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힐> – 불친절한 영화

상벌위원회
2006년 8월 31일

<사일런트 힐>은 플레이스테이션 용 게임으로 발매되서(코나미 사)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되시겠다. 요 게임을 몹시 매우 좋아했던 친구 Y군의 말에 따르면 게임 [사일런트 힐] 그야말로 공포/호러 게임중 존나 걸작이며, 한번 잡았다 하면 게이머의 심장을 조물조물 떡주무르듯 주물러 놓는 넘이란다.
각종 게임에 나름 도가 텄다고 자부하는 Y군(요즘엔 리니지2에 미쳐 산다)도 게임에 빠져 지낸 며칠동안 악몽 속에서 헤메는 듯 하는 심정으로 조이스틱을 잡고 놓지 못했으며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가끔, 샤기컷으로 다듬은 머리카락 끝이 삐쭉삐쭉 서는 벌렁거림을 선사한다고 하는데..

Y군 이넘이 원체 구라를 허리에 감고 다니는 넘이라 전부 다는 믿지 못하겠지만서도, 주변에서도 [사일런트 힐]을 주저 없이 최고의 게임으로 꼽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주 쌩구라는 아닐 것이라고 사료된다.

축축 늘어지는 늦여름, 배꼽에 박혀있는 가녀린 한줄기 때가 벌떡 일어나 저녁바람 맞은 갈대마냥 부르르 떠는 쾌감을 맛보고 싶었던 없다가 Y군과 함께 <사일런트 힐>을 감상했더란다.


게임의 재미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종관만 잡으면 그 안에서 총쏘고 날아다니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완벽한 몰입도를 선사하는 게임에 비해 가만히 앉아서 쳐다보기만 해야 하는 영화는 아무래도 게임을 할때만큼의 재미와 박진감이 덜하기 마련이니까.
제 아무리 천하무적의 사이즈(..)를 자랑해 마지않는 안젤리나 졸리라고 해도 내가 직접 조종하는 라라 크로포트만큼 애지중지하기는 힘든 법.(안젤리나 졸리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오오 그건 정말 좋겠다… 꼴깍.)

<사일런트 힐>은 철저하게 원작의 후광을 선택했다. 원작의 느낌을 살리려는 노력이 눈에 보일 정도(…라고 Y군이 말했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얼개도 그렇거니와 고스란히 가져다 쓴 캐릭터들, 크리쳐, 지직거리며 불길함을 안겨주는 음향, 미장센, 카메라워크까지 철저하게 게임의 그것을 따라간다(…고 역시 Y군이 말했다.)
특히 주인공이 여자화장실에서 썩어들어가는 시신을 발견하는 장면은 화면의 구성과, 카메라의 움직임 등등이 마치 게임 동영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안겨주며, 게임 매니아들을 향수의 도가니탕에 푹- 담궈주기에 모자람이 없다(…라고 Y군이 매우 만족해하며 말했다.)

그러나 게임 [사일런트 힐]을 물집 잡히도록 플레이한 Y군과 플레이 스테이션에 엄지손가락 한번 얹어본적이 없는 내가 같을수는 없지. 무릎을 치며 흡족해하던 Y군과는 달리 나에게 당 영화는

매우 불친절했다.

하나의 공간이 다른 차원으로 나누어지는 구성, 사일런트 힐이라는 마을에 얽힌 사연, 주인공 여자아이 샤론과 마을 전체를 덮고 있는 저주의 주체인 알레사와의 관계 등등 전체적인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키워드들을 좀 지나치다 싶을만큼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십개의 물음표가 머리 위에 묶여 잔뜩 꼬인 전화선마냥 풀어지질 않으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옆에 있는 놈은 다 아는데 나만 몰르고 있는, 이유도 모르고 남들이 웃으니까 따라 웃는 듯한 이 찝찝한 기분 때문에 순조롭게 공포에 질려 주는데 상당히 많은 난점이 있음이다.
본인의 대가리가 특출나게 잘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하게 딸리는 수준도 아닌 바, 원작 게임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볼때 채 이해하지 못하고 죄없는 뒤통수만 벅벅 긁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질 것이라 예상되니..
관람에 앞서 [사일런트 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조금 습득하는 것이 순조로운 관람을 위해 바람직하다 하겠다.
어디서 얻냐고…? 검색창에 “사일런트 힐”이라고 쳐봐라. 이런것까지 갈쳐 줘야 해?

좀 많이 불친절한 것만 빼고 본다면 당 영화는 지금까지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 중 가장 낫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성들여 잘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뭐 지금까지 게임원작 영화 중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 있기나 했었냐? 라고 묻는다면 할말은 없지만서도..

저주로 마을 전체가 갇혀버린 사일런트 힐의 잿가루 날리는 음습한 분위기를 퍼팩트하게 살려낸 CG와 게임의 상상력을 그대로 살려 화면에 재현한 크리쳐들(하나하나가 다 사연이 있는 애들이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이 스믈스믈 기어다니는 모습, 서서히 몰아가다가 후반부에 한방 제대로 터트려주는 꽤 훌륭한 난이도의 고어씬 퍼레이드 등등 쏠쏠한 볼거리들이 꽤 많다. 그 중에서도 말년 병장이 깔깔이 벗듯 살가죽을 와락 한방에 벗겨버리는 장면은 근래에 경험했던 것중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그 충격이 뇌세포를 때려주는 장면이었다 하겠다.

가벼운 공포영화 한편 보면서 늦더위를 식히고 싶다면, 살벌한 동네 사일런트 힐에서 길잃고 미아 한번 돼 보자.
당신이 한때 이 게임에 열광하던 게이머였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강추다.

– 말했듯이 고어씬의 난이도가 꽤 있는 편이니 노약자, 임산부, 어린이 기타 세상을 밝게만 보고싶은 분이나 영화로 본건 꼭 따라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은 좀 참자.

상벌위원회 정규직 간사
거의 없다(1000j100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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