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세기가 바뀌고 예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이미지 처리 컴퓨팅 환경을 바탕으로 3D CG 기술이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CG 애니메이션은 더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픽사와 드림웍스가 CG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양강 구도를 갖추고, 이들에 의해 개발된 기술을 분양받은 유럽계 군소 스튜디오들이 우후죽순처럼 자기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한 와중에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마치 아날로그 시대의 영광에 사로잡혀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대비하지 못해 사라져버린 많은 기업들처럼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라푼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잃어버진 지난 10년을 단 한 방에 회복하는 역전 홈런 같은 작품이라 하겠다.
<라푼젤>은 <월-E>(2008)가 갖고 있던 1억 8천만불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대, 실사 영화를 포함해서 4번째로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이 됐다 – 애니메이션 한 편 만드는 데에 그 정도로 많은 돈을 들였다는 사실 자체가 화제와 논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애니메이션의 명가를 재건하고야 말겠다는 사명감과 자신들의 50번째 작품조차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서는 안된다는 디즈니 의사결정권자들의 위기의식 기타 등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2억 6천만불짜리 애니메이션이라는 건 – 물론 작품의 외연에 불과한 대목이긴 하지만 –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영 찜찜한 대목이다.
전체적으로 비중이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라푼젤>의 왕과 왕비는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하는 모습을 한번도 보이지 않고 오직 부모로서의 모습만이 – 두 사람은 극 중에서 대사조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데 이는 감정을 더욱 증폭시키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 두 사람이 잃어버린 아이를 위해 매년 등불을 하늘 위로 올리는 행사를 갖고, 자신들의 왕과 왕비를 따라 시민들이 함께 수 천 개의 등불을 함께 올리는 장면이 연출되면서 스크린은 온통 애틋한 감정의 폭포수가 되어 객석으로 넘쳐 흐른다.
18년간 길러온 라푼젤의 금발머리가 단번에 잘려 짙은 갈색으로 뒤바뀌는 극적인 순간은 특별한 시각 효과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장면에 불과했지만 앞서 보여진 그 어떤 장면들 보다 훨씬 더 스펙타클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라푼젤>은 감정이 담긴 시각적 스펙타클과 내러티브에 의한 극적인 스펙타클을 모두 훌륭하게 연출해낸 작품이라 할만 하다. 이 작품의 유일한 단점은 100분의 러닝타임이 너무 짧게 느껴져서 아쉽다는 사실 하나 뿐이다.
앞으로 만들어질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분명 <라푼젤>을 통해 드디어 얻어낸 기술적, 예술적 노하우를 활용하게 될테니 관객으로서는 큰 기대를 가져볼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라푼젤>은 디즈니의 50번째 애니메이션일 뿐만 아니라 그 이전과 이후의 작품들로 구분하게 될 확고한 전환점으로 남게 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