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와 초콜렛 공장, “유혹과 금지로 가득한 우리 삶의 자화상” <영진공 70호>

상벌위원회
2007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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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찰리와 초콜렛 공장>은 로알드 달의 유명한 동화를 원작으로 한다. 달의 다른 작품들처럼 기묘함과 무시무시함이 뒤섞인, 거의 동화판 <세븐>같은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탐욕에 대한 경고 같다. 식탐을 부리던 아우구스투스는 초콜렛 호수에 익사할 뻔 하고, 기록갱신 욕심을 부리던 바이올렛은 거대한 젤리 풍선이 되고, 모든 것에 탐욕을 부리던 버루카는 쓰레기장으로 쓸려가고, 신기술에 겁 없이 몸을 던진 티비는 그 기술에 갇혀 소인이 되어버리고, 오로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고 자기 분수를 지킨 찰리만이 엄청난 보상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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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쟁이 아우구스투스

하지만 그것뿐 일까.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윌리웡카의 공장은 어떤가. 그 공장은 제3세계의 주민과 동물을 착취해 사람들의 식탐을 자극하는 초콜릿을 만들어낸다. 웡카는 더 나아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킬 수 있는 신제품들을 끊임없이 개발한다. 그리고 바로 그 신제품들이 아이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함정이 된다. 바이올렛을 젤리 풍선으로 만든 껌도, 티비를 소인으로 만든 물질전송 TV도 결국 그 신기술과 신제품이 아니었던가.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수많은 유혹거리를 던져놓고서 그 앞에서 참으라고 요구하는 우리 사회 전체의 은유처럼 보인다. 입에서 살살 녹지만 지방이 가득해서 체중을 늘리는 음식이나 사용하면 멋있을 것 같지만 위험하거나 비싼 제품들 광고 앞에서 지름신을 달래며 살아가는 어른들도 유혹이라는 함정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다니는 운명이란 점에서는 윌리웡카 공장속의 아이들과 별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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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당하는 제3세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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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 던져놓고 자제심을 발휘하라니..

그럼 우리는 유혹 앞에서 자제심만을 발휘해야 하는 운명일까.
적어도 예전에는 그랬다.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에서 정의한 7대 악덕은 모두 개인적인 욕심의 문제들이다.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에게는 불행뿐만 아니라 영원한 지옥이 약속된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오히려 그 욕심에 충실한 사람들을 환영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이유로 이 영화의 결말도 조금은 다르게 볼 수도 있겠다. 꼬마인간이 되어버린 티비나 젤리인간이 된 바이올렛은 평범한 인간의 삶은 포기해야겠지만 앞으로 먹고 살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까. 반면에 그 착한 찰리는 여전히 제3세계 인민을 착취해서 아이들의 치아를 위협하는 초콜릿을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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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찰리에게 해피엔딩인가?

내가 냉소적인가, 세상이 원래 그런 건가.

상벌위원회 상임 간사
짱가(jjanga@yonsei.ac.kr)

“찰리와 초콜렛 공장, “유혹과 금지로 가득한 우리 삶의 자화상” <영진공 70호>”의 2개의 생각

  1. 영화를 보는 시선도 제각각인 모양입니다. 그런 깊은 생각은 사실 해보지도 못하고, 화려한 영상과 조니뎁의 연기에 흠뻑취했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영화에서 모든걸 다 보여주는건 불가능 하다고 생각해요…

  2. 그저그런 어린이용 영화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어 아직 보지 않았는데, 평을 읽으니 단순한 어린이용 영화는 아닐 것 같습니다.
    주말에 한번 봐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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