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파리의 패륜적 인생플랜 (2/2)

 

 


 


 


* 1편에서 이어집니다 *


 


 


 



 


 





자연이란 예측하기가 어려운 녀석이다. 기상청 운동회 날에도 비가 쏟아지는 판국에 하물며 컴퓨터는 커녕 계산기 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생물들이 자연을 예측하고 대비하기란 불가능 하다.


 


결국 가뭄이나 폭우와 같은 극단적이고 불규칙한 환경 속에서 생물들은 운명을 걸어야 한다. 특히 작고 약한 생물일수록 이런 환경의 변화는 더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이들에겐 자연에서 적응할 만한 안정적인 패턴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자신을 환경에 맞게 정밀하게 조율하기가 매우 힘들다. 이럴 때는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접고 속편하게 무작정 번식만 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는 것처럼 언젠가 상황은 끝날 것이고 그때 자손이 살아남아 새로운 식량을 찾을 수 있으려면 지금 먹을 것이 있을 때 미친 듯이 번식에 매달려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번식을 극대화하려는 진화적 압력을 r선택이라 부르며 이런 방식으로 적응한 생물을 r전략가라 칭한다.

 


반면에 비교적 안정된 환경 속에서 환경이 허용하는 최대의 개체군을 이루며 존재하는 생물 종이라면, 적응 능력 자체가 별 볼일 없는 자손을 많이 낳아 봤자 특별한 이익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정밀 조율된 소수의 자손을 낳아서 기르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 그런 생물을 K전략가라고 부른다.




혹파리는 r전략에 따라 생존플랜을 짰던 것이다. 그럼 혹파리와 비슷한 환경에 사는 다른 녀석들도 이와 비슷한 번식 방법을 쓰고 있을까? 맞다. 바로 진딧물이다. 기억할 지 모르겠지만 예전 포스팅에서 진딧물의 독특한 번식 방법을 소개한 적이 있다.

 


 


 




 


 


 

당시 소개했던 내용을 짧게 요약하자면, 진딧물은 새로운 잎에 정착하면 모두 암컷인 새끼만을 낳으며 무성생식을 시작한다. 이 새끼들은 날개가 없는 미성숙 개체로 자라면서 태어남과 동시에 몸속에서 또다른 새끼들을 기른다. 즉 인간의 관점으로 보자면 아기 몸 속에 다음에 태어날 아기가 이미 들어있는 것이다.

 


진딧물은 이런 방식으로 암컷 한 마리로 1년 뒤 5240억 마리로 불어날 수 있다. 깨끗하던 농작물이 며칠 새에 진딧물로 코팅(?)되는 것이 다 이런 번식전략 때문이었다. 그러나 먹이가 감소하면 암컷과 수컷인 새끼를 낳으며 날개 달린 진딧물이 태어난다. 이들은 정상적으로 천천히 성장 발달하여 유성생식을 한다. 그들은 다른 새 잎을 찾으러 날아가고 거기서 낳은 자손들은 또다시 날개없는 형태로 되돌아가 무성생식을 시작하며 미친 듯이 번식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빠른 번식을 위해서라면 알을 많이 낳으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까하고 말이다. 스스로의 몸을 아이를 위한 식량으로 바치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이에 관해서는 진작부터 부지런한 생태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알을 많이 낳는 것보다 번식을 일찍 시작하는 것이 개체군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번식 개시 연령을 10퍼센트 앞당기면 출산력은 100퍼센트 증가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는 전형적인 K전략가이다. 우리는 대부분 한 번에 한 명을 낳아 금이야 옥이야 키운다. 이런 K전략가의 관점에서 일부 r전략가들의 번식방법은 종종 혐오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우리의 관점일 뿐이다. 이는 혹파리 뿐만 아니라 최근 영화의 주연으로 활약하고 있는 ‘연가시’도 마찬가지다.


 


K전략이든, r전략이든 간에 생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번식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취하는 것 뿐이다. 여기에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은 필요치 않다. 사실 입장을 바꿔 다른 생물들이 판단할 때 인간의 번식 방법도 썩 유쾌하게 보이진 않을 것이다. 태어나서 인생의 절반이 지나도록 부모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종이니 말이다.


 


어미를 파먹으며 태어나는 혹파리와 평생을 부모에 기대어 사는 인간 중 누가 더 못난 번식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덧붙여 …



 

예전 진딧물이 왜 저런 번식 방법을 택하게 되었는지 매우 궁금했었다. 물론 열악한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번식방법일 거라 두루뭉실하게 이해하고 넘어가긴 했지만 찝찝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스티븐 제이 굴드의 에세이를 읽던 중 진딧물이 그러한 번식 방법을 채택한 이유를 명확하게 정리해준 글을 찾게 되었다.

 

이 글은 사이언스 북스에서 출간한 [다윈 이후]에 실려있는 ‘파리의 모체살해’라는 에세이에서 발췌, 편집한 글이다.

 


 


영진공 self_fish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조개화석 (2/2)

 



 


 


 


 


* 1부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레스터 사본]은 주로 물의 성질, 모양, 그 쓰임에 대한 보고서이다. 그리고 화석의 성질과 일부 해양생물로 보이는 화석들이 높은 산의 지층에 위치하고 있는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는 물과 화석의 무엇이 그렇게 궁금했던 것일까?


 




16세기 화석에 대한 생각은 오래된 생물의 사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암석 안에서 어떤 힘(형성력plastic forces)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지거나 작은 입자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이런 특별한 모양의 돌맹이들이 별에서 왔으며, 자연의 여러 영역들인 동물, 식물, 광물 사이의 상징적 조화를 보여줄 목적으로 살아 있는 유기체를 정확히 모사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높은 산에서 발견되는 해양 생물 모양의 화석들은 모두 높은 곳으로 이어지는 물줄기를 따라 운반되었거나 또는 노아의 홍수 같은 거센 물살을 따라 산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돌맹이일 뿐인 화석이 산꼭대기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굳이 연구할 가치가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이런 생각이 맘에 들지 않았다. 화석이 광물이며 암석 안에서 자라난 것이라면 모든 지층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옛날에 바다였을 법한 여러 증거가 있는 곳에서만 화석이라는 돌맹이가 자라는 걸까? 그리고 화석이 돌맹이라면 왜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조개 껍질더미나 부스러기들 속에서 또는 호수나 연못의 침전된 층에서만 그렇게 자주 자라는걸까? 또한 조개껍질의 성장무늬가 드러나 있는 화석은 암석 안에서 자랐다는 것인데 어떻게 암석을 파손하지 않고서 그 안에서 자랄 수 있는 것일까?


 




레오나르도는 이처럼 당시의 화석에 관한 아리까리한 생각들을 논파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지구 이론을 지지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화석을 관찰하고 연구하였다. 그럼 레오나르도가 화석을 통해 증명하고자 했던 그 지구이론은 어떤 것이었을까? 레오나르도는 지구 순환의 메커니즘을 인체에 비유하여 설명하고자 하였다. [레스터 사본]과 그 밖의 다른 문서들에서 이러한 그의 집념을 볼 수 있다.


 



16세기 유럽은 아랍에서 찾아낸 천 년도 넘게 묵어있던 그리스의 고전들을 붙잡고 해석하고 연구하던 것이 학문의 전부이던 시기였다. 레오나르도 또한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을 토대로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지구론을 믿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지구는 흙, 물, 공기, 불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흙, 그 위에는 물, 맨 꼭대기에는 공기, 그 주변에는 불로 각각 분리된 4가지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흙과 물은 무거운 원소이기 때문에 아래쪽으로 운동하려는 경향으로 인해 지구 가운데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원래 각 원소들의 성향에 따라 요렇게 생겼지만,
태양의 열이 원소들을 휘저어서 지금처럼 원소들이 뒤죽박죽 된 것이라고 하였다.





 


 


레오나르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인체도 이와 상응하는 4가지 요소(4체액설)들로 순환하며 유지되고 있음을 알았고 그렇다면 인체와 지구가 같은 순환 메커니즘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그런데 이 멋진 생각을 남들 앞에서 주장하려면 이러한 메커니즘이 실제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를 눈앞에 들이댈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의 이 멋진 생각을 말이 되게 설명하기란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주변을 보면 4원소들 중 가장 무거운 흙이 보다 가벼운 물 위로 솟아올라와 산이 되어 있다. 그리고 산 정상에서는 샘물이 솟아 나온다. 이것은 곧 흙과 물이 아래쪽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경향에 반하는 위쪽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치 혈액(물)이 다리에서 머리끝으로 순환하며 몸을 유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메커니즘을 찾기 위한 레오나르도의 절박한 노력이 [레스터 사본] 전체를 통해 중심 주제로 등장한다.


 



우리 체내에 있는 혈액이 생명체를 유지하기 위해 작동하는 것처럼 지구 내부에서도 인체의 혈관에 해당하는 땅속 지류를 따라 물이 아래뿐만 아니라 위족으로도 움직인다. 높은 산 정상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은 바로 그와 같은 순환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 내부에 있는 어떤 힘이 아래로 흘러가려는 자연스런 경향을 막아 물이 육지를 통하여 위로 올라가도록 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 둘의 작용이 합쳐져 물이 순환한다고 보았다. 레오나르도는 이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발견한다면 인체와 지구 사이의 비유는 상당히 그럴듯한 이론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체 저 물은 어떻게 산 정상까지 올라간 걸까? 

 


 



처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씀에 힌트를 얻어 뜨거운 공기가 상승하는 것처럼 태양열에 의해 뜨거워진 물이 땅속 지류를 따라 위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주장에 오류가 있음을 알았다. 태양과 가까운 산 정상에 있는 물이 오히려 얼음처럼 차가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주장대로라면 가장 뜨거운 한여름에는 산위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의 양이 가장 많아야 하지만 실상은 오히려 가장 양이 적었다.


 
그래서 지구 내부에 있는 열로 눈을 돌렸다. 지구 내부의 열로 인해 땅속 동굴에 있던 물이 끓어 증기의 형태로 변해 산 내부를 뚫고 위로 올라와서 산 정상에서 액화하여 샘물이 되어 분출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주장 또한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엄청난 규모의 증기가 발생한다면 동굴의 천정은 젖어 있어야 하지만 동굴 천정은 종종 바짝 마른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산을 스펀지에 비유했다. 산의 내부가 포화상태에 이르도록 물을 흡수한 뒤 꼭대기부터 찔끔찔끔 물이 흘러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를 기술적인 용어로 차곡차곡 설명할 수 없었다. 게다가 누군가가 짜내야만 물이 지표에서 빠져나와 흘러 나올텐데 산 정상에서는 아무도 산을 쥐어짜지 않는다.


 



결국 레오나르도는 물이 위로 움직이며 순환하는 메커니즘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레오나르도가 물이 증발될 때 위로 올라가고 이후 비의 형태로 변하여 산꼭대기로 떨어진다는 사실은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지구의 물이 인간의 몸에 있는 혈액처럼 땅속 지류를 따라 아래뿐만 아니라 위로도 물이 움직이는 원리가 필요했다. 혈액은 증발하지도 않으며, 우리 머리에서 비처럼 쏟아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는 비록 위로 솟아오르는 물에 관한 메커니즘을 찾을 수 없었지만 흙이 위로 솟아오르는 것에 관한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그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액체인 물은 지구의 중심으로부터 완벽한 공모양을 형성할 것이며 따라서 대양의 표면은 어느 곳에서나 지구의 중심으로부터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을 것이다. 흙 역시 균일하게 분포해 있다면 지구 중심으로부터 같은 거리를 유지하는 부드러운 공모양일 것이다. 그러나 지구의 내부는 균일하지 않다. 지구는 딱딱한 흙, 부드러운 흙, 암석, 동굴, 지류를 따라 흐르는 물 등 아주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흙이 균일하지 않게 분포하기 때문에 지구를 반으로 나누면 한쪽 반구는 다른 쪽 반구보다 무거울 것이다.그래서 지구는 기하학의 중심과는 질량의 중심이 다르다. 한쪽이 다른 쪽보다 무겁기 때문에 질량의 중심이 무거운 쪽의 반구로 치우쳐 기하 중심보다 아래에 위치하게 된다. 지구는 살아 있는 몸과 같기 때문에 균형을 찾기 위해 중력의 중심을 기하학의 중심 쪽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 틀림없다.



 





레스터 사본에 그려져 있는 시소타는 사람의 그림.
시소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선 무거운 사람이 받침대 가운데 쪽으로 움직여야 하고,
가벼운 사람은 더 뒤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지구는 시소를 타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균형을 잡기 위해 지구의 무거운 반구 쪽에 있는 딱딱한 덩어리들은 세계의 중심을 향해 침전해 내려가고, 반면 가벼운 반구 쪽의 암석들은 위로 올라와야 한다. 이렇게 해서 바다로부터 산이 융기되어 올라오게 된다. 따라서 해양 화석이 높은 언덕에 위치하는 것은 지구의 가벼운 쪽 반구가 융기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선 땅이 실제로 융기했다는 관찰 증거가 필요했다. 이것을 확증할 수 있는 최적의 증거들이 이미 고대 그리스 과학 이래 잘 알려져 있었으며 엄청난 논쟁을 촉발했던 높은 산의 지층에서 발견되는 해양생물의 화석이었던 것이다.


 



[레스터 사본]에서 보이는 고생물학적 관찰들은 이러한 이유에서 레오나르도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흔히 생각하듯 화석이 물 속에서 살던 것이기 때문에 물에 대해 다각적인 설명을 시도하고 있던 레오나르도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 아니었다. 물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실패한 것과 달리 화석들은 흙의 운동을 증명해줄 수 있으며, 지구가 인체와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자활 가능한 살아있는 유기체임을 주장하는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화석을 연구한 것이다.


 


그는 상세한 관찰력으로 이론의 증거를 수집했고 이 과정에서 고생태학에서 이루어지는 기본 규칙의 근간을 제공하였다. <끝>


* 참고 및 발췌:


   스티븐 제이 굴드,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 세종서적


영진공 self_fish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조개화석 (1/2)


 


 


 


 










 


 


레오나르도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과 같은 세기의 걸작을 비롯하여 예술, 수학, 물리학, 해부학, 건축학, 공학, 광학, 천문학, 지질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넘나들던 호기심 대마왕이자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천재였다.


 


레오나르도가 사후에 남긴 것은 비교적 적은 15점의 회화 작품과 방대한 양의 소묘와 메모다. 그러나 당시 그의 육필 문서들은 매우 가까운 지인 외에는 동시대인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며, 16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그의 유산을 상속한 프란체스코 멜치Francesco Melci가 회화에 관련된 문서를 선별해서 엮은 [회화론]을 내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1570년 멜치가 죽은 직후부터 다 빈치의 노트와 메모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서유럽 각지의 왕족, 귀족의 서고에 고이 쳐박히게 되었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꼬추 아이콘이 된 레오나르도의 스케치


 


 


레오나르도의 문서들은 20세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문서들에 담긴 내용이 호기심 닿는 대로 손댄 개별적 관찰이나 순간 떠오른 생각을 급히 휘갈겨 써 둔 메모에 불과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가 역학과 수학 분야에서 남긴 메모들 전부가 그의 독창적 사색의 결과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현재 판명되었다. 예술적인 부분과 건축의 일부분을 제외하면 레오나르도의 기술연구에서는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학자들의 야박한 평가다. 그럼에도 탁월한 관찰력과 미대생도 부러워할 데생력 그리고 권위나 거창한 말 보다는 직접 손발로 실험해보는 솔선수범 장인 기질은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레오나르도가 남긴 문서들은 해석하기가 쉽지 않았다. 순간의 단편적인 아이디어들을 적어놓은 데다가 속어인 토스카나어를 좌우 반전시킨 독특한 문자를 사용해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쓰여 있으며 거울로 글자를 반사시켜야 읽을 수 있는 장치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신만 아는 기호들을 사용하였기에 동시대의 이탈리아인이라 해도 간단히 읽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즉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노트가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레오나르도는 관찰과 생각들을 수많은 메모로 남겼지만 그것들을 잘 정리해서 논문이나 책으로 완성시킨 적은 없다. 원래 레오나르도는 개개의 관찰력에선 무척 뛰어났지만, 이를 일반화하고 체계화하려는 노력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레오나르도의 연구가 자신을 위해서만 이뤄졌을 뿐, 널리 동시대인을 계몽시키려는 목적은 없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는 유명하긴 했지만 그가 행했던 과학과 기술의 연구가 동시대에 미친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암호 같은 문서들은 후세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특이한 기계 장치들과 멋들어진 스케치, 암호와도 같은 글들은 소설의 소재로서 매우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레오나르도의 종교적 성향도 눈길을 끈다. 그는 ‘최후의 만찬’을 그린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게도 예수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자신의 종교적 성향을 과감하게도 작품에 몰래 표현해 놓았다.


 


 





레오나르도가 여러 메세지들을 숨겨놓은 ‘최후의 만찬’.


그는 세례 요한의 자리를 빼앗은(?) 예수를 싫어했다. 


 


 


2000년대 등장했던 댄 브라운의 소설 [다 빈치 코드]는 이러한 레오나르도의 특징들을 잘 활용하여 만든 작품이다. 작가의 치밀한 연구와 작품의 개연성으로 인해 일부 고지식한 기독교도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진실인가에 대한 해설서가 책과 영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면서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영화로도 대박을 친 다빈치 코드


 


 


이처럼 레오나르도는 그가 남긴 뛰어난 회화작품들과 데생들로 인해서 흔히 예술가나, 더 넓게는 독특한 기계장치 그림들을 그린 공학자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자연과학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지질학과 화석연구에 있어서도 많은 관찰과 연구를 하였다.


 


레오나르도가 쓴 것 중 가장 주요한 노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레스터 사본Codex Leicester]은 그가 1506년에서 1510년 사이에 밀라노에서 작성한 72쪽짜리 공책으로 바위, 물, 화석에 대한 스케치와 해부학에 관한 글들로 채워져 있다. 1690년대에 세상에 알려졌으며 1717년에 레스터 경(卿)이 사면서 그의 이름을 따서 [레스터 사본]으로 이름이 불려지게 되었다.


 


1994년 경매에 등장했을 때 [레스터 사본]에 군침을 흘린 대여섯 개의 유럽 국가들이 가격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빌 게이츠가 3080만달러(418억원)의 거액을 제시하여 ‘대여섯 개의 유럽 국가들’을 제치고 그 원고를 사들이는 재벌의 위엄을 보였다. 빌 게이츠는 해마다 [레스터 사본]의 전시를 원하는 곳에 대여해 주지만 책의 훼손을 막기 위해 그가 제시하는 까다로운 전시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은 대여를 신청했다가 조명시설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기도 하였다.


 


 





국가와 경매를 붙어도 절대 밀리지 않는 빌 형님


 


 


[레스터 사본]에서는 댄 브라운의 소설만큼이나 흥미로운 레오나르도의 지구순환 이론을 엿볼 수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레스터 사본]에서 드러나는 레오나르도의 지구이론을 그의 에세이에서 자세히 소개하였다.


 


 





이거슨 세상에서 제일 비싼 공책!


 


 


* 2부에서 계속 됩니다. *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