 재미없고 진부한 얘기로 변신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이 영화든 드라마든 게임이든지 간에 모든 매체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아이러니는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하면 오히려 현실감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극무대 라는 매체에서 배우들은 우리가 평소에 하듯 말하고 행동해서는 관객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연극무대에 적절한 연기법이 따로 있다. 그리고 이런 연극배우들이 TV나 영화라는 다른 매체로 옮겼을 때 적응에 애를 먹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는 영상 기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시청자들이 TV를 보면서 실감을 느끼는 화면색은 실제 색깔보다 더 선명하다.


 


 



얼굴도 마찬가지다. 그냥 보면 아주 예쁜 얼굴이 사진으로 보면 달덩이로 보이는 경우도 있고, TV 브라운관에서는 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실제로 보면 외계인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사진빨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물론 요즘은 그 사진빨도 찍히는 각도조절과 포토샵으로 조작해내는 시대지만 실제로 사진을 잘 받는 얼굴, 카메라를 잘 받는 얼굴이 따로 있다.

이건 표정 연기 같은 것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미소를 예로 들어보자. 내가 진짜 즐겁게 웃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으면 이게 웃는 건지 우느라 일그러진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영화나 TV 브라운관 속에서 보는 진짜 미소같은 미소는 그렇게 해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유명 연예인들이 미소짓는 장면을 잘 살펴보고 한번 따라해 보라. 그러면 그들의 웃음은 진짜 웃음이 아니라는 걸 알게된다. 얼굴에서 눈 아래부터 뺨 윗부분까지는 긴장을 풀고 입가와 눈가에만 힘을 줘야 포토제닉한 미소가 만들어지는데, 진짜 즐거울 때는 그렇게 웃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포토제닉한 미소 짓기는 포기했다. 그냥 웃고 말지 …


 



 


소위 말하는 포토제닉한 미소를 짓는 효리양


진정한 웃음, 파안대소를 짓는 효리양. 이런 사진 올려서 미안해요


진짜 웃음과 전형적 미소 사이의 미묘한 지점에서 소탈하지만 보기 좋은 웃음을 연출한 효리양


 



액션영화의 장면들도 마찬가지다.
스크린 속에서는 엄청 위험하고 박진감 나게 보이던 장면을 실제로 찍는 모습을 보면 스릴은커녕, 무슨 애들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다. 실제 촬영이 그렇게 박진감 넘치면 위험해서 누가 영화 찍겠나… 그러면 그 박진감은 어디서 올까?


 


아는 친구 하나가 소리를 죽인 상태에서 성룡 영화 비디오를 본 경험을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그 친구 왈, 소리를 들으면서 볼 때는 그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느껴지던 타격장면들이 소리를 없애고 나니까 그냥 대강 팔을 휘젓고 저 혼자 나가떨어지는 장면으로 보이더란 거다.


 


모든 성룡 영화가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내게도 한때 성룡은 우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게 사실이다. 음향 효과, 조명, 앵글, 편집 등이 촬영장에서는 아주 밋밋하던 움직임을 박진감 넘치는 장면으로 변신시킨다.

반대로 실제로는 정말 박진감 넘치고 위험한 활동인데도 정작 스크린에 옮기고 나면 이게 영 밋밋해지기도 한다. “익스트림 OPS”(2002)가 바로 그런 영화다. 이 영화의 홍보용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178명의 스턴트맨들과 함께 만들어 낸 익스트림 드림팀!
“이 영화는 위험을 무릅쓰는 걸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진정한 즐거움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크리스찬 드과이” 감독이 말하는 영화의 의도는 명확하다. 하지만 그것을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해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장면을 실제로 찍어야 했다. 고공 케이블카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들뿐만 아니라 카약을 타고 폭포로 떨어지거나 수직에 가까운 산에서 스노우보드 묘기를 펼치는 등의 장면들도 블루스크린이나 별도의 합성작업을 고려하지 않았다. 제작진은 이 모든 장면들의 실제 촬영을 위해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미국, 영국,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홍콩 등 전세계에서 총 178명의 스턴트맨을 고용했고, 『스타워즈 에피소드2』의 스턴드 코디네이터를 맡았던 탐 델마가 이들의 지휘를 맡았다. 거기에 몸을 아끼지 않는 배우들부터, 자신의 몸을 직접 내던지는 열성적인 감독까지 가세한 제작진은 말 그대로 최상의 익스트림 드림팀으로 꾸려진 것이다. (씨네 서울 기사에서)

 




이 기사에서도 말해주듯 이 영화는 거의 스턴트맨들에 의한, 스턴트맨들을 위한 영화다.
그래서 온갖 스턴트 장면들로 넘쳐난다. 스카이다이빙에서 래프팅으로 이어지는 처음 장면부터, 헬기에서 뛰어내리고 케이블카에서 뛰어내리고, 눈사태 앞에서 스노보드와 스키를 타고 … 자기 장기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하는 스턴트맨들로 꽉꽉 채워진 함량 110% 액션 영화다. 보다 보면 감독이 한 일 보다는 스턴트 코디네이터가 한 일이 더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재미는 없다.



 


액션만 있는건 아니다


나름대로 미녀도 있고


나름대로 악당도 나온다



 


 



이 영화의 기획단계에서 이들은 이렇게 말했을 거다.


 


“영화의 짜릿한 장면들은 다 우리가 만들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아예 그런 짜릿한 장면들만으로 구성된 영화를 만들면 진짜 끝내줄 것 같지 않냐?”

 


 


이거 진짜로 해봐라, 짜릿함이 한 이틀간은 갈거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는 거라면



 


근데 어쩌랴… 그게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광고 카피와는 달리, 이 영화는 “버티칼 리미트”보다 짜릿하지도 못하고, “트리플 엑스” 보다 강력하지도 못했다. 개별 요소들은 그런거 같지만 정작 그것들을 모아놓은 전체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에 어울리는 연기와 연극에 어울리는 연기, TV 브라운관에 어울리는 연기는 따로 있다. 매체의 특성에 따라서 같은 움직임이나 표정도 전혀 다른 이미지로 전달된다. 연극 무대에서 배우는 얼굴 뿐만 아니라 몸 전체의 움직임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자기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반면, 클로즈업이 많은 TV 브라운관에서는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 어울린다. 그래서 연극무대에서 하던 방식으로 TV에서 연기하다간 오버액션이 되기 딱 좋다.


 


영화는 두가지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어떤 때는 연극처럼, 어떤 때는 TV처럼 …

중요한 것은 실제 어떤 장면이 아무리 위험하고 빠르고 격렬하더라도 어떤 매체를 통해서 어떻게 연출되느냐에 따라서 전혀 그 이미지로 전달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래서 영화나 TV에서 리얼하게 맞고 때린다는 느낌을 관객들에게 주기 위해서 진짜로 맞고 때려야 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연출을 해야 하는 거다.


 


 




 



진짜라고 해도 그게 반드시 진짜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진짜스러우려면 연출이 필요하다.

영화 “익스트림 OPS”는 바로 이런 교훈을 떠올리게 해준다.


영진공 짱가


 


 


 


 


 


 


 


 


 


 


 


 


 


 


 


 


 


 


 


 


 


 


 


 


 


 


 


 


 


 


 


 

“윔블던”, 조금은 비겁한 루저 달래기


 


학교 3학년은, 그렇다.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젊음은 냉혹하고 대가리는 아직 여물기 전이다. 고등학생들이야 눈치껏 담배도 피고 옆학교 누구랑 응응응 했더라는 무용담이 한껏 부풀려져 돌아다니기도 하고 형 학생증으로 술집도 가는 호방함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중학생에게 그런 일탈이야 그리 쉽겠느냐 말이다.


 


더군다나 중학교는 승자와 패자의 경험을 처음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집안 사정 때문에, 성적 때문에, 혹은 어린 나이의 조숙함 때문에 진학의 고민을 최초로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뿔싸, 1등과 60등의 결과가 바로 여기서부터 갈리는구나. 성적이 인생을 가름하는 첫 번째의 도전인 이 시기에 말 그대로의 등수는 얼마나 사람을 민감하게 만들었던가?


 


모의고사 200점 만점에서 150점 커트라인의 전후를 왔다갔다했던 수많은 중간자들의 후달림은 또 얼마나 절절했던가 말이다.

우리반 왕따(당시엔 그런 말이 없었다만) 기석(물론 가명)이는 반등수 7등을 차지했다고 성적표를 받은 그날 자리에 엎드려 성적표를 찢으며 울었다. 기석이 뒤에 주루룩 줄을 서야 하는 53명의 우리들이 갖는 울분은 졸업식의 그날까지 기석이를 놀림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난 어느날 뜬금없는 측은지심에 “넌 친구도 없는데 도대체 학교 끝나면 뭐하고 노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족회의 하고 놀아”를 들음으로서 기석이의 왕따를 공고히 한 죄의식을 아직도 갖고 있다.



 




 


 


 


“윔블던”은 반에서 7등한 기석이의 눈물겨운 좌절극복기에 다름 아니다. 반에서 7등을 한 루저의 아픔이야 영화의 현혹에 감전된 알량한 감수성 건들이기에 좋다. 얼마나 달콤하더냔 말이다. 샤라포바 보다도 이쁜 테니스계의 요정 브래드버리를 꼬시는데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치고받는 설정도 없다.


 


오이냉국에 밑간 안한 그 니맛도 내맛도 아닌거 그렇다고 하자. 엥간한 있는 집에 살면서 작업용으로 훌륭한 컨버터블에 안정된 직장까지 보장된 그런 피터 콜트의 외면은 솔직히 그럴듯함이 없다. 그건 “익스트림 OPS”가 재미없는 이유와도 같다. 영화에서 그럴듯함은 실제와는 엄연히 다른 문제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오이냉국에 물말아 놓은 결과가 되어버렸으며 우리의 예지력이 초능력 수준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한껏 고양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야 말았다. 우리나라의 미인상과는 조금 이질적인 “커스틴 던스트”를 졸라 좋아하거나 “폴 베타니”의 매력에 빠져있는 여자들이라면 그럭저럭 좋아 하겠다만 워킹 타이틀의 전작에 광분했던 (“어바웃 어 보이”, “러브 액츄얼리”, “브리짓 존스의 일기”, “파고”, 오오~ 그리고 그리도 감동적이었던 엔딩을 만들어낸 “Shaun of the dead”여!!) 사람들이라면 이 알량한 로맨틱 코미디의 두께에 피식 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감수성에 워킹타이틀만한 레이블이 어디 있겠냐마는 루저를 가장한 거의 성공한 위너를 그린 이번 작품은 좀 비겁했다는 생각이 든다. 비겁한 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난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니까, 그저 비겁했다고 말했을 뿐이지. 그나저나 기석이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설마 나보다 이쁜 여자를?


 


 


영진공 그럴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