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 달러 베이비”, 꿈이 없는 사람은 꿈을 가진 사람을 알아 본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은 이런 말을 한다. “이제 나는 무슨 낙으로 살죠?”
그래, 인생에 낙이 없으면 뭐하고 살지? 각자의 대답이야 다르겠지만 극 중에서 이우진은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예전의 “이산가족 상봉”이나 “꼭 한번 만나고 싶다”를 보다 보면 거기 나오는 어르신들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그런 건가? 더 사시면서 행복을 누리고 싶다고 하는 건 너무 욕심인 건가.

“매기(Maggie Fitzgerald)”는 서른 두 살이 되었다. 집안이 넉넉하지도 않고 그다지 뛰어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살아온 그녀이지만 그래도 그녀에겐 꿈이 있다.

그래서 그녀는 손님이 남긴 고기를 몰래 집으로 싸가지고 가 허기를 때우면서라도 자기의 꿈을 위해 돈을 모았고, 아무리 무시를 당해도 자기의 꿈을 이루어주리라 믿는 이를 계속 찾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버스 안에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참으로 해맑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에디(Eddie “Scrap-Iron” Dupris)”는 퇴물복서다. 한때는 잘 나갔지만 이제는 복서시절의 상처로 한쪽 눈이 먼 채 체육관 청소를 하면서 산다. 잘 곳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어서 체육관 한 켠에서 생활하면서 그렇게 산다. 그에겐 꿈이 없다, 아니 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에겐 낙이 있고 여한도 있다.

그의 낙은 꿈이 있는 이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고, 그들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겐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마지막 경기를 해보고 싶다는,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한이 있다. 그래서 그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에디”는 “매기”를 알아본다. 자기에겐 없는 꿈을 가지고 있기에 그는 그녀의 존재감을 금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자 애쓴다. 그게 그의 낙이니까.

“매기”는 그저 앞을 향해 뛰어갈 뿐이다. 꿈을 좇아 뛰는 그녀에겐 그 꿈을 이루고 나면 다시 무엇을 좇아야 하는지, 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떡해야 하는지 등의 고민은 없다. 꿈을 이루려면 뛰어야 하고 그렇게 뛰는 게 즐거울 따름이니까.

그렇게 “매기”는 꿈을 이룬다. 딱히 그녀가 원했던 모든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자기의 삶에 그만큼이라도 찾아와주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그 꿈은 대가를 요구했고 그녀는 그걸 치러야 했다.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아니 남으로 하여금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면서 그녀의 꿈보다 더 크고 탐스런 걸 얻는 이도 많지만 “매기”는 그런 건 크게 억울해 하지 않는다. 어차피 나의 꿈은 내 것이고 나는 그걸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거니까.

“에디”는 “매기”가 꿈을 이뤘다는 걸 안다. 대가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꿈을 못 이룬 그이기에 그녀가 이룬 꿈을 알아본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꿈을 이룬 대가로 더 이상은 꿈을 갖지 못하게 되었기에 “에디”는 그런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할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낙도 없고 여한도 없는 그녀가 어떻게 살아갈지 그는 알아채는 것이다.

지금 당장 누군가가 “당신은 무슨 낙으로 사는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런 답을 적지 못할 것이다. 언제쯤 그 답을 적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오던 나의 등 뒤에서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재미 없다. 너무 실망이야 …”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 그 분이 부럽기도 하였다. 그 분은 아마도 아직 삶 속에서 쓰라린 아픔이나 꿈의 절실함을 경험해 보지 않았으리라 제멋대로 생각하고 그래서 이 영화가 그닥 감동적이지도 재미있지도 않게 느껴졌으리라 내멋대로 해석해서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부러워하면서 걸어 나오던 내 머리 속에는 내내 “매기”가 버스 안에서 짓던 미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꿈을 바라보며 아무런 꾸밈없이 해맑게 웃는 그 미소가.

영진공 이규훈

세상은 부조리


1.
지금도 마찬가지다.

스무 살, 순수이성비판을 처음 읽었을 때 번역이 개판인 문제도 있었지만 정말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두달 반 걸려서 두 번 완독했는데도 이건 내가 책을 읽는건지 활자를 훑는 건지 분간이 안갔지. 근데 미팅 나가서는 “순수이성비판은 2판본은 개악이라고 말했던 헤겔 말이 진리예요”라고 개 허세를 떨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창피하지.

도구의 인간이라고 육욕의 도구로 철학을, 그것도 칸트를 들이미는 내 수준은 생각하면 지금도 낮짝이 화끈거린다.

근데 이게 또 은근히 먹혔어요. 형이상학을 무기로 허리하학의 욕망을 관철시키는 나도 가관이었지만 그거에 또 홀딱 넘어가는 세상도 부조리하긴 마찬가지였던 거라. 돈으로 치자면 한 2천원짜리 수준의 논쟁이었지.

대신, 돌베게에서 나온 책들은 눈에 쏙쏙 들어와. 간결해. 명쾌해. 자본론은 의외로 머리에 콕콕 박히더라 이거지. 때는 92년. 87년 봄의 끝물같은 세상에 아직도 먹히는 아이템이었기에 나는 맑스도 읽고 레닌도 읽고 막 그랬을거야. 아니 그랬어. 도구의 인간.

내 정치적 지향점이 된 순간은 창피하지만 육욕의 도구로 시작된 철학적 욕망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권력의 종이 되어버린 칸트의 철학은 자본론 앞에 무참히 깨어져 버린 셈이지”라고 맺고 낮게 투쟁가 한소절 부르면 ‘동지적 결합’이라는 탈을 쓴 욕망의 달콤한 선물이 툭, 떨어졌다.

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2.
부조리.

안전벨트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선 더 잔인한 장면을 찾아야 하고, 불쌍하게 죽은 경찰을 위해선 그 가족의 비통한 오열을 잔인하게 담아야 하고, 한 노동자의 분신을 이야기 하기 위해선 굳이 필요없는 고용자 가족의 개인사도 헤집어야 한다. 희망을 주기 위해선 처한 환경보다 더 못한 누군가의 비루함을 꺼내야 하고, 꿈을 주기 위해서는 성공한 사람이 다시 되돌아 보기 싫은 지옥같은 경험을 토하도록 해야하고,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끔찍하게 죽어가는 암환자와 그 가족의 비통한 눈물에 뷰파인더를 집어 넣어야 한다.

3.
이번 정권을 보고 있자니, 스무 살 때 내 치기를 보는 것 같아. 다를게 하나 없는거야. 친서민을 외치면서 뉴욕에 쳐바를 돈 50억 빼느라 없는 자의 몫을 빼는 거. 그거 진짜 육욕에 미치지 않는 이상 할 수 없는 거거든. 그리고 그들이 내놓는 말들, 칸트 번역했던 그 개똥같은 책 만큼이나 뭔 말인지를 모르겠어. 와나. 이거 뭐 국격의 수준이 내 스무 살 욕망의 수준이랑 차이가 없으니 누구한테 이야기하기도 쪽팔린거야. 누구 말대로 복지는 혜택이 아니고 권리야. 이거 고등학생 정도 수준의 애들 교과서만 봐도 나오는 이야기 아니야?

그나마 사회 나가서 사람과 부대끼고, 힘든 사람들 눈물을 보고, 그들 눈물과 별 차이없는 내 통장의 잔고를 보고, 58원이 빈다고 새벽 2시에 가계부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내 아내를 보고, 커가는 자식 놈 키우면서 아둥바둥 사니까 난, 반성이라도 했다.

바르게 살자고. 바르게. 남 피해는 안주게.

어렵지. 그래 어려워.

그래도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사람들이 이정도 어려움은 좀 뼈져리게 느끼고 살면 안되는 거야? 나 같은 놈도 반성하는데 말이야. 씨**들아.

4.
부조리.
혁명을 위해서는 부패가 있어야 하고, 민중이 일어서려면 죽음이 있어야 하고, 세상을 바꾸려면 꼭 피를 봐야하는 거. 슬프다. 겁나는 건 그거다.

누군가 안한다면 그게 내가 해야 할 몫일 수도 있는 거.

그래서 우린 전태일에게 박종철에게, 이한열에게, 그리고 지금의 김진숙에게 빚을 지고 살아야 하는 거다.

제기랄.

누가 좀 멈춰줘요. 아니 내가 멈춰야 하는 데 그거 한 발이 무섭고 떨리고 겁난다. 내 한 발 떼서 나가야 하는 용기가, 내 마누라, 자식, 엄마, 여동생, 친구, 2층집 할머니, 아들놈 유치원 동창이랑 그 녀석 아빠가 막 생각나.

제발, 이번 정권에서 우리가 상처입고 반성만 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한다. 그게 부처님이건, 알라건, 예수건 암튼 제정신 박힌 신이라면 듣겠지 하고 말이다.

부조리. 세상은.

영진공 그럴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울 아가


아이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아직 두 돌도 안 된 아이를 붙잡고 억지로 그림을 가르치는 만행은 저지른 적이 결코 없으니 아마도 내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따라하는 것인가보다.

돌이 지나면서부터 내 펜을 쥐고 그리길래 아내는 커다란 전지와 색연필을 사주었다. 그 후로 틈만 나면 엎드려서 그림을 그리며 놀더니 18개월 된 지금은 단지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을 넘어서 동그라미 안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윤아의 그림.

아이가 그저 선을 찍찍 긋는 단계를 지나서, 의식을 갖고
손에 쥔 색연필을 어느 정도 컨트롤 하면서, 가장 처음 그리는 것이
세모도 네모도 아닌 동그라미라는 것이 참 흥미롭다.
다른 아이들도 그런지 궁금하다.


한 달 전부터는 자기가 좋아하는 곰과 뱀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연인줄 알았는데 그려보라고 할 때마다 매번 비슷하게 그리는 것을 보니 자기가 인식을 하고 그리는 것으로 보인다.
 





윤아는 다른 사물들 사이에서 곰과 뱀을 알아낸다.
특히 뱀은 눈에 잘 구분되는 형태 때문에
매우 정확하게 찾아낸다.
그림은 윤아가 곰과 뱀의 어떤 특징을 기억하여 다른 사물과
구분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2차원적으로 표현하는지 알아볼 수 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딸 앞에 펼쳐져 있는 무한한 가능성, 그 미지의 가능성을 향해 항해를 떠나는 선장의 두근거림이랄까.

재밌고 흥미로운 모험이 펼쳐질 것 같은 기분이다.

영진공 self_fish

어느 가족 이야기

1.

옛날 어느 마을에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이 가족은 대대로 데릴사위를 들여서 집안 살림을 맡기곤 했는데, 언제인가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한다.


 


그러니까 그 집안에서 이전에 들였던 이들과는 많이 다른 데릴사위가 들어온 것이다.  그는 학력이 그다지 좋지 않고 집안내력이 휘황찬란하지도 않은데다가 언행마저 세련되지 않은 사내였던 것이다.


 


이 친구,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뭔 놈의 자존심은 그리 센지 집안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면 그냥 , 하는 게 아니라 꼭 토를 달고 나서질 않나,


 


가족 중에 누가 집안일을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부끄러운 줄 알라고 버럭 소리지르며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 들지를 않나,


 


지가 뭐 그리 깨끗하다고 가족 중 누가 뒷돈을 챙기거나 동네 사람 중 누가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거나 하면 그냥 봐 넘기질 않고 냅다 따지고 들면서 법대로 하자고 눈을 부라리기도 하고,


 


여하튼 그런 사내였는데,


 


이 친구가 그래도 성실하기는 해서 아침에 눈뜨면 출근하고 저녁 때면 시간 맞춰 퇴근하고, 월급봉투 꼬박꼬박 챙겨오고, 친구들하고 어울려 밤 늦게 술자리나 도박 같은 건 잘 안하고 그렇게 가정을 돌보긴 했단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가 가끔 가욋돈 좀 달라고 하면, 사람은 생긴 대로, 있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실컷 훈계를 늘어놓았고,


 


자식들이 학원 좀 보내달라면, 그런데 쓸 돈 없으니 학교 공부나 충실히 하라고 면박주기 일수였고,


 


집안 어른들이 땅도 사고 팔고 집도 사고 팔고 해서 돈 좀 챙겨보자 하면, 그건 이웃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우리만 잘 살아보겠다는 못된 심보라며 면박을 주었고,


 


심지어는 멀쩡히 서울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집을 팔아서 지방으로 가자고, 거기 가서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게 살자며 복덕방에 집을 내놓기까지 하였다 한다.


 


그러니 가족들에게는 자꾸 불만이 쌓여갈 수 밖에.


 


 


2.


그래서 어느 날엔가는, 가족회의가 소집되어 집안 어른들과 아내와 자식들이 모여 그 친구에게 따졌다 한다.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사냐,


다른 집 가족들은 좋은 옷에 외식도 자주 하는데 우린 이게 뭐냐,


유명 학원에 최고 선생과 공부해도 명문대 가기 힘든데 만날 교과서만 보면 우리보고 뭐가 되라는 말이냐,


남들은 다 부동산에, 주식에 투자해서 좋은 차도 사고 비싼 술도 마시고 그런다는데 우린 아예 사는 재미가 없지 않느냐


가족 중에 힘든 사람을 우선적으로 살펴야지. 그런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사람들만 힘든 지금 집안 꼴이지 않느냐.”


어떻게 된 사람이 집 안에만 쳐박혀있냐, 숨 막혀서 못 살겠다, 우리도 꾀 좀 피우며 살자.


등등,


 


이런 불만을 소리를 묵묵히 듣고 앉았던 이 친구,


역시나 늘 하듯이 가족들에게 설교를 늘어놓았다 한다.


 


지금 우리 집안이 겉으로는 잘 사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병들어 있다.


좀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요행수 바라지말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야 미래의 풍요로움을 기대할 수 있다.


주변에서 나에 대해 말들이 많은 건 익히 알고 있지만, 그건 실정을 제대로 모르고 지들 맘대로 꾸며서 하는 말이다.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  불만이 있더라도 조금씩 참고 대화를 하면서 풀어보자.


 


하지만 가족들은 그런 그의 말들을 하도 듣던 터라 오히려 지겨워할 따름이었는데, 그때 마침 집안의 친척 어른 한 분이 갑자기 그 친구를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한다.


 


, 이 자식아!  네가 아무리 깨끗한 척 도도한 척 해도 나는 네 놈의 정체를 다 알고 있다.  네 친구하고 후배 녀석들이 우리 집안 소작농 몇 놈한테 좋은 땅을 맡기기로 하고 뒷돈 받아서 매일같이 룸싸롱에 들락거리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놈아!!


 


그러자 그때까지 딱히 뭐라 말을 않던 다른 가족들도 일제히 목청을 높여 그 친구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한다.


 


해명을 해 보시오!


당신도 같이 어울렸지!


근본이 그런 놈인데 어련하겠어.


뒤로 챙긴 돈 다 내놔라.


우리 집에서 나가 버려!


 


그런데 이 친구는 가족들의 그런 원성을 묵묵히 받아 넘기면서 달래기는커녕, 두 눈 동그랗게 뜨고 같이 맞받아쳐대기만 했단다.


 


막 가자는 겁니까!


정말 못해 먹겠네요.


전 제 친구와 후배들을 믿습니다.


사람들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러나 그의 그런 태도는 가족들을 더욱 자극하기만 할 따름이어서, 설전은 끝날 줄을 모르고 계속 되었다.


 


마침내 이 친구, 갑자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가족들 앞에서 던져 보여주었다 한다.


 


 


3.


그것들은 다름 아닌 여러 개의 적금과 펀드통장, 보험증권, 그리고 각종 단체에 내는 후원금 계좌이었다고 한다.


 


여러분.  이게 바로 여러분의 미래입니다.  저는 우리 가족이 번 돈을 가지고 이렇게 내일을 대비해 왔습니다.


여러분들 말도 맞습니다.  알아 봤더니 제 주변사람 중 일부가 돈을 착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투자한 것 중 일부는 깡통을 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번 게 더 많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돕기도 했고요.  여기 있는 이 돈을 지금 당장 여러분에게 나눠드리지 못하는 제 심정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가족들은 그 친구가 바닥에 펼쳐 보여준 통장들을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고 있다가는 하나씩 둘씩 자리를 뜨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가족들이 소리 없이 자리를 뜨는 모습을 보며 그 친구는 이제야 자신의 진심이 통했다고 생각하면서 방바닥에 놓여있는 통장들을 주섬주섬 주어서 다시 품 안으로 챙겨 넣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생각과는 달리, 가족들은 다른 이유로 그 자리를 피한 것이라고 한다.


 


이젠 지겹다, 지겨워.  자화자찬도 유분수지.


지가 그렇게 잘났어?  뭐야, 재수 없게시리.  그냥 잘못했다고 하면서 돈이라도 좀 나눠주면 얼마나 좋아.


저 친구, 사람이 저렇게 요령이 없어서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꼬.  우리 집 재산이 왜 저런 놈 손 안에서 거덜나야 하냐고.


그나마 깨끗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너무 실망이야.  우리 가족 중에 일은 죽도록 하고도 소외 당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좀 더 챙겨주길 바랐는데, 저런 놈을 믿은 내가 바보지.


그래, 네가 언제까지 그렇게 목청 높일 수 있는지 두고 보자.  미래를 대비한다고?  웃기고 있네.  세상은 무한경쟁이야.  지금 잘 살아야 앞으로도 잘 살 수 있는 거라고.


잘 난 놈은 잘 살아야 하는 거고 못난 놈은 그냥 그렇게 살도록 돼있는 거란 말이지.  그리고 내 손에 돈이 있어야 못난 놈한테 밥이라도 한끼 더 사 주고 그러는 거란 말이야.  지가 뭔데 내 돈으로 생색을 내고 지랄이야.


 


 


4.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로 집안에선 몇 차례 비슷한 언쟁이 반복되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그 친구는 가족을 챙겨나갔다 한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그 친구도 어느덧 늙고 쇠약해지자 가족들은 새로 데릴사위를 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가세를 살리겠습니다.  오빠만 믿어!


여러 명의 후보자 중 이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한 사내가 새로운 데릴사위로 결정되었다.


 


결정과정 내내 가족 일부와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친구에 대해 사기꾼이다 거짓말쟁이다라는 평판이 난무했고, 실제 그런 일들이 증거로 제시되기도 하였는데,


 


하지만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이 가족은, 가세를 살릴 적임자이고 검증된 사위감 이라는 이유로 그를 새 데릴사위로 들이겠다고 결정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결정에 대해 불만을 가진 막내아들이 하루는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어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따져 물었다 한다.


 


도대체 왜 저렇게 문제 많은 사기꾼 같은 사람을 들이시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가세를 살리겠다면서 기껏 잘 모아놓은 적금 깨고 펀드 해약하자고, 그 돈을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자고, 그러면 걔들이 일자리도 주고 월급도 주니까 가세가 좋아진다고 하는 걸 믿으시는 겁니까?


그리고 돈 잘 버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고, 공부 잘 할 놈만 가려서 가르치고, 아프고 힘들어도 가진 것만큼만 치료해주면 집안의 기초질서가 확립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자 할아버지의 대답은 이러했다 한다.


손자야.  네가 아직 어려서 그러는가 본데, 세상이 그렇게 순수하지가 않단다.  큰 일을 하고 돈을 많이 벌려면 때로는 모르는 사이에 불가피하게 남을 속일 수도 있단다.  네가 피해본 것도 아니면서 웬 호들갑이냐?


 


그리고 어머니의 대답은 이러했다 한다.


얘야, 저 사람이 정말 그러겠니.  예전에 큰 일을 많이 했다던데 요번에도 다 잘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좀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앞으로 잘 하면 되지 않겠니.  일단은 밀어줘 보자꾸나.


 


이런 대답에 답답함을 느낀 막내 아들이 뭐라고 대꾸를 하려 하자, 그 자리에 있던 형과 동생들이 만류하였다 한다.


 


, 야, 그만해, 그런 소리 이제 지겨워.  누가 우리 집에 들어오든 뭔 상관이야.  어차피 우린 그냥 우리 식대로 살면 되잖아.  한 대 때리면 맞아주고 뭐라 그러면 고개 숙여주면 되잖아.  그러고 나면 용돈 좀 더 주겠지, 뭐.  다 그러고 사는 건데 넌 왜 그래.


 


 


5.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과 동생들이 말은 그렇게들 하였지만, 사실 그들의 생각은 말과는 달랐다 한다.


 


거짓말이야 다 하는 건데 뭘.  아무튼 지난 번에 보니까 적금통장에 돈이 아주 많더구먼.  일단 그걸 깨게 하고 내가 좀 챙겨야지.  내가 이 집안의 어른인데 왜 대접을 안 해주는 거야.  내가 품위 있게 놀아야 우리 집안을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거거든, 암.  그러려면 내 수중에 돈이 있어야 한단 말이지.


 


그 사람이 사기꾼일 수도 있어.  하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야.  적금이랑 펀드랑 깨고 나면 나도 좀 달라 그래야지.  그걸로 작은 집을 하나 사는 거야.  옆집 순이네가 사 논 집이 세 배로 뛰었다고 그러던데.  나도 해 보는 거야.  잘 되면 평생 못 해본 사치도 한 번 해 봐야지.  이게 다 우리 가족 잘 되자고 하는 일인데 뭘.


 


뭔 놈의 보험을 그렇게 무식하게 많이 들었는지.  게다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왜 후원하는데.  직장 잡기도 힘들고 집 값은 자꾸 오르는데, 난 언제 벌어 차 사고 결혼하겠냐고.  보험이랑 후원금 좀 줄이면 그걸로 장사밑천이나 대달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그 가족은 새로 데릴사위를 들였다고 하는데, 이후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게 되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영진공 이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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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단상

벌써 2년도 넘게 전인가? 동네에 약간 비싸지만 고품질의 빵을 직접구워내는 마이스터과자점이라는 곳이 있었다. 꽤 따기 어렵다는 제과제빵기능장이 직접하는 집이었는데. 물론 주인장과 그의 마눌이 그닥 손님들에게 나긋나긋하지는 않았다. 어느날 그 건너편에 파리바게뜨가 생기자, 그곳의 빵은 많이 싸지 않은 가격에 품질은 훨씬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은 산뜻한 파란간판의 익숙한 그곳을 드나들었고, 결국 그 마이스터과자점은 파리바게뜨 출연 후 두달만에 문을 닫았다. 그곳이 문을 닫자 인생의 큰 즐거움 하나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송파대로에 중앙차로제를 실시한다고 한 다음부터 잠실역 -> 문정동 구간이 북새통이다. 차는 하루종일 막히고, 인도는 다 파헤쳐 놓아 다닐 수가 없다. 그런데 그중 가장 곤란한게 있다면 노점상이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가락시장은 아시다시피 도매시장이다. 물론 시장 내부로 들어가도 채소나 생선 등을 소매구입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시장 크기가 꽤 크기 때문에 만일 “애호박2개 + 사과10개 + 바지락 한봉지”를 사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그 큰 가락시장을 그야말로 동서남북으로 훑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영세한 노점상들은 핵가족을 꾸리는 주부에게는 정말 보석과 같은 존재다. 수퍼마켓이나 마트의 채소/생선 가격과는 정말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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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특히 좋아하는 생선리어카가 있었다. 그 생선리어카는 그날 그날 품질이 가장 좋은 생선만 떼어다 놓기 때문에 그날 그날 가장 저렴한 가격에 제철 생선을 먹을 수 있었고, 아저씨가 워낙 양심적이어서(아니면 정말로 장사를 잘해서) 삼치2마리 3000원에 얘기했다가도, 삼치 손질하다가 “이건 좀 작으니까 500원 뺄께요”라고 해주는 정도였다. 또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고등어나 삼치나 작은 조기새끼들은 마리당 1000원이 안되게 싹쓸이 할 수도 있는 기회도 있었다. 동태 큰~~ 것도 2000원 정도면 충분히 살 수 있고 말이다.

동태 살 때 그 옆 조그만 상자를 두개 놓고 앉은 채소장사 할머니는 “동태찌개 애호박 넣고 끓여. 두개 천원 줄께”(물론 여름 가격입니다. 지금은 애호박 비싸요. ^^)라고 말하면 얼른 천원한장 내고 애호박까지 집어 오곤 했다. 그래서 나는 생선을 워낙 좋아하지만서도 냉동실에 이것 저것 쟁여 놓을 필요 없이 그저 일주일에 한번정도 들러 2-3000원어치 사는 것으로도 일주일을 풍족하게 보낼 수 있었는데, 그만 보도의 폭을 확 줄이면서 노점상들이 다 쫒겨났다.


며칠전 남편이 오랜만에 퇴근길에 생선을 사왔다.
“우리 단골 생선 아저씨 나와있던데? 한마리 천원씩 주고 삼치세마리 샀어.”
“더 사지.”
“싹쓸이지.”
“어떻게 나왔대?”
“리어카가 골목 쪽으로 들어와 있던데.”
“그래? 거기서 이제 장사 하려나?”
“어떻게 하루 간신히 나온 거 같애. 상가 앞이라. 그 자리에서 오래 못 할 것 같던데?”

점심 때나 잠깐씩 집밖에 나갈 때면 생선아저씨가 나왔나 안 나왔나 서성대 봤는데, 그 날 이후로 아직도 보지 못했다. 추운데 어디 생계 계획은 세우시려나. 아저씨는 먹고 ‘사는’데 지장이 있으실거고, 우리집은 ‘먹고’ 사는데 지장이 있다.

영진공 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