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카지노로얄, <상벌위원회>, <영진공 66호>

상벌위원회
2007년 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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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 바바라 바흐가 주연으로 나온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이하 스파이)’를 보고나서 007의 광팬이 되어 버렸다. 엄마를 졸라서 산 이안 플레밍의 원작을 다 읽었고, 비디오라는
게 생긴 고등학교 시절엔 틈나는대로 007의 전작들을 빌려봤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스파이’로 인해 높아진 내 눈엔 낙후된
기술로 만들어진 전작들이 지루하게만 느껴졌으니까. ‘살인면허’인가 하는 영화에선 007의 구두에서 칼이 나오는데, 그 당시엔
그게 최첨단 무기였었나보다.

그 이후부터 난 극장에서 개봉하는 007만 꼭 챙겨 봤는데, 그것 역시 그리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평화를 지키던 로져 무어가 은퇴한 게 한 가지 이유고, 내 감수성이 무뎌진 게 두 번째 이유 쯤 될 것이며,
<용형호제>나 <미션 임파서블>처럼 007에 비해 볼거리가 더 많은 영화가 만들어진 것도 한 이유리라.
그래도 한때 광팬이었던 의리 때문에 나오는 영화는 꼬박꼬박 봐줬지만, 진부한 스토리를 최첨단 기술로 만회하려는 게 영 눈에
거슬렸다. 바로 전에 만들어진 <다이 어나더 데이>는 그 결정판으로, 세상에, 버튼을 누르면 눈에 전혀 보이지 않게
되는 자동차가 출현한다. 자동차의 많은 부품들이 안보이게 되는 건 그렇다 쳐도, 왜 운전자까지 안보이게 되는 걸까?

007 제작진들도 팬들의 불만을 알아챘는지, 이번엔 확 바뀐 스타일의 007을 들고 나왔다. 이름하여 ‘카지노 로얄’.
기존의 제임스 본드와는 확연히 다른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로 나오고, 최첨단 무기 대신 손으로 싸우는 액션이 주를 이룬단다.
치, 그나마 첨단무기도 안나오면 무슨 재미로 보냐? 제사를 마치고 난 뒤의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밤 11시 반, 홀연히 극장으로
갈 때만 해도 별반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화는 재미있었다. 소피 마르소가 본드 걸로 나올 때 절벽으로
추락하는 헬리콥터를 집어탄 뒤 조종을 해서 다시 날아오르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영화에선 그렇게 말이 안되는 씬은 전혀 나오지
않았고, 스토리도 제법 말이 됐다. 007 역시 완벽하기보단 인간적으로 그려져 더 공감이 갔고, 다니엘 크레이그도 제법
멋있었다. 영화관 밖에서 어떤 여자관객이 한 말, “지명도가 없어서 후져 보였는데, 갈수록 멋있더라.”

그런데 왜 이 영화의 평점이 그리 높지 않은 걸까? 그건 아마도 관객들이 포커를 잘 모르기 때문이리라. 영화 제목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카지노로얄은 포커 장면의 비중이 높다. 그러니 포커 룰을 모르면 많은 부분을 건너뛰어야 하고, 포커를 쳐봤다 해도
영화에 나오는 식의 룰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놀아본 적이 있는 난 온갖 다양한 포커를 다 쳐봤고, 영화에서 나오는
방식으로도 쳐본 적이 있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시종 즐거웠던 건 다 그 덕분, 역시 사람은, 젊을 땐 좀 놀기도 해야지
않을까?

상벌위원회 부국장
서민(bbbenji@freechal.com)

우울한 직업병 – 성병인 건가?, <재외공관소식>, <영진공 66호>

재외공관소식
2007년 1월 2일

1. 얼마 전, 자주 가는 동호회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연인과 같이 보면 좋은 영화는?”이라는 설문이 떴다. 예상했던 답들이
주르륵 댓글로 달렸다. “러브레터” “러브액츄얼리” “철도원” 등등. 그런 댓글을 바라보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포르노”라고
입력을 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나는 왜 이렇게 댓글을 썼던 것인가? 그런 질문을 나에게 던지고 있는 와중에, 내 손은 추천
사유로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따뜻해져요.”라고 적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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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크리스마스 영화라고 생각하는 러브 액츄얼리

2. 성인용품점을 운영하며, 아니 성인 블로그를 몇 년간 운영하며 몸도 마음도 병들었음을 깨닫는다. 이제 무엇을 하건, 성적으로
연관지어서 생각해 버린다. 이건 무슨 종류의 성병이란 말인가? 허리 아래 쪽이 아니라, 어깨 위쪽에 감염되는 이 병은 정상적인
사고 과정을 방해하여, 사람들과 멀어지게 만든다. 내가 본래.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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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만 심각한 성병 사면발이. 언제 이걸로 포스팅 한번 해야지.
나는 왜 이럴까를 고민하면서도 사면발이 사진을 올리는 나. 중증이다.

3. 엊그제 텔레비전에서 육상 경기를 보다가,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빠른 것일까? 라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결론은 “태어날
때부터 저들은 빠르다.”는 것. 그렇다면 출생에서부터의 속도 차이는 어디서 결정되는 것인가? 이틀 간을 고심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정자의 속도”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정자의 속도가 만들어내는 속도 차이라면, 굳이 저렇게 땀 흘려가며, x
빠지게 뛰어가며 서로의 속도를 측정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냥 정자만 뽑아서 속도를 측정하면 훨씬 편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혹시나 해서 찾아 보니, 실제 영국의 bbc에서 비슷한 컨셉으로 정자 달리기 대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참 많이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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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정자 달리기 대회
생명 윤리를 생각해서 결승 앞에서 멈춰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구감소 현상을 고려하여 1등에게는 부상으로 아기를 줘야 하는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4. 한 달 전쯤, 친구로부터 브리티니 스피어스의 사진 한 장을 이메일로 받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가 파파라치에게 걸린 이
사진은 완전 노팬티였을 뿐만 아니라, 숲까지 벌목이 되어 민망한 계곡의 참상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왜 내 주위의
사람들은 이런 사진을 보면, 나한테 메일로 보내는 것일까? 나 보고 어쩌라고? 이걸 모자이크도 하지 않고 인터넷에 공개하면, 난
구속이다. 그러지 말게. 친구. 그냥 먹고 죽으라는 그 뜻은 고마우나, 아직 살아야 할 날이 많다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모자이크 팬티. 이런 걸 만들면 누가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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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된 살색 팬티. 혹시 에로 영화 관계자들이 사지 않을까?
이걸 입고 촬영하면, 다시 편집할 필요가 없잖아.
아래는 실제 착용했을 때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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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특이한 모양의 usb 메모리 카드가 만들어져서 팔리고 있다는 기사를 읽으며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남자 어른 누드의 usb
메모리 카드였다. 남자의 중요 부위가 usb 형태로 되어 있어, 그 부분을 컴퓨터에 꽂으면 바로 몸이 상하반동을 하는 그런
usb 메모리. 만들면 대박은 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한번 사람들의 눈길은 끌 수 있을 텐데, 그걸 만들어 유흥업소 홍보용으로
팔아봐? 이런 생각을 해 봤었는데, 일본에서 비슷한 컨셉으로 재미있는 것이 나왔다. < 사이트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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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 생긴 usb 메모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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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새로 나온 usb 메모리
아래는 실제 부착시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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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해 보니, 메모리는 아니란다.. 그저 장식용이란다.
그러고보니 놀라운 장식효과가 있어 보인다.

6. 처음에 크리스마스가 되었는데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은 나이가 먹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시기는커녕, 산타할아버지가 되어 선물을 뿌려야 하는 우울한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감흥이 오겠는가? 그런 줄만
알았는데, 크리스마스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크리스마스에는 솔로를 위한 딸딸이 용품이 더 잘 팔릴까? 아니면 커플을 위한 섹스
용품이 더 잘 팔릴까?” 라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아. 인간에게 사랑을 베풀러 예수님이 오신 그 날
마저, 세상의 섹스는 어떻게 돌아가는 가를 먼저 생각하는 나 자신에 대해 크나큰 아픔을 느껴야 했다. 두개골 안쪽까지 전이된
성병은 이제 날을 가리지 않는구나. 라는  좌절감에 빠지고 있다.

오늘은 토요일인 관계로 특별하게
모 동호회에 올라온 일본 AV (Adult Vedio) 사진 한장을 짤방으로 삽입.. 왼쪽 사진은 일본 포르노의 dvd
케이스이고, 왼쪽은 실제 내용을 캡쳐한 영상.. 우리나라를 IT 강국이다 어쩌다하지만, 포토샵 기술은 일본도 상당히 발전해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을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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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직업병 타파 소개소 수도권 지부장
짬지(http://zzamziblog.com)

이송희일: “후회하지 않아”, <산업인력관리공단>, <영진공 66호>

산업인력관리공단
2007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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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처절해도, 그래도 사랑은 찬란합니다.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이 때문에 아프고, 슬프고, 안쓰럽고, 짠하고, 서러워서, 이 영화의 두 남자는 참 많이도 운다.
아마 시퀀스마다 수민(이영훈) 아니면 재민(이한)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올 것이다. 그들은 그걸 굳이 강한 남자인
척하며 가리려 하거나 참으려 하지 않는다. 사랑 때문에 그토록 자주 우는 남자들을 영화에서 보는 건, 그리 흔하지 않은
경험이다. 참고참고 또 참다가 한번 우는 남자들만 존재하던 영화들 사이에서, 아플 때마다 울고, 애절하게 울고, 그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 남자들. 그러면서도 찌질한 자기연민으로 오염되지 않은 그들, 그들의 그 당당한 눈물이 아프고 좋았다.

참 쉽게 남발되는 ‘사랑’이라는 것, 이게 사실은 인간의 일생에서 얼마나 큰 것이고, 사실은 얼마나 ‘사기’이냔 말이다. 대부분 우리가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감정들은, 계급이건 뭐건 대체로 안전한 울타리 안
서 상호 쉬운 합의를 통해 ‘모방-연기’되고, 상호 쉬운 합의를 통해 종말을 맺는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이, 그리고 연애라는
것이 그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성립하게 될 때, 그 본질이 비로소 드러난다.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그래서 더욱
절박하게 찾아 헤매고 처절하게 집착하는, 사랑. 도저히 쉽게 끊어낼 수도, 그만둘 수도 없는 사랑. ‘존재’의 증명, ‘존재’의
이유가 되는 것. 그렇기에 이렇게 아프느니 차라리 상대를 해치고 싶은 욕구. (나는 변심한 연인을 죽여버리는 살해범들의 심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 정말 사랑이란 끔찍한 것이지 않는가. 여러 번 해보았다는 사람도 처음 하는 사람도, 그래서
사랑엔 언제나 서투르다. 많은 이들이 ‘진짜 사랑은 평생에 한번뿐’이라 얘기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많은 멜로드라마들이 이
사랑이라는 것의 외연은 그려내지만 그 본질까지 그려내는 데에는 실패한다. (이 지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상당히 그럴 듯한
근거들을 가지는 것처럼도 보인다.) 멋지고 늘씬한 두 사람이 참으로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 합의하고 한동안 들떠서 섹스하다가
끝을 내고 자기 연민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때로, 꽃노래는 전체의 극히 일부일 수밖에 없는 그 ‘사랑’이라는 놈의 아프고
폭력적이고 유혹적인 내면을 부족하나마 드러내는 영화들이 나온다. 나는 이 영화가 그걸 해냈기에, 참 아프게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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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에게 사랑이 쉽지 않은 건, 그의 거처가 자본의 가장 깊은 그늘 속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평론들이 얘기하듯, 이 영화는 6, 70년대의 일명 호스티스 영화의 문법을 되살렸고, 그 안의 신파적 요소를 끝까지
밀고 가고, 그것이 부잣집 남자와 가난한 호스테스 여자가 아닌, 부잣집 남자와 가난한 남자라는 그 차이만으로 새로운 의미를,
새롭고도 섬세한 경지의 효과들을 만들어낸다. (젠더가 갖고 있는 그 수많은 함축된 의미를 굳이 계급의 이름으로 부정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좋은 반증의 사례가 될 것이다.) 두 신인배우들의 연기는 때로 어색하고, 장면들도 어색한 부분들이 가끔씩 있지만,
이를 모두 능가하는 진심이 배어나온다. 기술적인 약간의 단점을 모두 능가해버리는 강력한 장점이 있을 때, 영화는 약간의 티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빛을 내는 법이다. 예를 들어 수민의 단칸 자취방에서 사랑을 나눈 다음날 아침의 장면을 생각해 보자. 먼저
일어나 있던 수민이 재민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의 귀에 뭐라뭐라 속삭인다. 재민은 밖으로 내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우리는
수민이 뭐라 말을 했을지, 재민의 대답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다. 대강의 내용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지만 그러나 정확한 말을 알
수는 없다. 이들의 다른 정사 장면뿐 아니라 바로 이 장면에서, 나는 사적인, 그러나 사회적인 관계망으로 재구조화되는 – 혹은
실은 사회적인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었으나 사적인 영역에서 내밀하게 재구조화될 수밖에 없는 ‘사랑’의 복잡다단한 면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다.)

정말 안타까운 건,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때로 몰입을 방해할 정도의 강력한 단점이 튀어나오는 것이 사실인데 그 단점이
대체로 정말로 ‘기술’ 및 예산과 관련된 부분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영화의 시작부터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야외씬으로 시작하고, 이후 수민과 재민이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어서도 야외씬과 풀샷, 롱샷이 굉장히 많이 사용됨에도
영화에 거리 심도가 완전히 지워져 있다. 절절한 감정을 담은 절규의 대사들이 혹은 소근거림의 대사들이 때때로 사운드가 뭉개져
알아들을 수가 없다. 조악한 디지털 화면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버린. 이송희일 감독이 영화 개봉 전 그토록 ‘겸손’의 말을
반복했던 게, 실은 겸손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에 훨씬 못 미치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절대적인 조건의 한계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이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나마 환경이 괜찮다는 CGV 압구정에서 봤을 때 이 정도라면, 필름포럼이나 다른 곳에선 과연
어떠했을지. (그러나, 어쩌면 그런 곳이 영화의 분위기와 오히려 더 잘 어울렸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디 다음번엔
꼭, 필름으로, 원하는 효과를 그려낼 수 있는 제반 조건에서 영화를 찍으실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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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잡은 손의 따뜻함이여... 삶의 이유, 존재의 증명. 너는 내 운명.

ps1. 이영훈은 목소리의 음색과 톤이 아주 부드럽고 안정적이고, 온몸으로 특히 눈빛으로 시나리오에 없는 대사들을 속삭이는
것같다. 그런데 ‘말하는’ 대사에 감정을 싣고 빼고 하는 쪽은 이한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둘 다 장점이 다르고 그 장점이
기대 이상이라, 앞으로 행보가 아주 기대된다.

ps2. 아마 격정을 그대로 표현해내는 캐릭터에 대한 내 선호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한의 재민 캐릭터가 (기대도 안
했다가) 너무너무 좋았다. 아마도 그는 가진 자이기에 자신의 욕망을, 사랑을, 그토록 직설적/격정적으로 뿜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주춤거리는 게 없는 이한의 연기가 그래서, 참 좋았다. 맞고 밟히고 끌려나가면서도 절박하게 수민의 이름을 외쳐대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면서 일어나는 사적 관계에서의 권력의 전치. 난 그가 구덩이 안에서 낑낑대다가, 수민의 목 뒤에 삽이
날아들 것 같자 벌써부터 비명을 질러대는 걸 들으며 펑펑 울었다. 그 상황에서도, 자기를 파묻으려 했던 수민을 걱정하는 거…
그래, 저게 사랑이지 싶었다. 사실 이 영화는 감정의 흐름과 러브씬의 연출이 아주 매칭이 잘 돼 있다. 많은 영화들이, 사이드
필드의 표현을 빌자면, 에피소드의 나열이되 플롯이 없지만 이 영화는 플롯, 즉 구조란 것을 가지고 있고 감정과 관계상의 변화의
흐름이 영화적으로 아주 잘 표현돼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가진 기술적인 한계들이 더욱, 안타깝고 속상하다.

ps3. 평론가 심영섭이 이 영화에, 게이-언니 간 연대가 없는 게 아쉽다고 썼다. 직설화법으로 꼭 보여줘야 알아먹나? 이
영화에서 연애를 하는 두 사람의 방식, 끝없이 서로 속삭이고 매달리고 울고 그러다 복수(?)를 시도하고, 그거 전부, 이제껏
멜러영화에서 ‘여자들’이 했던 방식 아닌가. 게다가 재민이 굳이 김정화에게 고백을 하고 뺨을 후려맞는 씬, 고백하기 전에 굳이
재민이 김정화의 손을 잡는 장면의 클로즈업이 있는데 말이다. 김정화가 뺨을 후려치며 내뱉었던 말, “그딴 식으로 살지 마”가,
외려 재민의 사랑에 대한 격려로 들렸던 건 내가 지나치게 앞서나간 탓이란 말인가.

ps4. 영화에서 마담이 선수들을 ‘이 년, 저 년’으로 호칭하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더라. 그에 대한 감독의 반응은 이 글
참조하시라. 내 개인적으로는, 불편함은커녕 친근함이 들었다. ‘년’으로 호칭되는 저 선수들이, 아, 겉으로 생긴 건 달라도 속은
나랑 같은 성별이구나, 란 생각이 들어서. 남성에 대한 여성형 욕이 여성비하가 되는 건 맥락 때문인데(감독도 지적했듯 군대에서
하급자를 향한 ‘이 년, 저 년, 씨발년 등의 욕), 나는 이 영화의 경우 맥락이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남성
동성애자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여성 관객의 입장은 사실, ‘연애라는 사적 관계를 지켜보며 느껴지는 배타되는 느낌, 소외감’을
넘어서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얼마 전 J 언니와도 얘기했지만, 아예 여성을 사람 취급 않기에 사랑의 자격도
부여하지 않는 문화가 인류의 역사에 분명 존재했으니까. 이걸 생각해 본다면, 년 타령에 불편해하는 반응은 (감독의 의도와
다르더라도) 분명, 나름 일리가 있는 반응이 아닐까 생각한다.

산업인력관리공단 조사1부 부장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